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16
“저희도 처음엔 당연히 신현우 신영개발 회장이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했지만, 신 회장님의 건강 상태는 도저히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결재권을 김현철 비서실장이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네, 맞습니다. 신영개발 쪽은 신현우 회장님을 허수아비 삼아 김현철 비서실장이 주도한 걸로 보입니다.”
신현우 회장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당연히 불출석 사유서였다.
고열과 근육통.
당연히 믿지 않았고 주치의를 찾은 우리는 결국 사실을 듣고야 말았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내 손에 진료비 허위 청구 자료가 들려 있기에 가능했지.
그렇게 주치의가 말한 정확한 진단명은 PVS(Persistent vegetative state).
즉 식물인간이었다.
그것도 1년 넘게 말이다.
한마디로 애초에 마일즈 장비 사업에 신현우 회장은 개입할 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또한 군수사 사령관과 참모장은 이번 사건 이전부터 자신들의 측근이 대표로 있는 업체를 군수사 납품 업체로 지정해 예산을 편취했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더니.
몇 천만 원씩 해 먹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지금 수사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마일즈 장비 납품 업체로 지정된 신풍공영과 일신공업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고, 두 업체 대표를 방위사업법 제62조, 형법 제355조 혐의로 기소한 상태입니다.”
“사건 관계자들은 두 업체 대표가 끝이 아닌 걸로 아는데요.”
“네, 맞습니다. 군·검찰과 협조하에 군수사 사령관과 참모장을 소환 조사를 통해 기소할 예정이며, 이성득 국방지원예산과 과장, 간용식 방서청 사업관리 본부장, 이철주 계약관리 본부장 역시 기소 예정입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브리핑.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나는 성실히 답변했다.
“그들 역시 같은 항목으로 기소하실 건가요?”
“그건 제가 아니라 또 다른 담당 검사이신 박채이 검사님이 답변해 주실 겁니다.”
그렇게 브리핑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나는 브리핑의 피날레를 박채이에게 넘겨주었다.
“질문에 답변 드리자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자세한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간용식 사업관리 본부장과 이철주 계약관리 본부장은 일반 이적죄로…….”
팟팟팟.
그녀의 말에 갑자기 터지는 플래시 세례.
어쩌면 이번 브리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지도 모르는 발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건의 주범인 김현철 비서실장, 이성득 과장, 소태준 사령관과 박남용 참모장은…….”
팟팟팟.
그녀의 다음 말은 기자뿐만 아니라 여론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논란거리와 정계를 뒤흔들 만큼 말이다.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죄로 기소할 예정입니다.”
* * *
“하하… 형법 제96조라…….”
브리핑이 끝나고 대전 지검에서 철수한 우리는 중수부장실로 모였다.
입에서 폭탄을 내뱉었으니 모이기보다는 불려온 것에 가까웠지만.
“한 검사, 자네 생각인가?”
힐끔.
곁눈질로 보는 그녀의 눈치.
처음 보는 중수부장의 위압감에 기가 눌렸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긴… 검사에게 있어 중수부장은 검찰총장만큼이나 높은 사람이니까.
“아니요. 저와 박채이 검사의 생각입니다.”
처음 시설파괴이적죄를 말한 사람은 박채이였다.
하지만 당시 나 역시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박채이 입에서 나온 폭탄을 그녀 혼자 떠안게 할 수는 없었다.
“돌연변이가 중수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대전에도 있었네.”
“죄송합니다…….”
“아닐세. 죄송은 무슨. 여론 반응도 좋고 청와대 쪽에서도 수사를 밀어준다니까 한 번 잘해 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박채이.
그런 박채이를 토닥이며 말하는 중수부장이었다.
“하지만 이건 알아 둬. 검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하네. 그리고 무리한 기소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지. 지금이야 여론의 반응이 좋다지만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어.”
“걱정 마십시오, 부장님. 혐의 확실하고 받쳐 줄 증거 역시 충분합니다.”
“그래?”
“네.”
자신감과 의지 역시 충분했다.
“그나저나 박 검사는 서울로 올라와야겠네?”
“일단은 그럴 거 같습니다.”
“검사실은 한 검사랑 같이 쓰면 되고, 독신자 숙소 하나 비워 줄 테니까 거기서 지내.”
“네, 알겠습니다.”
박채이와 그녀의 식구인 수사관 두 명.
거기에 정대필, 지성한, 박하준 수사관, 그리고 나까지. 그렇게 일곱 명이 중수부에 모이게 되었다.
앞으로 조사는 중수부에서 이루어질 확률이 높으며, 이 사건은 중수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있는 힘껏 해 봐. 위쪽은 내가 맡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나가 봐.”
지잉.
중수부장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때,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아이고…….”
그 진동에 중수부장 역시 한숨을 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자네들 덕분에 민정 수석 전화를 매일 받네.”
휙휙.
넋두리를 하며 손짓으로 우리를 내보내는 중수부장.
하긴, 청와대 역시 애가 탈 것이다.
우리가 뱉은 폭탄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터지면 안 될 터이니 말이다.
“누구부터 소환할까요?”
내 방에 모인 일곱.
넓어 보이던 내 방이 좁아졌다.
“흠… 복잡하게 한 명씩 부르지 말고 한 번에 부르죠.”
“네?”
“사람이 일곱이나 되는데 한 명씩 부르면 인력 낭비죠.”
소환해야 할 사람은 일곱 명.
한 번에 소환해도 조사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일곱 명 중 신풍공영과 일신공업 대표 두 명은 그저 꼭두각시일 확률이 높으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군수사 사령관은 이미 체포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한 번에 부르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조사는 피의자를 파악하는 일이지만, 피의자 역시 우리를 파악하려 할 것이다.
특히나 경제사범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담당 검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법정 싸움에 있어 그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한 번에 불러 조사를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니다. 가셔서 데려오세요. 신변 정리할 시간도 주시고요.”
“네?!”
이미 혐의와 증거가 충분했기에 사건은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명목상 소환 조사이지만 그들은 대검을 무사히 나가지 못할 것이다.
조사실에서 그대로 구속될 테니까.
물론 출석요구에 응한다면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여 구속 사유가 성립되지 않지만, 검찰은 긴급체포권을 남발해 영장 없이 피의자를 구치소에 가두는 경우가 많다.
오랜 관행이자 문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문제점을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거부하면…….”
내 말에 수사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진다.
“그 자리에서 체포 영장 청구하세요.”
오히려 거부하는 게 나에게 있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구속의 이유가 생기니까.
“어떻게 해서든 데려오라는 말입니다.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 *
“반갑습니다.”
“참…….”
중수부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못마땅한 표정의 김현철 비서실장이었다.
“안녕하세요. 김현철 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오앤정, 오나라 변호사입니다.”
“예, 앉으시죠.”
그리고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
김현철 비서실장의 변호인단과 군수사 사령관 그리고 참모장이었다.
조사 계획은 이렇다.
나는 김현철 비서실장, 박채이 검사는 군수사 사령관, 박하준 사무관은 참모장을 맡기로 했으며, 나머지 이성득 국방예산지원과 과장과 방위사업청의 두 본부장은 수사관들이 조사를 할 것이다.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피의자에 대한 조사는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에서도 이루어진다.
보통 잡범들의 경우에는 경찰에서 넘어온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김현철 비서실장 같은 경제 사범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성명 김현철. 주민번호…….”
일단 대형 사건의 경우 초동수사부터 검찰이 시작하기 때문에 경찰을 거쳐 오지 않는다. 경찰 조사에서는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법정에서 뒤집어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또 대한민국의 형사사건 절차상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의자나 변호사가 인정하지 않을 경우 증거 채택이 되지 않지만, 검찰에서 작성한 조서는 피의자나 변호사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정에서 인정이 된다.
참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경찰의 강압 수사나 고문에 의한 자백이 법정에서 인정된다면 억울한 피의자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검사가 피해자의 진술을 적은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기재되었고, 피고인의 진술 내용과 일치한다는 신빙성이 있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조 2항.
피의자가 조서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영상 녹화물이나 그 밖의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증명된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또 검사 외에 수사 기관이 작성한 조서는 피의자나 변호인이 인정할 때에만 증거로 채택된다.
물론 이렇게 법으로도 명시되었다.
어떻게 보면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조종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법 조항이기도 하다.
경찰의 조서와 수사를 검찰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고, 수사의 종결은 결국 검사의 판단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마치 경찰의 상급기관인 것처럼 비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검사의 강압 수사는 어떻게 막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땅한 방법이 없다.
특히나 힘없는 평범한 국민이라면 더더욱 더.
그래서 검사가 무소불위에 권력을 휘두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검사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깨끗한 조직이라 하여도 티끌만한 더러운 점이 반드시 있는 법이니까.
“인정신문 끝났으니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검사의 무소불위 권력을 전부 써 보려고 한다.
김현철 비서실장은 흔히 말하는 범털이다.
어떤 검사는 자신이 행할 수 있는 권력을 전부 써서 상대하고, 어떤 검사는 고개를 숙이며 부족한 물욕을 채우기도 하는 존재란 말이다.
“잘 아시다시피 김현철 씨는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 혐의로…….”
“잠시만요, 검사님!”
큰 소리로 내 말을 끊는 김현철의 변호사.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변호사였다.
경력은 얼마 안 되지만 30명의 변호사가 속해 있는 오앤정의 대표변호사이며 굵직한 경제 사건을 담당했고, 꽤 높은 승소율을 기록하는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그녀의 집안 때문이었다.
대법관 출신 아버지와 판사인 남편.
구청장 이모에 국회의원 어머니.
21세기 로열패밀리 같은 그녀의 집안이 그녀를 최고의 변호사로 만든 것이다.
“오 변호사님. 조서는 문을 건네면 답을 하는 겁니다. 검사의 질문은 끊지 마시죠.”
“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니까 그렇죠.”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적 없습니다.”
“시설파괴이적이라뇨? 사법고시 수석에 연수원 수석 하셨다는 분이 법 조항도 제대로 모르세요?”
싸가지 하고는.
그래. 그녀는 분명 연수원 선배이며 나이는 어리지만 법조계 생활 역시 나보다 길었다.
그리고 그녀는 변호사이며 자신의 의뢰인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역시 맞다.
하지만 이 조사실 안에서는 그녀와 나의 관계는 검사와 변호사이며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싸워야 하는 존재이다.
“말씀이 심하시네요. 인신공격을 하셔서 좋을 게 없으실 텐데요.”
“제가 언제 인신공격을 했다고 그러세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싸움.
그녀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녀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그녀 뒤에 붙는 연수원 선배, 법조계 선배라는 꼬리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이 판은 개싸움이 될 테니까.
“변호인이시면 쓸데없이 언성 높이지 마시고 물음에 답하세요.”
“그러니까. 검사님 물음에 오류가 있으니까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까. 시설파괴이적범이라니요. 형법 제96조 시설파괴이적범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잘 알고 있죠. 적국을 위하여 전조에 기재한 군용 시설 또는 기타 물건을 파괴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도대체 저희 피고인이 적국을 위해 어떤 시설을 파괴하고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까? 마치 김현철 씨를 간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간첩이라고는 안 했습니다만.”
“적국을 위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피의자에 혐의에 대해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