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85
당문전생 (84)
저주받은 마물, 사옥정(邪獄錠)
중년인이 멈칫했다.
역시 이 사람은 백상이다.
그런데 백상이 만약 사신의 흔적을 쫓아 아미를 방문했다면 비구니의 살해와는 관계가 없는 게 된다.
무엇보다 백상이 이번 아미파 비구니의 살인사건과 관계가 있었다면 자신에게 너저분하게 변명 따위를 늘어놓지 않고 편한 길을 택했을 것이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자신을 죽여 버리는 것보다 쉬운 해결책은 없을 테니까.
“하나 더.”
활짝 폈던 암기의 날개를 접은 당찬일이 중년인의 얼굴 근육을 세세하게 살피며 물었다.
“당신들은 성도부 관아의 지하 비밀 동혈에서 무엇을 조사하고 있었지?”
움찔!
그 순간 당찬일은 볼 수 있었다.
무표정을 넘어서 건조하기까지 하던 중년인의 표정에 미세하나마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과연, 뭔가 있구나!’
당찬일은 중년인과 성도부 관아의 비밀 동혈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동혈엔 역병으로 숨을 거둔 수많은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던 요등쌍살이란 전대 살인귀들을 중년인은 서슴없이 살해했다.
이로 미루어 중년인도 자신처럼 성도부 관아 지하 동혈의 침입자였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하지만 당찬일은 자신의 추론을 숨기고 중년인을 계속해서 압박했다.
잘만 하면 이번 기회에 성도부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을 해결할 단초를 얻을지도 모르니까.
‘성도부를 휩쓴 역병은 한여름의 땡볕에 의한 일사병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풀린 결과였다.’
점혈이란 수법으로!
‘그 결과 사람들은 우리 당문이 역병을 퍼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지.’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한 걸까?
머리를 굴리면서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설마 당신들이 성도부 주민들을 점혈이란 수법으로 살해했나?”
우뚝.
미세하게 흔들리던 중년인의 신색이 당찬일의 추궁을 듣자마자 처음처럼 고요해졌다.
잠시 주저하던 중년인이 곧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우리는 사옥정(邪獄錠)을 찾고 있다.”
사옥정이라고?
이런 급박한 판국에 뜬금없이 사옥정 타령은 뭔가?
중년인의 단도직입적인 답변에 당찬일이 시리도록 차가운 조소를 베어 물었다.
“사옥정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거야?”
당찬일이 묻자 그를 응시하던 중년인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이른바 안도의 감정.
“다행히 그대는 사옥정과 관계가 없군.”
자꾸만 동문서답식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년인을 보며 당찬일의 눈썹이 크게 휘었다.
“계속해서 헛소리로 일관하겠다면…….”
“헛소리가 아니다.”
“뭐?”
“사옥정은 실존할지도 모른다.”
쿵!
사옥정이 실존할지도 모른다고? 그게 말이 되는가?
당찬일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옥정이 무엇인가?
전설상의 삼부지동과 더불어 무림을 지배할 수 있다는 천고의 마물(魔物)이 아니겠는가?
태고 이래로부터 존재하는 사악한 기운을 가두어 두었다는[邪獄] 저주받은 물건.
하지만 이것을 얻으면 일초반식의 무학을 모르는 일반인이라도 능히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최강의 신물이 바로 사옥정이다.
문제는 사옥정이 발산하는 기운이다.
주지하다시피 사옥정은 태고 이래로부터 존재하는 사악한 기운을 가두어 두었기에 피륙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이것의 마기(魔氣)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사옥정이 지닌 힘을 탐해서 그것을 사용한다면 종국에는 마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미쳐 버린다고 했다.
물론 이 모두는 어디까지나 말하기 좋아하는 변설자들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사옥정이 진짜로 있을지도 모른다니.
“하면 당신이 성도부 관아의 지하 동혈을 조사한 이유가……?”
“사옥정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중년인이 대답하자 당찬일은 흠차관 청년이 들려준 말을 떠올려야만 했다.
―첩보가 있었단다.
―어떤 첩보를 말씀하시는지요?
―당문에서 도덕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실험을 자행한다는 것이었어.
그 말뜻은?
“잠깐!”
잠시 숙고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당신들은 우리 당문이 사옥정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다고 생각한 거야?”
질문을 던진 당찬일이 또 하나의 가정을 떠올리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우리 당문에서 사옥정을 만드는 중이라거나…… 뭐, 그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조사 중이다.”
쿵!
그 설마가 맞는단다.
중년인은 당문에서 사옥정이란 천고의 마물을 제조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단다.
아니,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지도.
“그럼 흠차대인께서 성도부에 파견 나오신 이유도 같은 이유였던 건가?”
“그분은 정확한 명칭까진 모르신다. 찾아야 할 물건이 매우 위험하다고만 알고 계시지.”
휘이잉―.
차분한 바람 하나가 중년인의 옷깃을 매만지고 사라졌다.
“귀하가 성도부 지하 동혈을 조사했던 이유도 우리 당문이 관과 결탁해서 사옥정을 제조하는지에 관해서 알아보기 위함이었군?”
“다시 말하지만…….”
중년인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조사 중이다.”
범종을 타종한 것처럼 나지막이 울리는 중년인의 답변을 곱씹던 당찬일이 한 걸음 물러나며 정중히 포권했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사실 중년인은 자신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문을 두루뭉술하지만 나름대로 꼼꼼히 풀어 주었다.
“그리고 귀하께서 아미파를 찾은 이유를 잘못 이해했나 봅니다. 이곳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찬일이 사과하자 중년인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난데없이 살인자로 몰려서 억울할 법도 한데 백상은 당찬일의 해명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성도부의 지하 동혈에서 나도 그대를 오해했었으니 서로 넘어가는 것으로 하자.”
참으로 담백한 성품.
백상이란 중년인은 검군 이서악만큼이나 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아미파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비구들이 죽었다는 사건을 말하는가?”
“당문의 검시관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으음.”
침음을 터트린 백상이 은근슬쩍 화제를 바꾸었다.
“그녀의 흔적은?”
백상이 사신 쪽으로 말의 방향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뻔히 느껴졌지만, 당찬일은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분명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스윽.
당찬일이 사신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교룡은사를 내밀자 그것을 받아 든 백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와 손을 섞어 보았나?”
“직접 맞부딪치지는 못했습니다. 사신이 부리는 시신들에게 잠시 곤욕을 치렀을 뿐이지요.”
“시신을 부리는 인형술이 그녀의 독문 술수라는 걸 용케도 알았군.”
“어쩌다 보니 그렇습니다.”
“설마 그녀마저…….”
역시 사신과 백상은 지인(知人)이다.
단순히 알고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밀접한 사이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녀마저라니?
‘문맥상 사신까지 아미파를 찾았다는 소리로 해석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언급한 백상 역시 아미파를 몰래 방문했다가 자신에게 발각되지 않았는가!
대체 사신과 백상이 아미파를 방문한 목적이 무엇일까?
‘알 수가 없군.’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당찬일이 백상을 은근슬쩍 떠보았다.
“사신이 아미파에서 비구니들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시의 적절하다 생각한 질문이었는데, 백상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검군이 그러던가?”
쿵!
도리어 당찬일이 한 방을 크게 먹고 말았다.
백상의 입에서 검군의 이름이 나올 줄이야!
그와 자신의 관계는 당문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인 것을!
‘백상, 정말 엄청난 정보력을 가진 사람이로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은 당찬일이 마땅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당찬일이 대답을 망설이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살피던 백상이 고개를 돌렸다.
“검군은 제자에게 아직까지 해묵은 은원(恩怨)의 찌꺼기를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건가…….”
검군의 해묵은 은원이라면?
‘그 대상은 사신일 거야!’
복잡다단한 속내를 추스르기 위해서 당찬일이 인상을 구기자 백상이 흘리듯 입을 열었다.
“하기야 그 문제는 말 몇 마디로 풀 수 없을 테지.”
완곡하게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백상은 아미파의 비구니를 살해한 인물은 사신이 아닐 거라고 말했다.
‘결국 내 예상대로 사신과 백상이 아미파를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머리를 굴리던 당찬일이 전부터 궁금했던 사항을 물었다. 백상에게 아미파를 방문한 이유를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테니 다른 의문점이나 물을 수밖에.
“백호가 저를 적대시하는 이유가 뭡니까?”
“음…….”
백호가 당찬일을 공격하는 광경을 목격한 백상이 침음을 흘렸다.
“그는 나와 달리 사옥정과 당문의 연관성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
놀라는 당찬일을 쳐다보지도 않고 백상이 짧게 덧붙였다.
“아니, 그는 당문과 사옥정이 연관이 있다고 확신하는 눈치더군.”
“대체 어떤 근거로……?”
“그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숨을 멈추었던 백상이 사무적인 음성으로 덧붙였다.
“같은 뿌리에서 났다고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하는 건 아니잖은가.”
순간 검군 이서악의 말이 떠올라서 당찬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뜻이 같으면 결마저 같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경우는 검군의 말과 반대로 결이 같다고 해서 지향점까지 같을 수는 없다는 건가?’
이로서 백상과 백호의 관계를 살짝이나마 들여다본 당찬일이 첨언했다.
“백호도 이번 살겁의 용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그런가? 목숨을 건진 비구니의 증언대로라면 흉수는 얼굴이 없었다고 하던데?”
백상이 묻자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지그시 응시하던 백상이 당찬일의 반응에 숨겨진 함의를 파악했다.
“실은 얼굴이 없는 게 아니라 특징이 없어서 아미파의 여승들이 살인자의 외모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그대의 추리로군?”
당찬일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자 백상의 눈이 침전되었다.
“만약 그런 가정이라면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약간의 동요를 보이던 백상이 처음처럼 무심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 문제는 너희들의 문제이고, 내가 아는 그녀라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니 이만 돌아가라.”
“흉수가 벌써 이곳을 떠났다는 말입니까?”
“아마도.”
“그렇다면 흉수가 아미에서 살겁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찬일이 묻자 백상이 몸을 돌렸다.
“글쎄…….”
백상의 답변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당찬일이 추궁할 수 없었다.
‘결국 검군을 만나는 게 최우선이란 소리.’
결심을 굳히는 당찬일을 주시하던 백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문의 직계임에도 불구하고 사옥정에 관해서 정말로 무지하군.”
“전설상의 마물에 관한 토론을 벌일 만큼 당문은 한가하지 않으니까요.”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
백상이 입술을 달싹였다.
“사옥정은 정말로 있을지 모른다.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