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513)
513화
-아니, 이게 무슨…….
천마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되는 놈은 길을 가다 자빠져도 돈을 줍는다더니, 지금 카르페의 상황이 딱 그 짝이었다.
“……저건 형도 몰랐던 거죠?”
-그래. 나라고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 이 광산에 숨겨진 공간이 있다는 건 지금 처음 알았다.
무너진 벽을 슬쩍 살펴보니 아래로 통하는 계단 같은 게 있었다. 자연 발생으로 생긴 공간이 아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통로를 만든 다음 숨겨 놨다는 소리였다.
-들어갈 거지?
“에이. 당연하죠.”
물어볼 필요도 없는 물음이었다.
게임 속 히든 에어리어를 발견했는데 그냥 돌아간다?
그런 나약한 선택을 하는 녀석 따윈 게이머라 불릴 자격이 없었다!
“그럼 누구 은신지인지부터 한번 확인해 보죠. 인헨스 클로킹!”
스르륵.
카르페가 투명 망토에 내장된 스킬을 발동하자 그의 모습이 지워졌다.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인헨스 클로킹의 경우 모습은 완벽하게 지워 주지만, 소리나 체취 등을 숨겨 주는 건 아니었기에 여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의 은신지로 진입하셨습니다.] [주의하십시오. 해당 공간은 워프 계열 아이템이나 스킬의 발동이 불가능한 곳입니다.]시스템 알림이 겁을 줬지만, 카르페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결국 잠입 미션을 하게 되는구만.’
길리안트 황성에서의 잠입만큼은 아니겠지만 이것도 은근히 긴장되었다.
소리를 죽여 가며 천천히 아래로 향하길 약 20분.
탁.
긴 계단이 끝나고 마침내 바닥에 도착했다. 좁은 계단과 달리 밑바닥은 넓은 공간이었다.
-저기인가 보군. 불빛이 달라.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은 불빛이라곤 야명주가 다였으나, 이곳은 훨씬 밝았다. 천마가 가리킨 방향 쪽에서 환한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저 모퉁이 너머에 뭔가가 있나 보군.
‘저기 외엔 다른 통로도 없네요.’
카르페와 천마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뿐이다.
불빛으로 가까워질수록 음성이 들린다.
몬스터의 그것이 아닌, 확실한 사람의 목소리.
카르페가 조심스럽게 모퉁이 너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광산의 지하라곤 믿기 힘들 만큼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
‘……와.’
-미친. 저게 다 뭐냐?
넓은 공간에는 무척이나 기괴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먼저, 수십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온몸을 가리는 펑퍼짐한 검은색 로브.
그리고 얼굴에는 고깔모자처럼 길고 뾰족한 천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눈 부분만 뚫려 있는 그런 가면이었는데, 흔히 KKK단원들이 뒤집어쓴다고 알려진 바로 그 가면이었다.
놈들의 복장을 확인하는 순간, 카르페는 여기가 누군가의 은신지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사교도의 은신지였네.’
저런 수상쩍은 복장을 입고 있는 단체가 사교도 말고 있을 리가 없었다.
수십의 사교도들은 거대한 원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원의 가운데에선 한 명의 사교도가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오오오. 우리의 신이시여……!”
“신이시여!”
“미천한 저희에게 임하소서!”
중앙의 사교도가 선창하자, 나머지 교인들도 따라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원의 중앙에는 사교도 외에 돌로 만들어진 제단 같은 것도 있었고, 그 위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짐승의 조각상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짐승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척이나 꺼림칙한 모습의 조각상이었다.
‘그냥 기도만 올리고 있는데도 웬만한 호러 영화보다 더 소름끼치는데요?’
-광기란 게 다 그런 거지. 게다가 저 벽에 있는 걸 보면 소름 안 끼치는 게 비정상이다.
그 거대한 공간에는 사교도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공간의 벽 쪽에는 각종 몬스터들이 추욱 늘어진 상태로 걸려 있었다.
-동굴 트롤부터 해서 거대 흡혈박쥐, 에시드 리자드맨…… 이곳 광산에 랜덤으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죄다 걸려 있군.
‘……게다가 저것들 다 살아 있는 것 같은데요.’
자세히 보면 벽에 걸린 몬스터들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다만 ‘살아만 있다’라는 수준이었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처참했다.
‘산 제물 같은 걸까요?’
-모양새만 보면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네. 아니, 광신도라는 것들은 왜 이리 레퍼토리가 비슷해? 인신 공양 같은 거 안 하면 누가 태클이라도 걸어?
‘몬스터니까 인신 공양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로데스크하네요.’
-하여간 미친 게임이라니까. 저게 15금 게임에서 나올 만한 상황이냐? 애들이 보면 어쩌려고…… 이럴 거면 19금 딱지를 붙이든가!
의외로 여린 감수성을 가진 천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연신 투덜거렸다.
그렇게 기도가 계속되던 그때, 카르페가 있는 곳과 정반대 쪽에서 또 다른 사교도 두 명이 뛰어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쪽에도 또 다른 통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주교님. 확인을 끝냈습니다.”
주교라고 불린 남자. 원의 중앙에서 기도를 올리던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방금 전의 거대한 진동은 무엇이었지?”
“그게…… 광산의 일부가 붕괴하였습니다. 꽤 큰 붕괴여서 통로 일부가 완전히 매몰되어 버렸습니다.”
“역시 그런가. 붕괴는 자연적인 것인가?”
“네. 적어도 이교도 놈들이 인위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자연적으로 발생한 붕괴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하지만…… 이래서야 제물의 수급이 쉽지 않겠구나.”
주교라 불린 남자가 길게 탄식했다.
“곧 신께서 임하실 텐데 이 무슨 시련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또한 신의 뜻. 그분이 주신 시련이라면 기쁘게 감내해야겠지.”
놈들의 말에 귀 기울이던 카르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축하한다. 너도 모르는 사이에 신이 되었네.
‘저런 음습한 놈들에게 숭배받긴 싫거든요.’
신이 주신 시련이 아닌 카르페가 주신 시련이었지만, 애석하게 사교도들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후. 아무튼 사교도라.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사교도를 잡으면 길리안트 제국과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다.
어떻게든 황실에 접근해야 하는 카르페에게 안성맞춤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군. 저것들 때려잡아서 증거 같은 걸 좀 구해 가면, 호감도를 쌓기도 쉽겠지.
‘근데요. 형. 그게 꼭 최선일까요?’
-응? 무슨 소리야?
‘지금 이 사교도들, 설정상 길리안트 제국이랑 적대하는 관계인 거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토벌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서로 싸우지 않을까?’
마도왕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전제하에, 카르페는 모든 위신과 적대하는 포지션이다.
그게 마도왕 시나리오의 골자였으니까.
‘착한 위신은 오로지 죽은 위신뿐! 서로 공멸해 주면 그만큼 좋은 게 없지 않을까요?’
-흐음. 이이제이라.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일장일단이 있겠군.
사교도들을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몇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일단 빠르게 길리안트 제국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다만, 이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친밀도야 다른 퀘스트를 통해 올리면 그만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저놈들이 무슨 템을 떨굴지 모르는데 이걸 넘긴다고? 네가? 그게 가능할까?
‘끄응.’
그게 문제다.
딱 봐도 흉흉한 낌새를 뿌리는 놈들이다. 저런 놈들일수록 난이도가 높은 대신 괜찮은 보상을 뿌리는 게 RPG의 국룰 아니던가.
천마비급에도 적혀 있지 않던 히든 스테이지. 아무리 이이제이가 좋아도 이걸 포기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딱 1분만 고민해 봅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르페는 1분의 시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음?”
사교도의 주교가 정확히 카르페가 숨어 있는 곳을 바라본 것이다.
“쥐새끼가 숨어 들어왔군.”
-어, 들켰다.
‘아니. 어떻게?’
인헨스 클로킹은 여전히 유지 중인 상태였다. 보통은 들킬 리가 없을 터인데…….
“언제까지 숨어 있을 생각이지? 나오지 않겠다면 직접 꺼낼 수밖에!”
주교는 품속에서 날카로운 비도 하나를 꺼내 카르페가 은신 중인 곳을 향해서 던졌다.
휙!
[공격을 받아 인헨스 클로킹 상태가 해제됩니다.]그렇게 빠른 공격은 아니었기에 쉽게 피해 낼 수 있었지만, 은신은 해제되고 말았다.
카르페의 모습이 드러나자, 사교도들이 당황하며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침입자라니! 어떻게?”
“광산이 무너진 틈을 타고 들어왔는가.”
“성역이 침범당하다니! 아아. 신께서 노하실까 두렵구나.”
사교도들이 저마다 난리를 피워 대는 와중, 카르페가 주교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우문이로다. 그 누가 있어 신의 눈을 피해 가겠는가? 우리의 신께서 네놈이 있음을 알려 주셨음이니.”
“아, 그러셔? 그래. 그러시겠지.”
너무나 광신도다운 대답이라, 카르페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네놈은 누구냐? 이곳은 어떻게 알아냈지?”
“글쎄. 누굴 것 같아?”
“흥. 보나 마나 어리석은 신을 믿는 길리안트의 이교도겠지. 딱하고 또 딱하도다.”
“이교도? 아니, 누가 누굴 보고…… 아.”
생각해 보니 쟤들 입장에서는 길리안트 쪽이 이교도겠구나.
서로 믿는 신이 다르다 보니, 한쪽은 이교도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이교도에게 죽음을! 죽음만이 그들을 구원하리라!”
“혹세무민의 무리에게 영원한 고통을!”
광기가 넘실거린다.
기세가 흉흉한 것이,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마주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거 어쩌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뭐 어쩌려고?
‘잠시만요.’
카르페는 호흡을 한번 가다듬은 후,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 모습에 주교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이교도. 감히 혼자서 이곳까지 들어온 용기는 높이 사마. 허나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나는 길리안트에 속한 게 아니야. 오히려 놈들을 적대하는 입장이지.”
“……뭐라?”
거짓말은 안 했다. 거짓말은.
“어때?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 같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어떨지?”
“……믿을 수 없군. 네놈이 길리안트의 주구가 아니란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지?”
“그거야. 뭐…… 캘러미티 인페르노!”
콰앙!
기습을 가한 게 아니다.
카르페는 그저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마법 스킬을 사용했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마법!”
“길리안트의 주구는 사용하지 않는 이능!”
“이교도가 아니다. 진짜구나!”
하지만 주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아니, 이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 마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지령을 받은 주구일 수도…….”
“토르 개새끼! 뇌패는 전기를 뿜는 쥐새끼일 뿐이다!”
“헉!”
“오오! 이토록 아름다운 말이 있나! 신이시여!”
-……후우. 등신들만 모였나. 진짜.
천마의 한숨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