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49
당문전생 (49)
이제 나와도 좋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당찬일의 예측대로 끔찍한 덫들이 두 사람의 앞에 펼쳐졌다.
둘의 발목을 잡아채려는 강철로 만들어진 올무 정도는 기본이었다.
느닷없이 옆면에서 돌출하는 송곳,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십 수 개의 혈륜, 특정 지역을 밟으면 분무되는 연초록색의 연기까지.
이곳이 과연 관아의 지하가 맞을까 싶은 가지가지의 기관들이 당찬일과 당쾌풍의 목숨을 노렸다.
―나랏일 하는 관아에서 이건 너무 지독한 거 아니야?
독무를 뚫고 나온 당쾌풍이 씩씩거렸다.
―저건 열다섯 가지가 넘는 독초를 태워서 만든 독 연기란 말이야. 이런 게 황실도 아니고 일개 관아에 왜 설치되어 있는 거냐고!
벌레와 독에 일가견이 있는 당쾌풍답게 그가 독무의 혼합 배율을 늘어놓자 당찬일이 새삼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쾌풍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왜? 놀랐어?
끄덕끄덕.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입술을 툭 내밀며 당쾌풍이 흐르는 땀을 소매로 벅벅 닦았다.
―그놈이라면 저 빌어먹을 독무가 무엇을 태워서 만들어졌는지도 짚어 낼 테니까.
―그놈?
―있어, 그런 놈.
있나 보다.
잡담을 나눌 사이도 없이 곧바로 수십 개의 비침들이 두 사람을 노렸다.
슈슈슉.
―제종, 뒤로 빠져!
당쾌풍이 당찬일을 보호한답시고 그를 뒤로 돌렸다.
턱!
뒤로 돌아가는 척을 하면서 넘어진 당찬일이 당쾌풍을 잡아챘다.
“어이쿠!”
꽈당!
당찬일과 당쾌풍이 벌러덩 자빠지자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비침들이 반대편 벽면에 박혔다.
“아! 진짜!”
구정물에 코를 박았다는 사실이 짜증 나서 성질을 부리던 당쾌풍이 침중하게 굳은 당찬일을 발견했다.
“재종, 왜 그래?”
“아무래도 이곳의 주인은 관이 아닌 것이 같다.”
“그걸 어떻게 알아?”
“경보.”
“경보?”
당쾌풍이 반문하자 당찬일이 자신의 입을 검지로 두드렸다.
“우리는 지금 투화가 아니라 진짜 목소리, 진성(眞聲)으로 대화하고 있다.”
“아!”
“하지만 처음처럼 기관만 작동할 뿐, 단 한 명의 나졸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구정물에서 몸을 일으킨 당찬일이 몸을 털었다.
“만약 침입자를 경계해서 만든 거라면 우리가 구멍에 빠졌을 때부터 관아에 비상이 걸렸어야 정상이거든.”
“생각해 보니 그러네? 관아 놈들은 우리의 침입을 모르는 눈치야.”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나?”
당찬일의 입꼬리가 묘한 호선(弧線)을 그렸다.
“설계자가 이곳에 빠진 그 누구라도 살인멸구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는 소리지.”
“뭐?”
뿌드득!
당쾌풍이 맹렬하게 이를 갈았다.
“까고 있네. 여기 기관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이 몸이 속 시원하게 뚫어 주마.”
첨벙첨벙!
어깨를 들어 올리면서 당쾌풍이 큰 보폭으로 걸음을 옮기자 당찬일이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그런 그를 뒤따르던 당찬일이 슬그머니 주변을 돌아보았다.
동경처럼 매끄러운 석벽,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바닥. 그리고 끝없는 어둠의 입구.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과연 기관뿐일까?
* * *
동혈은 천 길 낭떠러지처럼 무지막지한 깊이만큼이나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제기랄. 우리 당문의 연무장도 이 정도로 크지는 않겠다.”
동굴의 특성상 온도가 외부보다 훨씬 내려갔기 때문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당쾌풍이 투덜거렸다.
거기다 구정물로 목욕을 한 상태라서 두 사람에게 전해지는 한기는 더욱 가중되었다.
“재종, 넌 안 춥냐?”
춥지 않을 리가.
참고 견디는 데 익숙할 뿐이지.
냉기와 허기 그리고 피곤을 이겨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두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
외부로 통하는 길이 있기는 있을까?
그보다…….
“악취가 점점 심해지지 않냐?”
끄덕끄덕.
“이 냄새 말이야.”
중얼거리던 당쾌풍이 자신을 가로막은 벽면을 슬쩍 건드렸다.
우르릉―.
묵직한 소리와 함께 어른 허벅지를 서너 개나 합친 것보다 두꺼운 석벽이 열렸다.
“이, 이건……!”
시체의 산!
두 사람의 앞에 펼쳐진 건 시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둔덕이었다.
“역시 악취는 시체 썩을 때 나는 냄새였어!”
당쾌풍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당찬일은 의외로 차분했다.
‘예상대로다.’
당찬일은 악취의 원인이 시체가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냄새라고 이미 짐작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괴질로 죽었다는 거야?”
시신의 수는 엄청났다.
어림잡아도 백여 구를 상회하는 시체 더미 사이를 걷던 당쾌풍이 시신을 살폈다.
“부패가 많이 진행된 시신은 필요 없는데.”
하루나 이틀, 최대로 양보한다면 사흘 이내에 숨을 거둔 시신이 필요하다.
그 이상이라면 아무리 집중적으로 검시를 한다고 해도 사인을 밝힐 수 없으니까.
“어제, 오늘이면 좋겠는데.”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며 시신들을 살피던 당쾌풍이 어떤 시체에 이르자 발길을 멈췄다.
“아용(兒勇)이의 부친도 결국…….”
당찬일이 고개를 돌리자 당쾌풍이 짐짓 태연한 척 피식 웃었다.
“아, 아용이라고 아랫마을 사는 꼬맹인데, 보자…… 작년에 여섯 살이었으니까 이제 일곱 살이 됐겠다.”
아랫마을 사는 모든 아이들을 당쾌풍이 알 리는 없을 터,
“작년에 우리 사천에 고뿔이 심하게 돌았잖아. 그때 이 양반이 열이 펄펄 끓는 아용이를 데리고 우리 사민관(賜民館)을 찾았었지.”
사민관은 당문에서 사천 백성들의 열악한 건강 상태를 개선할 목적으로 문을 연 의료 봉사 기관이다.
이곳에서는 침술류의 간단한 응급처치나 기본적인 약재를 거의 무료로 제공하는데, 매일 개방하지는 않고 달포에 한번 문을 연다.
만약 사민관을 상시 개방한다면 인근 의원들이며, 약재상들이 모두 굶어 죽을 테니까.
“아용이는 고뿔이 심했지만 응급 상황까진 아니어서 내가 돌봤거든. 그때 이 양반이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애석함을 감출 수 없는지 당쾌풍의 어조는 촉촉했다.
“휴우.”
시신에게서 몸을 뗀 당쾌풍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우리 당문이 연관되었을 리 없어, 이런 일에.”
무고한 백성들의 허망한 죽음.
괴질로 인한 사망이라도 기가 막힐 판인데 그것이 만약 인위적으로 퍼진 거라면?
그 주체가 자신의 가문이라면?
“절대 아닐 거야, 절대.”
당쾌풍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읊조리고 있을 때, 당찬일은 다른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좀 이상한데.”
“또 뭐가?”
당찬일이 한마디를 던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괴이한 사건이 발생해서 당쾌풍은 경기를 일으켰다.
“시신의 부패도.”
“음?”
“괴질이 달포 전부터 발생했다지만 관아에서 한 시신 수거는 일주일 전으로 알고 있거든.”
“맞아.”
“일주일 만에 시신이 이 정도로 부패하긴 어렵지.”
쿵!
“그러네!”
“빙고(氷庫)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기 온도는 상당히 낮잖아. 거기다 이 방은 통풍도 잘 되니 시신의 부패가 늦어지면 늦어지지 빨라질 리는 없어.”
“생각해 보니 여기는 구정물도 없잖아!”
당쾌풍이 발바닥으로 지면을 문질렀다.
뽀드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시신이 이 정도로 부패했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당쾌풍이 당찬일에게로 저벅저벅 다가오면서 뇌까렸다.
“이번 괴질의 원인 모를 결과로 시신이 빠르게 괴사(壞死)했거나…….”
자신의 앞에 이른 당쾌풍을 보며 당찬일이 맞받았다.
“누군가 시신에 장난을 쳤겠지.”
그렇다면?
“서둘러야겠다!”
이곳에 자신들 말고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실감한 당쾌풍이 시신을 마구 헤집었다.
“됐어!”
개중 상태가 괜찮은 시신 한 구를 발견한 당쾌풍이 그것을 들쳐 멨다.
“이제 가자!”
끄덕.
앞장서면서 당찬일이 바람의 방향을 가늠했다. 바람이 통하는 곳을 따르다 보면 출구가 나올 테니까.
“오른쪽.”
당찬일이 유도하자 당쾌풍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왼쪽.”
계속해서 방향을 지시하던 당찬일이 일곱 번째 모퉁이를 도는 순간 걸음을 우뚝 멈췄다.
“갑자기 왜 그래?”
품을 뒤지던 당찬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영패를 잃어버렸다.”
“뭐?”
“시체가 쌓여 있던 방에 떨어트린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하지?”
당쾌풍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냥 가는 게 상책이긴 한데, 그랬다가 누군가 당찬일의 영패를 줍는다면 당문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되돌아가다 이곳을 관리하는 무리와 마주치게 된다면 상황이 몹시 어려워질 것이다.
“먼저 가라.”
당찬일이 말했다.
“뭐? 널 두고?”
“반드시 그 시신을 당문에 보여 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널 두고 가냐!”
당쾌풍의 말에 당찬일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생각보다 날렵하다. 시신 더미가 쌓여 있던 방을 다녀오더라도 시신을 들쳐 멘 굼벵이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지.”
“야! 내가 무슨 굼벵이……!”
발작하던 당쾌풍이 당찬일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 먼저 갈게.”
당찬일의 눈빛에서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감지한 당쾌풍이 수긍했다.
“대신 얼른 따라와야 해.”
“물론.”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던 당쾌풍이 사라지자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당찬일이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제 나와도 좋다.”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히히히! 이 녀석, 말하는 본새 봐라?”
“본새 봐라?”
“지금 우리에게 명령하는 거냐?”
“명령하는 거냐?”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수많은 목소리.
‘육합전성?’
육합전성을 쓸 정도의 고수라면 곤란해진다. 하지만 다행히 아니었다.
‘둘……인가?’
어둠의 장막에 몸을 숨긴 두 명의 인물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떠들어 댔던 거다.
“간덩이가 부은 놈이로군.”
“부은 놈이로군.”
툭! 툭!
어둠을 찢고 두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쌍둥이?’
두 사내의 용모는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열병이라도 앓았는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대부분 빠져서 실오라기 같은 머리카락 몇 가닥을 이마까지 늘어트린 사내들이었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의 개수까지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찬일은 웃지 않았다.
자신은 혼자이고, 상대는 둘이다.
홀몸이라면 상대가 둘이든 셋이든 상관없지만, 지금은 당쾌풍의 뒤를 지켜 줘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좀도둑이냐?”
“이냐?”
질문을 던지는 이는 첫째일 테고, 말끝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쪽은 둘째일……까?
‘요등쌍살(鬧騰雙殺)!’
쌍둥이 살인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어린 시절 앓았던 괴질로 머리가 다 빠지고 용모마저 흉측하게 뒤틀려서 세인들의 배척을 받은 쌍둥이 살인귀.
세상이 등을 졌으니 그들 역시 세상을 증오하게 되었다.
어떤 기인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거뒀는데, 두 사람에게는 축복이었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둘은 기인의 무공을 다 배운 뒤, 그를 죽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자신들의 무공을 더욱 기이하고 사악하게 바꾸어 무림에서 수많은 악행을 일삼았다.
그렇게 얻은 별호가 요등쌍살.
쌍둥이는 무림인들의 공분이 하늘을 찌를 무렵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