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02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302화
302. 악마의 손길
처음 19라운드 미션을 들었을 때.
허태석은 마음속에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주아주 질 나쁜 욕망이.
‘이건 기회다. 마음에 안 드는 새끼를 죽일 기회.’
허태석이 줄곧 노리고 있던 플레이어는 다름이 아니었다.
알렉스 피어슨.
그 뚱뚱한 녀석과 갈등이 있었다는 건 엄준석과 검은 낫이라면 알 만한 사실.
그렇기에 곧장 움직이진 않았다.
상황을 좀 더 관망했다가 움직이기로 했다.
그런데.
[열다섯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사망자 닉네임은 ‘라이챠챠’입니다.] [사후 10분이 지났으므로, 플레이어를 소멸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남은 플레이어 : 128명] [소멸한 플레이어 : 15명] [라운드 종료까지 남은 시간 : 70:27:19]1시간 30분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15명이나 사망했다.
‘그 말은 서로를 죽였다는 거야.’
어제의 동료에게 가차 없이 칼을 겨누다니.
역시 사람이란 상황에 따라 남을 죽일 수도 있나 보다.
지금의 허태석처럼.
‘슬슬 죽여야겠어.’
근처 숲에서 몬스터들을 잡고 있던 허태석은 방향을 정했다.
알렉스를 추적하기로.
의외로 그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신이 날 돕는구나.’
그 재수 없는 자식을 빠르게 죽이고 시체는 흔적 지우기로 없애버리자.
그럼 증거는 남지 않는다.
심증은 있을지라도.
‘검은 낫 님과 엄 추기경이 날 의심하더라도 문제는 없어.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야.’
억울하다고 소리치면서 연기하면 누구라도 속을 수밖에 없으리라.
완벽한 살해 계획을 세운 허태석이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거리를 좁혀갔다.
그렇게 20분을 걸었을까.
그 사이에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해서 20명을 채웠을 때.
알렉스와의 거리가 500m까지 가까워진 것을 보았다.
‘500m 내로 들어가면 주변 탐색에 걸리겠지.’
어쩌면 추적 목록으로 자신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걸 보고 이미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놈이 대처할 시간을 주지 못하게 빠르게 접근해서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좋겠어.’
악마화를 쓰고 날아가서 검은 화살로 융단폭격을 퍼부으면 놈도 버틸 수 없으리라.
그런 계획을 세운 허태석이 악마화를 시전하기 직전이었다.
[모로스 님이 말한 인간이 여기에 있었구만.]난데없이 들린 기괴한 목소리에 흠칫한 허태석이 눈을 깜빡거렸다.
혹시라도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뭘 그렇게 얼어붙어 있는 게냐. 마족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키 2m에 붉은 피부, 날개와 긴 꼬리.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명백한 마족이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생김새였지만 허태석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내 소개라도 하길 바라는 거냐? 좋다.]마족이 사악한 기운을 흘리며 웃음 지었다.
[나는 악마 대공 플루닉토스. 마계의 지배자다.]* * *
19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플루닉토스는 아르타로스의 계획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자기가 힘을 회복할 동안 시간을 벌어라, 이 말이잖아?’
아르타로스는 수십 번의 죽음을 반복하며 페널티가 상당히 중첩된 상태라고 한다.
현재로선 아무런 힘이 없다고.
순간 아르타로스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지만 플루닉토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할 말은 해야겠다.
[저보고 시간을 벌라고 하면 벌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개죽음당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것도 인간의 손에.] [내가 언제 개죽음당하라고 했지?] [방금 저보고 나서라고…….] [정면 대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면…….] [멘탈을 부수는 거다.] [예?] [19라운드에서 놈이 아끼는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라. 절대로 정면승부에 응해주지 말고.]한마디로 검은 낫을 제외한 전력을 깎아 먹으라는 소리였다.
[그런 거라면 문제없죠. 후후후.]플루닉토스와 아르타로스의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갔다.
* * *
회상을 마친 플루닉토스는 눈앞의 인간을 바라봤다.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참으로 가엽기도 하다.
[네 닉네임이 노폐인노게이가 맞느냐?]“그, 그걸 어떻게…….”
이계에선 닉네임이 보이지 않을 텐데 어떻게 알아본 걸까?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플루닉토스는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신에게서 얻은 정보를 함부로 발설할 정도로 생각 없진 않으니까.
‘모로스 님이 주신 정보대로 사악한 원념이 가득 찬 인간이로다.’
딱 봐도 복수심에 미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이야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살의를 악마 대공인 자신이 못 알아볼 리가 없다.
[나약한 인간아. 어디로 가던 중이었느냐?]“…….”
[딱 봐도 누군가를 죽이러 가는 것 같은데…… 맞느냐?]정곡을 찔렸는지 허태석이 눈에 띄게 흠칫했다.
그러나 애써 당황스러운 감정을 누르더니 눈앞의 악마를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플루닉토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인간들은 멍청하단 말이야. 자신이 어떤 존재를 상대하는 줄도 모르고 다짜고짜 무기부터 겨누니.]“그, 그 말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러나 허태석이 먼저 공격하기도 전에, 플루닉토스의 눈빛이 벌겋게 발광했다.
“허억!”
무거운 중압감이 허태석의 온몸을 짓눌렀다.
플루닉토스의 특기인 염동력에 강제로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수그렸다.
“크으으윽!”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납작 엎드린 개구리처럼 볼품없이 바닥에 늘어질 뿐.
‘꼬, 꼼짝도 할 수 없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 허태석이 저항하려다가 포기했다.
이대로는 마법 한 방 맞히기도 힘들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무형의 힘을 뿌리칠 수 없다.
“…….”
[걱정 말거라. 나는 널 죽이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씨익 웃은 플루닉토스가 염동력을 풀었다.
구속에서 벗어난 허태석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악마를 바라봤다.
자신을 왜 풀어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행히 의문은 쉽게 해소할 수 있었다.
플루닉토스가 직설적으로 말했으니까.
[너에게 힘을 주겠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힘을. 그 힘으로 네가 원하는 복수를 마음껏 해보거라.]“그게 무슨…….”
자세한 말을 묻기도 전에 플루닉토스의 꼬리가 허태석의 정수리에 꽂혔다.
푸욱-!
“허어어어억!”
머리가 새하얘지며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간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힘이 빠져나가고 알 수 없는 새로운 힘이 주입되는 기분이다.
[말했잖느냐. 죽이지 않는다고. 다만.]“끄아아아아악!”
[조금 고통스러울 거다.]* * *
“아, 그러니까 이거 들으라니까?”
“나한텐 너무 무겁다고.”
“이거라도 있어야 안전하지, 바보야!”
소피아의 고함에 빅터는 말없이 시선을 회피했다.
누가 보면 소피아가 누나 같겠지만 엄연히 동생.
오빠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은 알겠지만 빅터는 정말로 방패 따위는 들고 싶지 않다.
“힘 스탯을 거의 안 찍어서 들기 무겁다고.”
“그래도 들어! 그래야 살지!”
“그런 거 없어도 된다니까? 여기 든든한 방패가 있는데 뭔 걱정이야?”
자신을 쳐다보는 빅터의 모습에 소피아가 한숨을 쉬었다.
고집도 이런 똥고집이 없다.
“그런 생각부터가 글러 먹었어!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킬 생각부터 하시라고요. 나한테 빌붙지 말고!”
“내가 언제 빌붙었다고 그래? 날 찾아온 건 너잖아?”
“아오오오!”
머리를 헝클며 허공을 향해 소리치던 소피아는 결국 방패 주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자신이 방패가 되면 문제없는 일이라고 합리화하며.
“에휴, 하여간 오빠랑 말싸움하면 진이 다 빠진다니깐.”
“힘들면 말해. 만들어 놓은 힐링 포션 많으니까.”
“말이나 못 하면…… 쯧!”
남매는 티격태격 대화하며 시간을 죽였다.
72시간을 생존해야 하는 마당에 굳이 힘들게 돌아다닐 필요가 뭐 있나?
체력 낭비할 것 없이 그냥 안전한 곳에서 가만히 있으면 되지.
그런 생각으로 몬스터가 없는 적당한 위치에 정착해서 시간을 때운 지 1시간 30분째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건 아니고 주변 탐색 스킬과 추적 목록을 펼쳐가며 사주경계에 신경 썼다.
“어? 오빠. 이 사람이랑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누구?”
“여기 목록 맨 위에 이 사람 말이야.”
“어? 그러네.”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거 맞지?”
빅터는 말없이 끄덕였다.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그런 것 같다.
‘기다려 보면 알겠지.’
나쁜 의도로 접근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잠시 후.
“아, 안녕하세요.”
예상대로 목록에 있던 그가 빅터 남매에게 다가왔다.
“알렉스 님?”
“안녕하세요, 빅터 님. 소피아 님도 계셨군요.”
세 사람은 구면이었다.
같은 사신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알렉스가 정예 팀을 꾸리겠다고 나이지리아에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다.
“우리 오빠 찾아오신 거예요?”
“예. 나쁜 의도로 찾아온 건 아니고요…… 그게…….”
막상 말하려니 쑥스러웠는지 알렉스가 우물쭈물했다.
“저번 16라운드 때 생명의 포션으로 절 살려주셨잖아요? 그 점이 고맙기도 하고 또 전에 정예 팀을 만들면 들어오겠다고 흔쾌히 수락해 주신 점이 고마워서 이렇게…….”
“아, 그러니까 우리 오빠 지켜주러 왔다는 거 아니에요. 맞죠?”
핵심을 찌른 소피아의 말에 알렉스는 정확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이지. 참…….”
“넌 좀 가만히 있어.”
동생을 나무란 빅터가 알렉스를 보며 빙그레 웃음 지었다.
“도와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다시피 물약만 만들어대는 직업인지라 몬스터 만나기가 무섭습니다. 그런데 알렉스 님까지 와주시니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그런데 정예 팀을 만들자는 제안은 어떻게 됐나요?”
“아아, 제가 말 안 했나요? 검은 낫 님께서 그럴 필요 없다고 해서 무산됐습니다. 괜히 파벌을 만드네 마네 오해만 받고 말이죠.”
“오해요? 무슨 일 있었나요?”
“시간 많으니까 얘기해 봐요.”
세 사람은 한자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주변을 경계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저벅- 저벅-
“그 후로 어떻게 되었냐면…… 어? 잠깐만요.”
먼저 접근을 알아차린 건 알렉스였다.
기척 감지의 범위에 누군가가 걸렸다.
빅터 남매도 느꼈는지 침묵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저 사람은…….”
“허 교주님?”
생각지도 못한 존재의 접근에 놀랐지만 그보다는.
“크륵, 크흐으…….”
허태석의 상태에 더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