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18)
EP.319)숙명의 라이벌 # 5
319 – 쌍둥이는 숙명의 라이벌 # 5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설명을 할 때 보통 게임을 예시로 들고는 했었다.
이를 테면 지금의 상황을 게임으로서 설명해본다고 하자.
온갖 미로와 신비가 가득한 던전을 누볐던 우리들의 앞에 나타난 보스 몬스터.
그리고 녀석이 떨어트린 열쇠를 통해 진입하게 될 수 있는 비밀의 통로.
이 비밀 통로의 뒤에 무엇이 있을지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으레 두 가지 선택지 정도가 보이기 마련이다.
첫째는 보상의 방이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린 용사들에게 노력에 대한 휴식과 마땅한 보상을 주는 방 같은 것.
금괴가 가득 쌓여있고,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마법의 스크롤이나 성스러운 검 같은 게 꽂혀있는 대좌가 신비롭게 스며드는 햇살 사이에 놓인 방.
정석적이라고 볼 수 있지.
“요새 우리 가문의 재정이 넉넉지 않잖아. 금괴나 은괴가 잔뜩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금으로 만들어진 우상(偶像)이 있을 지도 몰라! 그걸, 우리가 녹여서 파는 거지!”
나르미는 이 구불구불하고 좁은 통로 뒤에 보물의 방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보물들을 지키기 위해 무시무시한 파수꾼과 미로 같은 지형이 있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해도 좋았다. 다만 미르나의 경우는 달랐다.
“어쩌면 더 끔찍한 괴물이 있을 수도 있어, 나르미. 너무 들뜨는 건 좋지 않아.”
미르나가 고려하는 것은 보스의 방 이후 생겨나는 두 번째 항목. 미궁의 보스가 건넨 열쇠 사실은 더 무서운 보스로 향하는 길일뿐이었을 때다.
우리들은 방금 중간 보스를 쓰러트린 것에 불과하고.
사실 이 불온하고 미심쩍은 길 뒤에 진짜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 또한 게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과연 미르나와 나르미 둘 중 누구의 이야기가 맞을지 나 또한 침착하게 예상해보며 어두운 동굴 안을 저벅저벅 걸었을 때였다.
마침내.
좁은 통로 길이 끝나고 우리들의 앞에 제법 넓다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이 수 미터 높이로 높고, 그 좌우의 넓이도 가늠하기 힘들 만큼 넓어서 소리치면 메아리가 왕왕 울릴 것 같은 공동. 그 광활함에 내가 살짝 압도되어 긴장했던 것도 잠시였다.
“언니, 저거 봐!”
나르미가 머리칼을 쭈뼛 세우며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뼈?”
미르나의 중얼거림처럼 그것은 누군가의 유골이었다.
온통 하얗게 보일 정도로 비쩍 마른 해골. 신기한 점을 꼽자면 그 몸에는 반짝거리는 플레이트 갑옷이 입혀져 있다는 것 정도.
으스스하구만.
다만 미르나와 나르미에게 뼈라는 것는 그리 신기할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특히 나르미는 경계할 것도 없이 다가가서 그 갑옷의 형태를 요모조모 살펴봤다.
갑자기 해골이 움직이면 어떻게 하려고 저렇게 대담할까. 곧 나르미로부터 제법 안심할 만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죽은 지 너무 오래된 유골이라, 강령술로도 못 다룰 것 같아. 혼의 편린조차 없거든. 막 이 녀석이 움직이거나 할 걱정은 없어 보이네!”
그때서야 나도 미르나도 안심할 수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나르미를 따라 해골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서니 기묘한 점 하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해골의 앙상한 손에 쥐어진 것. 그 물건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주전자?
주둥이가 길고 그 뒤쪽에는 손잡이 머리 쪽에는 뚜껑이 달린 주전자였다. 나르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웬 주전자가 있어!”라고 살짝 호들갑을 떤다. 그때 미르나가 정정해주었다.
“주전자가 아니라, 램프 같아. 기름 넣고 불 붙이는 도구 말이야. 엄청 오래되어 보이는데. 왜 이런 곳에 해골 손의 램프가…?”
“언니, 여기 발쪽에 뭐라 적혀 있어!”
나르미의 이야기에 나도 미르나도 고개를 숙였다. 과연 나르미 말대로 바닥에는 누군가 칼로 긁어 놓은 듯한 글자가 적혀 있다.
내가 읽기 힘든 종류의 고대 언어. 미르나 역시 해석이 어려운 것인지 드문드문 말을 더듬는다.
“열망의 도구. 요정. 소원을 들어준다. 대가. 사악함의 발로. 마도구에 봉인. 해방을 위해서는 두 빛과 두 진언의 동시 진행 필요….”
미르나의 말은 그렇게 애매하게 끝났다. 워낙 오래된 장소였기 때문인지 글자가 파손되어 있어서 완전한 해석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때 나르미가 상상력을 발휘했다.
“어쩌면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이 램프 안에 봉인 되어 있다는 게 아닐까?”
슥. 램프를 향해 손을 내미는 나르미. 그 무방비하면서도 겁 없는 행동에 미르나가 “나르미, 함부로 만지면 안 돼!”라고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달각, 와르르르-.
램프를 손에 쥐고 있었던 해골의 몸이 마치 실 풀린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바닥으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 갑옷도 뼈도 가루로 흩날려 바스러진 상황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상아빛깔의 램프 뿐. 동시에 우리들이 들어왔던 입구에서 이변이 일어난다.
드르르르, 쾅!
와르르르.
어딘가에서 굴러온 바위가 입구를 막은 후, 무언가가 아주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확언은 할 수 없지만 우리들이 이 공간에 밀폐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경악하는 미르나 드레이코.
“세상에, 함정이었나 보네요! 나르미, 네가 멋대로 램프를 만지는 바람에 이렇게 됐잖아!”
“나 정말, 모든 것에 맹세코 안 건드렸어! 언니가 시끄럽게 소리치는 바람에 해골이 중심을 잃고 무너진 거지!”
* * *
━규이잉.
한참 날아다니던 클라우드링 잉잉이가 내 머리에 앉았다. 이 공간에서 빈틈을 찾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지친 것이겠지.
“…….”
“…….”
한참 조잘거리던 나르미와 미르나도 이제 지친 건지 소강상태다.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누구 책임인지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지금은 이곳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지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죠. 이 공간이 언제까지 멀쩡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일단 이 자리를 탈출 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최우선 목표라는 것을 알렸다. 그것에는 자매도 서로 동의를 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미르나가 한 마디 물어왔다.
“혹시 마르마르 일행과는 대화가 되질 않나요?”
아쉽지만 이번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도전하고는 있는데. 마력이 닿지 않습니다. 이 주변에 새겨져 있는 글귀들이 마력을 차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완벽한 밀실의 방에는 벽마다 기묘한 구절과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나르미나 미르나마저도 해석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오랜 옛 글줄들이라고.
“태오 경의 말을 들어보면, 이 글귀들이 마법 방호의 역할을 하는 모양이네요. 고대의 유적에는 흔히 있는 경우라고 하는데. 실제로 본 건 저도 처음이네요.”
“나도 처음이야!”
“음, 그렇습니까?”
내 적당한 대꾸에 미르나가 몇 마디를 더 설명했다.
“이교도 사제들이 앙그마르 왕국에서 파견된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마법 방호 술식을 새겨두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요.”
마법은 비교적 역사가 짧은 기술이라고 했다.
어렵고 불편한 고대 주술에 비해, 편리하고 강력한 마법으로 무장한 빛과 소금의 신도들은 닥치는 대로 이단과 이교도들을 정벌하며 세력을 넓혔다고.
그런 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교도들은 매직 재머 – 마방진을 고안해냈다나.
오팔 벨호크의 몸에 새겨져 있던 마법 방호의 술식 또한 그런 이교도들의 기술을 현대에 맞게 개량하고 고안한 것이라고 했다.
슥.
혹시나 싶은 마음에 손바닥에 빛의 구슬을 피워봤다.
가장 기본적인 1위계의 발광 마법 – 라이트.
요령만 조금 안다면 찬란한 태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주 쉽게 피어 올릴 수 있는 마법이기에 마법 실력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고는 했다.
평소라면 있는 힘을 쥐어짰을 때 내 몸통의 크기보다 훨씬 커다란 빛을 피워 올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축구공 정도의 크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겨우다.
“확실히, 마력의 운용이 어렵네요.”
마법의 실행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감각이 생생했다. 누군가 내 어깨와 팔 다리를 붙잡고 힘껏 잡아당기는 것처럼.
덕분에 약간이지만 긴장하고는 만다.
최근 이런저런 일을 편리한 마법으로 해치우고 있었던 내가, 그 유일한 장점마저 잃는다면 평범하고 무능했던 애송이로 돌아갈 일 밖에 없었으니까.
“언니, 태오야. 내 이야기를 들어 봐봐.”
나르미가 우리들의 이목을 끈다. 그런 나르미의 손에는 상아빛 램프가 들려 있다.
“이 램프에 봉인된 요정이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잖아. 그럼 그 녀석을 풀어줘서, 우리를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나르미는 램프의 요정이 소원을 이뤄줄 것이라 단언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도 요술 램프의 이야기가 동화처럼 퍼져 있는 걸까?
물론 언니인 미르나는 조심스럽게 비관을 표했다.
“나르미, 그 뒤에 사악한 대가가 따른다는 글귀도 적혀 있었잖아.”
“언니가 해석을 잘못한 걸 수도 있잖아.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녀석은 실체가 없이 혼백만 있는 상태일 텐데. 언니랑 내가 혼백 하나 통제 못할 일이 있겠어?”
“흐응…, 확실히, 그 말도 맞기는 한데.”
보수적이고 안전지향적인 미르나가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나르미에게 설득되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나르미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긴 한다.
기회라 생각했는지 나르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램프, 잘 부서지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아. 열리지도 않고. 매우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풀지 모르겠어. 봉인술 쪽은 언니가 잘하잖아.”
슥.
언니에게 램프를 내미는 나르미. 그것을 받아 든 미르나가 한참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가볍게 평가했다.
“이런 중요한 도구는, 봉인을 쉽게 풀지 못하도록 까다롭게 만드는 게 정석이지. 아까 전의 글귀에 두 개의 빛과 진언을 동시에 진행하라 했었는데….”
주변을 살핀 우리는 이 공간의 좌우 끝에 큰 발광 크리스탈이 거울 모양으로 깎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천정에 설치되어 있는 발광 수정으로부터 빛을 반사하는 것이라는 것도.
“저 두 개의 빛을 이 램프에 쬐게 해야 할 수도 있겠어. 오랜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퍼즐 형식의 봉인이 자주 있었으니까.”
미르나의 의견은 몹시 타당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미르나의 말에 따라 램프를 중앙에 놓고 양 옆의 수정에서 빛을 쏘아 봉인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수정의 빛을 중앙으로 쏘려면 누군가는 그것을 들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르미와 미르나가 각각 방의 좌우로 흩어지고─.
슥.
나 역시 각도를 맞추기 위해 램프를 높이 들어 올리게 되었다.
“나르미, 진언은 기본적인 A-B-A˚ 진언으로 갈 거야. 동시에 읊는 게 중요한 것 같으니까 타이밍 놓치면 안 돼!”
“알았어!”
스아아아아.
두 강렬한 빛이 랜턴에 비췄을 때.
쌍둥이는 서로 하나의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중얼 읊기 시작했다.
“━━─━”
“━━─━”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음율과 음색. 그것이 마치 한 사람처럼 동시에 말해지는 것은 무척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덜그럭, 덜컥, 덜그럭.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램프가 기묘한 느낌으로 요동 쳤다. 그 안에 거대한 햄스터가 한 마리 들어가 있어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과 아주 닮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펑-!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 그것은 램프의 뚜껑이었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져 매우 시끄러운 소리를 냈을 때였다.
스아아아아-.
기묘한 한기 같은 것이 열린 램프에서 가득 뿜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발밑은 무대 장치의 드라이아이스 같은 연기가 가득 메웠을 정도로 많은 양에 긴장이 감돈다.
━드디어 풀려났구나. 천 하고도 백 오십 년의 시간. 여덟 달 하고도 열일곱의 밤을 지나, 이 몸이 사바세계의 공기를 맛보게 되었도다.
내 머리 위로 기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실로폰을 두들기는 것처럼 맑은 목소리.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나는 무희들처럼 나긋나긋한 복장과 얼굴에 베일을 두른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기묘한 구름 사이에 나른히 누워 유영하고 있는, 매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너희가 이 몸을 풀어준 아해들이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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