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여기는…….”
던전 속으로 입장한 카르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이어드가 서 있어도 좁지 않을 만큼 넓은 공간. 익숙한 풍경이었다.
던전 공간 벽에 걸려 있던 횃불들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고, 바로 눈앞에는 제단 같은 것이 고풍스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보물고에 입장했을 때랑 똑같은 구조네요.”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제단 밑에 그려진 마법진 모양까지 흡사한 것 같았다.
“설마 진행 방식까지 같은 건 아니겠지?”
보물고에서는 지금 타이밍에 ‘연자여……’라는 드렛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었다.
구배지례를 올리면 선물을 준다면서 무슨 희한한 은거 기인 컨셉에 심취한 상태였는데…….
당시에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꽤 재밌는 경험이었던 것도 같다.
자, 이번에는 도대체 어떤 컨셉의 드렛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카르페는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제단을 주시했다.
하지만.
“……뭐야? 아무것도 안 일어나네?”
-흐음. 그냥 직접 제단을 조작해야 하는 방식인가?
“이번에는 딱히 컨셉 같은 건 없나 보네요. 에이.”
카르페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제단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제단 밑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이내 카르페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등장했다.
[적합한 마력 패턴입니다. 2차 인식이 완료되었습니다. 문을 개방합니다.]그리고 그 순간.
그그긍.
돌연 던전 공간 저 뒤쪽 부분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며 또 다른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명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푸른색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큰 키의 남성.
마도왕 드렛슈 아크람.
그가 일행 쪽으로 걸어왔다. 입가에는 아주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부드러운 미소?”
뭐야, 그게? 그 드렛슈가 저런 식으로 웃는다고?
드렛슈가 점차 다가오는 것과 비례해서 위화감 역시 커져 갔다.
이상한 말이었지만, 눈앞의 드렛슈는 전혀 드렛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외양 자체는 틀림없는 드렛슈의 그것이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카르페가 만났던 기억 조각들은 하나같이 조금 껄렁하면서 쾌활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장난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눈앞의 드렛슈에게서는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또 의외의 상황이네.”
자세히 보니 눈매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다른 드렛슈들에 비해서 눈매가 살짝 처져서 그런 건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이다. 머금고 있는 미소에도 일절의 어색함이 없었다.
-……무슨 로맨스 판타지 정석 남주 같은 분위기구만.
‘그러게…… 응? 형 로판도 봐요?’
-자주는 아니고 가끔. 찾아보면 재밌는 거 많아.
‘형은 진짜 취향 스펙트럼이 엄청 넓네요.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카르페가 주위의 권속들을 쳐다보자 그들도 하나같이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 뭐야. 티나! 드렛슈. 왜 저러는 거야? 뭐, 잘못 먹은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또 이상한 걸 꾸미고 있겠지. 방심하면 안 돼. 미라야.”
“으, 으응…….”
모두가 지금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드렛슈가 풍기는 분위기는 이질적이었다.
어느새 드렛슈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눈가는 여전히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드렛슈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드렛슈가!
“어서 오세요. 여러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날인지! 제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여러분들은 모르실 겁니다.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쁘군요.”
“…….”
“…….”
-…….
“……뀩.”
틀림없는 드렛슈의 목소리.
더는 이렇게 완벽할 수 없을 만큼의 환대였으나, 일행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괴리감으로 온몸에 소름이 올라왔다.
일행들이 하나같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드렛슈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 괜찮으신가요? 혹시 던전 이동의 여파가 남아 있습니까?”
“어, 그러니까…… 드렛슈?”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아직 안 했었군요. 네. 맞습니다. 드렛슈 아크람. 정확히는 본체의 기억 조각입니다. 제 후예 분께서는 성함이?”
“……카르페입니다.”
“카르페. 네. 좋은 이름입니다. 훌륭하신 분이 제 후예가 되신 거 같아 기쁘기 그지없군요.”
“미치겠네. 도대체 왜 이러는…… 아, 그렇구나. 이번에는 그런 컨셉이구나!”
지난번 보물고의 드렛슈가 은거 기인 컨셉을 잡았던 것처럼, 이번 드렛슈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왕족을 컨셉으로 잡은 게 틀림없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게 아니면 이 상황 자체가 설명이 안 됐다.
하지만 카르페의 말에 드렛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컨셉?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저’는 원래 이런 성격입니다.”
“당신 누구야.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전투도 불사하겠다.”
“맞아! 너, 누구야! 드렛슈 얼굴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거야!”
“……도플갱어? 아니, 그랬다면 미라가 못 알아봤을 리가 없겠지. 그런데 이 패턴은 틀림없는 드렛슈의 마력 패턴인데…….”
일행에게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오자 드렛슈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과격한 반응이군요. 하긴, 다른 저와 비교하면 성격 차이가 조금 있긴 한 편이죠.”
“조금 같은 소리 하네. 아예 인격이 달라졌구만!”
“하하. 어떻게 보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설명을 조금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 전에.”
드렛슈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나왔던 구멍을 가리켰다.
“식사부터 하시지요. 모처럼 손님이 오셨는데 집주인으로서 식사 대접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식사?”
“네. 이래봬도 요리가 취미입니다.”
“……미치겠네.”
일행의 의문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 * *
드렛슈의 안내를 따라 도달한 곳은 멋진 응접실이었다.
보물고의 드렛슈가 머물던 살풍경한 공간과는 정반대의 장소였다.
응접실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카르페를 비롯한 권속들은 그곳에 앉았다. 음식을 섭취할 수 없는 길리안과 로이어드는 그곳에 앉는 대신 뒤쪽으로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드렛슈가 자기가 직접 만든 요리를 하나하나 세팅하고 있었다.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닌지 아주 익숙한 몸짓이었다.
“후후. 언젠가 여러분이 오실 것을 기다리며 오랜 세월 연습했습니다. 부디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군요.”
“어, 감사하긴 한데 그전에 설명부터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카르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면 밥이 제대로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군요. 음…… 알겠습니다. 후예 분께서는 혹시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을 아십니까?”
“페르소나? 가면 쓸 때 그 페르소나요?”
-보통 자신을 숨기고 이미지 관리를 할 때 쓰는 가면 같은 걸 말하는 용어인데…… 흐음. 그런 건가?
“네. 맞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대륙을 통일한 황제조차 말이지요. 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드렛슈가 철혈의 황제가 되기 전, 그러니까 황태자 시절일 때다.
왕국의 사교계란 생각보다 더 음흉한 곳이어서 조금의 흠이라도 보였다간 그게 왕실의 흠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본인의 원래 성격이 어떠하든 대외적으로는 완벽한 예법의 황태자, 나아가 완벽한 황제를 연기해야 할 때도 많았다.
“꼭 황태자 시절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바른 품행의 황제는 민중의 인기를 얻는 법이니까요. 지금의 ‘저’는 드렛슈의 그런 ‘가면’의 인격이 떨어져 나와 부분적인 기억, 그리고 자아를 갖춘 상태인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인격이 달라졌다고 말했구나.
하지만 미라쥬는 그 설명을 듣고도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웃기지 마! 드렛슈는 우리와 있을 때 그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걸!”
“하하. 당신들은 전부 제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부모와 자식이라 할 수 있지요. 자식 앞에서까지 굳이 가면을 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좀 써! 제발! 옛날에도 좀 써 줬으면 좋았잖아!!”
“아무튼 어느 정도 설명이 된 거 같아 다행이군요. 응? 세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저, 왜 그런 성격이 됐는지는 알겠는데, 그냥 원래대로 해 주면 안 될까? 도무지 적응이 안 돼서 혼란스러워.”
“으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성격으로 지냈으니까요. 본체의 흉내를 내라고 해도 무리입니다.”
설명이 된 것과는 별개로 인형들은 영 적응을 못 하는 모습이었다. 틈만 나면 드렛슈의 모습을 흘깃거렸다.
“감격적이군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날이 올 줄은.”
“……평소에도 그렇게 행동하셨으면 훨씬 더 대접이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으으. 좋은 드렛슈는 가면 쓴 드렛슈뿐…….”
식사는 소소한 대화와 함께 마무리 되었다.
참고로 음식 맛은 너무나 뛰어났다. 첫 한 입을 먹었을 때는 깜짝 놀랄 만큼 맛있어서 순간적으로 식기를 떨어뜨렸을 정도였으니까. 거의 북염존의 요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권속들의 반응도 굉장했는데, 특히 아리스는 믿을 수 없다며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믿을 수 없어요! 드렛슈 님이 이런 훌륭한 요리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니! 설마, 이곳에 지내는 동안 요리만 갈고닦은 건가요?”
“아뇨. 지금만큼은 아니겠지만, 요리 자체는 본체도 충분히 잘했습니다. 저는 못하는 게 없으니까요.”
“그럴 리가요……. 전 단 한 번도 드렛슈 님이 요리하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야, 귀찮았으니까요. 아리스가 알아서 다 해 주는데 제가 왜 합니까?”
“이, 이익!”
이런 걸 보면 또 영락없는 드렛슈 그 자체였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까요. 저는 훨씬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여러분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을 테니까요.”
드렛슈는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응접실에서 나온 후 훨씬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 때.
“자, 도착입니다. 이곳이 시험장입니다.”
“이곳이?”
“네. 그렇습니다.”
드렛슈가 안내한 곳은 그냥 커다란 밀실이었다.
아니, 바닥에 아주 큰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으니 단순히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제가 남긴 보물고에도 들렀다고 하셨지요? 그곳에서는 어떤 내용의 시험을 겪으셨습니까? 제 기억에는 없는 정보군요.”
“뭐, 바둑도 두고…… 거기의 드렛슈랑 죽도록 싸우기도 하고 그랬죠.”
“바둑이라. 그러고 보면 바둑을 참 좋아했죠. 허나, 안타깝지만 이곳의 시험 내용은 그런 게 아닙니다.”
드렛슈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의 마법진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곳의 시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스스로와 싸워서 이겨내면 되죠. 아주, 재밌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드렛슈의 미소가 어쩐지 본체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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