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4
당문전생 (64)
당문대사갈(唐門大蛇蝎)
오대세가가 취조를 빙자한 협박으로 오석산의 출처를 당문으로 뒤집어씌우려는 의도를 간파한 당쾌풍과 당호민이 목을 꺾었다.
우드득―.
“뭐야? 지금 힘으로 해보자는 거니?”
당쾌풍과 당호민이 전투적인 기세를 끌어올리자 제갈청청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조소했다.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나 본데…….”
“그러는 그쪽은 우리가 누군지 아는가?”
당찬일이 자신의 말을 싹둑 자르자 제갈청청의 입꼬리가 푸들푸들 떨렸다.
“입심 하나는 인정하겠는데.”
파팍!
벼락처럼 치고 나오며 제갈청청이 교갈을 터트렸다.
“말이 너무 짧아!”
따다당!
그것으로 시작이었다.
당문의 후기지수 셋과 오대세가의 후기지수 세 명이 벌이는 공전절후(空前絕後)의 결투는……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상 전개는 일방적이었다.
우선 서로의 손가락을 깍지 껴서 힘겨루기를 하던 당쾌풍과 건장한 소녀.
“아자자자자!”
“으으윽!”
불행히도 일다경이 채 지나지 않아서 소녀의 무릎은 거의 땅에 닿을 지경으로 꺾였다.
두 번째로 닮은꼴의 두 똘망이.
“그리 느려서야 누굴 잡겠다는 거지?”
“건방 떨지 마!”
건방을 떠는 게 아니라 둘의 음직임 차이가 너무 컸다.
“내 그림자라도 밟아 보든가.”
“시끄러!”
오대세가의 똘망이는 당호민의 그림자조자 밟지 못하는 형국이었고, 반대로 당호민은 마음만 먹으면 오대세가 똘망이의 볼기라도 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대장 격인 당찬일과 제갈청청.
“훗.”
제갈청청이 날린 채찍을 반대편으로 돌아들면서 여유 있게 피한 당찬일이 조소했다.
“어린놈이 비웃어?”
그러자 제갈청청이 잇자국이 남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낭아돌풍편(狼牙突風鞭)!”
늑대의 이빨 같이 날카롭다고 하여 붙은 무공 명칭답게 제갈청청의 채찍은 매섭고 사나웠다.
문제는 적중 여부.
아무리 예리한 초식이라도 상대방에 닿아야 위력을 발휘할진대 그녀의 채찍은 번번이 하늘을 갈라서 지닌바 힘을 선보일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훗.”
“감히!”
나왔다, 감히.
사실 당찬일은 대결 중에 상대를 비웃는 행동 따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부러 비웃음을 지음으로써 제갈청청을 도발했다.
물론 이건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오대세가의 자제들에게 상해를 입히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므로 제풀에 나가떨어지도록 유도하는 편이 최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자극해서 초장에 힘이며, 진을 빼 놔야 한다.
과연 당찬일의 전략은 효과를 발휘해서 몇 초식 나누지 않고도 제갈청청은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숨이 차올랐다.
“헉, 헉……! 잘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구나. 하지만 이제 곧 밑천을 드러내리라.”
씨근덕거리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제갈청청의 기세는 높이 살 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예기치 못했던 불상사가 발생할 위험이 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 편이 쌍방 모두에게 최선이다.
스르륵―.
갑자기 당찬일이 나서자 당황한 제갈청청이 채찍을 거칠게 휘둘렀다.
“낭아팔방편(狼牙八方鞭)!”
팟! 팟!
어깨높이에서 채찍을 피하면서 전진한 당찬일이 그녀의 지척에 이르렀다.
“에잇, 낭……!”
제갈청청이 팔을 치켜들었지만 이미 당찬일은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 상태였다.
“이제 그만하지.”
이 말을 남기고 반대편으로 향하는 당찬일을 멍하니 응시하던 제갈청청의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광채가 어렸다.
그것은 바로 살광(殺光).
척!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낸 제갈청청이 이행행의 목젖에 가져다 댔다.
“길을 열어.”
제갈청청이 시린 음성으로 명령했다.
“어서.”
협박을 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으니 타고난 성품이라고 봐야 할까?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당호민이 기가 막혀서 한 걸음 내딛자 제갈청청이 단호하게 외쳤다.
“다가오지 마.”
움찔!
“이 자의 수급이 땅에 떨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뻔하지만 효과적인 으름장에 무방비 상태로 밀리면서 당쾌풍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고도 명문정파라고 할 수…….”
“적어도 너희 당문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제갈청청의 의사는 굳건했다.
우리 오대련의 모든 행위는 선(善)이요, 너희 당문은 무조건 악(惡)이다!
지독한 독선이자 아집의 발로.
‘한 달 전의 일 때문인가?’
한 달 전, 당찬일이 가사 상태에서 막 깨어났을 때 당과로는 제갈세가를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출정식까지 거하게 치르고 길을 나섰다.
그때의 악감정이 남아서 이럴까?
“말로 합시다, 말로.”
당쾌풍이 붙임성 있게 나섰지만 어림없었다.
“더 이상 입을 열면…….”
쿡!
“으아악! 살려 주십시오!”
은장도가 목을 살짝 파고들자 한 줄기 선혈이 흐르며 이행행이 죽는다고 소리 지르다 혼절했다.
“알았어요! 비킬게요, 비킨다고요!”
양 손바닥을 앞으로 밀면서 당쾌풍이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
―어쩌지?
―인질이 잡혀서 방법이 없어.
당쾌풍과 당호민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난감한 상황.
아무리 몸이 날랜 이라도 이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무하다.
인질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말이다.
인질의 목젖에 닿은 은장도보다 빨리 움직일 방법은 없으니까.
신선이라면 모를까.
무식한 인간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무식한 이들은 당장 죽더라도 한길로 쭉 가는 무식함을 보인다. 반면 적당히 똑똑한 이가 신념을 지니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므로 문제가 더 커진다.
당쾌풍과 당호민이 난감해했지만 당찬일은 의외로 침착했다. 아니, 침착함을 넘어서 어느 정도 여유까지 보였다.
그는 무엇을 믿고 이러는 걸까?
“다들 뒤로 와!”
건장한 소녀와 똘망이를 자신의 뒤로 부른 제갈청청이 피식 웃었다.
“이제 너희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질 테니 처분을 기다려라.”
“뭐요!”
자신만만하게 선언한 제갈청청이 자리를 떠나려고 빙글 몸을 돌렸다.
“어?”
그녀를 막아선 인영.
“이런 건 과일 깎을 때 써야지. 사람한테 겨누면 쓰나.”
제갈청청의 손에서 칼을 회수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당숙정이었다.
“늦으셨습니다.”
“거짓말 마라. 능구렁이 꼬마야.”
은장도를 품에서 갈무리한 당숙정이 인상을 구겼다.
“알고 있었으면서, 무슨.”
―당문군주는 우리가 오대련 신진들과 격돌하기 이전부터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는 소리로군.
―재종은 이런 사실을 벌써부터 파악한 상태였고.
당호민과 당쾌풍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호, 혹시 당문대사저(唐門大師姐)신가요?”
건장한 소녀가 묻자 당숙정이 고개를 삐딱하게 틀면서 입을 비죽 내밀었다.
“어딘가에서 나를 요상한 별칭으로 부른다더니 너희들이었구나?”
당문대사저!
당숙정의 또 다른 별칭!
당숙정이 비록 당문에선 얼굴만 반반하고 성격은 개차반인 금수저 정도로 취급받지만 강호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그녀의 위상은 자못 대단했다.
당문의 큰언니!
특히나 여류 신진고수들은 그녀를 추종하면서 당문대사저라며 높여 부르기까지 했다.
“당문대사저래.”
당쾌풍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당문대사갈(唐門大蛇蝎)을 잘못 부르는 거 아냐?”
당호민이 비꼬았다.
“푸핫핫핫! 당문대사갈! 아이고, 나 죽는다!”
사갈(蛇蝎)이라 함은 뱀이나 전갈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써 타인을 해하거나 심한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단어다.
특히나 이 멸칭(蔑稱)은 여성에게 주로 사용하므로 참으로 기막힌 비유라 하겠다.
“대사갈! 크핰핰!”
이 기발한 언어 유희에 당쾌풍이 죽는다고 웃는데 그의 등 뒤로 무언가가 불쑥 솟아올랐다.
“좋냐?”
“그럼 안 좋냐? 정말로 웃기…… 헙!”
당숙정이었다.
“본가에서 보자꾸나.”
쌩―.
찬바람이 불도록 몸을 돌린 당숙정이 흠모의 눈빛을 보내는 건장한 소녀와 당황한 제갈청청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두리번거리는 똘망이에게 명했다.
“썩 꺼져. 어디 남의 구역에 와서 잔소리야!”
제갈청청 들이 어깨를 늘어트리고 사라지자 당숙정도 느긋하게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이대로 가세요?”
상황 파악이 빠른 당호민이 슬쩍 떠보자 당숙정이 가소롭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 공을 낚아챌 생각 따윈 추호도 없으니까 그 의원인지 뽕쟁인지 잘 심문하라고.”
휘릭.
그녀마저 자리를 비우자 당쾌풍이 뻥 뚫린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후다닥 왔다가 갔다, 그치?”
“그러게.”
두 사람이 쑥덕거리는데 이미 당찬일은 이행행을 깨우고 있었다.
“일어나시오, 이 의원.”
짝! 짝!
당찬일이 좌우로 이행행의 볼을 쳤다.
“어이쿠!”
벌떡 일어선 이행행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의 면전에 서 있는 당찬일을 발견하고 기겁했다.
“으아아악!”
“너무 놀라지 마시오. 저들의 노림을 알고 속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찬일의 말에 이행행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조금 전 의원님을 끌고 가려던 자들은 오대련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찬일의 입을 통해서 오대세가는 악덕 연합으로 깔아뭉개졌고, 당문은 이런 작자들에게서 서민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단체로 거듭났다.
“하여 고육지책으로 이 의원께 손을 댄 겁니다. 그래야 저들이 튀어나올 테니까요.”
“이럴 수가! 어떻게 그런 일이……. 제가 은인도 못 알아보고 원망을 했군요.”
약을 하도 해서 사리 분별이 안 되나 보다.
―어쩜 저리도 쉽게 속지?
―아무리 어여쁜 아녀자라고 해도 자기 목에 칼 들이대고 그 난리를 부려 봐라. 반감이 안 생기나.
당호민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심지어 피까지 봤다고, 이 의원은.
하긴.
“그러니 안심해도 됩니다.”
당찬일의 꼬임에 넘어간 이행행이 그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망가진 가재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물음을 이어 가겠습니다.”
괜히 먼 산을 보는 척하면서 당찬일이 툭 질문을 내려놓았다.
“지난달에 신상사의 대곽 스님을 검안한 사람이 이 의원이셨지요?”
“그랬습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지만 당찬일은 볼 수 있었다.
의료 도구를 옮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던 이행행의 무릎이 순간적으로 살짝 꺾이는 것을.
“사인은 심장 발작이었다고 하던데요?”
“알려진 그대로였습지요.”
“팔월 초사흘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건장한 장정들도 두 시진 이상 밭일을 하면 퍼져 버릴 정도로.”
“한여름이니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요.”
“대곽 스님은 팔순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매일 밭일을 하셨다더군요. 팔월 초사흘 역시 같았을 테고.”
넌지시 중얼거리면서 당찬일이 곁눈으로 이행행을 살폈다.
“그건 잘…….”
“신상사는 소림이나 아미파와 달리 문승으로만 이루어진 비무림(非武林) 사찰이었지요. 당연히 대곽 스님도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고요.”
“그리 알고 있습니다만.”
“무학을 전혀 익히지 않은 팔순의 노인이 뙤약볕에서 장시간 밭일을 하다 급사했다면 열사병부터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싶은데…….”
당찬일이 무감정한 시선으로 이행행을 직시했다.
“이 의원께서는 그걸 괴질에 의한 사망으로 단정 지으셨더군요.”
꿀꺽!
당찬일의 자못 날카로운 추궁에 이행행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건 사십여 년 동안 의술에 매진한 저의 판단으로서…….”
“이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