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93)
EP.94)애완동물 # 1
094 – 주인과 애완동물 # 1
나는 키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매일 엘가가 마력초를 피운 후에 억지로 내게 입을 맞춰왔으니까.
마력초의 칼칼한 내음이나 쓰라림 같은 것이 나의 목을 공격해서 눈물이 핑핑 돌 정도였다. 엘가는 그런 나를 보며 깔깔 웃었지.
꼭 마력초 뿐만이 아니더라도, 엘가는 항상 키스한 뒤에 내 귀를 잡아당기거나 코를 콱 비틀어 쥐며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내게 ‘키스’란 일종의 괴롭힘 행위와 마찬가지.
그렇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예쁜 여성과 입을 맞춘다는 것은 사실 뭇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꿈만 같은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특히 미르나처럼 신비롭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귀족 아가씨와의 입맞춤이라면 일종의 포상이라고 봐도 좋았다.
“추릅, 츠릅.”
“으응…. 하…. 그만….”
바짝 몸을 붙인 미르나 드레이코에게서는 달큰한 꽃내음이 났다.
달빛 아래로 많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 별장의 정원에서, 가장 화사한 꽃과 입을 맞추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 와닿을 정도.
하지만 혀로 그 입술 안을 파고들자 약간 쌉싸름한 와인의 내음이 났다. 식사를 끝내고 와인으로 마무리를 했기 때문이겠지.
“흐으, 으으, 그만….”
그러나 미르나는 자신의 입에 타인의 혀가 들어온 것이 생소했기 때문인지 조금 겁을 집어 먹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첫키스에 겁이라니.
나르미랑은 또 다르네.
그러고 보면 여동생인 나르미는 혀로 윗 천장을 살짝 건드려주는 걸 좋아했던 것 같은데. 혹시 미르나도 똑같을까?
그래서 나는 미르나 드레이코의 입천장을 내 혓바닥으로 살살 간질여봤다.
“으응…!?”
그러자 내게 살포시 잡혀있는 미르나의 허리가 마치 찬물 세례를 맞은 사람처럼 빳빳하게 경직되며 바들바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역시 성감대나 좋아하는 포인트 같은 게 비슷한가?
스륵.
그러나 약간의 저항감과 함께 내 혓바닥은 그녀의 입술 바깥으로 밀려나고 만다. 이내 미르나 드레이코는 아주 입술을 꾹 다물었다.
“…….”
몽롱한 기분으로 슬쩍 눈을 떠 보자, 토마토처럼 얼굴을 붉힌 미르나가 내게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게 보였다.
화났나?
“후….”
숨을 고른 미르나는 흠-하고 커다랗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입가를 슥 문질러 닦으며 내게서 등을 돌렸다.
“태오 가스펠.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네?”
“방금 있었던 무례함은, 최근 당신의 헌신을 보아 불문으로 붙여드리도록 하겠어요.”
그렇구만.
미르나의 가드는 귀족영애답게 방어가 단단했다.
드레이코 가문은 가장 깐깐한 가훈과 교단의 교리들을 지키며 살아가기로 유명했으니까.
음행하지 말라-같은 거.
“마차를 불러드릴 테니, 돌아가시죠.”
* * *
덜컹, 덜컹.
심하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나는 방금 있었던 미르나와의 키스를 떠올려 봤다.
사실 오늘 미르나와 키스를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아직 엘가 한 명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 내가 여러 여성들과 관계되기 시작했다간 그야말로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었으니까.
천천히.
급하게 굴지 말자.
그런 다짐을 스스로도 하고 있었는데, 달빛 아래 화원이 가득하고 약간의 취기로 홍조를 띄우고 있었던 미르나 드레이코는 무척 예쁘고 아름다워서 무심코 꺾고 싶어졌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한 행동이었다.
미르나가 내 목을 비틀어 쥐지 않은 것은, 그녀 말대로 내가 최근 미르나와 드레이코 가문을 위해 발란 교수를 쓰러트렸던 공적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레드 카드 대신 옐로 카드.
나는 일종의 경고를 한 방 먹었다고 봐도 좋았다.
많이 화났으려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었는데.
강의 같이 듣는 데 상당히 어색해지겠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여자들의 입술을 빼앗는 인싸남 금태오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할까?
─키스 같은 건 남사친 여사친끼리 그냥 할 수 있는 거 아냐.
별로 도움이 안 되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마차는 어느덧 아크의 부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곧바로 나의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 대신 서늘한 공기를 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러모로 달아올라 있었던 몸과 머리를 식히는 데에는 찬바람을 쐬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정처 없이 걷던 나의 걸음이 싱글 넘버즈의 플래티넘 기숙사에서 멈췄다.
마르마르의 오두막이나 빈궁한 방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화려한 건물. 정원에는 잔디밭과 수영장이 있고 분수대에서는 시원한 물이 뿜어지고 있다.
내부는 더 좋다.
플래티넘 기숙사 내부에는 학생들을 위한 휴식처나 카페, 단련장, 식당 등등 저 건물 하나에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다나.
그래도 엘가는 방이 좁다고 툴툴 거렸었지.
아이라는 딱히 아무 말 안했었나?
문득 요즘 아이라에 대한 관심을 내가 너무 주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내가 태오 앙그마르라는 걸 깨달은 뒤, 아이라에게 혹 내 정체가 들킬까 싶어서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도 있었지만.
또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이 아크에 온 아이라는 묘하게 안정되어 있고 폭주하거나 금방 급발진 하는 것 없이 차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묘하게 차분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보통 그렇게 조용하면 항상 문제가 일어나던데. 폭풍전야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같은 뭐 그런 거처럼.
똑똑.
아이라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덜컥. 하고 방문의 잠금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라가 직접 일어나 잠금을 연 것은 아니고 아마 염동력으로 잠금장치를 열은 것이겠지.
기이이익.
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화려한 가구들과 침대 그리고 테이블 사이에서 우아하게 홀로 티파티를 즐기고 있는 아이라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샤워를 끝낸 것인지 젖은 머리에 옅은 분홍빛 실크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굉장히 잘 어울렸다.
아이라의 테이블에는 곰과 토끼 등등의 여러 인형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찻잔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면 마치 동화속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그런다.
“어서와, 태오. 마침 체스 경기중이었거든. 끝나고 차를 마실까 생각 중이었는데. 너도 괜찮다면 한 잔 하지 않겠니?”
“감사합니다.”
“그럼 빈자리에 앉아도 좋아.”
나는 빈 의자에 앉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토끼와 곰 인형의 고개가 내 쪽으로 향하는 장면은 꽤 으스스했다만, 투덜거릴 수는 없다.
“그래서, 태오. 무슨 일이니? 내 체스 상대라도 해주려는 걸까?”
“그러죠.”
나는 아이라의 앞에 놓였던 체스판을 바라봤다. 그것은 이내 착착착-멋대로 움직여 세팅을 자연스럽게 끝냈다.
나는 까만 기물.
아이라는 하얀 기물이다.
“그럼, 너부터 해, 태오.”
“알겠습니다.”
나는 왼쪽 구석에 있는 까만 폰을 붙잡았다. 하지만 곧 내가 이 게임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묵직.
그 폰이 족히 수 십 킬로는 나갈 것처럼 무거웠기 때문이다. 대체 이 작은 것이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걸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뭐하는 거니? 네 차례야.”
“저는, 차례를 넘기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나이트부터 움직이지 뭐.”
달각.
아이라는 자신의 나이트를 손도 대지 않고 이동시켰다. 이건 일종의 수련이다. 아이라가 자신의 염동력을 조율하는 훈련이라고 봐도 좋다.
아이라의 마법이 굉장한 경지라는 걸 알고 있기는 했는데, 최근 마법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니까 아이라의 수준은 그냥 굉장하다는 말로 부족하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재밌는 사람들이 아크에 왔다고 하던데 말이야.”
쪼르륵.
내 찻잔에 까만 커피 비슷한 차를 직접 따라주며 아이라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건네받아 한 모금 후릅 마시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느낌으로 물었다.
“재밌는 사람들요?”
“용사의 파티라고 하더구나. 기이한 사냥꾼을 중심으로 뭉친 강자들이라고 그러던데.”
아.
주인공 파티를 말하는 것이구나.
안 그래도 그들에 대해서 아이라에게 주의를 주고 싶었다. 결코 그들과 엮이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라의 말이 나보다 한 템포 더 빨랐다.
“그들 중에 한 명이 내게 찾아와서 기이한 말을 하더구나.”
“찾아와요?”
사냥꾼 파티가 아이라에게 먼저 접촉을 했다니? 내 계산에 따르면 그럴 일은 없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폭군이 되지 않은 아이라는 사냥꾼에게 그리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었을 테니까.
굳이 아이라에게 먼저 접근을 할 이유가 있나.
“사냥꾼이 아이라 님과 만났다는 겁니까?”
“사냥꾼이면 그 멀대 같이 기이한 남자를 말하는 거니? 아니, 그 남자는 오지 않았어. 대신 작고 신기한 녀석이 왔지.”
작고 신기한 녀석이라면 길잡이를 말하는 건가?
“후드를 뒤집어 쓴 사람이었나요?”
“그래, 어쩐지 태오 널 생각나게 만들더구나. 말하는 것은 영 딴판이었지만.”
나는 길잡이가 여왕 아이라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정말 궁금했다. 내가 열심히 교화시키고 있는 아이라를 향해 누군가 재를 뿌리는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후후후-. 태오. 너 지금 질투하고 있는 거니?”
“질투요?”
“그래. 태오, 내가 널 두고 다른 이를 신하로서 가까이 둘 지도 몰라서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다만 아이라는 여유롭게 웃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기이한 대화를 나누기는 했었지. 내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였어.”
“가족들이면, 선왕폐하나, 왕비님, 공주님들 같은 이야기 말입니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라의 가족들은 거의 일 이년 사이에 차례차례 죽었다. 다양한 이유와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정신병리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평범한 공주였던 아이라가 망가진 여왕이 되어가는 것에는 분명 가족의 죽음에 따른 쇼크와 트라우마가 기여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아이라의 가족에 대한 것은 꺼내지 않고 깊은 심층에 묻어두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구태여 그것을 일부러 찾아와 끄집어냈다니.
마치 일부러 나를 엿 먹이려는 것 같은 행동이 아닌가?
그 사실에 화가 났다.
그러나 그러한 분노는 아이라의 다음 이야기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내 가족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게 정말입니까?”
아이라는 어지간한 거짓과 진실을 쉬이 간파할 수 있다.
그래서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사람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일정량의 거짓을 말하면서 살아가니까.
“그가 정말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까?”
그게 거짓말이라면 아이라의 미움을 사서, 사냥꾼 파티와 아이라의 대립이 시작될 것이고.
만약 그게 진짜라면 아이라에게 있어서 그 길잡이라는 녀석의 영향력이 커져갈 것만 같아서 찜찜하다. 아이라가 나 이외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니.
어찌 보면 내가 원하는 평범한 여왕의 상이란 바로 그런 것일 터다. 나 이외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그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아이라.
하지만, 왠지 그냥 기분이 나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이면 모를까, 정체도 모를 길잡이 놈이라니.
역시 그놈은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칼리라 영애를 통해 암살이라도 해야 하나?
아냐, 그래서야 사냥꾼 파티와 대립하는 원작의 태오 가스펠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 결국 나는 이것저것 빼앗기고 얻어맞아서 처형당할지도 모른다.
역시 사냥꾼 파티랑 엮이는 건 좋지 않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이라가 말했다.
“걱정 마. 내 귀가 너의 목소리 말고 다른 것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너 하나로 충분하고도 넘치거든.”
그리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기 시작하는데,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걸지 착잡해 해야 하는 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라는 정말 나 하나로 충분할까?
그녀는 오롯이 내게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걸까?
아이라의 상태창에 떠올랐던 글자는 그러지 않았다.
「치명적인 진실을 모두에게 숨기고 있습니다.」
저 위의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이걸 어떻게 물어보면 좋을지 좋은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은근한 느낌으로 아이라를 향해 물었다.
“아이라 여왕님께서는, 제게 숨기는 것 없으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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