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띠링. 띠링. 띠링!
카르페는 쉼 없이 울려 퍼지는 알림음이 감미로운 음악보다 더 달콤하다고 느껴졌다.
무사히 바람잡이 임무를 수행한 카르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상점 밖으로 빠져나왔다.
‘크으. 살면서 세금이란 단어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긴 했었죠.’
먼 옛날, 대한민국에 온라인 RPG가 범람했던 90년대와 00년대.
그 격동의 시기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게임 중 다른 그 어떤 게임보다도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게임이 하나 있었다.
혈맹 온라인.
유명 만화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게임은 그야말로 RPG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탄탄한 세계관. 드넓은 필드. 개성 넘치는 4개의 직업. 자유로운 PVP 등.
성공 요소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게임을 한국 최고의 RPG로 올려 준 요소는 다름 아닌 공성전이었다.
혈맹 온라인의 세계에는 여러 개의 성이 있었고, 그 성을 차지하기 위해 모든 길드가 혈안이 되어 전쟁에 참여했다.
성을 차지함으로써 얻는 메리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
성을 차지한 길드 마스터는 ‘성주’라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고 그 대표적인 권력 중 하나가 바로 관할 지역에서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게임은 아이템이랑 골드가 현금화하기 편한 게임이라서 성주가 진짜 건물주라는 소리도 있었죠.’
-나도 들어 본 거 같네. 인터넷 기사였나? 성주 되면 세금으로만 한 달에 500만 원은 번다고 본 거 같은데.
그 한 달 500만 원도 2000년대 초반에나 그렇게 번다는 소리였다.
물가 상승 폭을 고려한다면 지금은 훨씬 더 높은 금액일 터.
‘와. 진짜 그런 건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일은 모르는 거네요.’
고작 한국을 대상으로만 서비스했던 게임에서 월 500만 원!
그렇다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체 불가의 갓흥겜에서는?
‘설마 하루에 막 30만 원씩 벌리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헉. 상상만 해도 심장 RPM 급속도로 상승 중.’
-……거 쓸데없이 민감한 심장이네. 그런데 네 경제 감각은 왜 이리 둔하냐?
‘네? 뭐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천마는 ‘뭐 이렇게 소소한 놈이 다 있을까?’라는 눈빛으로 카르페를 쳐다봤으나 카르페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루에 30? 겨우?
한편으론 이해도 갔다. 불과 몇 개월까지만 해도 최저 시급 받는 알바생이었으니까.
하루에 몇십, 몇백씩 벌리는 삶 같은 게 잘 상상이 안 되긴 할 것이다.
-새삼스럽기는. 지금까지 천만 원 넘는 아이템도 몇 번 득했잖아.
‘에이. 그거랑은 다른 거죠. 득템은 꾸준한 게 아니잖아. 운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 고정 수입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데.’
-뭐, 그렇기는 하지. 고정적으로 뭔가 들어온다는 게 심리적으로 상당한 안정감을 주긴 하니까.
‘제 말이 그거예요. 으음. 그런데 이거 살펴보니까 막 골드가 쏟아지는 구조는 아니구나.’
설치 가능한 시설을 이것저것 살펴보던 카르페는 애매하다는 듯 눈가를 좁혔다.
일단, 시설을 설치할 때 골드가 들어간다.
방금 건설했던 마도 상점은 첫 설치 이벤트로 공짜로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냥 설치하려면 무려 1만 골드를 지불해야 했다.
게다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비가 별도로 존재했다.
‘끄응. 유지비라니. 무인 상점이라 인건비도 안 들어갈 텐데.’
-인건비는 없다 쳐도 물건 공급 값은 있어야지. 물약이 땅에서 펑펑 솟아나기라도 하냐?
‘게임인데 좀 그럴 수도 있지!’
-축하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1일 1노양심 발언 달성했네. 아무튼, 걱정할 거 없어. 장기적으로 보면 무조건 이득이니까.
게다가 이제 9층이다.
19층, 29층, 39층…… 쭉쭉 탑을 공략해 나가다 보면 수입이 두 배, 세 배, 네 배가 될 터!
-특히 지금 시점에서는 19층이 유동인구가 제일 많지. 아마 전체 탑 내부 유저의 절반 이상이 거기 있을걸?
‘하긴. 그렇겠네요. 원래 아이언, 브론즈보다는 실버, 골드 쪽 인구가 많은 법이니까.’
그 어떤 게임이든 간에 완전 낮은 티어보다는 어중간한 티어에 사람이 몰려 있는 법이었다.
‘좋아. 19층에 랜드마크를 짓는 걸 목표로 갑니다!’
단순히 상점뿐만 아니라 지을 수 있는 모든 시설을 건설한다.
대충 살펴본 바로는 상점, 회복의 샘 외에도 플레이어에게 유용한 버프를 주는 구조물 같은 것도 여럿 있었다.
그런 특수한 시설물들은 전 층을 통틀어서 하나 내지는 두 개밖에 건설을 못 했기에 유동 인구가 가장 확실한 곳에 입점해야 했다.
‘일단 앞으로 할 일은 확실하네요. 최대한 층 뚫으면서 권한 획득하는 거.’
-끝까지 뚫을 순 없겠지만, 할 수 있는 곳까지는 뚫는 게 좋겠지. 아, 건물주도 건물주지만 유물 퀘스트도 확실히 하고. 주객전도가 되면 안 되니까.
‘그야. 물론이죠.’
카르페는 북적이는 상점을 마지막으로 한번 바라본 후, 다시 드렛슈가 있던 지하 1층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클리어 했던 터라 8층에는 그 어떤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굳이 걸어서 내려가야 하냐? 뭐, 엘리베이터 같은 거 없어?
“잠시만요. 한번 찾아볼게요. 아, 있다! 관리자 전용 엘리베이…… 켁. 5,000골드? 그냥 걸어 다녀!”
물론, 공략층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설치해야겠지만 아직 10층 정도는 걸어 다닐만 했다.
8층은 9층과 달리 몬스터가 등장하는 지역이었기에 설치 가능 시설이 달랐다.
바닥이 꺼지거나, 줄을 건드리면 화살이 날아온다거나 하는 고전적인 트랩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한 가지 트랩이 카르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갈취의 덫] [트랩에 걸린 대상에게 일정 피해를 입히며 HP와 MP를 흡수합니다. 흡수한 HP와 MP는 저장되어 일정 이상 저장되면 영약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낮은 확률로 ‘체력의 엘릭서’, ‘마력의 엘릭서’가 탄생하기도 합니다.]“이건 무조건 짓는다.”
엘릭서는 스텟을 영구적으로 상승시켜주는 최상급 비약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물량이 없어서 구할 수 없는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귀한 물건을 트랩 설치로 얻을 수 있다니?
설치 비용이 더럽게 비싸고 지금은 권한이 없어서 설치할 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무조건 설치해야 할 트랩이었다.
“요새 해금이 일을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최초의 10성 스킬이라더니 조금 섭섭해. 이런 건 좀 풀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
-…….
“얼굴로 욕하지 말고 말로 하십쇼. 말로.”
그렇게 카르페가 천마와 투닥거리며 지하 1층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삐삐삐-!
“어? 말도 안 돼! 벌써 시간이 다 됐다고?”
-흠. 하긴 그쯤 됐겠군. 정신없이 하긴 했으니까.
안타깝게도 하루에 할당된 접속 시간을 전부 소모하고 만 것이다.
퀘스트는 내일로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갓겜은 갓겜이구나. 오늘도 10시간이 순삭되는 거 보니.”
-괜히 전 세계가 열광하는 게 아니지. 이제 세상은 점점 더 라세 위주로 돌아갈 거야.
“쓰읍. 다른 건 다 해금 안 되도 되니까 이 접속 시간제한만 좀 해금되면 좋겠네요. 해금! 해금! 일해라 해금!”
-……그건 해금이 아니라 해킹의 영역 아니냐?
“아쉬워서 해 본 소리죠. 아무튼 그럼 내일 다시 진행할게요. 쉬십셔.”
-오냐. 너도 밥 잘 챙겨 먹고 풀 컨디션 항상 유지해라.
카르페는 곧 접속을 종료했고, 동시에 천마 역시 룸 공간 안의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후우. 관리자라. 나쁘지 않군.
천마는 자신의 방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카르페가 라세에 애착을 두게 될 요소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으니까.
-뭐, 이제는 푹 빠진 거 같아서 걱정할 필요 없을 거 같긴 한데…….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즐겜러라는 족속들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간들이라 게임에 미쳐 있다가도 금세 변심할 수도 있는 법.
-그러니까 네가 더 잘해야 하는 거다. 알겠어?
“뀨뀨뀨!”
-저놈이 쿨한 척할 때도 있긴 한데 잔정이 많은 타입이야. 네가 딱 붙어서 애교도 많이 부려 주고, 아이템도 물어주고 하면 정 때문에라도 못 접겠지.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최대한 정을 많이 붙여. 그게 우리의 공동목표이자 지상과제인 거야.
“뀨뀨뀻!”
묵향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천마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래. 영특하군. 천마신교의 소교주다운 지성…… 아니, 근데 넌 도대체 왜 계속 내 방으로 귀환하는 거냐? 네 방도 따로 있잖아?
“뀨우웃?”
-당최 뭐라는 건지…….”
“군사님. 향은 군사님의 방이 더 재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넌 또 왜 내 방에 있는 건데?”
“실례했습니다. 향과 똑같은 이유입니다.”
-에휴.
천마의 바로 옆에서 티나가 흥미롭다는 듯 천마와 묵향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 방이 무슨 놀이터냐?
룸이 업그레이드되면서 권속들이 머무는 공간 역시 대폭 확장되었다.
천마의 방은 처음과 비교하면 배 이상 넓어져 10명 이상이 들어와도 널널한 크기를 자랑했으며, 또한 생전 사용하던 물품 또한 대폭 늘어났다.
그게 문제였다.
-끄응. 물품이 늘어난 건 좋긴 한데.
천마는 생전 책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저택 내부에 개인 서재를 따로 둘 정도로 다량의 서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룸이 확장되면서 천마의 방 한켠에 대형 책장이 구현된 것이다. 물론, 그 책장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꽉 들어차 있었다.
별 내용이 없는 잡지부터 시작해서 전공 서적까지.
티나의 목적은 바로 이 책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세계의 지식이 담긴 책은 최고의 유희 거리였으니까.
“그럼 오늘도 실례하겠습니다. 군사님.”
-……맘대로 해라.
책을 읽고 싶다는 애를 쫓아내기도 뭐 해서 허락한 것이 이제는 푹 빠져서 저러다 책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티나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빼낸 후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사락. 사라락.
금발을 길게 흩뜨린 인형 같은 소녀가 조용히 책을 넘기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읽는 책이 조금만 더 그럴듯했다면 말이지. 왜 하필 만화책이냐?
“그림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재밌으니까요.”
그녀는 최근 소년 배틀 만화에 꽂혀 있어서 그것만 주구장창 읽어댔다.
인상 깊은 연출이나 재밌는 내용이 있으면 ‘흐음! 흠!’ 감탄을 터뜨리는 것이…… 이게 진짜 인형인가 싶을 정도.
“이 참백도라는 무기는 참 멋지군요. 지난번에 읽었던 ‘닌자’라는 어쎄신이 등장하는 만화도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이 ‘사신’이 등장하는 만화도 훌륭합니다.”
-…….
카르페는 떠나면서 ‘쉬십셔~’라고 말했지만 그건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천마는 카르페가 떠나고 난 이후가 진짜 일과의 시작이었다.
벌컥!
“군사님. 나 놀러 왔어.”
-망할. 놀이터 맞네.
“응. 여기 신기한 게 많으니까 좋아.”
미라쥬가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잠시 후. 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맘대로 하십쇼. 저도 이제 포기했으니.
뒤이어 새로 입주하게 된 길리안이 방 안으로 들어와 서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책 제목은 ‘깔깔 유우머 모음집’이었다.
-…….
천마는 해탈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나아가 전국의 어머니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보냈다.
“군사님. 이건 이상합니다. 검을 왜 이런 식으로 파지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잡으면 검과 부딪히는 순간 미끄러질 위험이 있습니다.”
첫째 딸은 사춘기인지 반항기인지, 만화책을 무한히 탐독했으며.
“향! 거기 서!”
“뀨뀨뀨!”
아들인지 딸인지 모를 중성의 막내는 반려동물과 함께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아버님은 안방에 드러누워 커피를 타 달라고 하고 있었다.
-이익! 다 나가! 다 나가라고!
천마가 울부짖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순 없었다.
꼭 카르페를 엔딩으로 이끌어 이 회귀를 끝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