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94)
96화.
갈라진 하늘의 틈에서 타르처럼 진득거리는 검은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마치 부정형의 슬라임을 연상시키는 그것들이 허공에서 뭉쳐지더니 곧 흉측하게 생긴 거대한 여자의 얼굴로 변해갔다.
“어? 저게 뭐지?”
거리를 걷던 시민들이 놀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끼아아아아아악!!]그것이 사납게 포효했다.
“허억!”
“꺄아악!”
시민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일제히 주저앉았다.
한때 대악신이었던 존재가 뿜는 파멸적인 악의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공포에 질렸다.
“저, 저건 설마 SSS급 균열?!”
S급 헌터인 고사득조차도 경악한 눈으로 균열을 뚫고 지구로 강림하려는 악신을 바라보았다.
오들오들. 고사득의 머리를 안고 있는 릴리스도 눈물을 글썽이며 애처롭게 몸을 떨었다.
이곳에서 저 악신의 악의에 자유로운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내가 하찮은 하급신이라고?”
하지만, 나는 놈에게 공포보다는 강렬한 짜증을 느꼈다.
내 눈이 저놈을 감정했다.
-암컷이다. 사용한 지 69만 년 되었다.
특이 사항 : 한때 신이었던 영락한 존재이다.
한때 신이었던 영락한 존재란다.
말하자면 신의 찌꺼기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 주제에 감히 나를 하찮다고!”
고오오오!
잠시 식었던 광기와 살의가 다시금 사납게 들끓었다. 저 따위 쓰레기가 날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나는 수도를 치켜들었다.
“천마신검.”
비록 신검인 천마도 없고, 검귀와 스킬 공유도 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츠츠츠!
내 수도에 악신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죽어라, [천마군림].”
이미 내 몸에 체화된 검기를 밤하늘에서 비명을 지르는 저 추악한 악신의 대가리를 향해 붓질하듯 그었다.
차아악!
[끼아아아아······!]퍼어억! 콰콰쾅!
비명을 지르는 ‘유혹하는 색정의 밤’의 머리통이 폭발하며 산산이 부서졌다.
히죽.
시원하게 터져버린 놈의 모습에 만족하며 웃고 있는데 갈라진 균열에서 다시금 검은 기운이 스르륵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다시 머리 형상으로 뭉친 그것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하찮은 하급신아! 내가 아무리 쇠약해졌다 해도 네 공격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한때 너 따위 하급신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고위 신격이었느니라!]그러자 내 스토커들이 반응했다.
풍요의 말을 들어보면 고위 신격이라는 말이 구라는 아닌 것 같다.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께서 넌지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습니다.]악몽 저 미친년이 웬일로 신 같은 소리를 했다.
확실히 때려 부숴도 다시 원래대로 재생하는 건 귀찮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악몽이 화답했다.
[대신 자신이 강림하기 위한 인과율을 얻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제물? 얼마나?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께서 해맑은 얼굴로 지구의 인간을 천만 마리 정도만 바치면 된다고 합니다.]그래, 기대한 내가 천치지.
내가 아무리 악신 모드로 좀 맛이 가긴 했지만, 저런 개소리를 따라줄 생각은 없었다.
[‘모든 것을 베는 천검’ 께서 그냥 저 늙은 벌레를 죽이면 되지 뭘 격 떨어지게 저런 쓰레기 같은 걸 상대 하느냐고 혀를 찹니다.]늙은 벌레?
나는 흘깃 파리한 얼굴로 피를 토하고 있는 고사득을 보았다.
띠링!
-수컷이다. 사용한 지 61년 되었다.
특이 사항 : ‘유혹하는 색정의 밤’과 인과율이 이어진, 지구 강림의 매개체다.
과연 천검의 말은 이것인가?
고사득을 죽이면 인과율을 잃은 저 악신의 찌꺼기가 지구로 강림할 수 없다는 말이군.
[‘모든 것을 베는 천검’께서 그렇다며 잔인하게 웃습니다.]스윽, 나는 검지를 들었다.
도리도리!
릴리스가 날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크큭.”
하지만, 나는 악신답게 잔인하게 웃으며 검지를 내리쳤다.
“[짓뭉개는 신의 검지]!”
콰지직!
[끼아아아악!]‘유혹하는 색정의 밤’의 머리통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거대한 망치로 내려친 듯 짓뭉개졌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왜 저런 신도 아닌 신의 찌꺼기 따위를 막기 위해 내 권속의 남자를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권속은 나의 것.
권속의 것도 또한 나의 것이다.
“싫다.”
이건 내 자존심의 문제다.
그리고 나는 작가든 독자든 해피엔딩이 좋단 말이다.
꿈틀꿈틀!
짓뭉개진 놈이 다시 재생을 시도했다.
나는 권능을 멈추지 않고 놈이 기어 나오는 균열에 의식을 집중했다.
“닫혀라.”
내 짓뭉개는 신의 검지의 능력은 대상의 On/Off.
이계의 악신이 튀어나오려고 저 균열도 분명 닫을 수 있을 것이다.
콰아아아!
몸에서 신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며 놈이 튀어 나오려는 균열이 점점 닫혀갔다.
좋아, 된다!
이대로 조금만 더하면······.
그때 갈라진 균열에서 갈고리 같은 발톱들이 튀어나오더니 닫혀 가는 균열을 억지로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캬아아아아아!]마치 거대한 자궁 같은 끔찍한 몰골의 괴물이 균열을 억지로 비집으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저것이야말로 내가 릴리스의 과거에서 보았던 악신 ‘유혹하는 색정의 밤’의 본체!
막으려는 나와 강림하려는 자의 신력이 거세게 맞부딪쳤다.
내 입가에서 검게 죽은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이놈! 내가 아무리 영락했어도 겨우 갓 태어난 하급신 따위가 내 강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짜증 나지만 놈의 말이 맞았다.
신력이 턱없이 모자라다.
악신의 힘만으로는 놈의 강림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악신이자 또한 선신이기도 하다.
“선신 타이틀 [자애로운 구원자] 장착.”
선신 타이틀을 장착하자 내 몸에서 눈부신 광휘가 솟구치며 머리에 천사 같은 링이 생성되었다.
그러나 아까 야차병을 정화시킬 때와는 달리 순수한 백색이 아니라 흑백이 반반 뒤섞인 기묘한 색의 링이였다.
선신과 악신 타이틀을 같이 사용하는 건 불의 사도에게 천마대초열을 사용할 때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으으윽!”
콰콰콰콰!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신력이 내 몸 안에서 서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듯 태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끔찍하게 귓속을 파고든다.
“[짓뭉개는 신의 검지]!”
두 신력이 내 몸을 완전히 파괴하기 전에 나는 그것을 ‘유혹하는 색정의 밤’에게 전력으로 쏟아부었다.
콰직! 콰지직!
그러자 자궁처럼 생긴 놈의 본체가 프레스에 짓눌리듯 천천히 찌부러지기 시작했다.
[으으으! 어, 어떻게 갓 태어난 하급신 따위가 이런 힘을······!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늘······!]“닥치고.”
반쯤 뭉개진 처참한 몰골의 놈을 향해 아까 받은 수모를 돌려주었다.
“내 세계에서 꺼져라, 하찮은 악신의 찌꺼기놈아.”
콰드드드득!
[끼아아아악!]슈우우욱!
처참한 단말마와 함께 완전히 짓뭉개진 놈의 몸이 균열 안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갔다.
그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갈라진 균열이 소멸했다.
“하아, 하아! 타이틀 모두 해제!”
나는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타이틀을 해제했다.
스스스스······.
그러자 온몸에 차오르는 전능감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나는 신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마치 새가 날개를 잃은 상실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게 낫다.
타이틀을 쓰고 있을 때는 왠지 내가 아닌 기분이 들어서 거부감이 들었으니까.
“너, 너는 아니 당신은 대체?”
다 죽어가는 몰골인 고사득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약지를 겨눴다.
흠칫하는 그의 눈동자에 공포가 차올랐다.
“[치유하는 신의 약지].”
눈부신 백광이 고사득을 감쌌다.
[치유대상 ‘고사득’의 인과율을 계산합니다.띠링!
100 Gcoin이 치유의 대가로 소모됩니다.]
그러자 고사득의 부상이 흔적도 없이 완치되었다.
“이, 이럴 수가? 대체 어떻게? S급 치유술사 조차도 이 정도 치유는 불가능할 텐데······.”
경악하는 고사득의 얼굴을 향해 릴리스가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아앙! 앙앙!”
릴리스가 얼굴을 사정없이 비비며 흘리는 기쁨과 안도가 섞인 눈물이 고사득의 뺨을 뜨겁게 적셨다.
“뭐, 뭐냐? 네놈은!”
고사득이 반사적으로 릴리스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손에 조금만 힘을 줘도 으스러져 죽을 것 같은 작디작은 생명체.
처음에는 괴이하게 여기던 고사득이 눈물이 글썽거리는 릴리스의 오색 눈동자를 발견했다.
“너······. 너······. 그럴 리 없지만······. 서, 설마?”
고사득의 목소리가 부서질 듯 떨렸다.
나는 혼란스러워 하는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네. 모습이 바뀌긴 했지만, 이분이 바로 당신의 아내이신 릴리스님입니다.”
“뭐, 뭣이라?!”
고사득이 경악하며 손안에 있는 릴리스를 바라보았다.
“리, 릴리? 정말 네가 맞느냐? 정말로?”
끄덕끄덕!
릴리스가 세차게 고개를 움직였다.
“릴리! 릴리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흐으으윽! 내가 얼마나 널 기다렸는지 아느냐!”
“아아앙!”
오랜 세월 생과 사로 갈라져 있었던 부부가 해후했다.
작고 귀여운 천사와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 늙어 버린 노인.
하지만 그들의 처음을 아는 나에게는 그들이 아름다운 여인과 건방진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비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해피엔딩.
서로 부둥켜안은 채 아이처럼 울고 있는 노부부를 보고 있자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메시지가 뜨기 전까지는 말이다.
띠링!
[유일신이 천사병에게 원래의 이름을 찾아주었습니다.‘천사병 릴리스’가 ‘천사장 릴리스’로 진화합니다.]
“뭐?”
-네. 모습이 바뀌긴 했지만, 이분이 바로 당신의 아내이신 릴리스님입니다.
설마 내가 한 이 말이 이름을 찾아준 것으로 인식된 걸까?
콰아아아!
츠츠츠츠!
아니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