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29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서윤호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2년간 한방을 쓰기에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나가서 커피라도?”
“커피 마시러 나가는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본다면, 적어도 등수 한두 개쯤은 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거절한 것이 아니다.
서윤호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일 뿐이었다.
입소 첫날 사법연수원에서 같은 방 사람과 하는 인사치고는 너무 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과 우리를 제외한 모두는 벌써 책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겠네요.”
“자, 공부합시다.”
그렇게 2년간의 연수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 * *
‘죽겠다 진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연수원 생활은 정말 더럽게 지루했다.
공부… 그리고 또 공부… 수업과 시험… 다시 공부…….
지루함밖에 없는 사이클을 다시 돌아야 하다니.
한 번 더 겪어 봤음에도 손발이 덜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으아! 차라리 군대가 낫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명이라도 더 제쳐야 높은 벼슬을 다는 구조로 만들어놨으니, 웃으며 회식을 하고 MT를 가면서도 머릿속에는 내가 이겨야 할 경쟁자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MT에서 술잔을 부딪치지만, 10분이라도 더 빨리 일어나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압박감을 가지고 술을 들이키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의 시험을 지금 막 끝내고 나온 참이었다.
장장 8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시험을 보고 나서야 겨우 물 수 있는 담배.
시험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사담을 나눌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 중 하나였다.
“후∼ 치우 씨는 담배 안 펴요?”
“네, 끊었어요.”
“잉? 치우 씨 스물두 살 아니에요?”
강의실 앞 작은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서윤호가 물었다.
“맞아요.”
“2년만 피고 끊으신 건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끊어.’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엄청난 애연가였다.
신형 담배가 나오면 한 번 씩은 꼭 살 정도로.
‘갑자기 담배 땡기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는 단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지만, 이렇게 계속 담배 생각을 하고 있다가는 서윤호가 입에 물고 있는 기다란 장초를 강탈해 피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히 말을 돌렸다.
“그런데 윤호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생각해 보니 제 나이를 말씀 안 드렸구나. 저야 치우 씨가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 생활하지만, 2년 후 수료식까지 서로의 고향도 모른 채 작별 인사를 고하는 일도 여럿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였다.
“저는 스물아홉입니다. 딱 서른 살까지만 고시 공부하다가 포기하려 했는데, 막판에 턱걸이로 붙어 버렸네요. 하하하.”
입소 후 꽤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서로의 나이를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휴… 그나저나 저도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거예요. 이거라도 안 피고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 다시 무네요.”
“곧 끊게 되실 거예요.”
건강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앞으로 더 피우지 않을까요?”
“하하하, 걱정 마세요. 학기 성적 나오면 스트레스를 풀 시간조차 아까우실 테니.”
웃으며 말하자 서윤호가 담배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휴… 들어가시죠. 5분이나 놀았네요.”
결국 서윤호는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꺼 버렸다.
웃기지 않은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이 안에서는 무엇보다 확실한 금연 동기가 되는 게.
서윤호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으… 수염이 금세 자랐네.”
서윤호의 모습은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법조인들이 흔히 말하는 사법연수원 1년차 형에 처해진 상황이 외모에 그대로 풍겨 나오는 것이다.
공무원 신분으로 품위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염을 깍지만, 그 시간마저 아끼려는 연수생들은 종종 시술을 받기도 했다.
물론 얼굴을 뒤덮고 있는 다크서클과 피로에 눌려 축 처진 걸음걸이는 어쩔 수 없지만.
“졸렵다. 졸려…….”
그런 모습은 서윤호에게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수원 안 어느 곳으로 고개를 돌려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니까.
그 모습을 내 눈이 아니라 카메라에 담아낸다면 잘 만들어진 좀비 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터였다.
더 많은 피로에 감염된 좀비가 흥행하는 그런 영화…….
“치우 씨는 기숙사로 돌아가실 건가요?”
“네.”
“저는 판례 좀 볼 게 있어서 도서관으로 가야 할 것 같네요.”
“네. 이따 방에서 봬요.”
기숙사로 향하는 길.
연수생이 기숙사 방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공부 좀 열심히 해. 그래서 다른 애들 따라갈 수 있겠어?’
눈물의 이유를 읽을 수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을 여기에 와서 들었으니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39도의 육박하는 열을 참지 못해서.
부친의 임종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혹은 남들보다 튼튼하지 못한 위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휴… 이러니 깡패들이 검사 앞에서 벌벌 떨지.”
기소권이라는 무기보다 법복에 쌓여 있는 독함이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이다.
“아, 어제 회식 때 너무 많이 마셨나봐.”
물론 조금 다른 예외도 있었다.
1,000명 중 300등 안팎으로 판·검사 임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700명도 있기 때문이다.
“아, 쟤가 한치우야?”
“그럴걸?”
“부럽다, 부러워∼ 타고난 애들은 못 이긴다니까.”
나를 보며 대놓고 속삭이는 무리들.
어딜 가나 노는 무리는 있기 마련이다.
판·검사와 대형 로펌을 포기한 그런 무리가.
‘그렇다고 다 저렇게 한심하진 않겠지만…….’
다만, 성적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은 노는 수준이 조금 높을 뿐이다.
“부럽긴 너도 수료하자마자 개업해 줄 부모님이 있잖아. 굵직한 사건까지 얹어서 주실 부모님이.”
“지는 변호사 안 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으면서 사시는 왜 봤대?”
1,000등이라 할지라도 수료만 한다면, 변호사 자격증이 나오니까 말이다.
즉, 여기서 논다고 해도 이미 사법시험 합격증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고, 지금까지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한 사회적 위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뭐하나. 결국 끝은 한치우 쟤가 더 높은 곳에 있을 텐데…….”
가난한 집안.
힘없던 어린 시절.
지옥 같은 고시 공부.
이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한다면 사법연수원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게… 진짜 재벌급 아니면 쟤 같은 머리로 태어나는 게 더 낫다니까.”
그리고 사법연수원에 들어오는 순간, 남들보다 높았던 시작점은 초기화되며 모두에게 공평한 새로운 시작점이 생긴다.
누군가의 개입 없이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만 달릴 수 있는 그런 시작점이.
그래서 이곳이 더 치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새끼들이… 이거 들으라고 하는 거 맞지?’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너무 대놓고 뒷담, 아니, 앞담을 까대는 탓에 짜증이 치솟았다.
아무리 한 번 겪어본 연수원 생활이라고 해도 나조차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만큼이나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 있는 상태였다.
“타고난 머리가 아니라 공평한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한 겁니다.”
“뭐?”
“그냥 가세요. 시비 걸지 마시고.”
시비?
도대체 누가 시비를 건다는 거야.
대놓고 뒷담화를 하는 당신들이?
아니면 내가?
모두가 공평한 시작점에 서게 되었지만, 겪어온 상황은 역전되었다.
유리함은 두 다리를 무겁게 하고, 간절함은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튼튼한 운동화가 되었으니.
“연수원 성적 포기했다고 뒷담화까지 하면서 품위는 잃지 마시죠. 그리고 1,000명이나 된다 해도 동기이고, 법조계에 있다면 언젠간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잘 지내봐요.”
내 말을 애써 무시한 채 담배를 피우고 있지만, 귀에 흘러들어 가는 말이 뼈를 때리고 있을 것이다.
“후… 알았으니까 가세요.”
알아들었으면 이제 내 등 뒤에 더는 뒷담화를 하지 않겠지.
남의 대한 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게 우선일 테니까.
녀석들을 뒤로 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바로 그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번쩍번쩍하네. 서초동에 있을 때는…….”
“지검장님?”
현직 판·검사, 그리고 변호사까지 경력이 풍부한 법조삼륜들이 교수로 있는 연수원을 돌아다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인물.
보통 판·검사들은 승진 코스로 연수원 교수로 임명된다.
물론 교수로 있을 때는 재판도 기소도 하지 않는다.
2년간 한 기수를 가르치며 오로지 교수로 있다가 승진과 함께 다시 현직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변호사는 조금 다르다.
변호사 일과 수업을 같이 하니 말이다.
쉽게 말하면 정교수와 전임 강사의 차이라고나 할까.
뭐가 됐건 그러한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법조삼륜들조차 고개를 숙일 사람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원장님이랑 커피도 한잔할 겸 지금은 여기 교수로 있는 후배들도 볼 겸해서 말이다. 그리고 네게 입혀 줄 법복 사이즈도 재려고 왔지”
지난 시간 변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서부가 아니라 이제는 서울 전체의 기소권을 손에 쥐게 된 강철호 중앙 지검장.
“다른 연수생들은 몰라도 치우 너는 커피 한잔 할 여유는 있겠지?”
“네.”
그와의 동행이 모든 연수생들의 부러움을 사게 했다.
‘불리함은 개뿔.’
뒷담화를 했던 녀석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속마음까지도.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 * *
연수원 수석 출신이 서울 중앙 지검장이 되어 다시 연수원을 찾았다.
“시설이 많이 좋아졌더구나. 싸움터만 좋아졌지 피 터지는 경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겠지만.”
생각해 보니 자신이 거두게 될 내 기를 살려 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지금의 원장님이 연수원 때 교수셨거든. 후배들도 여럿 있고.”
그럴싸한 핑계를 대면서.
“무엇보다 치우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군대에서 보고 꽤 오랫동안 못 보지 않았느냐.”
아무리 깊은 인연이 있다고 하지만, 강철호 지검장이 일개 연수생을 찾아온 이유는 꽤나 많았다.
성훈이를 납치한 무리의 조무래기에 불과했지만, 내가 선물한 목줄로 검찰총장을 쥐고 흔들고 있으며 사실상 검찰을 통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곧 임기가 끝나는 검찰총장의 빈자리에 앉게 될 것이었다.
“이제 진짜 대검으로 이사 가시겠네요.”
“사실 그 이삿짐에 네 빚도 실으려 해서 이렇게 온 건데 말이다… 문제는 특혜를 줘도 티가 안 날만큼 성적이 뛰어나니 어떻게 빚을 지워야 할지 모르겠더구나.”
“나중에 주시면 됩니다. 언젠가 챙겨 달라 말씀 올릴 테니.”
“넌 참 이상한 아이야. 아니지 이제 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연수생이니.”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알 수 있었다.
눈빛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기억 속 열여덟 살 한치우가 아니니 말이다.
“치우 너는 마약 같구나. 한 번 경험하면 쉽게 끊을 수 없는 그런 마약.”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래. 3학기 시험 끝나면 시보 시작하지?”
“네.”
“시보 생활은 중앙 지검으로 하지. 이건 특혜가 아니라 너를 가까이 두고 싶은 내 욕심이니까.”
몇 번의 미소와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비워진 커피 잔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철호 지검장이었다.
“연수원 무사히 수료하고 다시 보지. 그나저나 네가 연수원 수석 타이틀까지 들고 오면 부담돼서 어쩌나. 하하하.”
어쩌긴, 좋으면서.
이내 공사다망하신 강철호 지검장이 자리를 떴고, 나는 그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빈 커피 잔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동안 여러 일을 통해 강철호 지검장에게 받은 도움을 어느 정도 비워 냈고, 다시 빈 잔을 만들 수 있었다.
‘제가 빈 잔에 뭘 채워 달라 할지 알고.’
빈 잔을 보며 생각했다.
연수원 성적이 높을수록 내가 강철호 지검장에게 채울 잔의 크기가 조금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것뿐이겠는가?
잔을 키울 일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보를 나간 후의 일.
“후… 일단은 커피부터 채워 넣자.”
졸려 죽겠으니까.
* * *
“와… 치우 씨 인맥이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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