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11
다만, 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방위산업청은 절대적인 갑이며 악질 클라이언트처럼 보일 것이다.
내수가 아닌 외수 시장으로 눈길을 돌려도 되지만, 세계 방위산업체 시장은 미국이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다.
그렇기에 국내 방위산업체들 매출의 80퍼센트 이상이 내수 시장에서 발생된다. 이는 곧 방위산업청이 80퍼센트 이상의 물자를 공급받는 슈퍼 갑이 된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약한 것은 아니다.
국방비로 천조를 쓰는 천조국이랑 비교하면 그렇다는 거지.
“방산 비리 뿌리를 뽑을래야 뽑을 수 없는 거죠.”
“도박 사이트와 같습니다. 아무리 잡아봤자 계속 생겨나니까요. 시스템 자체를 바꾼다면 모를까.”
“바꾼다고 해도 그때뿐, 또 다른 방법으로 방산 비리는 생겨날 겁니다.”
내가 한마디를 내뱉자 운전을 하는 정대필 수사관과 지성환이 수사관이 한마디씩 뒤따라 말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있는 박하준.
대전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눈이 빠질 것처럼 신영개발 관련 자료들을 보고 있었다.
‘흠… 완전 FM 스타일이네.’
나에게 올라올 자료들을 꼼꼼하게 검토해 주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주도적이라면 자신의 생각만으로 자료를 수정할 수도 있다.
내가 확인도 해 보기 전에 말이다.
박하준 스타일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신영개발보다는 박채이 검사님 먼저 만나 뵙는 게 낫겠죠?”
“네. 저희한테 보낸 자료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앞으로 몇 년 후.
정부는 방산 비리 척결을 목표로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가게 된다.
별들부터 영관급 장교까지.
당시 군수물자 조달 업무에 개입할 수 있는 고급 장교들이 우수수 기소를 당했다.
물론 기소한 인원 중 절반 가까이 무죄를 받긴 했다. 형사사건의 무죄율이 1퍼센트도 안 되는데 말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무죄율이 나오는 게 참 웃긴 일이었다.
재판관이 뇌물을 받았다거나 사회적 지휘가 높아서 무죄율이 높아진 건 아니었다.
당시 정부는 방산 비리 척결을 위해 칼을 뽑아 들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를 한 상황이고, 그렇기에 국민들에게 결과를 보여 주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보여 주기 급급한 수사와 부실 수사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그렇다고 법관이 공정성을 지키지 않고 무리한 판결을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는 탓이었다.
“다 왔습니다, 검사님.”
“대전 지검은 처음 와 보네요.”
“하하, 저는 첫 수사관 생활을 한 곳이어서 익숙합니다. 지 선배님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내가 대전 지검에 도착한 지금 이 순간부터 앞으로의 미래는 알 수 없었다.
검사 한치우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내 사전에 있어 무리한 수사와 부실한 수사란 단어는 없다.
“이쪽입니다, 검사님.”
대전 지검이 익숙한 정대필 수사관이 앞장 서 나를 안내했다.
“네, 따라가겠습니다.”
처음 와 보는 대전 지검을 자세히 보고 싶어 입구에 서서 건물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대전지방검찰청.
충청도 최대의 검찰청이자 몇 달 후 세종시가 출범함에 따라 그 규모가 나날이 커질 곳이었다.
“특별수사부 박채이 검사님 만나 뵈러 왔습니다. 이쪽은 대검 중수부 연구관 한치우 검사님이시고요.”
“네, 잠시만요.”
향후에 조직 개편이 있을 테지만 현 시점에는 대전 지검에도 특수부가 존재한다.
박채이 정도의 성적이면 충분히 초임 발령을 수도권으로 받을 수 있었겠지만, 내가 수료한 39기는 무려 1,000명의 연수생이 몰린 기수였다. 그리고 인원이 많은 만큼 서윤호와 나, 그리고 쟁쟁한 연수생들 역시 많이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논산 지청으로 초임 발령을 받았고, 2년 후 대전 지검으로 임지를 옮기게 되었다.
법무부 검찰국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수도권 검찰청에 어영부영한 자리보다 대전 지검 특수부가 어울린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초임 발령을 논산 지청으로 보낸 것 자체가 그녀를 대전 지검 특수부로 보내겠다는 뜻이다.
2년간 실무를 익히게 한 후 올려 보낸 것이니까.
또 앞으로 대전 지검의 규모는 세종시로 인하여 점점 커지고, 조직 역시 확대될 터. 검찰국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검사들 사이에서 대전 지검은 지방으로 보지 않는다.
대전 지검 검사들 중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검사들도 있으니까.
또 중앙 지검, 대검찰청, 법무부. 일명 트라이앵글 뺑뺑이를 돌 수 있는 검사들은 한 기수에 2∼3명일뿐이었다. 그녀의 성적이 훌륭한 건 맞지만 세 손가락 안에는 들지 못하기에 내린 결정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됐건.
연수원에서 본 그녀는 충분히 능력 있는 검사였다.
“네, 지금 올라가십니다.”
입구 청원경찰이 수화기에 대고 말하자 우리는 특수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금방 오셨네요!”
그리고 계단을 오르기도 전 위층에서 허겁지겁 내려오는 박채이.
빠른 그녀의 발걸음이 우리의 방문을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알려 주었다.
“오랜만이네요, 치우 씨.”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수료식 때 보고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
“흠… 아닐 텐데요?”
“네?”
“제가 집까지 모셔다 드린 거 못 들으셨어요?”
“아…….”
그녀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추한 모습을 그녀가 기억하고 있으니.
“이쪽은 정대필 수사관님과 지성한 수사관님, 그리고 박하준 사무관님이세요.”
“아! 모두 잘 오셨어요.”
뒤에 서 있던 세 사람을 소개하자 박채이가 눈웃음을 보이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가 본 검사님들 중에 가장 미인이시네요. 하하.”
“지 선배님 여성의 외모 평가는 성희롱인 거 아시죠?”
“흠… 어떻게 제가 지성한 수사관님 기소라도 할까요?”
“하하하하!”
자연스레 박채이와 사담을 나누는 정대필과 지성한과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히고 있는 박하준이 보였다.
‘뭐야. 그렇게 FM이더니 미인 앞에서는 벌벌 떠는 거야?’
그런 박하준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박채이가 악수를 건네려 다가왔다.
“반가워요, 박하준 사무관님. 박채이 검사라고 해요.”
“네…….”
“어디 아프세요? 손이 엄청 뜨거우세요.”
“아, 아닙니다.”
도저히 무슨 캐릭터인지 감이 안 잡힌다.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 FM 캐릭터인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건지.
대검 사무관으로 발령받았다는 건 고시 성적이 훌륭하다는 뜻이니 엘리트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일단 제 방으로 가실까요?”
이제 곧 알게 되겠지.
박하준에게 있어 이번 사건은 첫 사건이고, 잘해 보고 싶은 마음에 자료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분명 실수를 할 터이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건 그 실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그가 엘리트인 걸 떠나서 진짜 능력은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말이다.
“치우 씨, 고마워요.”
“뭐가요?”
나와 걸음을 맞춰 걷던 박채이가 뒤따라오는 세 사람을 힐끔 돌아보더니 나를 보며 말한다.
“이 사건 맡아 주셔서요. 치우 씨 같은 동기가 있어 이번 사건을 개시할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에요.”
“채이 씨가 제 동기라 이번 사건을 맡은 게 아닙니다. 사건을 맡고 난 후에 채이 씨 사건이란 걸 알게 됐으니까요.”
“아니요.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치우 씨가 중수부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번 사건이 개시될 거라 확신했거든요. 사건을 보시는 안목이 훌륭하니까요.”
“하하,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이렇게 비행기를 태워 주십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박채이의 방.
그녀 역시 논산 지청으로 초임 발령 후 2년이지나 대전 지검에 새로운 방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의 상태를 본다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방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의 책상에 널부러져 있는 서류들과 발 디딜 틈 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건 기록들.
이곳 역시 특수부이니 형사부와 달리 사건 기록에 치일 일이 없을 테지만 그녀의 열정이 방을 어지럽게 만든 것이다.
“일단 사건 브리핑부터 할까요?”
“네, 그러죠.”
끄덕.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했고, 뒤에 있던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형법 제96조 적국을 위하여 전조에 기재한 군용 시설, 기타 물건들을 파괴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오호.
회의실에 앉아 시작되는 그녀의 브리핑.
그녀의 첫마디는 어수선하던 우리들의 시선과 귀를 사로잡았다.
“또한 군형법 제12조 적을 위하여 군용 시설, 또는 그밖의 물건을 파괴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
남북 관계가 어떻든 대한민국은 명백한 휴전 국가이다.
그렇기에 더욱 엄격히 적용되어야 할 법 조항이기도 하다.
“저는 여성이고 군대를 다녀오지는 않았습니다만, 여기 계신 분들은 알거라 생각됩니다.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이며 우리의 소중한 청년들은 국가를 위해 2년간 군대를 가야 합니다. 그런 희생정신에도 불구하고 방산 비리는 끝도 없이 일어나 왔고, 그 피해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국군장병에게 돌아갑니다.”
끄덕끄덕.
회의실 안.
그녀에 말에 모두의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진다.
“대한민국 군형법상 뇌물죄를 명백히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 자체가 없는 상황이며, 보통 군형법 제80조를 적용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인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후…….”
그녀의 말에 자연스레 나온 한숨.
나 역시 법을 잘 알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저는 신영개발의 군납 비리 사건 피의자들을…….”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답답한 내 한숨을 시원하게 바꾸어 주었다.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죄로 기소할 것입니다.”
* * *
“네?!”
그녀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저 검사님… 방산 비리 사건 중 시설파괴이적죄로 기소된 건은 없습니다.”
지성한 수사관이 말했고.
“지 선배 말이 맞습니다. 무죄가 나올 확률이 높고 이중 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정대필 수사관이 말을 하다가 내 눈치를 보았다.
내 성격을 아직 잘 모르는 지성한과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정대필 수사관이기 때문이다.
“흠… 자신 있으세요?”
일단 그녀에게 물었다.
궁금하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작정 말을 내뱉을 사람도 아니고.
“정 수사관님 말씀대로 시설파괴이적죄로 기소할 경우… 사실 기소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방산 비리를 저지른 군인들과 업체들이 중형을 받아야 되는 건 마땅하나 사실파괴이적죄로 기소돼 유죄가 나오는 걸 청와대도 원치 않을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권한.
바로 수사권과 징세권이다.
검찰과 국세청은 결국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니까.
또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며 50만 국군의 총책임자이다.
만약 이 사건을 내와 박채이가 개시한다면 중수부에서 맡게 될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범국민적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청와대에서는 고민을 하겠지.
우리를 밀어줄지, 아니면 덮을지 말이다.
지금 칼을 뽑는 건 정부가 아니라 박채이와 나다.
즉 아무런 대비도 못한 상태에서 청와대에서 임명한 군 장성들과 군 출신 고위 관계자들을 잡아넣겠다고 수사를 개시하는 건데… 글쎄다.
밀어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덮으려고 하는 마음 쪽으로 무게가 실릴 게 눈에 빤히 보였다.
“신영개발 사건의 피의자들은 아시다시피 경합범이며, 그러니 여러 죄목으로 기소할 것입니다. 즉 시설파괴이적죄가 무죄가 나온다고 해도 다른 혐의들이 있단 말이죠.”
“일단 찔러보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런 근거 없이 일단 해 보자라는 식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기소가 된다고 해도 재판부에서 분명 공소장 변경을 권유할 겁니다. 물론 변경 여부는 검사의 재량이지만, 재판부는 결코 담당 검사를 좋게 보지 않을 겁니다.”
사실 기소 자체가 안 될 확률이 높았다.
야망 있는 중수부장이 여론과 국회의원을 등에 업고 있는 스타 검사를 밀어준다 약속했지만 청와대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으니까.
분하지만 그들을 현실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쪽으로 가는 것이 좋을 터였다.
그래도 무죄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박채이를 바라보았다.
일단은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방법보다 그녀의 방법이 더 괜찮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맞아요. 일단 찔러보기식이죠. 저 역시 시설파괴이적죄가 유죄가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 검사님 말씀대로 기소가… 아니, 공소장을 쓰는 것조차 힘들 겁니다.”
“그럼 정답도 모르는데 왜 굳이 문제를 만들려고 하시는 거죠?”
“제 목표는 기소입니다. 방산 비리를 시설파괴이적죄로 기소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려고 하는 겁니다.”
겁을 주겠다?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죄로 기소만 된다면 유무죄를 떠나 방산 비리 죄의 무게를 법원에서 무겁게 다루겠다는 뜻이니까.
물론 공소 기각이 될 확률이 높긴 할 테다.
“과정은 별로지만 목표는 마음에 드네요. 일단 사건 내용부터 자세히 들어보죠.”
“네.”
방산 비리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아마 대부분 방위사업청 소속 공무원들에게서부터 시작이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본다면 방위사업청이 설립된 지 불과 6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았다.
원래는 국방부 안에 있던 조달 본부를 떼어내 방위력 향상과 군수물자 조달을 위한 독립적인 기관을 만든 것이 시초였다.
사실 방위사업청이 설립된 이유 자체가 방산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국방부가 아닌 독립된 기관을 만듦으로서 보다 전문적이고 투명한 군수물자 조달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방부 산하 기관이긴 하지만 독립적인 의사 결정과 자체적인 예산 활용이 가능하다.
다만, 그 기능이 올바르게 활용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뭐가 됐건 국방부의 산하기관이고 서류가 아닌 전화 한 통으로 의사 전달이 가능한 육사와 행시출신 선후배들이 요직에 앉아 있다.
아마 회의보다는 밤에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예산편성이 결정될지도 모르지.
또 기밀이 많은 군부대 특정상 예산 감사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게 번번이 일어나는 방산 비리를 전부 잡아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군납 비리를 생계형 비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모두가 한통속이라고 해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용기 있는 자가 조직의 배신자라 불리며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 말도 안 되는 상황속에서도 말이다.
“제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것은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휘슬블로어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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