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트레져가 분노를 토해냈고, 천마는 감탄을 토해냈다.
-이야. 트롤짓도 이쯤 되니까 감탄이 나오네. 어째 가는 곳마다 이러냐?
“……주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
카르페는 한숨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또 드렛슈야?
엘프의 숲에서도 그렇고, 라마르크의 지하 미궁에서도 그렇고. 뭔 놈의 인간이 가는 곳마다 원한을 산단 말인가?
사건을 부르는 인간이란 인식은 있었지만 설마 자신이 세운 탑 내부에서도 원한을 샀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괜시리 후회가 몰려왔다.
드렛슈를 그렇게 곱게 보내지 말걸.
적어도 또 어디에 똥을 싸질러 놨는지는 들었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의 준비라도 할 것 아닌가.
드렛슈가 사라지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도왕의 이름을 이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널 가만히 두지 않을 놈들이 있으니까.’
그게 이 뜻이었나?
‘가만두지 않을 놈들’이라는 게 배후령들을 일컫는 게 아니라 트레져 같은 존재들을 말하는 거였나고!
흉흉한 기세를 뿌리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그게 맞는 거 같기도 했다.
“왜 가만히 서 있어? 그 두꺼운 낯짝을 들이밀었으면 뭐라도 지껄여야…… 음?”
한참을 성토하던 트레져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멈췄다.
“뭐야? 드렛슈가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런 역겨운 마력 패턴을 가지고 있지? 설령 그 자식이라고 해도 이렇게 동일한 패턴을 가질 순 없…… 아.”
트레져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드렛슈 놈의 후계자인가?”
“정확해.”
“게다가 이 탑에 대한 권리도 이어받았군. 그렇다는 건 그놈이 죽었다는 뜻인데…….”
트레져는 처음보다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천년만년 살듯이 떠벌리더니 시시한 결말이구나. 그래. 그놈의 후예가 여기엔 무슨 볼일이지?”
“탑의 권리를 이어받고 보니까 이 탑에 서브 관리자들이 있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얼굴이나 익히러 왔지.”
명색이 사장인데 새로 부임했으면 실무진과 인사를 나눠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얼굴을 익히러 왔다? 이 나에게? 푸흐흐. 이거 재밌는 놈이 들어왔군.”
“겸사겸사 탑의 주인으로서 인정도 받으면 더 좋고.”
“흐흐흐. 당돌한 점은 드렛슈 놈을 꼭 닮았구나. 그래. 놈의 후예라면 응당 그래야지. 개인적으로 그런 태도가 싫지는 않다만…….”
트레져는 왕좌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카르페를 향해 무시무시한 압력이 쏟아졌다.
[보물 고블린 킹 – 트레져의 피어에 노출되었습니다.] [트레져의 레벨보다 낮은 대상은 피어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전 능력치가 20% 감소됩니다.] [레벨의 차이가 200 이상입니다. 피어가 강화되어 적용됩니다. 플레이어는 200초 뒤에 사망합니다.]“그것과 네놈을 인정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내게 인정을 받고 싶다면 스스로 증명하라.”
드렛슈와 맹약을 맺고 탑에서 생활하게 된 세월이 어언 800년.
이제는 이 탑을 제작한 드렛슈 본인보다도 탑에 더 애착이 생긴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등장한 낙하산을 탑의 주인으로 인정하라고? 800년 동안 방치한 주제에?
트레져는 이런 황당한 상황을 순순히 인정할 만큼 너그러운 성격이 아니었다.
“이대로 죽기 싫다면 돌아가라. 넌 아직 내게 도전할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확실히 설명대로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네. 다짜고짜 즉사기라니.”
카르페는 알림을 보는 순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서브 관리자의 인정’이라는 특수 퀘스트는 사실 레벨 제한이 있는 퀘스트라는 걸 말이다.
퀘스트 설명 자체에는 레벨 제한이 없었지만, 트레져와 200레벨 이상 차이가 나면 즉사하는 트랩이 걸려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이 퀘스트를 정석대로 시작하려면 레벨을 훨씬 더 올려서 차이를 좁힌 다음에야 가능한 퀘스트였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석대로일 때의 이야기지만.”
띠링.
[해금이 발동합니다.] [플레이어에게 걸린 모든 해로운 효과를 해제합니다.] [트레져의 피어 해제 성공!]카르페는 그 누구보다도 비정석적인 길을 걷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트레져 또한 자신의 피어가 막혔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카르페에게 물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이지? 네 녀석의 레벨로는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할 텐데?”
“어쩌다 보니?”
“흥. 아직 병아리라도 드렛슈의 후예라 이건가? 숨겨 둔 한 수가 있는 모양이구나.”
‘해금’은 마도왕과 하등 관련 없는 카르페의 고유 능력이었지만, 딱히 오해를 풀어줄 필요도 없었기에 카르페는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좋다. 시험을 치를 자격을 주도록 하지. 시험에 통과한다면 너를 이 탑의 정당한 주인으로서 인정하도록 하마.”
“시험? 뭘 하면 되지?”
“간단하다. 이 몸을 이기면 된다.”
역시 그런가.
처음 퀘스트에서 ‘인정’을 받으라는 소리에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예상은 했었는데 정말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퀘스트였던 것인가.
-이건 불가능이군. 니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200렙 차는 죽어도 못 이겨. 아니, 200렙 차이도 최소로 잡은 거지.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차이 날 수도 있다.
천마의 말대로다.
길리안이 대장군으로 있을 때보다도 더 강한 상대.
카르페로서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전투였다.
신화 급 아이템이 보상으로 걸려 있는 만큼, 그야말로 미친 난이도였다.
“그렇긴 한데…… 하는 데까진 해 보고요.”
카르페가 무모한 도전을 즐기는 즐겜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능과 불가능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분별력이 없진 않았다.
분명 죽겠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패턴을 확인한다는 마음으로 전투에 임한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패턴을 알아낸다.
카르페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먹을 말아 쥐는 그 순간, 트레져가 물었다.
“너, 뭐 하냐?”
“응? 뭐 하냐니? 당연히 싸울 준비…….”
“싸워? 너와 내가? 푸흐흐. 근 800년 동안 들은 소리 중 가장 웃긴 소리로구나. 뭐, 원한다면 그런 방식으로 도전해도 좋다. 실제로 드렛슈는 전투로 나를 꺾었지. 하지만 지금의 너에게는 절대로 추천하지 못하겠군.”
아마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끝날 게 틀림없었다.
그런 재미없는 결말은 트레져로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전투가 아니면?”
“보물 고블린에게는 보물 고블린만의 방식이 있다. 여봐라!”
트레져가 소리치자 보물 고블린 30마리가 우르르 나타났다.
“그것을 준비해라! 마도왕의 후예와 성전(聖戰)을 벌일 것이다!”
“우와와! 성전! 성전!”
“성전이다!”
30마리의 고블린은 제각각 환호를 내지르며 어딘가로 뛰어갔다.
“드렛슈의 후예여. 영광으로 알아라. 너는 인간 최초로 보물 고블린의 신 ‘케록’ 앞에서 성전을 벌이는 전사가 된 것이다.”
“성전이라고? 싸우는 게 아니라면서?”
“드렛슈만큼이나 호전적인 놈이로구나. 꼭 치고받아야만 전투인가? 곧 알게 될 것이니 잠자코 보아라.”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30마리의 고블린이 돌아왔다.
하나같이 커다란 보물 상자를 든 채로.
놈들은 좌우로 15마리씩 갈라지더니 보물 상자를 15개씩 두 줄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인간. 보물 고블린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
“……전혀 모르는데. 그냥 아이템을 모으고 다니는 고블린이라는 거 정도?”
“그것도 맞는 소리이긴 하지. 하지만 우리가 아이템을 모으는 것은 보물 상자를 만들기 위함이다. 아이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
보물 상자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며 삶의 목적인 종족들.
보물 고블린은 그런 종족이었다.
“엘프가 세계수가 없는 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듯, 보물 고블린 역시 보물 상자가 없는 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건 이 몸조차도 예외가 아니야.”
“무슨 그런…….”
“이상한가? 하지만 우리에겐 이게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삶은 보물 상자를 위주로 돌아간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 건데?”
“간단하다. 지금부터 너와 내가 보물 상자로 승부를 펼친다.”
보물 고블린에 제일가는 미덕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보물 상자를 얼마나 잘 따는가!
보물 고블린들의 킹은 모든 보물 고블린 중에서 가장 보물 상자를 잘 다루는 자에게 내려지는 영광스러운 칭호였던 것이다.
“레어 등급 같은 허접한 상자는 준비하지 않았다. 히어로 등급 5개, 유니크 등급 5개, 레전더리 등급 5개. 도합 15개의 상자를 먼저 여는 자가 승리한다.”
“…….”
트레져의 설명에 카르페는 ‘진짜로?’라는 심정으로 그를 쳐다봤으나 그는 한없이 진지했다.
“지금부터 펼쳐진 승부는 케록신께 바쳐지는 경건한 의식. 후우. 이 몸조차도 오랜만이라 떨리는군.”
“아니, 잠깐만…….”
“두려운가?”
“두렵겠냐!”
“그렇다면 승부를 받아들여라. 아, 혹시 상자 따기 스킬이 없는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취향은 아니지만 직접 전투로 승부를 볼 수밖에.”
“아니, 있어. 있긴 있는데…….”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나? 아, 만약 권속들 중에 상자 따기 스킬이 있다면 같이 참여해도 좋다. 그 정도는 감안하도록 하지. 어떤가. 싸우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승산이 있을 텐데?”
“…….”
그야 당연하지. 아마 승산이 100%일 거다.
카르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냥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상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똥망겜 진짜. 그냥 아주 떠먹여 주네. 그냥 세상 혼자 살지? 세상이 네 멋대로 돌아가니까 기분이 좋지?
“떠먹여 준다는데 억지로 뱉을 수도 없고 이거 참…….”
최근 해금이 영 일을 안 한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아무래도 그 말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 * *
보물 고블린들의 왕. 트레져는 상자 앞에서 준비하고 있는 카르페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흐흐. 사실 전투만큼이나 승산이 없는 일인데, 좋아하는 꼴이 우습구나.’
트레져는 태어날 때부터 9성 스킬 ‘케록의 손’을 보유한 희귀 개체였다.
케록의 손은 마스터할 시 레전더리 상자조차 70% 확률로 열 수 있는 현존 최강의 상자 따기 스킬이었다.
유니크 등급은 90% 열 수 있으며 그 미만의 등급은 95% 확률로 열 수 있었다.
그 대신 상자를 열 때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길긴 했지만, 확률 자체는 다른 스킬에 비해서 압도적이었다.
상대 역시 ‘케록의 손’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상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있다는 소리였다.
“두 분 다 준비되셨습니까? 만약 중간에 실패할 시 처음부터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준비되었다.”
“나도 준비됐어.”
트레져는 조금 긴장하면서 상자 앞에 섰다.
‘물론, 나 역시 쉽지 않은 싸움이다. 아무리 케록의 손이라고 해도 15개의 상자를 연속으로 열 확률은 15%도 되지 않아.’
하지만 상대는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숫자와 확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 천운이 따른다면 상대가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건 말 그대로 천운인 경우고.
‘미안하게 됐군. 인간!’
만약 자신이 이긴다면 한 1년쯤 부려먹고 그때 인정해 주자. 트레져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시작!”
그리고 심판의 호령과 함께 승부가 시작되었고.
“뭐, 뭐야?!”
“저, 저거!”
구경하던 보물 고블린들의 경악 섞인 외침이 트레져의 귀를 때렸고.
“응?”
이제 막 유니크 상자를 열고 있던 트레져가 고개를 돌려 카르페를 확인하는 순간.
“이게 무슨 개사기짓이야!!!”
그 역시 다른 보물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