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16)
EP.417)이상한 신혼여행 # 1
417 – 조금 이상한 신혼여행 # 1
우리는 숲을 달렸다. 수풀과 숲이 우거진 곳으로 한참 달린다.
모나크시티의 높은 성벽이 작은 과자처럼 보이다, 그것보다 더욱 작게 보이게 되어서야 엘가가 걸음을 멈췄다.
“이쯤 되면 추격자들도 더 이상 따라붙지 못할 거야.”
그 말에 로브를 걷어 올린 채 나무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는 미르나.
“이렇게 나쁜 짓은 처음 해봐요, 심장이 터져서 죽을 것 같군요. 세상에, 제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도망쳤다니. 저, 지금 큰 죄를 짓고 있어요…!”
아무래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미르나이니만큼 이번 도주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느끼는 바가 많은 모양이었다.
그에 엘가가 말했다.
“감상에 젖을 시간 없어 지금 쯤, 우리들이 없어진 걸 눈치 챈 사람들이 있을 거야. 물론 우리 아빠가 뭐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주고 있을 것 같지만.”
엘가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미르나는 더욱 경악했다
“라인하르트 공에게는 아버지 대신 덕담까지 받았는데…! 이렇게 도망친 걸 알면, 무척 실망하겠죠? 궁정에서 자주 마주칠 텐데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그건 나중에 생각해. 만약, 우리 아버지가 사람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면 적어도 여유로운 시간은 앞으로 두 시간 정도─.”
“잠깐, 선배가 색소폰을 분다고?”
스텔라가 이상한 곳에서 질문을 해왔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지 싶으면서도 동시에 나도 무척 궁금해졌다. 그 딱딱한 중년이 악기 연주를?
엘가는 “가끔씩 혼자 연주하는 거 봤어. 본인은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가만있었지만. 색소폰뿐만 아니라 혼자 피아노도 치고 다 해.”라고 말했다.
라인하르트가 악기 연주하는 모습이라니. 그건 봐두고 싶었는데, 이렇게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쉽다.
“아무튼, 두 세 시간 전까지는 국경지대를 빠져나가는 게 좋아. 도중에 정체가 들키면 곤란하니까 옷도 갈아입도록 하고. 아까 각자 챙겨오라고 한 거 있지?”
카펫에 그려진 차원문을 통해 왕성을 탈출하기 전, 영애들은 각자 짐을 챙기기 위해 십 분 정도 헤어졌었다. 그때 갈아입을 간편한 옷들을 챙겨온 모양이다.
사브작 사브작.
나는 그녀들이 드레스를 벗고 또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는 걸 도와주었다. 이제 다섯 신부와 신랑은 온데간데없고, 다섯 모험가와 그들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 만다.
“드레스는 제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영애들이 갈아입은 옷을 내 인벤토리인 《다람쥐 저장고》에 잘 보관해두었다. 하나, 하나 내 창고 안으로 사라지고 있을 때 나르미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정말 예뻤는데. 나중에 또 입을 수 있을까…? 아니면, 앞으로 평생 입어볼 일 없으려나? 이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역시 좀 아쉽다.”
“….”
다들 말은 안했겠지만 아마 나르미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 내심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나머지 부분은, 돌아와서 하도록 해요. 결혼식은 이걸로 끝난 게 아니라, 잠깐 일시적으로 중지한 걸로 치죠. 여행에서 돌아와서 꼭 다시 하는 거에요.”
이번보다 더 크고 떠들썩하게.
날짜도 일주 일, 아니 한 달을 통 크게 커다란 축제처럼 여는 거야. 그럼 다들 아쉬워했던 것도 잊고 몹시도 즐거워하겠지.
그렇게 다들 아쉬운 분위기가 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때 사람들을 슥슥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보면 스텔라가 말한다.
“그런데, 다들 모험가 같이 입고 왔네. 신혼여행 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산 타려는 사람 같잖아. 아무리 장벽 너머라도 그렇지.”
스텔라는 영애들이 차고 있는 단검이나 로프 등이 꽤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확실히 그녀들의 모습은 신혼여행을 가는 것보다 은행을 터는 강도에 더 가까웠다.
엘가가 말했다.
“분명, 뜻하지 않게 힘을 쓸 일이 잔뜩 있겠지. 태오, 네 고향에 가는 거. 어째선지 호락호락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단 말이지.”
미르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입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걸까?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장벽 너머에 있을 내 고향이라는 어감에서 큰 긴장이라도 한 걸지 모르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혹은 여행 가듯 가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확실히 무리한 의견이었다. 문득 내 막무가내 같은 이야기에 따라준 그녀들에게 매우 미안해지고 동시에 고마워졌다.
“제 무리한 부탁에 다들 따라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일단 모두에게 감사를 표할 때였다. 가죽 장갑의 매듭과 박음질을 꼼꼼히 검사하고 있던 엘가가 멋쩍은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너도 우리들이 막무가내로 말한 것들, 다 들어줬었잖아.”
그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르미.
“태오는 내 부탁도 다 들어줬었어! 그럼, 나도 인간적으로 태오가 부탁하는 것도 한 번 정도는 들어줘야겠지. 흐흐….”
아이라도 한 마디 했다.
“휴가를 가고 싶다고, 태오 너는 내게 늘 말했었지. 이번이 그 휴가가 될 지도 모르겠구나. 단순한 휴가치고는 바쁘겠지만.”
다들 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들을 위해 할 말이야 무척 많았지만 나머지 이야기는 다녀와서 하도록 하자.
* * *
앙그마르의 북부를 듬직하게 지키고 있는 장벽 클라리스. 그곳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사람은 왕국에서 허가된 수색자들 뿐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일이나 법으로 금지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잔뜩 있는 법이다.
수많은 성채에 모두 빼곡하게 경계가 차 있을 수는 없는 법.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완벽하지 못하다.
우리들이 향하는 ‘다람쥐 구멍’이라는 곳도 바로 그 중 하나였다.
일찍이 장벽 북부 도시 산도라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평소 눈 여겨 보고 있었던 불법적 수색자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지금 나를 안내중이다.
수다쟁이 토리.
30대에 경박한 남자로 보이지만 실력은 좋다나. 콧망울 왼쪽에 큰 점이 있어서 인상 깊었기에 기억한다.
“어디보자, 댁들이 장벽을 넘는다고? 꼭 오늘 가야겠소? 오늘, 저 앙그마르 어딘 가에서는 결혼식인지 축제인지 뭔지 한다고 난리더만.”
그는 오늘처럼 경사스러운 날 이 위험한 장벽을 넘어서려는 우리의 일을 궁금해 했다. 그리고는 로브에 가려진 모습을 찬찬히 훑는데….
“그러고 보니 다들 어디선가….”
혹시 신분이 들키면 꽤 곤란해질 게 분명했기 때문에 다들 로브를 깊게 눌러쓴다. 그에 월담꾼 토리는 파하하-크게 웃었다.
“뭐, 담을 넘는 이유야 제각각이지. 나야 넘겨주기만 하면 끝이고. 뭐, 오늘 같이 좋은 날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기에 지탱되는 것 아니겠소.”
누군가 휴식을 취할 때 누군가는 일을 한다. 모두가 쉬는 휴일에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을 거다. 그건 당연한 일이고 뜻 깊은 일이지만.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월담꾼이 이야기하니까 좀 느낌이 이상하다.
그래도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거짓이 아니었는지, 우리는 그를 따라 산도라 근처의 서쪽 장벽 바닥 어느 곳에 깊숙한 구멍이 파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장벽 아래로 파인 구멍은 그야말로 땅굴 그 자체.
“저, 저보고 이곳을 기어 가라구요…? 개구멍 넘는 도둑처럼…?”
미르나는 자신이 범죄자처럼 개구멍을 엉금엉금 기어가야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에 월담꾼이 흥-하고 코웃음 친다.
“우리 모두 구멍에서 기어 나와 태어 났구만 뭐 그리 호들갑인가. 아, 이런 곳 기어가기 싫었으면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그에 파르르 떠는 미르나.
“죄…?”
“내 경력이 족히 20년이오. 범죄 저지르고 법망 피해서 담 너머로 도망치는 사람들이야 척하면 척이지. 그들 중에서도 당신들은….”
월담꾼의 갈색 눈동자가 우리를 향했다.
“무척 기묘하지만, 내가 보아온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들 같군 그래. 이렇게 단체로 도피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거든.”
가장 큰 죄라. 굉장히 들어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팽개치고 도주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것보다 더 큰 죄가 또 있을까?
물론 이 남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여왕과 각각의 대귀족 영애들이라는 걸, 오늘 앙그마르 어딘가에서 열린다는 축제의 주인공들이라는 걸 절대 모를 테지.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푸흣.”
그러자 나르미도 똑같이 “푸흐흐-.” 웃음을 터뜨리더니 우리들 모두 하나 둘, 웃음을 터뜨렸다. 오직 품위를 잃지 않는 아이라와 어딘가 불만 가득한 미르나만이 웃지 못할 뿐.
“그럼, 내가 먼저 간다! 이번에는 내가 1등으로 태어날래!”
슉.
그때 나르미가 개구멍 안으로 슥 들어갔다. 그 엉금엉금 기어가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모습이 너구리 같아서 꽤 귀엽고 우습다. 그렇게 아주 사라지는 나르미.
“그 다음은 내가 가볼게. 나야 뭐, 이런 거 많이 해봤고.”
그 다음으로는 스텔라가 제법 숙달된 조교와 같은 폼으로 기어서 구멍으로 사라졌다. 저 낮은 포복에는 분명 정확한 명칭과 자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엘가가 말했다.
“야, 쌍둥이 장녀. 너도 가.”
“…….”
그에 미르나가 엘가를 흘깃 노려보더니 마침내 한숨을 내쉬고는 비좁은 구멍으로 자신의 몸을 들이밀었다…가 멈춘다.
“뭐하냐?”
“꼈어요.”
엘가의 질문에 담담히 말하는 미르나.
“꼈다구요.”
구멍에 낀 미르나라니. 언젠가 이런 광경을 본 적 있는 것 같아 머리가 지릿지릿할 때, 엘가가 손바닥을 들고 미르나의 쫙 달라붙은 가죽 바지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이상한 짓하지 말고 얼른 가라!”
“꺅! 그, 그만해요! 그만! 그만하라고! 진짜 죽을래-!?”
다리를 버둥거리며 화내는 미르나의 모습이 꽤 재미있었다. 나도 한 대 때려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참았다.
그런데 버둥거린 게 꽤 도움이 됐는지 토굴 입구가 바스락거리며 넓어져서, 미르나는 결국 앞으로 기어갈 수 있게 됐다.
“후…, 가다가 끼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아, 미르나는 원래 폐소 공포증이 있었지. 그래서 나는 미르나를 위해 가볍게 요정의 포복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로 한층 더 빠르게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미르나.
이제 남은 것은 엘가와 나 그리고 아이라였다.
약간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 아이라가 먼저 말했다.
“설마 내가 열심히 지켜오고 있던 이 벽을, 배신자나 반역자들처럼 숨어 넘어가게 될 줄이야.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구나.”
그리고는 내 머리에 얹어진 로브를 손바닥으로 슥슥 쓰다듬는다.
“언젠가 네가 말했었지. 모두 내려두고 함께 가자고 말이야.”
“아크로 향하기 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는 아이라를 향해 말했던 적이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함께 멀리 떠나자고. 그때 아이라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고 결국 왕국을 떠나 아크로 갔었지.
“그때 생각이 나는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네가 그때 용기를 내준 것으로 모든 게 변한 거야.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작은 반요정의 용기였구나.”
“그걸 받아들인 여성들의 용기기도 하구요.”
“그래, 이제 우리는 또 새로운 땅을 향할 테지. 기대가 되는 구나.”
그 말을 끝으로 아이라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제 남은 것은 엘가와 나 둘이다. 문득 엘가가 바닥을 기어도 좋은 건지 걱정이 들었다.
내가 물었다.
“그 배…, 엎드리는 건 좀 그렇겠죠?”
“나 누워서 기는 것도 잘해. 남쪽의 만족 놈들이 설치했던 철조망 아래를 내가 얼마나 기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엘가.
물론 그렇게 말한 것 치고는 표정이 제법 어둡다. 슥. 엘가는 고개를 들어서 남쪽 하늘을 바라봤다. 남쪽에는 그녀가 놓고 오는 모든 게 있다.
엘가의 바글바글한 가족, 아버지, 동생, 이런저런 것들 말이다.
현재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엘가는 나를 따라 벽을 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가족에게 정이 많은 엘가이니만큼 남쪽에 두고 오는 자신들의 가족이 눈에 밟히는 것이겠지.
엘가가 말했다.
“약속해 줘. 반드시, 결혼식의 다음. 꼭 같이 하겠다고. 같이 피로연을 화끈하게 끝내겠다고 약속하는 거야.”
그것으로 엘가가 불안함을 씻을 수 있다면.
“맹세합니다. 반드시 전부 끝내러 다시 돌아오도록 해요.”
내 말에 엘가는 조금 안심한 것처럼 표정을 풀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 것처럼 물어온다.
“근데, 이거 전부 기어갈 필요 없이 가장 먼저 기어간 사람이 네 그 마법카펫이라는 거 들고 갔으면 나머지는 전부 차원문으로 갈 수 있었잖아.”
“…….”
그건 생각 못했네.
엘가는 은근히 마법적인 것에 실용적인 재능이 있었구나. 으흠-헛기침을 한 엘가는 곧 능숙한 폼으로 구멍 안을 향해 사라졌다.
나 역시 그녀들이 사라진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세상 바깥으로 빠져나왔을 때.
세상은 온통 새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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