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3화
13. 저 이제 그만두려고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며, 류민이 통장을 들여다봤다.
논협 은행에서 새로 만든 VIP 통장이었다.
[잔액 15,052,102,983원]150억.
평생을 써도 모자람이 없을 금액이 통장에 찍혀 있었다.
그런데도 류민은 놀라기는커녕 덤덤한 표정이다.
‘역시 자금 벌이엔 로또만 한 게 없네.’
그저 첫 단추를 잘 꿰맸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이걸로 만족할 순 없어. 이 돈을 가지고 계속해서 불려야 한다.’
그렇기에 은행에서 제안하던 금융상품도 한사코 거절하고 나왔다.
가만히 은행에 묵혀두고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한 10억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전년도부터 지금까지도 암호화폐 광풍은 여전했다.
특히 다음 달에는 비트코인이 4배로 급등할 정도.
하지만 코인이 급등하는 건 거기까지.
‘그 이후엔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기 시작하면서 암호화폐 시장도 요동치지.’
그래도 다음 달까지는 안전하게 불어나는 게 비트코인이다.
4배로 늘어나는데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성인이 됐으니 주식계좌도 개설할 수 있어.’
코인으로 불린 다음에는 주식에 투자할 생각이다.
훗날 특정 주식이 급등할 거라는 건 회귀자인 류민에게 있어서 그리 놀라운 정보가 아니다.
‘물론 그사이에 계속해서 로또 번호를 맞춰야겠지만.’
로또 당첨자는 매주 나온다.
류민은 그 번호를 5주 차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후는 기억할 필요가 없지. 다음 달이 되면 로또 시장도 망하고 마니까.’
즉, 앞으로 네 번은 더 로또로 자금을 모을 수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 번호에 올인해서 당첨금을 최대한 독식할 예정이다.
‘물론 계속해서 1등에 당첨되면 의심을 받기야 하겠지만 그것뿐이지. 뭐, 별수 있겠어? 운 좋아서 연속으로 당첨됐다는데.’
은행으로선 당첨된 이상 당첨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
버스에서 내린 류민이 집으로 들어갔다.
좁은 부엌과 조그만 방이 전부인 집이 그를 반겼다.
‘이곳에서 사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
부모님과 살던 집이지만 훨씬 좋은 곳으로 이사 갈 작정이었기에 미련은 없다.
“형!”
집에서 기다리던 동생이 반색하며 마중 나왔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
“당연하지. 형은? 당첨금 받고 왔어?”
류민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 있던 통장을 내밀었다.
“헉! 이, 이게 다 얼마야? 일십 백천…….”
자릿수를 세어보던 류원이 이내 휘둥그레진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150……억?”
100게임에 당첨된 걸 알았을 때 꽤 많이 받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원래는 192억인데 세금 떼고 그 정도야. 얼마 안 되는 돈이지.”
“형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해? 이 상황에 농담할 기분이 들어? 무려 150억이야! 150만 원도 아니고 150억이라고!”
“조용해. 옆집에서 듣겠다. 뭐, 이젠 이사할 거라 상관없지만.”
“이사? 우리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거야?”
류민이 웃으며 끄덕이자 류원의 얼굴이 기쁨으로 번졌다.
“하하! 이사 간다! 이사!”
“그렇게 좋아?”
“좋지, 그럼! 여기는 벌레도 나오고 집도 좁은 편이잖아. 게다가 비싸고.”
“하긴. 월세 50만 원이면 비싼 편이지.”
서울이다 보니 집 크기에 비해 월세가 높게 나오긴 했다.
그런데도 굳이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며 자급자족하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와 살던 집이니까.’
3년 전, 형제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서럽게 울던 동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갑자기 숲속에 동생이랑 단둘이 던져진 기분이었지.’
원래는 부모가 갑작스레 사망하면 성인이 될 때까진 친인척이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전부 나 몰라라 등 돌려 버렸지.’
당시 류민은 고등학생 1학년, 류원은 초등학생 6학년.
홀로서기 하기엔 아무래도 이른 나이였지만 형제는 어쩔 수 없이 자급자족하며 살아야 했다.
‘그때부터였지. 알바를 시작한 게.’
초등학생인 동생은 알바를 할 수 없었기에 류민 혼자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다행히 고등학생인 그를 써주겠다는 고깃집 사장이 있었지만…….
‘좋은 분이라곤 말 못 하겠네.’
고등학생이라고 임금을 깎고 갑질하는 사장의 횡포는 류민으로선 또 다른 폭력이었다.
‘비싼 월세, 고깃집 사장의 갑질, 일진들의 괴롭힘 등. 그동안은 전부 감내하며 악착같이 살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성인도 됐고 돈도 있으니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다.
‘부모님과 살던 집이라 웬만하면 이사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을 놓아줄 수 있었다.
수많은 회귀를 겪으며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까.
“원아.”
“응?”
“지금부터 이사 갈 집 구하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응! 같이 가자, 형!”
어디로 이사 갈지는 정해놨지만, 이것저것 할 건 많았다.
집주인에게 나간다고 말도 해야 하고 부동산에도 연락해 봐야 한다.
동사무소 들러서 서류도 떼야 하고 주식계좌도 개설해야 한다.
“점심에는 집 구하고 저녁에는 뭐 맛있는 거 먹을까?”
“어떤 거?”
류민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고기.”
* * *
오후 7시.
보통의 고깃집 같으면 손님으로 가득 찼어야 할 시간이지만.
“X벌, 이놈의 장사를 접든지 말든지 해야지. 뭔 놈의 가게가 파리만 날리냐?”
사장의 얼굴엔 불만만 가득 찼다.
다름 아니라 피크 시간임에도 아직 한 명의 손님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래서 평일엔 알바를 쓰지 않는 거야. 손님이 없으니까, 쯧.”
가게에 손님이 없다는 건 쓰라렸지만 현실이 그랬다.
후미진 골목에 있는 조그만 고깃집이 살아남기에는 너무도 팍팍한 세상이다.
“임대료가 싸다고 덥석 무는 게 아니었는데 X발. 이렇게 파리만 날릴 줄이야.”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렇게라도 운영하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없는 것을.
“젠장. 장사 끝나면 혼자 소주에 고기라도 구워 먹어야지, 원.”
불평은 많았지만 그래도 주말은 나름 손님이 찾아왔기에 먹고살 만했다.
게다가 주말 알바도 싼값에 고용하기도 했으니.
‘흐흐, 고등학생 알바를 쓰길 잘했어. 멋모르는 놈 호구 잡기 딱 좋다니까?’
법대로라면 고등학생이라도 최저 시급에 맞춰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사장은 최저 시급의 80% 정도만 지급했다.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임금을 깎은 것이다.
‘학생이 공부해야지 무슨 알바야?’
싫으면 딴 데 알아보라고 강하게 말했더니 덥석 미끼를 물었다.
그 덕분에 사장은 지금까지 불로소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니지. 따지고 보면 그 애새끼도 동의한 거잖아. 내가 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지.’
듣자 하니 부모도 없다고 하던데 일자리를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지 않겠는가?
하지만 녀석을 쓰는 것도 이걸로 끝이다.
‘슬슬 그놈을 자르고 다른 알바생을 구해야겠어.’
올해로 성인이 됐으니 머리도 커졌을 터.
그동안 못 받은 돈을 달라거나 임금을 올려달라고 항의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그전에 빨리 쳐내고 예쁜 알바생이나 구해봐야지.’
왜소한 남학생보다는 예쁜 여학생을 쓴다면 매출이 더 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미소를 짓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테이블을 닦고 있던 사장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
그러나 기대와 달리 들어온 사람은 손님이 아니었다.
“류민?”
조금 전까지 속으로 씹고 있던 고등학생 알바생이었다.
사장의 표정이 삽시간에 달라졌다.
얼굴에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짜증스러운 표정만이 남았다.
“이 시간에 네가 웬일이야? 옆에는 누구고?”
“여긴 제 동생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알바 시간도 아닌 평일에 동생이랑 같이 무슨 일로 찾아온 걸까?
사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용건이 뭐야? 설마 같이 알바하러 온 거라면…….”
“저 이제 알바 그만두려고요.”
“뭐?”
예상치 못한 통보에 사장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어차피 자를 생각이었지만 먼저 그만둔다고 하니 기분이 나빴다.
“이렇게 갑자기 통보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갑자기라니요. 오늘 월요일이니 주말까지 알바생 구할 시간은 충분할 텐데요?”
“누구 마음대로 그만둬? 돈 벌기 싫어?”
“제가 그만두는 것도 사장님 허락이 있어야 합니까?”
‘이 자식이?’
사장이 도끼눈을 뜨고 류민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슨 놈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류민의 시선에 사장이 먼저 꼬리를 말았다.
“큼큼, 그래, 알았다. 그만두려면 그만둬! 됐지? 이제 가봐!”
“아직 볼일 안 끝났는데요?”
“또 뭔데?”
“고등학생이라고 여태 시급의 80%만 주셨죠? 원래는 시급대로 줘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건 너도 동의한…….”
“증거 있으세요? 제가 언제 동의했다는 거죠? 저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요.”
“…….”
“게다가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일 시키셨죠? 그거 불법인 거 알고 계셨어요? 알아보니 청소년은 밤 10시 넘어서는 일할 수 없다더라고요.”
사장이 흠칫하며 입을 꾹 닫았다.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는 얼굴이다.
“식사는커녕 식비도 안 주고, 툭하면 욕설하고, 혼자라고 부려 먹고, 갑질하고……. 지금에야 알았지만 참 쓰레기 짓 많이 하셨네요.”
“뭐, 뭐 인마? 애새끼가 어른한테 못 하는 소리가……!”
“저도 이제 만 19세 성인이거든요? 전처럼 폭언하시면 저도 더 이상 못 참습니다.”
“…….”
의외로 강경하게 나오자 사장도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잘못했다고 사과라도 하길 바라는 거냐?”
“예.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습니다.”
“이 새끼가……. 내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한테 사과할 거 같아?”
“안 하시면 뭐, 노동부에 신고하는 수밖에요. 여태 불법을 저지른 것에 대한 형사고소도 진행하고요.”
“큭…….”
사장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불법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고를 한다는 말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벌금 폭탄에 장사를 접어야 할 수도 있었으니까.
“아, 알았다. 사과만 하면 되는 거지?”
“그냥 사과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요.”
‘X발, 어린 놈의 새끼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사과 한 번으로 노동부 신고를 막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이다.
사장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후우……. 내가 그동안 미안했다.”
“그게 끝이에요?”
“그, 그런데?”
“전혀 진정성이 안 느껴지는데요. 다시 해보세요.”
‘이런 씹…….’
욕설을 삼킨 사장이 다시 한번 절박함을 담아 호소했다.
“미안하다, 류민아. 내가 얼마 안 되는 몇 푼 아껴보자고 알바비를 떼먹었다. 정말 미안하구나.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니 노동부에 신고는 하지 말아다오.”
“사과라기보단 변명으로 느껴지네요. 게다가 진정성도 없고요.”
“X발, 그럼 뭐 어쩌자는……!”
순간 성질을 이기지 못한 사장이 애써 입을 다물며 화를 삭였다.
“거봐요. 욱하는 거 보니 사과할 마음이 없나 보네요.”
“후우…….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럼 된 거 아니냐? 뭐 하자는 거야 대체? 그동안 떼먹은 임금이라도 줘야 속이 시원하겠냐?”
“그건 아니고요. 그냥 사과를 듣고 싶었던 건데……. 사장님 성격상 그건 불가능할 것 같네요.”
“그럼 뭐 어쩌자고? 원하는 게 뭐야?”
“그동안 떼먹은 임금은 달라고 안 할게요. 대신.”
류민이 씩 웃으며 테이블에 앉았다.
“먹을 것 좀 내와 보세요. 배 좀 채우고 나면 신고하고픈 마음이 사라질지도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