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96
당문전생 (95)
넌 안 돼!
그날 저녁,
당호민을 다시 불러낸 당찬일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성도부에서는 무명자가 기대 이상으로 노력해 준 덕에 분교가 성공했지만 지부의 성공 여부는 의약부에 달려 있어.”
“무공만 내세우는 다른 문파들과 달리 접근하겠다는 거구나.”
당찬일이 그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다.”
역시 똑똑한 친구라서 바로바로 말이 통한다.
“그럼 우리 의약부가 어떻게 움직일까?”
당호민이 묻자 당찬일이 젊은 거지에게서 받은 종이를 내밀었다.
“흐음, 병들은 지극히 일반적인데?”
“약재 또한 일반적이고.”
그걸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야?
당호민이 표정으로 물었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간단하게 조제 가능한 약을 만들 수 없을까?”
“말이야 쉽지.”
당호민이 피식 웃었다.
“그건 일종의 꿈이라고.”
가격이 싸면서 간단하게 제조할 수 있는 치료제는 의원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처방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찬일이 팔짱을 꼈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사람들이 자주 걸리는 것들에 대해서라도 그랬으면 해. 선대의 훌륭한 의학서의 도움을 받는 건 어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당호민이 의아해했지만 당찬일은 바닥에 내려놨던 보자기를 그에게 건네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우선 이건 선물.”
“이게 뭐지?”
보자기에 싸인 거대한 곤충집을 열어 본 당호민이 내용물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와! 이건 여왕호봉 아니야?”
“그래. 무명자가 포획한 놈이지.”
이런 희귀한 독충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당찬일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당호민이 푸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진짜 행복하다.”
순간 당찬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지금 행복하다고 했나?”
“왜? 뭐, 잘못되었어?”
자신의 응대가 당찬일의 기분을 거슬렀나 싶어서 당호민이 당황했다.
“아니.”
당찬일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네게 들었던 칭찬 가운데 최고라서.”
당찬일이 더할 나위 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당호민에게 품을 뒤적인 당찬일이 낡은 책자를 주었다.
“그리고 이거.”
“이건 또 뭐야?”
“선대의 훌륭한 의학서.”
당찬일이 답하자 당호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게 정말로 있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당호민이 책에 적힌 제목을 읽었다.
“《만초요람(萬草要覽)》? 제목 한번 거창하네.”
당호민이 피식 웃자 당찬일이 장난처럼 받았다.
“《만상요람(萬像要覽)》도 있지.”
당찬일의 너스레에 피식 웃으며 당호민이 물었다.
“이 책, 저술한 사람이 누구야?”
당찬일이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삼조(三祖).”
“뭐?”
당찬일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당호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삼조라니?”
“당거정 삼조.”
쾅!
그렇다. 당찬일이 당호민에게 건넨 책은 그가 당거정의 비밀 석실에서 얻은 천고의 보물이다.
당거정의 비밀 석실에서 당찬일은 세 권의 책과 하나의 신물 그리고 하나의 암기를 얻었다.
‘첫 번째 책은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천하제일의 구명지공(救命之功)이 수록된 무공서였지.’
그리고 두 번째의 서적이 《만초요람》으로, 다른 것들은 몰라도 이 책만큼은 당문의 후손에게 반드시 전해 달라고 당거정이 신신당부했다.
‘자신의 진전을 얻은 이가 외부인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당찬일은 다행히도 당문 사람이었고, 그는 《만초요람》을 당문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당호민에게 주기로 했다.
마지막 책이 조금 전에 언급한 《만상요람》인데…… 이것은 아직 읽지 않았다.
“펼쳐 봐.”
희미하게 웃으며 당찬일이 권하자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그와 책을 번갈아 쳐다보던 당호민이 곧 고개를 숙이고 책장을 마구 넘겼다.
“이, 이럴 수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책장을 마구 뒤적이던 당호민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책에 코를 박았다.
그런 그를 당찬일이 잔잔한 미소로 굽어보았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때 행복해지나 보다.
@원로전의 노인들이 모두 돌아간 대전에 홀로 남은 당과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름 그럴듯하게 정리되지 않았는가.”
턱을 쓰다듬던 당과로가 용평상의 팔걸이를 탁탁 두드렸다.
흥미로운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생기발랄하게 눈동자를 굴리던 당과로가 문밖에서 들려온 총집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외당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문이 열리고 외당주, 당진이 대전으로 들어서자 당과로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물었다.
“원로전이 민심 탐방에 나설 것을 염두에 두고 시전의 민심을 매만져 둔 건 네 작품이냐?”
“아닙니다.”
“그럼?”
“저나 형님을 비롯한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성도부 사람들이 우리 당문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게야? 갑자기?”
“갑자기는 아닙니다.”
당진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지난 일 년간 성도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사천무편》이 우리 당문의 인상을 부드럽게 했지요.”
“《사천무편》 때문에 당문의 대외적인 인상이 말랑말랑해졌다?”
뭐,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겠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당과로를 바라보던 당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첫 지부는 어디에 설립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금 첫 지부라고 했느냐?”
당과로가 고소 지었다. 그가 돌발적으로 까마귀처럼 울부짖었기에 적이 당황한 당진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적응이 안 되는 양반이다.
“너는 지부를 몇 개나 짓고 싶으냐?”
당과로의 질문은 웃음만큼이나 뜻밖이었지만 당진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많을수록 좋겠지요.”
“많을수록 좋아?”
“적어도 열 개 정도는 설립하고 싶습니다.”
“어째서 열 개냐?”
당과로가 흥미롭다는 듯 묻자 당진이 거침없이 답했다.
“무림맹에서 스무 개의 지부를 중원 각처에 박아 두었으니 우리 당문이 시작한다면 적어도 절반은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유가 단순하구나.”
당괴로가 차가운 눈으로 당진을 응시했다.
“무림맹과 경쟁이라도 하고 싶은 게냐?”
“경쟁이라기보다는 가야 할 수순이 아닌가 합니다.”
“수순?”
당괴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당진이 깊은 숨을 들이켰다.
“부를 설립하기 시작하면 무림맹은 필연적으로 우리 당문을 의식하게 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림맹을 의식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아예 시작조차 아니 함만 못하게 되지요.”
“그러냐? 그래서?”
“시작을 한다면 공적으로, 독자적인 행보니 누가 관여하지 못한다 미리 선포한다면 그들이 우리를 가벼이 여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진의 답변을 들은 당과로과 용평상에 깊이 몸을 묻었다.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예?”
“지부를 많이 설립하는 것으로 무림맹에 우리 당문을 드러낼 필요가 있겠느냔 말이다.”
당과로의 말엔 많은 함의가 축약되어 있었다.
굳이 지부를 많이 설립하지 않아도 무림맹에 당문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낼 방법이 있다면?
“우리 당문의 대외적인 인상이 말랑말랑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로전의 꼬장꼬장한 영감쟁이들이 지부 설립을 찬성했다고 생각하느냐?”
“그, 그럼……?”
기이한 미소를 지은 당과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감쟁이들이 지부 설립을 찬성하는 대신 조건을 하나 달더군.”
“어떤 조건입니까?”
당과로가 손잡이를 당기자 지도가 내려왔다.
“첫 지부를 이곳에 설립한다면 찬성하겠다고 했느니라.”
당과로가 지휘봉으로 가리킨 지역을 확인한 당진이 나지막이 침음했다.
“그곳은 드러난 것과 달리 용담호혈의 험지가 아닙니까?”
“그렇지.”
“하필 그런 위험한 곳을 어르신들이 지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진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지만 당과로는 어쩐지 즐기는 눈치였다.
“너의 우려처럼 이곳은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魔敎)의 세력이 모두 한 발씩 걸쳐진 지역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세가나 문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
예로부터 무림은 정사마(正邪魔)가 삼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정파는 백리무극이 이끄는 무림맹을 필두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연합이 그 뒤를 받치는 형국이다. 사파는 천사련(天邪聯)이란 고대로부터 이어 온 결사체가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마도.
이전까지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교가 모종의 사건으로 위축된 이후, 마도는 마땅한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상태다.
그리하여 원래는 강호를 균등하게 삼분하던 정사마는 마교가 음지로 스며들면서 무림맹과 천사련이 양분한 형태가 되었다.
“이곳은 이름난 옛 도시다 보니 정사마의 각 세력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거점을 남겨 두었지. 아직 기능을 하는 곳도 있겠고, 소문 없이 소멸한 곳도 있을 게야.”
당과로가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첫 지부를 이곳에 설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영감쟁이들이 저렇게 나오는데 나라고 별수 있겠느냐?”
만약 다른 문파나 세가가 당과로가 지목한 지역에 지부를 설립한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문파나 세가는 정확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히므로 정파나 사파, 또는 마도에선 그렇구나, 하고 여길 테니까.
하지만 당문은 다르다.
당문은 단 한 번도 정파라든가, 사파, 또는 마도를 지향한다고 드러내지 않았고, 이들의 행사 역시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침이 없었다.
그래서 당문은 세가 설립 이래 무려 육백 년이나 자유로운 상태였다.
“이러니 우리 당문에서 이곳에…….”
콕콕.
당과로가 지도의 일정한 부분을 지휘봉으로 집요하게 두드렸다.
“지부를 설립한다면, 사파나 마도에서 우리의 동정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테니 무림맹에 우리의 존재감을 이보다 확실하게 드러낼 방법이 없지.”
“어르신들은 고작, 무림맹에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내시려고 그곳을 지목하셨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겠지.”
당과로가 콧잔등에 주름을 잡았다.
“우리 지부가 정과 사 그리고 마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한시라도 빨리 철수하길 바라는 게지.”
당문의 원로들은 입으로는 허락했지만 여전히 지부 설립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소리다.
당과로가 곤란하다는 듯 양팔을 들어 올렸지만 그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감정 하나가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흥미.
당과로가 완곡하게 첫 지부 설립지를 단정 짓자 입술을 깨문 당진이 포권했다.
“그렇다면 지부장으로 제가 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네가?”
“그렇습니다. 제가 지부장으로 가서 찬일이를 돕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넌 안 돼.”
딱 잘라 거절한 당과로가 입꼬리를 불쑥 말아 올렸다.
“내당을 맡고 있는 당암이도 안 되고, 독물부주인 숙정이도 안 된다.”
“아니, 그런……?”
적이 당황한 당진이 손을 내리며 외쳤다.
“원로전 어르신들의 의중대로 지부가 뜻도 펼쳐 보지 못한 채로 철수하길 바라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