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55)
EP.56)태오 # 5
056 – 실버루키 태오 # 5
기숙사 7번방.
그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 문을 걸어 잠군다.
내 룸메이트인 한스도 베냐민도 강의를 들으러간 것인지 방에는 나밖에 없는 상황.
나는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황급히 내 짐들을 챙기고 다음 강의를 위해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바로 그때.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태오 가스펠. 거기 안에 있죠?
“…….”
누군가의 목소리가 걸어 잠근 문 너머로 들려왔다. 그것은 도도하고 앙칼진 귀족영애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미르나 드레이코다.
━드라쿠스 모라.
절컥.
곧 내가 걸어 잠궜던 문고리가 저절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미르나가 잠금 해제의 주문이라도 걸은 것이겠지.
기이익.
마침내 문이 열리고 미르나 드레이코가 내 기숙사의 안으로 들어섰다.
“간단한 해주 주문에도 잠금이 풀리다니. 값싼 방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리고는 내 기숙사에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 표정이 마치 반지하 단칸방이라는 것을 처음 본 국회의원 같은 표정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거죠? 그것도 셋씩이나!”
아무래도 고귀한 아가씨인 미르나 드레이코에게 이 비좁은 진리관의 7번방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였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 이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미르나 드레이코가 나의 기숙사까지 친히 찾아왔다는 것. 그 이유를 모를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어야 할 때가 사람에게는 있는 법이다.
“미르나 아가씨.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오신 것입니까?”
“으흠. 그건, 별 것 아니랍니다. 그렇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좋겠죠.”
미르나 드레이코가 우물쭈물했다.
“서로 바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몸이니까. 특히 제 시간은 귀하거든요. 드레이코의 영애는 바쁜 법이니까.”
도도한 프라이드로 무장했지만 그 뒤에는 나름대로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깃들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미르나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죠?”
“태오 가스펠. 당신은 정말 보잘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평민이랍니다. 인정하나요? 원래라면 당신과 저는 이렇게 한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말이에요.”
“그…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높은 학구열과. 사람을 보는 심미안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훌륭한 편이라고 저 역시 인정해드리도록 하겠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미르나 드레이코를 흠모하게 되었으니까.”
슥.
미르나 드레이코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교복 블라우스 아래로 보이는 미르나의 가슴은 이제 보니 꽤 크다.
나는 그 가슴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제게 다음 주에 있을 강의 때 미르나 아가씨께 구혼한 남자 역할을 맡아주시길 바라는 겁니까?”
“보기보다 훨씬 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요? 그렇지만 역할이 아니잖아요? 당신은 실제로 저에게 구혼했으니까요.”
내가 언제 구혼했어.
아무튼.
이 상황은 썩 좋지 않다.
만약 미르나 드레이코에게 청혼한 사람이랍시고 내가 다음 강의에 짠-나타난다.
그럼 엘가와 아이라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거 아냐?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이걸 거절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때 미르나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영광으로 아셔도 좋아요. 저 미르나 드레이코의 수많은 구혼자들 사이에서 태오 가스펠 그대가 뽑힌 것이니까. 어서 제게 감사하다고 말하세요.”
“쉣….”
“쉣? 그게 무슨 말이죠?”
미르나의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와 같은 고아들의 은어로, 정말 매우매우 기쁘고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정말 너무 영광스러워서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입니다.”
“흐응, 그렇군요. 하긴 당연히 그래야죠.”
“그렇지만 아가씨. 제가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뭐죠?”
“저는 미르나 아가씨의 말대로 별 볼일 없는 신분에 평민에 불과합니다. 다른 쟁쟁한 구혼자분들이 이미 잔뜩 계실 텐데. 그런 분들 사이에서 저를 선택하셨을 때 괜히 망신을 당하시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해라-.
내가 생각했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변명이었다. 역시 간신배답게 잔머리는 잘 돌아간다니까.
다만 미르나의 태도는 단호하다.
“태오 가스펠. 그건 당신이 걱정할 바가 아니랍니다. 그렇지만 당신 스스로가 자신의 부족함에 부끄럽다면. 아직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일주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리석은 평민을 위해 친히 설명해드리자면. 저희 드레이코 가문에게 일주일은 불필요한 육신을 멋진 스켈레톤으로 가꿔내기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라는 거죠.”
“저를 스켈레톤으로 만들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신 바보인가요? 저 미르나라면 당신을 일주일 이내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제가 다른 사람으로요?”
“그래요. 당신은 이제. 수수께끼의 실버루키가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제게 다른 사람인 척 해라, 그 말씀이군요.”
이해는 했다.
그런데 이해한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언제나 별개의 일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인 척을 해.
다른 사람인 척을 해서 아이라와 엘가의 눈을 속일 수 있긴 한가?
물론 내 연기자 레벨은 9.
9레벨이면 어지간한 달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되긴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별로 내키질 않았다.
뭣보다 이 일에 있어서 내게 이득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저번에 했었던 말들은 다 거짓말입니다. 저는 미르나 영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내 뼈와 살이 정말 분리될지도 모르는 노릇.
내가 탐탁지 않아하고 있자니 미르나가 말했다.
“당신에게도 나쁜 이야기만도 아닐 거랍니다. 저 미르나 드레이코의 에스코트를 할 기회가 될 테니까.”
“예.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것에 잘 따라준다면, 저 미르나가 당신을 위해 특별히 사어에 대해 알려드릴 수도 있어요.”
“사어요?”
“그래요. 앙그마르의 위대한 유산들. 그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72개의 위대한 마법주술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나요?”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데?
당장 나는 두 가지 단어를 습득한 상태였다.
할파스와 벨리알.
이 두 단어는 나름대로 쓸모가 많은 마법주문으로 그것과 비슷한 다른 단어들을 더 얻을 수 있다면 내 직접적인 전투력이 증가되는 것도 꿈은 아닌 일.
하기야 드레이코 가문은 본디 앙그마르 가문으로부터 이런저런 능력과 보물을 하사 받은 자들이다.
마왕에 대한 것은 대부분 불타고 소멸됐지만 드레이코 가문에게 앙그마르 왕가의 유산과 그 힘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
과연.
미르나 드레이코 역시 4가문의 일각.
나름대로 밀고 당기기를 잘 할 줄 안다는 건가?
사람을 어떻게 해야 움직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좋습니다. 노력해보죠.”
“당연히 그래야죠.”
“그렇지만 제가 아무리 다른 사람인척 한들. 얼굴을 바꾸거나 몸을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거라면 괜찮답니다. 저희 가문이 지닌 보물, 카르마 체인저가 있으니까.”
“그게 뭐죠?”
“한 달에 한 번. 외형을 조정할 수 있는 마도구랍니다. 솔로몬 왕의 유산이죠.”
“아.”
카르마 체인저.
그 이름에 나는 번뜩이는 게 있었다. 그건 원작 소설인 ‘빌런 사냥꾼’의 한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아이템인데.
수수께끼의 미친 강령술사가 주인공인 빌런 사냥꾼에게 쓰러졌을 때 드랍 했던 중요 보물이었다.
그걸 미르나 드레이코가 갖고 있다는 것은, 역시 2막의 미친 강령술사는 미르나 드레이코였던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 아가씨 역시 악역으로서 죽는구나.
아이라와 나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어딘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건 드레이코 가문이 앙그마르로 복귀했을 때의 이야기긴 하지.
여기는 아크고. 미르나는 여기에 있다.
그럼 그녀가 미친 강령술사로 각성해서 주인공 파티의 손에 죽을 일은 멀어졌다는 소리가 아닐까.
그때 미르나가 말했다.
“이제 태오 가스펠. 당신은 저와 함께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나가게 될 거에요.”
“새로운 신분 말입니까?”
“그래요. 기왕 하는 것 극적이게 설정하죠. 먼 이웃나라 몰락한 왕족의 후예지만 부흥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아크에 잠입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건 어떨까요?”
“…….”
누차 말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허를 찔리게 되면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날카로운 설정에 그야말로 심장이 비수에 찔린 것처럼 뜨끔했다.
미르나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나의 절반을 관통하는 이야기였으니까.
혹시 미르나가 일부러 알고 그런 건 아닐까 싶었을 정도.
“괜찮죠?”
“아주 훌륭합니다. 과연 미르나 아가씨십니다.”
“그럼 이번 주 토요일. 그라시아에 있는 드레이코의 별장으로 오도록 하세요. 아크 생도는 주말에 도시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되니까.”
* * *
티타임 강좌가 있었던 목요일, 나른한 오후 4시.
나는 ‘요정 탐구’ 강의를 듣기 위해 이과부서 건물을 찾았다.
요정 탐구 강의는 처음이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것도 없이 나의 머릿속은 아까 있었던 미르나 드레이코와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나는 드레이코 가문의 별장으로 초대를 받은 게 아닌가?
어쩌면 그곳에서 앙그마르 가문의 부흥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습득하고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내 계획도 미르나 드레이코와 친해져서 그녀를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도록 길들이는 것이었지.
그 때문에 비교적 쉬워 보이는 여동생 쪽인 나르미 드레이코에게 송곳니를 내밀고 있었던 것이고.
아까는 여러모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사고해보면 내게 있어서 이 이야기는 아주 나쁠 것도 없는 제안이었다.
물론 잘 성공한다는 가정하지만.
근데 대체 강의실은 어디지?
나는 근처에 날아다니는 비둘기 한 마리를 주문으로 회유해 녀석에게 명령했다.
“이과부서 건물을 찾아 봐.”
━구구구.
“그래.”
포르륵-하고 날아가는 비둘기.
역시 마법이라는 건 굉장하다니까.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해야지.
덕분에 나는 비둘기의 안내를 받아 이과건물을 찾을 수가 있었다.
━구구.
“잘했다. 너희들은 이제 플래티넘 기숙사로 가서 엘가나 아이라의 방을 감시해.”
━구.
“뭐라는 지 모르겠다는 거지?”
어려운 명령은 내리기가 힘들다. 새대가리라 그런가 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 비둘기가 그렇지 뭐.
근처에 까마귀는 없을까? 까마귀나 앵무새는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낡은 계단을 올라서자 내가 찾던 강의실이 보인다.
슥.
나는 드넓은 강의실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강의실에는 인체의 해부모형부터 시작해서 비커와 플라스크가 가득한 게 꼭 실험실 같다. 저기 벽장에 박제되어 있는 마물 개구리 표본은 아마 진짜가 맞겠지.
그때서야 내가 듣는 강의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생겨났다.
요정 탐구인가.
듣기로는 C급 강의라고 그랬는데.
교수는 미정이어서 누가 담당할지 모르는 상태.
드륵, 드륵. 기이익.
강의 시작 시간인 4시 반 가까이 되자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내 옆자리에도 누군가 앉았다.
“안녕하쇼.”
“예. 안녕하십니까.”
털이 북실북실한 드워프라서 그다지 흥미는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첫 강의였던 사어 때와 다르게 은근한 왕따를 당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댁이 싸운 거 잘 봤소. 그 에프사이드를 그렇게 물리쳐?”
다만 말을 걸어오는 게 조금 낯설고 귀찮다.
“그렇게 됐습니다.”
“나는 그 이상한 끝말잇기 할 때. 댁이 미친 줄 알았거든. 이야, 그게 사실 결투로 이끌어내려는 도발수였을 줄이야. 아주 놀랍소.”
“…….”
끝말잇기 얘기좀 그만 해. 부끄럽단 말이야.
“아, 나는 아스팔드 스톤스크림이오. 487등. 실버 티어지. 그냥 스톤이라고 불러도 좋소.”
“저는 태오 가스펠입니다. 가스펠이나 태오, 뭐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내가 적당히 나를 소개하자 갈색머리의 난쟁이가 흐흐-웃었다.
“당신을 알고 있소. 이 아크에서 이제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 어떤 의미에서는 올해 입학한 거미여왕 만큼이나 유명하오.”
“거미여왕 말입니까?”
“아이라 타란테라 말이오. 그 외에 그 사자왕의 딸도 입학했다지. 라인하르트의 딸. 이름이 뭐더라.”
“엘가 리오네스 영애 말입니까?”
“그래. 당신은 그들만큼이나 유명하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원석과 돌멩이에 관심 있소? 내가 동아리를 운영하는데.”
아, 동아리 권유였군.
아무래도 학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니 그런 것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학교부지 내에서 동아리와 용사파티를 모집하기 위해 여기저기 악쓰는 사람들이 많았었지.
게시판도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 찼었고.
“생각이 있으면 꼭 들러주시오. 우리 동아리는 중앙회관 3층 돌의 방에 있으니까. 이건 홍보 책자.”
남자에게서 받은 두루마리를 나는 적당히 가방 안에 집어 넣었다. 얼른 강의가 시작되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다.
“자, 모두 자리에 앉아. 강의 시작할 거니까.”
그녀는 표범무늬의 재킷을 입은 여자였다. 매우 신비로운 보랏빛 단발머리가 어깨에서 잘랑이는 뾰족귀의 요정.
목에는 방울 달린 초크를 하고 있는데 꼭 옛날 명작 킬러 영화에 나오는 어린 히로인 마틸다 같이 보였다.
“나는 스텔라 교수고. 원래 과목을 담당하고 있던 미골라스 교수가 육아휴직을 내서. 이번 학기 요정 탐구 강의를 맡게 되었어요.”
스텔라 벨호크가 내 강의를 담당하는구나.
“내 강의가 아닌데 갑자기 떠맡아서 귀찮긴 한데. 아무튼 다 같이 잘 해봐요.”
뭐 저런 것까지 말하지.
벨호크 가문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종잡을 수 없기로 유명했는데. 직접 보니 실제로 그런 것 같다.
“그럼 노예…, 아니. 조교. 들어와서 강의계획서 나눠줘요.”
벨호크가 문 바깥에 대고 말하자 까만 수녀복을 입은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얇은 종이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엉덩이 뒤로 하트모양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꽤 시선을 빼앗는다.
“임프?”
“임프 아냐?”
여기저기 놀라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경악하게 됐다.
저거 마르마르 아냐? 왜 쟤가 저기서 저러고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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