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9
당문전생 (128)
삼 년 만인가?
서안 지부로 모여든 군소 방파의 주인들은 모두 당진과 친소 관계가 두터운 이들이었다.
유유상종, 당진과 가깝다는 것은 이들 열세 개 문파의 주인들이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는 뜻이었고, 당연히 이들은 서로 친했다.
“아깝네요.”
민종구가 자신의 허벅지를 딱 때렸다.
“간만에 형님들을 모두 뵈어 흥취가 도도해지니까 소제의 가슴이 절로 웅장해집니다!”
강만호가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술잔 형태를 만들었다.
“또 요거 생각이 나는가?”
강만호가 술을 입으로 털어 넣는 시늉을 하자 모두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에잇! 안 되겠습니다! 소제가 당문의 주방이라도 털어 오겠소이다!”
민종구가 콧김을 뿜으면서 벌떡 일어서려는데 문 앞에서 소요가 일었다.
“초대를 받지 않으셨다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허어, 사해가 동도라는데 이리 팍팍하게 나와서야 되겠소이까?”
“사해는 동도가 맞지만 오늘만큼은 초대장이 없으면 동도가 아닙니다.”
당문 서안 지부 앞에선 기묘한 대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입성 훌륭한 일군의 무리와 당문 서안 지부의 젊은 교관들이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무림의 군웅들이 뜻을 모아서 무학을 논하는 자리라 들었거늘, 한낱 초대장이 대수일까?”
삼십 대 초반의 장한이 양손을 들며 항의했다.
그는 우뚝 솟은 태양혈이 아니더라도 강력한 무위를 지녔다는 인상을 팍팍 풍겼다.
“대수가 아니라 절차 문제입니다.”
젊은 교관들의 우두머리인 당쾌풍이 삼십 대 장한의 말을 정정했다.
“우리가 관에 얽매인 사람들에 비해서 자유롭지만 이는 상대적이라고요.”
평소의 폭급한 당쾌풍답지 않게 그는 논리적으로 삼십 대 장한의 말을 반박했다.
“강호가 아무리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그야…….”
“인지상정이라고 했습니다. 민가는 국법을 따르고, 강호는 무림법에 순응하듯 가문 또한 가법을 좇아야 마땅합니다.”
‘우와.’
‘언제부터 우리 대장의 말발이 저리 훌륭했지?’
젊은 교관들이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면서 감탄했다.
‘언제 말발이 늘긴.’
당찬일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레 터득했다.
삼십 대 장한이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힘이 백배한 당쾌풍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인의예지신에 충실하신 대협께서 어찌 우리 당문의 가법을 무시하려 드시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알 만한 양반이 왜 이러시나?
어조는 정중했지만 내용은 완연한 비꼼이라 삼십 대 장한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말인즉슨 옳다.
자신들은 어떠한 초대장이나 언질 없이 무시로 밀고 들어가는 형국이었으니까.
강호는 명분이다.
특히나 정파연하는 족속들에겐 더더욱.
삼십 대 장한의 굳어진 몸짓에서 자신의 말발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었음을 확신한 당쾌풍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포권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셨으니 환영해야 마땅하지만 오늘은 빈객(賓客)들을 모신 관계로 그러지 못함을 이해해 주십시오.”
당쾌풍이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럼.”
당쾌풍이 젊은 교관들을 이끌고 문 안으로 철수하려 했다.
이때…….
“잠깐.”
무리들을 헤치고 나온 청년이 당쾌풍을 불렀다.
“소협의 말재주가 너무도 뛰어나서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목적마저 잊고 돌아갈 뻔했소이다.”
청년은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 눈이 가늘고 입매가 얇아서 전체적으로 신경질적인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볼일은 봐야겠지요?
* * *
당진을 배웅하고 돌아가던 당인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요 며칠 표정이 어둡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눈동자를 아래로 모으고 생각에 잠겼던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는가!
금쪽같은 자식이 눈 밑의 그늘로 줄넘기를 넘을 판인데!
당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당찬일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실 숙제를 받았어요.”
“숙제? 누구에게?”
당인을 바라보며 당찬일이 짧게 답했다.
“계자 어르신이라고.”
“뭣?!”
당찬일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별호가 나오자 당인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계, 계자라면 무림팔자심의 겨울을 담당하는……!”
“맞아요.”
당찬일이 태연하게 답하자 당인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대체 이 녀석은 무얼 하고 다니는지…….’
무공이면 무공, 머리면 머리.
모든 면에서 아들이 범상치 않다는 건 진작부터 알았다. 그래서 아들이 다소 튀는 행동을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응원해 주었다.
아미에서 비구들과 기묘한 거래를 하고, 청성에선 초주검이 되어서 돌아와도 무조건 감쌌다.
관무불가침이란 원칙을 어기고 황궁에서 파견된 흠차대인과 어울려도 그러려니 했으며, 오석산에 취한 관리들을 때려잡아도 내버려 두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판을 마구 키운다.
천마의 꼭두각시라는 천마왜와 싸우고 돌아다니지 않나, 종적이 표홀하여 평생토록 한 번이라도 만나기 어렵다는 무림팔자심에게 숙제를 받아 오지 않나.
머리가 복잡해진 당인이 고개를 짤짤 저었다.
괜한 걸 물어봤다.
이럴 땐 화제를 전환하는 거다.
“지부는 별일 없겠지.”
당인이 혼잣말에 가까운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아니요.”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숙부님은 허례허식을 병적으로 싫어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런 분께서 우리 부자에게 배웅을 부탁하셨지요.”
“그런데?”
“아버지라면 몰라도 굳이 저까지 숙부님의 배웅 길에 동행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오늘은 우리 당문과 친소 관계가 있는 열세 개 문파의 주인들을 모시는 날인데요?”
“으음.”
생각해 보니까 그렇다.
오늘은 당문 서안 지부에 섬서 지방의 군소 방파 주인들을 초대한 날이라서 당인이든, 당찬일이든, 둘 중 한 사람은 손님을 맞이해야 정상이다.
당인 부자는 당문의 직계니까.
그런데 당진은 구태여 당인과 당찬일 모두에게 자신의 배웅을 부탁했다.
‘형님은 떠나면서도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으셨어!’
당인의 얼굴이 굳어지는 순간, 당찬일이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숙부님은 우리 부자에게 배웅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지부를 비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요?”
쿵!
“형님께서 왜?”
당찬일의 추론은 매우 합리적이라서 당인이 그 연유를 물었다.
“숙부님의 의도를 짐작하려면 작금의 섬서 무림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당찬일이 눈을 반짝 빛냈다.
“섬서의 패자가 누굴까요?”
“당연히 화산이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당인이 답했다.
“화산파는 무림맹의 중추이자 정파 무림의 구심점이 아니겠느냐?”
그렇다. 화산은 소림, 무당과 더불어 정도삼강(正道三强)이라 불리는 막강한 문파다.
“흔히들 구파일방, 구파일방 하지만 소림과 무당 그리고 화산은 나머지 일곱 개 문파와 격 자체가 다르지. 그래서 무림맹도 정도삼강은 무시 못 한다.”
“맞아요, 거기다 화산은 그토록 막강한 힘을 가지고도 무려 팔백 년 동안 섬서성 회음현(華陰縣)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어요.”
“근거지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건 개방을 제외한 나머지 구파도 동일하단다.”
“화산은 달라요.”
당찬일이 손을 내저었다.
“화산은 여타의 문파와 달리 속가적인 색채가 뚜렷하지요. 구파일방의 다른 문파들과 달리 그들은 대놓고 속세의 일에 개입하거든요.”
“흐음. 그건 그렇구나.”
“숙부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어떤 조직이든 오래 묵으면 설립 취지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굴러가기 마련이라고.”
“형님다운 발상이로구나. 예전부터 형님께선 집단을 이룬 인간과 인간들로 구성된 집단에 대해서 연구하셨지.”
집단을 이룬 인간. 인간들로 구성된 집단.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인간에 방점이 찍히고, 후자는 집단에 무게추가 기울지.”
그래서 인간들로 구성된 집단은 ‘사람’에 방점이 찍히므로 도덕적인 규범을 충실히 따른다.
“반면 집단을 이룬 인간들은 모였다는 사실을 중요시하기에 조직의 논리부터 챙기지.”
“정도와 패도의 구분이지요.”
당찬일이 거들자 당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는 집단보다 사람이 우선이고, 패도는 구성원보다 조직이 먼저이기에 집단부터 챙긴다. 여기서 예외가 화산이지.”
화산은 인간을 우선시하는 여타의 정도 문파 달리 집단의 논리를 따른다.
“숙부님의 이론대로라면 화산은 집단을 이룬 인간들이기에 조직 논리에 충실하거든요. 그런 화산이 어째서 혈해지사를 해결하려 들지 않을까요?”
혈해지사 같은 혈겁이라면 속세로 나설 절호의 기호인데.
“속세의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화산이 자신의 영지와도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혈겁을 두고만 본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에요.”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그런 판국에 우리 당문까지 지부를 설립하겠다고 서안부에 진출했어요.
섬서의 터줏대감인 화산으로서 당문의 행보가 기꺼울 리 없다.
“그런데도 화산파는 여전히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화산은 구성원이 아니라 조직의 의지로 움직이는데 말이죠,”
당찬일의 분석을 곱씹던 당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과 우리가 지부를 비워야 하는 것이 무슨 관계라는 것이냐?”
* * *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잠깐이면 되오이다. 아주 잠깐이면 돼요.”
막아서는 당쾌풍을 슬쩍 밀치며 입매가 얇은 청년이 서안 지부로 들어서자 삼십 대 장한이 그에게 전음을 던졌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괜찮아요.
입매가 얇은 청년이 아랑곳하지 않자 삼십 대 장한이 우려를 표했다.
―당문은 천하제일가다. 그들이 작정하고 달려든다면 우리도 곤욕을 치를 거야.
―상관없어요…….
위맹한 장한의 걱정을 무시하며 입매가 얇은 청년이 당당한 자세를 견지했다.
―제가 슬쩍 알아보니까 서안 지부는 본가로부터 정착금 이외의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다더군요. 거기다 분쟁이 생기면 스스로 타개해야 한다더라고요.
―본가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그거지요.
입매가 얇은 청년이 장한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게다가 지금은 지부장 부자가 모두 출타 중이니 이때 몰아쳐야 한다고요.
청년의 입꼬리가 위로 승천했다.
―초장에 박살을 내야 뒷말이 안 나와요.
―그래도…….
여전히 장한이 머뭇거리자 청년이 눈을 반짝 빛냈다.
―잊으셨어요?
청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번 일에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의 중반 팔초가 걸려 있다고요!
쿵!
청년이 전음에 힘을 싣자 삼십 대 장한이 몸을 굳혔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라면 설명할 필요도 없이 화산의 독보적인 절학 가운데 하나다.
화산 무공의 극의라는 창궁우전검의 예비 검법이라는 이십사수매화검법.
이런 검법을 보상으로 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머뭇거리는 장한을 곁눈질하던 청년이 한마디 전음을 날렸다.
―됐습니다. 소제가 알아서 할게요.
장한에게 전음을 남긴 청년이 연무장으로 들어서며 양팔을 크게 휘둘러 포권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입매가 얇은 청년이 자신의 존재를 고하자 군웅들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이런…….
순간적으로 낯빛이 굳어지는 군소 방파의 주인들.
“여러 대협들께서 안 보이시기에 의아했는데 이곳에 모두 계셨군요.”
입매가 얇은 청년이 군웅들에게 두루 인사하는데 그의 등 뒤로 삼십 대의 장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섬서이룡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가?”
쾌도방의 강만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삼십 대 장한의 이름은 매국은(梅局銀)이다. 입매가 얇은 청년은 매국동(梅局銅)이고.
물론 둘은 형제다.
매국은과 매국동이 등장하자 당문 서안 지부에 모인 군웅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룡무관에서 무슨 재주로 냄새를 맡았지?
―그러게 말일세. 우리가 당문의 무학을 공유하기로 한 건 비밀이었거늘.
매국은과 매국동은 창룡무관의 주인인 매설광(梅薛鑛)의 자제들이었다.
일찍이 매설광은 매국은과 매국동을 화산파의 속가제자로 들였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뇌물이 화산파로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화산파에서 사 년가량 수련하고 돌아온 매국은과 매국동은 놀라운 무위를 선보이며 창룡무관을 섬서 제일의 무관으로 우뚝 세웠다.
그 뒤로 매국은과 매국동은 지닌바 무공 그리고 화산이란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섬서의 군소 방파에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여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창룡무관의 눈치를 안 볼 도리가 없었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사방을 돌아보던 매국동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실소를 머금었다.
“뭐야, 조 형도 있었어?”
매국동에게 지목당한 조훈의 얼굴이 처참하게 썩어 들어갔다.
“이게 얼마 만이야, 삼 년 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