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2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23화
123. 그럴싸한 핑계
“안녕하세요, 류민. 아니, 예언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느 쪽이 더 편하세요?”
크리스틴의 말에 류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쪽이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잠시 대화할 시간은 있을까요? 아니, 잠시는 아니고 조금 길게.”
“예. 앉으시죠. 크리스틴.”
류민의 허락에 크리스틴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제프리는 그 옆을 지키듯 서 있었다.
류민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옆에 계신 분도 앉으시지 않고?”
“저는 됐습니다.”
제프리가 무뚝뚝하게 말했으나, 크리스틴이 눈썹을 올리며 슬쩍 눈치를 줬다.
‘제프리 집사님? 예언자가 불편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 눈빛을 읽었는지 제프리가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정정했다.
“앉아도 된다면 앉겠습니다.”
“물론이죠. 편히 앉으세요. 경계할 것 없습니다.”
마음 놓으라는 듯 웃어 보인 류민이었으나 제프리의 표정은 딱딱했다.
원래가 남 앞에서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진다고 생각했는지 크리스틴이 얼른 제프리를 소개했다.
“여기는 우리 회당의 집사님이신 제프리예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지내서 가족이나 다름없는 분이죠.”
“그렇습니까.”
류민은 이미 상대를 알아봤다.
지난번에 네이선의 지시로 자신을 미행하던 그 암살자였다.
“초면에 반갑습니다. 류민이라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초면은 아니지만, 일부러 언급하며 손을 내밀었다.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제프리는 예상외로 불편한 표정으로 맞잡았다.
“제프리입니다.”
‘날 불편해하는 걸 보면 양심은 어느 정도 있다는 거군.’
속마음을 읽어보니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크리스틴을 향한 그의 감정이 의외였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류민도 이 자리를 파투 내고 싶진 않았으니 말이다.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크리스틴? 마 대표님과 데이트라도 하려고 오셨나요?”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저는 당신을 만나러 온 거예요. 류민.”
“저를요?”
“전에 말씀하셨죠? 11라운드가 되면 제가 위험에 처한다고.”
크리스틴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해주실 수 있나요?”
“흐음.”
류민은 일부러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예언자인 자신이 절대 갑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뜸을 들이면 저들만 더 안달 날 거다.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틴이 초조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끝내 못 참고 말했다.
“빈손으로 듣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언을 들은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
“대가는 필요 없습니다.”
류민은 무상으로 그녀가 예언을 듣기를 바랐다.
그게 마음의 빚을 짊어주기에 더 좋았으니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대가를 바랄 순 없지요.”
“아…… 그렇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미래에 영향이 있을까 봐 더 자세히 말하기 꺼려졌었는데, 생각해 보니 조금은 알려줘도 되겠군요.”
류민은 크리스틴이 원하는 대로 디테일한 부분을 짚어줬다.
“11라운드 퀘스트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본 장면을 토대로 말하자면 크리스틴, 당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무리가 해코지하려고 들 겁니다.”
“어떤 식으로 말이죠?”
“차마 입에 담기는 힘들군요. 그저 목숨이 위험해진다고만 해두죠.”
“위험해진다는 건 다시 목숨이 구해진다는 뜻인가요?”
“예. 전에도 말했지만, 당신을 구해줄 구세주가 나타날 겁니다.”
“그게 누구죠?”
류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차마 마경록 앞에서 검은 낫이 구해줄 거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질투할 게 뻔하니까.
“전과 마찬가지로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제 말 한마디가 미래에 영향을 끼칠까 봐서요. 사실, 이렇게 자세히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래도 누군지 알면 더 좋을…….”
“제가 그 이름을 발설했다간 미래가 바뀔 수 있습니다. 당신이 목숨을 구원받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죠.”
“…….”
“확실한 것은 그때 당신을 구해주는 사람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에게 빌붙기라도 하라는 건가요?”
“안 좋게 말하면 그렇고 좋게 말하면 인연을 이어가라는 거지요. 만약 그 기회를 놓쳐버리면 기껏 살린 목숨은 15라운드가 되기도 전에 끝나고 말 겁니다.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음…….”
크리스틴의 생각이 많아졌다.
‘날 인정하지 못하는 무리로부터 습격을 당한다고?’
11라운드에 그런 비극이 벌어질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절 위협하는 무리가 누군지도 알 수 없나요?”
“예. 제가 본 장면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라서요.”
크리스틴의 얼굴에 아쉬움이 떠올랐다.
‘위협하는 인물이 누군지라도 알면 좋을 텐데…….’
다행히 누군가 백마 탄 왕자처럼 구해준다곤 하지만 가능하면 미리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편이 더 좋을 거다.
‘아, 아니면 그 구세주라는 사람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미래대로 흘러가도록 두어야 하나?’
일부러 위기를 겪으면서 동아줄이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난 뒤라면 그만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크리스틴. 운명대로 흘러가게 두시면 됩니다.”
“하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어쩌면 제 미래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결과 때문에 시시각각 바뀌는 게 미래니까요.”
“…….”
“그렇기에 전 그리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저 경고만 해드리는 거지요. 11라운드에 무슨 위험이 있을지 걱정하는 것보다 다음 라운드를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이 아니라는 듯 크리스틴이 고개를 주억였다.
걱정을 사서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당분간은.
“말 나온 김에 여러분께 들려드리겠습니다. 9라운드 퀘스트에 대해서.”
그 말에 마경록, 크리스틴, 제프리의 시선이 한데 집중됐다.
다음 라운드 정보라니, 바라던 바였다.
이윽고 류민의 입에서 기다리던 정보가 흘러나왔다.
세 사람의 신경이 류민에게 쏠렸다.
아닌 척했지만, 모두가 류민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으음, 9라운드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군요.”
“그러게요. 원한다면 쉬운 난이도를 골라서 깰 수 있겠네요.”
사람들의 말에 류민이 동의했다.
“9라운드는 8라운드처럼 난이도를 고를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게 메인 퀘스트면 서브 퀘스트는 어떤 것입니까?”
류민은 자기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거기까진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서브 퀘스트는 자신만의 것이어야 하니까.
그러나 그 부분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11라운드까지도 보신 분이 9라운드 서브 퀘스트는 못 보셨다고요?”
제프리가 그랬다.
말투에 못 미더워하는 낌새가 다분했지만 류민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갑이다.
똥이 된장이라고 해도 그들로선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미래라는 게 제가 원하는 시점의 장면만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다음 라운드까지의 정보라거나, 그 이후의 단편적인 사건들 정도만 볼 수 있을 뿐이라서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제프리로선 할 말이 없었다.
미래를 볼 수 없다는데 어쩔 셈인가?
순간 크리스틴이 찌릿 옆을 노려보며 눈치를 줬다.
‘제프리 집사님. 꼭 그렇게 의심하는 티를 냈어야 했어요?’
‘죄송합니다.’
그 시선을 읽은 제프리가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사과했다.
‘아직도 날 의심하다니.’
류민은 좀 더 정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라운드가 되면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섞일 겁니다. 타국의 플레이어와 함께 퀘스트를 수행하게 되지요.”
“아…… 다른 나라랑 함께?”
“그럼 저희가 모두 만날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류민은 부정하지 않았다.
구역이 전부 합쳐지는 건 아니었지만 일부 나라들은 섞일 것이다.
“그럼 11라운드 때 검은 낫이라는 플레이어도 만날 수 있나요?”
크리스틴의 물음은 류민에게 있어서 의외였다.
플레이어 중에 검은 낫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녀가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다.
‘이거 잘못 말하면 마경록이 질투하겠는데?’
힐끔 마경록의 생각을 읽어보니 아직 별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저 인기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물은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검은 낫도 11라운드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마 대표님은 더 일찍 만나겠지만요.”
“저요?”
“네. 다음 라운드가 되면 대한민국의 모든 구역이 하나로 통합되거든요.”
몰랐던 사실에 마경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입니까?”
“네. 인원이 모자라서 대한민국은 한 구역만 생성될 겁니다. 검은 낫과 마경록 대표님, 안상철 씨, 서아린 배우님 등, 모두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럼 류민 예언자님도 다음 라운드에서 볼 수 있는 겁니까?”
‘그건 곤란하지. 내가 검은 낫인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꺼낼 류민이 아니었다.
“물론 저도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같은 구역이라는 이유로 저희가 만나선 곤란합니다.”
“왜죠?”
“예언을 했던 분들과 만나서 함께 행동한다?”
류민이 그건 아니라는 듯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미래가 바뀌거든요.”
그럴싸한 핑계였다.
* * *
예언자의 말은 곧 법이다.
특히 그 예언이 여태껏 100% 확률로 적중됐다면 더욱 그렇다.
다음 예언도 맞을 거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의심 따윈 없다.
똥을 보고 된장이라고 말하고, 콜라를 보고 독극물이라고 말해도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
예언을 여러 번 들었고 그 덕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예언을 들은 존재와 만나면 미래가 변할 수 있다. 좋은 핑곗거리야.’
류민은 9라운드에 구역 통합이 이뤄질 거란 말과 함께 이 같은 핑계를 내밀었다.
예언을 들은 그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일이 있어선 안 되니까.
‘어차피 나만 입 닫으면 얼굴이 달라서 절대로 찾을 순 없어.’
만나자고 할까 봐 여태껏 닉네임도 밝히지 않았다.
하긴 이제 와서 검은 낫이라고 말해봐야 믿기나 하겠는가?
‘못 믿어도 말해선 안 되지. 철저하게 예언자 클래스가 있다고 믿게끔 만들어야 해.’
뭐, 누구도 자신의 핑계에 토 달지 않는 걸 보면 이미 길들여 놓을 만큼 길들여 놓은 듯하다.
류민의 의도대로였다.
‘확고한 아군만큼 속이기 쉬운 상대는 없지.’
나중에 사람 수가 한눈에 보일 만큼 줄어버리면 정체가 들통나겠지만.
‘그전에 닉네임을 감추는 방법을 마련해 놔야지.’
계획은 다 있었기에 문제 될 건 없다.
그저 때가 될 때 실천하기만 하면 될 뿐.
그때 갖고 있던 로스트야크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하나 왔다.
[플레이어 플레이스에 등록하신 관심 판매자가 물품을 올렸습니다.]문자를 본 류민이 입꼬리를 올렸다.
‘주성탁이 아이템을 올린 모양이군.’
어떤 아이템인가 기대하며 플플 앱을 열었다.
관심 판매자 항목으로 들어가 주성탁의 아이디를 클릭하자 그가 올린 아이템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