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69
눈치는 없지만 서윤호는 분명 사람을 끌어당기게 하는 매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검사로서의 사명감.
대포차 업자들을 상대하던 카리스마.
나를 위해 흘려주던 눈물.
사실 도움을 받은 쪽은 서윤호가 아니라 나이다.
“치우 같은 완벽한 검사를 자네 편으로 만들었다는 건 자네의 능력도 그만큼 된다는 말일세.”
“하하하하! 하긴 치우도 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서윤호는 왠지 모르게 어깨가 올라갔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담배 한 개비의 감사 인사.
그 인사로 인하여 두 사람의 마음이 요동쳤다.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리고 앞으로 이남윤에게 배워야 할 게 참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꽤 긴 얘기가 될 것 같은데 담배 하나 피워도 되겠는가?”
“편히 태우십시오, 차장님.”
드르륵!
부싯돌 소리와 함께 방 안에 퍼지는 담배 연기.
이남윤의 몸속에서 나온 그 담배 연기가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 주었다.
* * *
유대명과 이남윤.
두 사람의 발령지가 확정되던 날.
분노가 섞여 거친 숨을 몰아쉬던 이남윤이 법무부를 찾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중앙 지검 이남윤 검사입니다. 국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약속하셨나요?”
“아니요.”
법무부 검찰국장실.
자글자글한 주름도 하얗게 센 흰머리도 보이지 않는 이남윤.
“잠시만요…….”
그런 이남윤을 바라보던 검찰국장 비서가 조용히 인터폰을 들었다.
“국장님, 중앙 지검 이남윤 검사가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실까요?”
힐끔.
아마 부정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인터폰을 들고 있던 비서의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이 이남윤에게 향했으니까 말이다.
“죄송하지만,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시라고…….”
“점심시간 내내 국장실 앞에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분들은 하나도 없었고요.”
“그게…….”
똑똑.
“중앙 지검 특수부 이남윤 검사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저기요!”
앉아 있던 비서가 일어나 이남윤을 붙잡으려 했지만, 국장실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조금 빨랐다 하더라도 소용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남윤을 말로는 막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검사를 청원 경찰들이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또 가녀린 여자인 비서가 질주하는 거친 남자를 막을 수도 없었을 테고.
“죄송합니다, 국장님…….”
그러니 그녀로서는 이남윤을 뒤 따라 들어와 죄송하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휙휙.
“됐네. 자네도 어쩔 수 없었겠지.”
검찰국장의 손짓으로 문이 닫히고 국장실 안 공기는 무거워졌다.
“잘한다. 칭찬 좀 해 주었거니 위아래도 없는 건가? 어디 감히 일개 평검사가 검찰국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명패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던 박모현.
그가 이남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노크했고, 들어온다 말씀도 드렸습니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내가 동의했나? 아니면 지금 나한테 통보했다고 말하는 건가?”
검찰국장.
검찰의 빅4.
대검 중수부장과 공안 부장 그리고 서울 중앙 지검장과 함께 검찰 내부의 핵심 요직 중 하나.
법무부 안에서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계획하고, 핵심 부서들에게 수사를 지휘 감독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자리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어느 조직이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권력이 막강할 것이다.
목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만나 달라고 수도 없이 연락드렸습니다. 안 받으셔서 이렇게 찾아왔고요. 저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걸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패기 때문인지 아니면 분노에 이성을 상실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최종 결정은 법무부 장관이 제청해 청와대에서 하겠지만, 검찰국장이 인사와 예산의 뼈대를 만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또 굳이 트집을 잡을 이유가 없다면 법무부와 청와대의 감리는 대부분 통과할 것이다.
“왜 저는 대검이고, 유대명 검사는 영월 지청으로 가는 겁니까? 기소 실적만 따지면 저보다 유대명 검사가 훨씬 좋지 않습니까!”
그게 이남윤이 검찰국장을 찾아온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 미쳐 날뛰는 놈 상대하고 싶지는 않네만 그만 개기지? 나도 인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쿵.
“말씀해 주십시오, 국장님!”
“아이고… 미치겠네…….”
이남윤은 여전히 큰소리를 침에도 검찰국장이 유해진 이유?
동기의 마음이 얼마나 억울한지 알고 있는 이남윤.
그리고 그런 동기를 생각하는 마음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나도 자네랑 유대명 검사 둘 다 대검으로 올리고 싶었네. 그런데 청와대에서 유대명 검사 이름을 빼 버리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까 왜 대명이 이름이 빠진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따질 거면 청와대 가서 따지든가. 아니면…….”
무언가 대책을 말해 줄 것 같이 말끝을 흐리는 검찰국장.
이남윤 역시 기대에 찬 눈빛으로 검찰국장을 바라보았다.
하나, 감찰국장의 다음 말은 이남윤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는 말이었다.
“자네가 영월 지청으로 가든지.”
* * *
무릎을 꿇은 이남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두 사람 다 대검으로는 못 보내도 자네 이름을 유대명으로 바꿀 힘은 있네.”
“그건…….”
“휴… 일단 앉지. 내 앞에서 석고대죄한다고 자네가 원하는 걸 이루어 줄 수는 없으니까.”
집무 테이블에서 꼼짝 않고 말하던 검찰국장이 손님용 소파로 향했고 이남윤 역시 무릎을 꿇고 있던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나도 안타깝네. 자네와 유대명 검사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이거든.”
이남윤과 유대명 두 초임 검사가 이루어 낸 실적은 검찰 역사를 뒤바꿀 만큼 대단했다.
검사의 실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기소를 얼마만큼 했냐는 것이다.
그게 곧 얼마나 많은 범법자를 재판장에 세웠냐는 증거가 되니까.
대한민국에서 검사가 기소한 형사사건이 무죄가 나올 확률?
0.5프로가 채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검사는 혐의 입증을 확실히 할 수 없는 사건에는 기소를 하지 않는다.
실적을 쌓으려다 불안한 기소를 해 무죄가 나온다면 오히려 독이 되니까.
또 억울한 사람을 기소했다가는 몇 십 년간 피땀 흘려 입은 법복을 벗어야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위축만 되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범법자를 재판장에 세운 실적이 없다면 곧 승진도 없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은 너무 걱정할 것이 없었다.
소수의 검사가 썩은 거지 대다수의 검사는 국민을 위해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게 본인의 승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검사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검사가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72%… 내 20년 검사 생활 동안 처음 듣는 기소율일세. 자네들이 기록한 기소율이 말이야.”
모든 형사사건에서 검사의 기소율 약 40%.
두 사람이 높은 기소율을 기록할 수 있던 것은 별 다른 능력 때문이 아니다.
노력.
발령 2년 차 미만 초임 검사들 중 기소율 1, 2위를 차지한 유대명과 이남윤.
거기에 기소 건 수는 전체 검사들 중 1, 2위를 다투었다.
입증이 안 되는 사건은 발로 뛰며 증거를 찾았고, 경찰에서 넘어와 높이 쌓여 있던 사건 기록들은 빠르게 낮아졌다.
또 두 사람의 검사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된 사건 기록.
그것이 두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2년간 자네들을 지켜봤고 어느 한쪽이 부족하다 판단할 수 없었네.”
검찰국장뿐만 아니라 주인이 바뀐 지 얼마 안 된 청와대 역시 그런 두 사람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투 탑으로 갈지.
아니면 원 탑으로 갈지.
두 사람 모두 키워볼만한 가치가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장관님은 한 사람을 선택하라 지시했네.”
고심 끝에 내린 청와대의 결정은 원 탑이었다.
“수정 테이프를 들고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했지. 하지만 두 사람 이름 모두 빛나고 있는 걸 어쩌겠는가.”
검찰국장 역시 청와대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지 못했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관님을 거치지 않고 두 사람의 이름이 담긴 쪽지를 민정 수석실로 보냈지.”
검찰국장 역시 검사였고, 정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고 푸시를 해 준다면 두 사람 모두 훌륭한 검사가 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볼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이야 사법연수생 1,000명 시대를 맞이했지만, 이남윤의 연수원 동기는 불과 300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 검사가 된 인원은 겨우 37명.
그렇기에 검사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이남윤과 유대명처럼 능력이 출중한 검사는 청와대에서 관리할 정도로 아꼈을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답변은 번복되지 않았네. 그리고 나는 청와대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말이야. 자네도 알지 않는가. 우리는 행정부 소속이고, 행정부의 수장이 내린 결정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다만, 필요한 검사는 한 명뿐이었을 것이다.
한 명만 선택한다고 다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원망은 하지 말게. 또 나한테 때 쓴다고 바꿀 수 있는 건 유대명 검사 대신 자네가 영월 지청으로 가는 것밖에 없으니 그것도 알아두고.”
“둘 중에 제가 대검으로 가게 된 이유는 뭡니까?”
“딱히 이유는 없어. 한국대 출신에 VIP와 동향인 자네가 더 낫다고 판단한 거지.”
“그런데 왜 하필 영월 지청입니까. 저와 대명이 모두 훌륭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굳이 뛰어난 한 명을 뽑아 대검으로 보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다른 한 명을 바닷가로 보내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최선과 차선을 다투는 두 사람을 굳이 극과 극으로 떨어트려 놓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둘 중 한 명이 맡게 될 역할 때문이지.”
“무슨 역할이요?”
“레임덕을 막고 무사히 정권 이양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역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정권에 필요한 패기 있고 능력 있는 단 한 명의 검사.
그게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아야 할 이유였다.
“대검 한 번 찍고 법무부 거쳐서 다시 중앙 지검으로 돌아오면 딱 4년이야. 그 말은 지금 입주한 청와대 주인의 5년짜리 전세가 끝나간다는 말이고.”
“설마… 지금 저를 키워서 선거 전에 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레임덕을 막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사냥개로 쓰겠다는 말일세.”
사냥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 청와대 입장은 조금 달랐다.
두 개의 입보다는 하나의 입이 더 가벼울 거라는 것과, 두 개의 목줄보다는 하나의 목줄이 더 잡고 있기 쉽다는 것.
그리고 내가 쥐고 있는 목줄이 아니라면 서울에 없는 게 후환이 덜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남윤보다 더 능력 있는 검사가 상대 진영에게 흡수된다면 골치가 많이 아플 테니까 말이다.
“정권의 사냥개가 되려고 검사가 된 게 아닙니다. 저도 그냥 지방으로 보내 주십시오.”
“잘 들어, 이남윤 검사. 검사에게 있어 정권의 사냥개가 되는 건 기회야.”
때 쓰는 아이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듯 말하는 검찰국장이었다.
“자네 연수원 22기지?”
“네…….”
“임관한 37명 중에 검사장이 될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나?”
검사의 꽃.
검사라면 누구나 검사장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한 지검의 장이자, 그 지역의 모든 사건과 검사들을 지휘 감독하는 자리.
앉아 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
얼마나 강력한 권한을 손에 쥐고 있는지.
“저는 누군가의 사냥개가 되어서 자리를 얻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검찰국장이 내지른 고함이 한동안 침묵을 흐르게 했다.
“어떻게 자리를 얻을 텐가. 실력과 노력? 아니면 때 묻지 않은 사명감? 자네 아직도 낭만 속에 살고 있을 정도로 멍청한가? 조직에 있어 자리는 누군가가 정해 주는 거야.”
“…….”
“지금이야 모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연수원 성적으로 2년 동안 중앙 지검을 경험했으니. 그런데 말이야. 청와대 명 거절하고 시골 내려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침묵이 끝나고 검찰국장의 입은 열렸지만, 이남윤은 아직 입을 열지 못했다.
검찰국장의 말에 현실적으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수박 서리한 좀도둑놈들이나 상대하는 거야. 기업 수사? 전국구 조폭? 뇌물을 받아먹은 정치인? 수사는커녕 볼 수도 없겠지.”
“제 힘으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