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95
당문전생 (94)
지부 설립
“분류를 간단히 하자는 거지. 내 쪽은 몸 쓰는 사람들을 찾는 거고, 네 쪽은 머리 쓰는 사람들을 찾는 거잖아.”
“그런데?”
“해당 분야에서 적당한 실력을 지녔지만 아직 성과를 보인 적이 없고, 그랬으니 당연히 당문에서 인정을 받긴 어렵겠지.”
두 개째의 손가락을 꼽던 당쾌풍이 완전 자신의 이야기라며 킥킥 웃었다.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 우리 당문에 그런 양반들 천지삐까리거든.”
“그렇군!”
당호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소위 천재들은 스스로가 워낙 잘나서 자신만큼 뛰어나지 않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당호민은 자신의 비범함은 비범함대로 인정하고, 타인의 평범함 또한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장점을 가졌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며 지금까지 가졌던 우리 당문의 변화하는 모습을 키우자. 뭐, 이런 취지인가?”
당찬일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당호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 조건까지 충족하는 사람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지 몰라. 인간적인 부분을 직접 물어 해결할 순 없잖아.”
“급한 건 아니니까 꼼꼼히 부탁한다.”
당찬일이 대답하자 듣고 있던 당쾌풍이 의문을 표했다.
“갑장한테도 그렇고 나한테도 그렇고, 스무 명이 넘게 후보를 부탁하다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당쾌풍이 묻자 당호민도 궁금하다는 듯 당찬일을 힐끗거렸다.
당찬일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내가 하려는 일은 외부에 주체적인 힘을 키우는 거야.”
* * *
“지부(支府)를 설립하신다고요?”
내당의 집법부주인 당책이 물었다.
“우리 당문은 지난 육백 년간 외부인을 받지 않을 정도로 순수 혈통을 지켜 왔습니다. 한데 지부를 설립한다는 건…….”
당책의 열변에 원로전의 노인들도 한마디씩 던졌다.
“섣부른 판단 같아.”
한때 독술 하나로 무림을 오시했던 당적이 입을 내밀었고.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암기술의 대가인 당웅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두 사람의 반응은 익히 예상했던 것이라서 당과로의 얼굴 근육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자금부의 생각은 어떤가?”
자금부주이자 방계혈족 가운데 가장 출세한 사람인 방호용이 입을 열었다.
“위치가 중요하겠지만 우리 당문의 저력으로 미루어 지부가 제대로만 돌아가기만 한다면 육 개월 이내에 투자금의 전액을 회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금전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판단에 당책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돈을 따질 게 아니라 우리 당문의 정체성…….”
“일단은 돈만 고려하자.”
말을 자른 당과로가 이번에는 무공부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생각은 어떠냐?”
“지부에서도 지금처럼 《사천무편》을 가르치는 건지요?”
“그것이 지부 설립의 가장 큰 이유다.”
당무(唐武)의 눈에 화색이 완연해졌다.
“외부에 문외불출의 비기를 교육하는 게 아니라면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어째서?”
당무의 우람한 근육을 꿈틀거렸다.
“다른 문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우리 당문에는 유휴무인(遊休武人)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유휴무인의 급증.
난세나 혈겁이 도래하면 문파원이 많은 방파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마련이다.
사람 수가 곧 전력이니까.
문제는 평화기다.
강호 무림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개인이나 문파 간의 싸움은 차츰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식구들 즉, 소속 무인들의 할 일이 없어진다.
“먹여 살리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만, 문제는 그 혈기 넘치는 녀석들이 똑같은 수련이나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겁니다.”
해당 문파 구성원들의 자질이 훌륭해서 전부가 문중의 비기를 익힌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극상승의 무학을 깨우쳐서 종사에 이르면 스스로 문파를 창시하면 되니까.
하지만 개파 조사가 된다는 건 꿈같은 일이고, 문중의 비기는커녕 상승 무공조차 접할 수 없는 이들이 태반이다.
그런 이들이 유휴무인이 되는 거다.
“당쾌풍이 젊은 친구들을 교관으로 많이 뽑았다던데?”
무공부주, 당무가 묻자 뒤에서 시립해 있던 외공처주가 포권했다.
“당쾌풍이 뽑아 간 인원은 우리 외공처의 핵심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누구보다 열정을 가진 녀석들이었습니다. 녀석들에게 할 일이 주어져 저도 한시름 덜었습니다.”
당무가 이번에는 내공처주에게 물었고, 비슷한 답이 나왔다.
“고작 스무 명 남짓을 뽑았는데도 이 정도의 효과가 생겼으니 만약에 지부가 설립된다면 무공부로서는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습니다.”
당무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로전 노인네들의 징징거림이 시작되었다.
“허어! 그건 소탐대실이야!”
“무공부주는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구먼! 이건 육백 년 동안이나 고결하게 이어온 우리 당문의 울타리를 부수는 격이라네!”
하지만 당과로는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무공부는 그렇다는 거지?”
용평상의 팔걸이를 탁탁 두드리던 당과로가 고개를 돌렸다.
“독물부는?”
질문을 받은 당숙정이 머릿속으로 감탄했다.
‘녀석이 말한 명분이란 게 이런 거였군.’
생각은 잠시 미뤄 두고 당숙정이 독물부주로서의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만약에 지부가 생긴다면 저희 독물부에서 맡을 일이 무엇이온지요?”
“일이야 찾아보면 무궁무진하겠지만 일단 의국(醫局)을 열어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치료해야겠지.”
“주민들만 돌봅니까?”
“환자에 차별을 둘 수는 없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치료해야 할 것이야.”
말은 번드르르 하지만 결국 돈이 되는 부자나 고관의 치료가 주가 된다는 뜻이다.
“약재도 취급하고요?”
“물론이다. 본가의 비약과 비기를 제외하고.”
당과로가 입을 열자마자 원로전의 노인들이 오뉴월 메뚜기 떼처럼 난리를 부렸다.
“아니, 그게……!”
“그리 쉬운 문제가!”
순간 당과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여러 의견을 듣고 있지 않소이까!”
당과로가 원로전 노인들을 바라보며 묵직하게 입을 열자 장내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독약처와 영약처에도 일감을 맡지 못한 인재들이 많으니까요”
“유휴의생(遊休醫生)이라.”
암기와 독으로 유명한 문파답게 당문은 무인과 의생이 혼재되어 있다.
무인만큼이나 의생도 넘쳐 나는 건 당연한 노릇.
“무공부와 독물부의 의견은 충분히 들었다.”
당과로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실무자들의 입장과 생각은 파악했으니 이제 내, 외당 당주들의 소견에 대해서 알아야겠다. 우선 외당주.”
지목받은 당진이 천천히 걸어와서 앉았다.
“외당주로서 말씀드리자면 지부를 설립하지 않고서는 들끓는 민심을 가라앉힐 방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자신들에게도 《사천무편》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당진이 고개를 숙이자 원로전 노인들이 또다시 떠들어 댔다.
“대체 그놈의 책자가 소림의 역근경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 얼마나 대단해서 이 난리냐고?”
기다렸다는 듯 원로전 노인네들이 떠들어 대자 당진이 손짓했다.
우르르르.
당진의 뒤에 서 있던 장한들이 수십 다발의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게 다 무엇이냐?”
“이것은 성도부 외곽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붙였던 방문(榜文)들입니다.”
방문과 대자보의 내용은 자신들의 동네에서도 《사천무편》을 익힐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이 많은 방문이며 대자보가 전부…… 설마 같은 마을에서 붙인 것들은 아니겠지?”
“그것에 관해서 말씀을 올릴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당진이 턱짓하자 뒤에서 대기하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아이는 어전호위를 맡았던 당찬일이 아닌가!”
“하독처주 당인이의 외동아들이라고 했지?”
원로전 노인네들이 웅성거리자 당찬일이 그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들이다.
육백 년이란 세월을 일상적으로 되새김질하는 당문의 역사가 바로 이들이다. 철저히 수구적이라 몇 마디 말로는 설득되지 않을, 그런 사람들.
“우리 당문의 혈통을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찬일이 다부지게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외부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의견입니다만, 저는 먼저 우리 당문의 위상이 어떤지 원로전의 어르신들께서 직접 보시고 회의를 이어 가는 것이 어떨까 의견을 드립니다.”
당과로가 고개를 끄덕임으로 당찬일의 의견이 통과되었다.
다음 날.
지부 설립은 곧 망조라고 난리를 치던 원로전의 노인들이 놀랍게도 고집을 꺾고 관망세로 돌아섰다.
훗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성도부의 일반인에게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신들이 이제는 환영을 받았다고. 객잔에서 국수 한 그릇을 시켜도 주인이며 점소이들이 그토록 친근하게 대했다고.
오로지 당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단 말이지요?”
당과로가 괴이한 미소를 흘리자 실질적으로 원로전을 이끄는 당웅이 입을 열었다.
“문호를 개방하는 건 아직도 찬성할 수 없네. 그건 시기상조야.”
당웅이 자신들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중립이지, 찬성까지는 아니라는 뜻을 피력하자 당과로가 용평상에 슬쩍 기대어 인중을 쓸어내렸다.
“예, 예, 알겠소이다. 원로전의 심려를 내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지요.”
징징거리는 아이를 달래듯 당웅을 비롯한 원로전 노인들을 바라보던 당과로가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꺾었다.
“그렇다면 원로전의 우려를 반영하면서 신진들의 기상을 배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겠군.”
당과로가 좌중을 훑어보자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절충안이 있습니다.”
“절충안?”
당과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양측 모두를 배려하면서 걱정거리도 없앨 수 있다?”
과거의 전통을 지키면서 진취적인 미래를 설계한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두 가지의 신념은 완전히 극과 극이니까.
이렇게 상반된 두 개의 가치를 하나로 융합할 수 있다고?
“본가에서 지부에 대한 투자는 초기 투자금 말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겁니다.”
쿵!
“또한 지부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다툼에도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다툼에서 말이냐?”
“그렇습니다. 무력에 의한 충돌이든, 금력 때문에 벌어지는 분쟁이든.”
“홀로 서라는 것이구나.”
“그것입니다.”
당찬일이 확신에 찬 눈동자로 원로전의 노인들을 훑었다.
“흐음.”
침음하던 독술의 대가, 당적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생각해?”
당적의 물음에 암기술로 천하를 호령했던 당웅이 아직까진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한 안전장치가 없어. 아이들이 지부를 설립한답시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몰려다니다 혹여 불미스러운 사고라도 치면 누가 수습하겠나?”
당웅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 당찬일이 예의 바르게 끼어들었다.
“지부가 본가의 이름에 먹칠을 가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즉시 폐쇄합니다. 또한…….”
당찬일의 눈에서 화광을 발견한 건 당과로만의 착각일까?
“해당 지부의 장과 불미스러운 행위에 가담한 자 그리고 그를 감독했어야 마땅한 자도 엄하게 처벌하면 됩니다.”
쿵!
당찬일의 말을 듣던 당웅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엄하게 다스린다면 뭐, 나쁘지는 않겠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원로전이 마음의 문을 열자 당문의 일호 지부를 막아설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