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
당문전생 (19)
난관에 봉착하면
스슥.
대흉의 권법을 옆 걸음으로 피한 당찬일이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섰다.
“어딜!”
당찬일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파악한 대흉이 그의 접근을 불허하듯 손을 떨쳤다.
쾅! 콰르르!
벼락 떨어지는 소음과 함께 자신의 주위로 무지막지한 권력이 날아들었지만 당찬일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으로 대흉의 주먹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투로를 관찰했다.
‘시작은 발이로군!’
대흉은 공격을 시작할 때 소림사 특유의 진각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디디며 그 힘을 허리까지 밀어 올렸다.
전달받은 허리는 강한 회전으로 그 힘을 증폭시켰고, 이 모든 동작엔 소림사가 자랑하는 심후한 내공이 뒷받침되어 대흉의 권법이 빛을 발했다.
‘발이라, 발.’
눈동자만 돌려 대흉의 발을 힐끔거리던 당찬일이 그가 또다시 움직이자 앞으로 나서려 들었다.
“쥐새끼 같은 꼬맹이야!”
쾅!
힘찬 주먹질로 당찬일을 막아선 대흉이 좌우로 몸을 틀며 주먹질을 퍼부었다.
쿠르릉!
굉음이란 이런 것이란 걸 보여 주기라도 하듯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과 그만큼 강력한 권력과 권풍이 난무하자 당찬일이 돌연 발을 굴렀다.
파박!
당찬일이 특유의 경쾌한 보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피하자 적이 당황한 대흉이 소리쳤다.
“뭐, 뭐야!”
기껏해야 열다섯도 안 된 어린놈이다.
몸이 좀 날래고, 약삭빠를 수는 있어도 체계적으로 무학을 수련할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당찬일의 움직임은 너무도 신속하고, 정확하다.
‘이건 무공을 익히지 않고서는 보일 수 없는 동작이라고.’
씩씩거리며 요리조리 피하는 당찬일을 잡으려던 대흉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상대를 어린아이라고 얕보던 생각을 접자.
놈은 무슨 재주인지 모르지만 무학을 익혔다. 그것도 시정잡배들이나 사용하는 육합권이나 팔괘장 따위가 아닌 꽤 고등한 무공을.
그렇다면 자신도 전심전력으로 상대해야 할 터.
“타아앗!”
대흉이 신중하게 기를 불러 모으자 당찬일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또한 나쁠 것 없지.’
지금의 당찬일은 모든 싸움을 속전속결로 끝내는 편이 유리하다.
전생이었더라면 대흉 정도는 순식간에 제압했겠지만 현재는 열세 살의 신체를 지닌 터라 근력과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래서 기습으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대흉은 소림 특유의 웅혼한 내공으로 자신의 예봉을 버텼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자신이 불리해질 텐데 이런 전개도 나쁘지 않다니?
쿠르릉!
이끌어 낸 기를 갈무리한 대흉이 주먹을 풍차처럼 휘두르자 어마어마한 권풍이 파생되었다.
‘역시 소림문하였군.’
상대방이 소림 출신이라면 누구나 간담이 서늘해진다.
소림은 천년 무림의 태두니까.
그런데 당찬일은 대흉이 소림문하란 사실을 확인하고 오히려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넌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자극했다, 애송아.”
대흉이 솥뚜껑만 한 주먹을 흔들며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자 그의 민머리가 반짝 빛났다.
“이제 대가를 치러라.”
콰릉!
대흉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귀가 찢어질 듯한 파공성이 들렸다.
스륵.
침착하게 대흉의 주먹을 피하며 당찬일이 그의 측면으로 붙었다.
“날파리 같은 놈!”
쾅!
어마어마한 진각!
단지 오른발을 강하게 디딘 것만으로 자신의 주변에 강력한 기의 파동을 이끌어 내어 당찬일의 접근을 차단한 대흉이 힘껏 몸을 돌렸다.
부우웅.
날개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풍차가 회전하듯 신형을 비틀면서 대흉이 주먹을 내지르자 당찬일에게로 막강한 권풍이 날아들었다.
허리의 회전력과 진각으로 불러온 내공의 연계가 이루어 낸 최상의 주먹질!
‘스쳐도 중상이겠군.’
파박!
당찬일이 발을 구르자 그는 어느새 대흉의 배후로 돌아 들어갔다.
아무리 막강한 공격이라도 스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쥐새끼 같은 몸놀림이로구나! 얍삽한 자식!”
쾅!
진각을 내디뎌 회전을 멈춘 대흉이 두 주먹을 앞으로 쭉 뻗었다.
‘이크!’
당찬일이 급하게 고개를 숙이자 그의 위로 두 개의 권력이 지나가 벽면을 강타했다.
꿍!
꽝이 아니다. 꿍이다.
소리로 미루어 대흉의 권법은 상대의 내면을 부수는 공격이라기보다 적의 내부를 손상시키는 수법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른바 내가중수법의 전 단계랄까?
‘소림문하가 내가중수법이라.’
당찬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지금까지는 반신반의였는데 이 한 수로서 확실해졌다.
‘놈을 상대할 방법이!’
숙였던 고개를 쳐들며 당찬일이 웃었다.
씨익.
“저, 저놈이!”
누구나 비웃음을 받으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상대방이 나이가 새까맣게 어린 녀석이라면 더더욱.
“이노옴!”
분기탱천한 대흉이 주먹을 마구 휘두르자 당찬일에게 수십 발의 권력이 날아들었다.
다다다!
측면으로 내달리며 대흉의 권력을 비껴 낸 당찬일이 빈틈을 노려 그에게 두 개의 비침을 날렸다.
슈슉!
역시 당문의 암기술은 일절이라 대흉도 공세를 거두고 비침을 피하려 몸을 틀었다.
그 순간!
“타아!”
일직선으로 몸을 뽑은 당찬일이 모른 다리를 굽혀 무릎으로 대흉의 턱을 노렸다.
“건방진 놈!”
쾅!
당찬일의 슬각(膝脚)을 양손으로 막은 대흉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아무리 몸집이 작은 소년이라도 달려드는 가속도를 이용한 공격은 성인을 압박하기 충분했으니까.
“타앗!”
공세가 막혀서 살짝 퇴각했다 싶었는데 재차 날아든 당찬일이 무릎을 이용해서 연속으로 네 차례 공세를 퍼붓고 떨어지며 다시 대흉에게 암기를 쏘았다.
슉슉!
두 개인가? 세 개인가?
숫자를 가늠할 사이도 없이 쏟아지는 비침을 쳐 내던 대흉이 오른손에 따끔한 감촉을 느끼고 오만상을 구겼다.
“이익! 애새끼가!”
오른쪽 팔뚝에 박힌 암기를 뽑아낸 대흉이 크게 성을 내면서 이를 갈아붙였다.
“이 죽일 꼬마 새끼.”
불끈불끈!
그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비롯하여 모든 근육이 불컥불컥 숨을 내쉬었다.
“내가 오늘 애써 지웠던 힘을 일깨우리라.”
어금니를 실룩거리던 대흉이 마보(馬步)를 취하며 주먹을 허리께에 붙였다.
쿠오오오!
드디어 선보이는 소림의 진정한 내공 도인법!
가급적이면 소림의 진실한 무학을 드러내지 않던 대흉이었지만 당찬일에게 자꾸 당하다 보니 자신의 본신 무공으로 그를 상대하리라 작정한 것이다.
우르르릉!
대흉이 작정을 하자 어마어마한 기가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당찬일도 긴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텐데 그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 뿐이었다.
난관에 봉착하면 사람은 과거 지향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이다.
“준비는 되었느냐, 애송이.”
팍!
대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진 당찬일이 그의 왼쪽에서 번쩍, 오른쪽에서 번쩍, 점멸하듯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까짓 사술로는 진정한 소림의 힘을 이길 수 없도다!”
산문을 지키는 사대천왕처럼 위풍당당하게 외치며 대흉이 오른발로 지면을 강하게 내디뎠다.
콰앙!
천하제일 내공의 상징과도 같은 진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때 당찬일이 그의 전면에 나타나 대흉의 무릎을 발로 지그시 눌렀다.
“컥!”
‘이런 경우, 무인들은 자신이 익혔던 최고의 초식을 떠올리겠지.’
진각이 채 발현되지 전에 가로막힌 대흉이 발을 뒤로 빼며 주먹으로 나한권 형태를 취했다.
“오오옴!”
항마신장처럼 기합을 외치는 대흉에게서 잠시 떨어졌던 당찬일이 그가 주먹을 완전히 뻗기 전에 어깨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이, 이건!”
가슴을 내어준 대흉으로서는 당찬일을 공격할 수단이 전무한 상태. 반면 당찬일은 팔을 오므리는 것만으로 팔꿈치라는 훌륭한 무기가 확보되었다.
텅!
당찬일이 허리를 옆으로 누이며 대흉의 옆구리에 팔꿈치를 박아 넣었다.
“헉!”
초식은 곧 형식. 형식은 곧 틀.
옆구리를 공격당하면 일단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호흡이 거칠어지면 내공의 순환이 힘들어지는 건 불문가지의 사실이고.
입을 떡 벌리며 비척비척 뒤로 물러서는 대흉을 정확히 반보 간격을 두고 따르며 당찬일이 끊임없이 좌우로 몸을 움직였다.
텅! 텅!
대흉의 옆구리를 양쪽 팔꿈치로 번갈아 강타한 당찬일이 솟구치며 그의 턱을 무릎을 때렸다.
퍽!
틀에 갇히면 임기응변이나 반응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이는 전투력으로 직결된다.
“끄어어.”
쿵!
눈을 감지도 못한 채로 기절한 대흉을 내려다보던 당찬일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물론 네가 소림의 진실한 직전을 이었다면 나의 전략은 무위로 돌아갔겠지.”
* * *
“대흉 패거리란 놈들을 다른 곳으로 돌리셨다고요?”
“흉악한 작자들이지만 잘만 활용하면 요긴하게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찬일이 답하자 추 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천대주의 결정이다.
감히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그런데 놈들도 자신들의 뒤를 봐주는 자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지요?”
“어.”
당찬일이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눈치로 보아 놈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이는 감으로 알 수 있거든.”
팔짱을 끼고 숙고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드러나겠지.”
깨금발로 신장을 키워서 추 대인의 문사 건을 고쳐 준 당찬일이 고개를 꺾었다.
“놈들의 배후가 관이 아니라면 결국 모습을 드러낼 거다. 그러니 우리가 조바심을 낼 이유는 없어.”
그렇다면 대흉의 뒤는 무림과 연관이 있다는 소리다.
“이대로 기다리면 된다.”
당찬일이 쓰게 웃었다.
“살수가 목표물보다 먼저 움직이는 순간 그 청부는 실패라고 봐야지.”
* * *
당과로는 여전히 자리를 털지 못했다.
처음에는 걱정과 근심 때문에 불안해하던 당문의 사람들은 차츰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의견으로 구체화하여 저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찬일은 당문 식구들과 달리 매우 특이한 생활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하독처의 허드렛일을 하는 잡일꾼들과 낮부터 술추렴을 벌였다.
본래 막노동을 하는 이들은 새참으로 낮술을 몇 잔을 즐기곤 한다.
안주는 대충 전 쪼가리나 야채볶음 정도로 때우면서.
당찬일은 이들에게 안줏거리를 가져다주면서 슬금슬금 끼어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다 보니 막일꾼들 사이에서 당찬일은 술자리의 부적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여 당찬일은 떡의 제왕에 이어 술자리의 부적, 주길상(酒吉祥)이란 또 하나의 외호를 얻었다.
그날 저녁 당인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당찬일이 어떤 기세를 감지하고 화들짝 놀랐다.
쉬이이익.
주변의 공기가 어딘가로 삽시간에 빨려 들어간 후의 적막이 이런 느낌일까?
우우우웅.
주변의 풍경을 지도에서 완전히 삭제시킬 것만 같은 공허가 하독처주의 집무전 인근을 집어삼키자 당찬일의 눈썹이 거칠게 요동쳤다.
이건 초토화다!
불필요한 구조물이나 생물체를 인위적으로 지워 버리는 과정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신속하고 강제적으로 당인의 집무전 주변이 청소되자 당찬일이 숨을 들이켰다.
무시무시하다.
“왜 그러느냐?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어설프게 웃으며 손을 내젓던 당찬일이 눈동자만 돌려서 문밖을 곁눈질했다.
이 수법은 너무나 익숙하다.
이런 위력으로 해당 지역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집단은 오로지 하나다.
‘특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