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99)
EP.100)눈 # 1
100 – 꿰뚫는 눈 # 1
엘가와 미르나 그리고 아이라가 화목하게 지내준다면 내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저들이 반목하는 상황을 조율해서 나름대로 이득을 볼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보다 저들이 평화롭게 지내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더욱 좋다.
그런 의미에서 네 가문의 영애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평화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은 내게 있어서 무척 흡족한 모습으로 와 닿아야 했다.
“…….”
그렇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매우 긴장이 된다.
엘가도 미르나도 서로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만 홀짝이고 딱히 입을 열지 않는 상황. 오직 아이라만이 나를 보며 반가운 듯이 손을 흔들었다.
“태오, 마침 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네가 직접 설명해 주는 게 좋겠지.”
아이라는 미르나와 엘가로부터 어떠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걸 내가 설명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이라가 내게 설명을 바라는 일이라니. 짚이는 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란스럽다.
엘가가 아이라에게 무언가 말해버렸나?
아니면 미르나가?
둘에게 워낙 업보를 쌓아놨어야지.
그렇지만 겨우 이런 것으로 당황하면 여왕의 간신배는 해먹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엘가와 미르나의 안색을 재빠르게 살피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아이라를 향해 되물었다.
“그래서, 제가 어떤 것을 설명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후르릅-하고 뜨거운 찻잔으로 입술을 적신 아이라.
그녀가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매우 평온하고 평범한 시선이었지만 나는 마치 내 몸이 발가벗겨져서 관찰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찬바람이 뼈를 관통된 것처럼 시리고 등 뒤로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은 덤이다.
마법이구나.
방금의 강렬한 시선으로 아이라가 나를 측량하거나 측정했다는 것을 마법사의 본능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이라가 말했다.
“과연, 태오. 이제 보니 마력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네 안에 다소 자리 잡게 되었구나.”
“마력 말입니까?”
“그래, 여기 있는 이들로부터 들었어. 흑마법사와 싸웠다지? 그때 태오 네가 주문을 읊어서 활약했다고 그러더구나.”
“아-.”
그때서야 나는 아이라가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게 됐다. 엘가와 미르나에게서 발란 교수를 쓰러트렸던 때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이구나.
나는 침착함과 냉정함을 되찾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오늘 검사 결과, 막 3위계에 도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아크에 온 뒤로 태오 네 실력이 나날이 절차탁마하고 있으니. 네 여왕인 나로서는 매우 기쁘구나. 내가 선택한 남자니 당연한 일이지.”
자랑스럽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라. 이제 설명에 대한 것은 필요 없는 것일까 슬쩍 눈치를 보고 있으려니 아이라가 한 마디 덧붙였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태오, 네 실력이 발전함에 따라서 네게 작위를 내려주기로 결정을 내렸거든.”
“작위(爵位)요?”
“그래. 나는 네게 그런 것이야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엘가와 미르나가 모처럼 같은 의견을 제안해 와서 말이지.”
엘가와 미르나가 내게 작위를 내리도록 아이라에게 건의해 왔다고?
그때 찻잔을 내려놓은 엘가가 팔짱을 꼈다. 덕분에 그 가느다란 팔뚝 위로 교복에 가려진 가슴이 얹어져서 매우 보암직했다.
으흠-하고 헛기침 하는 엘가.
“태오 가스펠, 지금까지 앙그마르를 위해 나름대로 일해 온 네 공로가 있었으니까. 특별히 리오네스 가문에서 네게 귀족의 작위를 내리도록 허가하려는 거야.”
지금까지 잘 지내다가 갑자기 웬 작위를 내린다고 하는 걸까? 혹시 얼마 전 내가 엘가에게 몰락한 귀족의 후예라고 적당히 거짓말을 쳤던 게 원인인가.
나는 침착한 사고를 가동시켜봤다.
엘가는 아마도 내가 몰락한 가문을 부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던 것을 듣고, 나름대로 날 도와주려고 작위를 하사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때 미르나가 한 마디 덧붙였다.
“태오 가스펠. 당신은 제게 정혼을 청한 사내 중 하나. 그렇다면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자격을 지니고 있어야 드레이코의 이름이 우습게 되지 않겠지요.”
그런 미르나의 이야기에 엘가가 발끈한 것처럼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내리쳤다.
“겨우 그런 사적인 이유로 작위를 내리려고 한다니. 그거 직권 남용 아냐? 규율과 교리로 시끄럽게 굴던 드레이코 가문도 끝물인가 보네.”
흥-하고 코웃음을 치는 엘가에게 미르나가 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말했다.
“사적인 이유라니요? 그는 제 아버지였던 알레이스터 드레이코의 명예를 위해 발란 교수와 싸웠습니다. 칭찬 받을 이유라면 충분하겠죠.”
“그건, 그렇긴 한데-.”
엘가는 분하지만 할 말이 입안에서 정리 안 되는 것처럼 우물쭈물했다. 아무리 봐도 엘가는 말싸움에 약하다.
엘가가 조금 불쌍했지만 미르나가 나에 대해 열정적으로 변호해줄 줄은 몰라서 의외인 기분도 들었다. 저번에 멋대로 키스를 했던 것에 단단히 화가 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 차르르-하고 푸른 깃털부채를 펼쳐 미르나가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미 저 미르나와 가스펠 경은 이미 서로를 알게 된 상태. 이미 정혼자나 다를 바가 없기도 하죠.”
미르나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들의 의심을 사기 딱 좋은 이야기를 테이블에 던져 놓다니. 아마 달밤의 화원에서 미르나와 내가 입을 맞췄던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독실한 광염교도인 미르나에게 있어서 결혼 전 남녀의 키스란 굉장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 테니까. 그렇지만 그녀는 알고 있을까?
내가 여기서 미르나를 제외한 여성 둘과 키스보다 더욱 굉장한 것들을 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이 그걸 밝힌다면 파멸이다.
나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길로 아이라와 엘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들은 저마다 알고 있는 비밀을 말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허공을 향해 시선을 슬그머니 피할 뿐. 내게 있어서는 다행인 일이다.
물론 엘가는 “흥, 놀고 있네.”라고 불만을 표출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알고 있는 나의 여러 비밀들을 폭로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대화가 내가 것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전에 이 흔들리는 조각배의 키를 잡기로 했다.
“이제 더 말씀드릴 게 없으면 제 쪽에서 보고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모처럼 다 모여계실 때 성과를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보고?”
아이라가 어디 말해 봐라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는 오늘 알아냈던 정보들을 그녀들에게 말했다.
마왕의 아들이 살아있었고.
그가 어느 순간 실종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엘가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내 아버지가, 그 정체 모를 놈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확실한 정보 맞아? 벨호크가 거짓 정보를 주는 걸 수도 있잖아.”
“그럴 확률도 있겠죠. 하지만 희박합니다.”
착잡한 표정을 짓는 엘가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나는 아이라의 안색을 살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라는 그저 찻잔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러다 조용히 입술을 떼는 아이라.
“그래서 지금 그 남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이걸려나?”
“그렇습니다. 아마 죽었겠죠. 다들 열심히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던 걸 보면 어딘가에서 객사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앙그마르 가문은 거기서 끝났을 겁니다.”
나는 앙그마르 마왕에 대한 정보를 여기서 은폐하고 싶었다. 이사야 앙그마르가 죽고 거기서 마왕의 핏줄이 끊겼다-.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앙그마르 가문은 미색을 밝히기로 유명했지. 분명 어딘가에서 여자들을 만나 자손을 남겼을 확률이 있어. 내 지혜로운 사고가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
“자손요…?”
“이사야, 그 남자의 나이는 우리들의 아버지 나이와 비슷하지. 그럼 그가 자손을 남겼다면 우리들과 비슷한 나이일 터.”
아이라가 평소답지 않게 팍팍 추리를 이어나갔다.
“나이는 대략 20세 전 후반. 앙그마르의 후손이니 당연히 마법에 재능이 있을 것이고. 여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마법사. 그 이사야라는 남자가 자손을 낳았으면 대략 이쯤 되려나?”
20세 전 후반에 여자 문제로 골머리 썩는 마법사라니.
나잖아.
아이라의 추리는 정확하게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폭군이었던 주제에 이럴 때에만 태양처럼 밝은 기지를 보여준다니.
아이라의 추리는 계속되었다.
“이 아크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다고 하니. 아마 자손이 남아있다면 이 아크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지. 아무렴, 앙그마르 마왕의 재보가 숨겨져 있는 곳이니까. 분명 근방에 있을 거야.”
아이라의 이야기가 점점 더 내 목을 조여 온다.
마치 답안지를 보면서 일부러 나를 애태우기 위해 빙빙 애둘러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추리력이었다. 한 마디 씩 늘어날 때마다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다.
“야, 태오. 왜 그래?”
그때 엘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표정이 안 좋은데?”
내 표정이?
그때서야 나는 너무나도 허점을 찔려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곧 9레벨, 달인의 영역에 달한 연기력을 발휘해 아무렇지 않은 척 해 본다.
“만약 아이라 님의 말씀대로 정말 앙그마르의 후예가 남아있다면, 국내가 시끄러워질 테니까요.”
그에 엘가가 이해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시끄러워지는 것뿐만이 아니겠지. 아주 난리가 날 걸. 아무튼 후손이 살아 있다면 골치 아프겠네. 어떻게 생긴 놈이려나? 키도 크고, 붉은 머리에, 뿔이 자라있겠지?”
마왕의 후예니까-라고 웃는 엘가.
앙그마르의 핏줄은 모두 붉은 머리칼에 커다란 키를 타고나기 때문에 아마 저렇게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내가 왜소한 반요정이라서 살았다.
아이라의 추리는 모든 면에서 나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내가 그 마왕의 마지막 핏줄이라는 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아이라 여왕님께서 말씀해주신 정보를 토대로 주변을 탐문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 그리고 태오야.”
아이라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슬쩍 들어올렸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곧 프리가 성녀와의 면담이 있을 것이란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렴.”
프리가 성녀와 아이라 여왕인가.
본래라면 만날 리 없었던 거대한 에피소드의 악녀 둘이 면담을 갖는다니. 이게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내게 될지 도무지 상상도 되질 않았다.
“저도 참가해야하는 걸까요?”
“당연한 일이란다.”
잘 된 일이다.
프리가 성녀와는 만나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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