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콰직!
[레벨 업!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레벨 30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초급 스킬팩 x1이 인벤토리로 지급됩니다.]“후우. 벌써 30인가?”
-진짜 레벨 업 속도 말도 안 되네. 원래 이 구간은 이렇게 팍팍 오르는 구간이 아니라고!
“흐흐.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이에요.”
만약 엘프 여왕이 주는 퀘스트에 땡깡을 부렸다면 이런 달달한 꿀도 못 빨았을 게 아닌가.
“역시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해. 정도만 지키면 삶이 꼬일 수가 없어.”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다만 일단 참으마. 그나저나 벌레는 몇 마리 남았냐?
“잠시만요. 지금 확인해 볼게요.”
카르페는 퀘스트 창을 띄워서 현황을 확인했다.
“와, 이것밖에 못 잡았어?”
몇 시간 동안 무아지경으로 잡아낸 것 같은데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뭔 소리야? 엄청나게 빠른 거지. 1분에 한 마리씩 잡아도 한 시간에 60마리인데.
물론, 1분에 서너 마리 이상씩 잡았으니 실제로는 한 시간에 100마리쯤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몹들이 지천에 깔려 있던 초반에나 가능한 페이스였지, 지금은 워낙 많이 잡아 대서 근처에 벌레들이 보이지 않았다.
요구 경험치도 많이 올라서 이제는 2시간을 쉼 없이 사냥해야 겨우 1업이 가능한 수준.
초반의 폭발적인 페이스도 슬슬 떨어지고 있었다.
“한 네 시간 정도 잡았나? 오늘 중으로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800마리를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을 리가 없지. 다른 유저였으면 10일은 걸릴걸?
몹을 평타 한 방에 정리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속도다. 이 레벨 대의 다른 유저였으면 딱딱한 껍질을 뚫는 데만 해도 꽤 씨름해야 했을 테니까.
삐- 삐-
그렇게 네 시간 넘게 벌레를 학살하는 사이, 접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알람이 울렸다.
“어? 벌써?”
-엘더 트렌트부터 해서 엘프 마을까지 찾았으니 꽤 오래 하긴 했지.
“쓰읍. 얼마 한 것 같지도 않구만. 접속 10시간 제한도 해금하고 싶다.”
-해 봤는데 안 됐잖아.
“그랬죠.”
-애초에 그걸 해금하려는 발상 자체가 미친 거 같아.
“되면 진짜 갓금인데 아쉬운 일이네요. 아무튼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해야겠다.”
카르페가 사냥을 멈추자 멀리서 지켜보던 사이어스가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의 감정이 가득했다.
“엄청나게 잡으셨군요. 이제 휴식 시간이십니까?”
“아, 네. 휴식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은 휴식이 아니라 로그아웃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다른 일반 NPC들은 플레이어들이 라세의 대륙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지만, 수백 년 동안 폐쇄된 곳에 있던 엘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사이어스는 주저하는 카르페를 보며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너무 곤란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은거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보에 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요?”
“가끔 마법으로 정체를 숨긴 후, 인간들의 마을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구해 오곤 합니다. 고립으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죠.”
그런 이유로, 엘프들도 이방인들이 ‘불사자’라는 사실과 배후령들의 선택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어째, 적당적당한 설정이네요.’
-어쩔 수 없는 거지. 유저가 되살아나는 거 보고 기겁하는 NPC가 있으면 그것도 웃기잖아.
‘그것도 그런가?’
아무튼 NPC들의 눈치를 보면서 로그아웃하는 상황을 피했으니 그거면 됐다.
‘일단 내일 접속하면 스킬팩부터 까야겠네요. 25렙팩, 30렙팩. 벌써 두 개나 쌓였네.’
-그럼 오늘만 7렙 올렸다는 얘기군. 하긴, 스킬팩 까는 것도 잊어먹고 잡아 댔으니…….
카르페는 사이어스에게 인사를 한 후 로그아웃을 시도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네. 후예께서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형도 내일 봐요. 향이랑 티나에게도 인사 전해 주고요.’
-오냐. 너도 푹 쉬고 내일 보자. 운동하는 거 까먹지 말고.
* * *
카르페가 로그아웃하기 조금 전.
그윽한 차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두 사람과 한 동물은 평화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자, 정성 들여 말린 찻잎을 우려낸 것이다. 음미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알테어.”
호문쿨루스인 그녀는 사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그러나 함께 차를 마신다는 건 영양의 섭취가 목적이 아닌 분위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티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찻잔을 들었다.
호록.
티나가 차를 머금자 알테어가 흐뭇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어떠냐? 마실 만하느냐?”
“네. 차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과 맛입니다.”
“그렇다니 내 마음도 흡족하구나. 차를 수확한 엘프에게도 전해 주겠노라. 필시 기뻐하겠지.”
알테어는 그렇게 말한 후 차를 입에 머금었다.
하지만 티나와 달리 그녀는 애매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나는 아직 차 맛을 잘 모르겠구나. 몇 백년 동안 마셔 왔지만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이런 것보다는 달콤한 것이 더 좋지.”
“의외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알테어는 차를 좋아한다는 이미지였습니다만.”
“세월의 유구함은 변화를 불러오는 법이다. 나라고 해서 늘 같을 수 있겠느냐.”
“그런 것치고는 겉모습은 예전 그대로군요.”
“티나도 마찬가지이니라.”
“저야 호문쿨루스니까요. 경우가 다릅니다.”
엘프가 워낙에 노화가 느린 종족이긴 했지만 그녀는 한층 더 느린 거 같았다.
다른 엘프들은 그래도 세월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녀는 8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흥. 위대한 하이엘프의 피를 이었으니 당연한 것이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차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드렛슈의 유물을 찾으러 왔다는 건, 다시 위신들과 싸우겠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니까요.”
“솔직히 말하마. 엘프의 입장에서는 위신이든 아크람이든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구나. 우린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으니까.”
“네. 엘프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저 마도왕께서 남긴 것을 돌려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머지않아 돌려줄 터이니. 다만…….”
거기까지 말한 알테어는 잠시 침묵했다.
“알테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좀 하였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좋은 주인을 만난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너도, 그 아이도.”
알테어가 웃으며 티나의 무릎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호두만 한 도토리를 건네받아 양손으로 꼭 껴안은 묵향이 막 잠에 든 참이었다.
“쿠우…… 뀨.”
좋은 꿈을 꾸는 것일까.
티나 역시 묵향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네. 주군도 군사님도 향도, 모두 좋은 분들이라 매일이 즐겁습니다.”
“네 입에서 즐겁다는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그녀가 기억하던 티나는 감정의 변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소녀였다.
가끔가다 마도왕이 엉뚱한 행동을 할 때나 미간을 좁혔지, 그 외에는 늘 무표정했던 인형.
바람직한 변화에 알테어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구나. 너의 두 번째 삶을 응원하도록 하마.”
“감사합니…… 아.”
“응? 무슨 일이냐?”
“주군께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저도 곧 룸으로 송환…….”
슈우욱.
그 말을 끝으로 티나와 묵향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알테어는 조금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티나의 마지막 말로 충분히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으니까.
“흐음. 이방인들은 신기한 재주가 있구나. 하지만 너무하군. 제대로 인사를 나눌 시간도 주지 않다니.”
알테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미 다 식어 버린 찻잔에 다시 입을 대었다.
역시 차 맛은 잘 모르겠다.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었을 때처럼 답답한 맛.
“후우. 두 번째 유물이라…….”
넘겨주긴 해야겠지. 하지만 아직은 일렀다.
알테어가 창밖으로 시선을 향하자 거기에는 먼 곳에서도 눈에 훤히 들어오는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신목(神木) 루드람.
모든 엘프를 보살피는 자애로운 어미이자 풍요를 상징하는 세계수.
엘프의 왕이란 대대로 저 신목을 수호하는 일족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드가드’라는 이름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은 안 돼…….”
그리고 저 신목의 아래에 마도왕의 두 번째 유물 ‘환영의 미라쥬’가 잠들어 있었다.
똑똑.
“실례합니다, 여왕님. 사이어스입니다.”
“음? 들어오너라.”
여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이어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마도왕의 후예는 돌아갔느냐?”
“네. 방금까지 수액 벌레를 사냥하다 막 떠난 참입니다. 아마 내일 다시 돌아오겠지요.”
“그런가. 그래,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더냐?”
“선하고 강합니다. 저희 일족에게 해가 될 만한 인물은 아니라 판단됩니다.”
알테어가 사이어스를 카르페에게 붙여 줬던 건 안내의 역할도 있었지만, 마도왕의 후예가 과연 유물을 건네주어도 될 만한 자인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이 몸 또한 그렇게 생각하느니라.”
처음에는 조금 미심쩍었지만 티나와 대화를 통해 모든 의심을 지운 상태였다.
“루드람 차를 마시고서 아무런 반응도 없었으니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뜻이겠지.”
신목 루드람의 잎을 햇빛에 잘 말린 후 차로 우려내면 세뇌나 착란 같은 정신 지배류 마법을 완전히 제거하는 효능이 있었다.
알테어는 정말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마도왕의 선택을 받은 악인이 티나를 세뇌하고 있을 가능성’마저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다행히 후대의 마도왕도 선량한 인물 같군.”
알테어가 아는 광휘의 기사는 결코 악인을 섬기는 자가 아니었다.
그자가 설령 마도왕의 하나뿐인 후예라 할지라도 말이다.
“유물을 넘겨줘도 괜찮겠어. 어디 보자. 800마리니까 적어도 일주일 후에는…….”
“일주일이나 말입니까? 내일이면 벌레를 모두 잡을 것 같습니다만.”
“……뭐라? 내일?”
알테어는 자신의 상식을 벗어난 말에 설마 하는 심정으로 되물었지만, 사이어스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네. 이미 마도왕의 후예는 300마리 이상 벌레를 잡아냈습니다. 마지막에 속도가 좀 느려지긴 했지만, 내일을 꼬박 투자하면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안 된다!”
당황한 알테어가 소리쳤다. 이런 비상식적인 속도는 계획에 없었는데!
“적어도 일주일은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틀이나 일주일이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아, 혹시?”
“혹시?”
“800년 전에 마도왕에게 청혼했다가 차이셔서 후대를 괴롭히시는 겁니까? 에휴, 여왕님 철 좀 드시지요. 이제 1,700살이시옵니다.”
“뭐, 뭐라는 게냐! 누가 그딴 놈에게 청혼을 해!”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이런.”
휙!
사이어스는 날아오는 찻잔을 부드럽게 받아낸 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아무튼 너무 괴롭히지 마시지요.”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나가!”
“알겠습니다. 신목의 수호자시여.”
탁.
사이어스는 여왕에게 예를 갖춰 인사한 후에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후우.”
알테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의 신목을 바라보았다.
신목의 가지 중 가장 거대한 가지의 끝부분.
그곳에 붉디붉은 열매 하나가 싱그럽게 맺혀 있었다.
“아직은 안 된단 말이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