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80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4화
4. 검은 낫
황용민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좀 맞자고?’
자존심이 상하는 건 둘째 치고, 이렇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 적은 처음이었기에 좀 당황스러웠다.
얌전한 고양이 같은 놈이 이를 드러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화가 난 모양.
몸을 돌리던 류민은 황용민이 움직이지 않자 다시 눈짓을 줬다.
“뭐 해? 안 따라와?”
“…….”
“왜? 쫄았냐?”
자존심을 긁는 말.
그건 황용민도 잘 안다.
하지만 쉽사리 대꾸하진 못했다.
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으니까.
‘1대 5도 이기던 놈이야. 따라가면 그때처럼 X나게 처맞겠지…….’
세상에 맞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젠장. 형님들은 왜 안 오는 거야? X팔!’
끝까지 버티고 싶었지만, 류민의 인내심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안 와? 여기서 맞고 싶나 보지?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
“아니면 조폭들 기다리냐? 아까도 말했지만 오지 않을걸?”
“어째서…?”
류민의 입술 밖으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야 내가 다 처리했으니까.”
‘처, 처리했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전국구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형님들을 전부 상대했다는 뜻?
황용민의 눈이 커진 가운데, 류민의 시선이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너희들도 따라와.”
“어? 우, 우리?”
“너희도 어느 정도 가담했을 거 아니야?”
그 말에 친구들은 발작하듯 소리쳤다.
“무, 무슨 소리야? 우, 우린 저어어언혀! 전혀! 관계없다고.”
“마, 맞아. 조폭? 나 얘가 조폭 불렀다는 말도 오늘 처음 들었어!”
“진짜라니까? 우리는 진짜 너한테 복수할 생각 요만큼도 안 했다고.”
손사래를 치며 물러나는 친구들의 모습에, 황용민은 그나마 있던 정도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너희가 그러고도 친구냐?”
“왜? 사실을 말한 것뿐이잖아.”
“그래. 조폭도 너 혼자서 부른 거고.”
“우린 전혀 관계없으니까, 너희끼리 알아서 해결 봐.”
“그, 그래. 우린 빠져줄 테니까.”
행여나 불똥이라도 튈까 두려웠는지, 친구들이 쏜살같이 자리를 피했다.
물론 붙잡을 수 있었지만, 류민은 그냥 보내주기로 했다.
‘속마음을 읽어보니 나한테 복수할 마음도 없어. 황용민도 이참에 손절할 생각이고.’
저렇게 보내도 후환이랄 것도 못 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황용민은 달랐다.
조폭까지 동원해 복수하려 했고 행동에 옮겼다.
여차하면 가족까지 노릴 정도로 복수에 미친 놈이다.
이놈만큼은 정신교육이 필요하다.
“야! 승한아! 태식아!”
황용민이 친구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턱-
“어딜 가려고.”
류민의 손이 어깨를 움켜쥐었다.
‘크윽, 무슨 손아귀 힘이…….’
붙잡은 손길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느낀 황용민은 더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따라와. 우리 얘기 아직 안 끝났으니까.”
류민이 어깨를 붙들고 끌고 가자, 둘 사이를 가족들이 번갈아 봤다.
“민아. 무슨 일이냐? 그 친구는……?”
“얘랑 급히 할 얘기가 있어서요. 먼저 들어가세요.”
가족들에게 그리 일러둔 류민은 황용민을 이끌고 향했다.
최대한 인적이 없는 외진 곳으로.
* * *
퍼억!
“컥!”
류민의 발길질에 황용민이 볼품없이 나가떨어졌다.
누가 보면 일진이 친구를 괴롭히는 모양새였지만, 실제론 그 반대였다.
이전 세계에선 황용민이 류민을 괴롭히는 입장이었으니까.
“황용민. 네가 또X이인 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뻐억!
“컥!”
“조폭까지 동원할 줄은 몰랐네.”
턱주가리를 얻어맞은 황용민이 대 자로 뻗었다.
일어설 힘도 없었지만, 류민이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나한테 맞은 게 그렇게 억울했냐? 복수하고 싶었어?”
“크윽…….”
맹수처럼 사나운 눈빛.
아직 교육이 덜 됐다.
“더 처맞아야 정신 차릴래?”
“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후웅!
황용민의 기습적인 스트레이트.
일반인이라면 당했을지 모르지만, 류민은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섰다.
빠악!
“커허억!”
깔끔하게 고개를 피함과 동시에 카운터 펀치를 먹였다.
황용민이 피를 뿌리며 자빠지는 사이, 류민이 말을 이었다.
“너희가 처음에 날 괴롭히려 할 때 힘 좀 보여주겠다고 나름대로 신경 좀 썼는데, 제대로 보여주질 못했나 봐. 이렇게 기어오르는 걸 보면.”
“크으으…….”
“복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때 확실하게 인지시켰어야 했는데, 내 실수야.”
“X까… X발아.”
“여전히 자존심은 세네. 어디 이걸 보고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지 보자고.”
류민이 순간 손을 뻗었다.
그러자.
츠으으읏!
황용민의 눈에 믿기지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검고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낫이 별안간 손아귀에서 나타났으니까.
“허, 허어억!”
황용민의 눈자위가 경악으로 벌어졌다.
갑자기 손에서 낫을 만들어 내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놀랐어? 하긴 플레이어가 없는 세계이니 놀라는 게 당연하지.”
“어, 어, 어떻게…….”
“말한다고 네가 알아?”
“…….”
“됐고, 내가 힘을 드러낸 건 다른 이유가 아니야.”
류민의 낫이 호선을 그렸다.
스악!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황용민의 머리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다시는 나한테 개기지 마라. 복수를 품지도 마라. 내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도 말고 경고를 어길 생각도 하지 마. 그랬다간…….”
스릉-
낫이 황용민의 목 아래에 닿았다.
“다음에 떨어지는 건 머리카락이 아닐 테니까.”
“…….”
황용민의 입에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있지도 않았다.
공포에 잠식되어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오금이 떨리며 바지춤에서 노란 액체가 나오기도 했다.
‘끝났군.’
이제 황용민은 류민 앞에서 찍소리도 못할 것이다.
인벤토리에서 [타나토스의 검은 낫]까지 꺼내 들며 위엄을 보였으니.
‘어디 가서 떠들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떠들어봤자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테니.’
사람이 손에서 낫을 만들어 냈다?
그런 말을 해봐야 믿을 사람도 없고 미친놈 취급받기 망정이다.
원래 또X이라 평가받는 황용민이었기에 더더욱 믿을 사람은 없으리라.
봐라.
지금도 미친놈처럼 중얼거리지 않는가?
“은… 낫…….”
“응?”
“검은… 낫…….”
흠칫.
난데없는 검은 낫이라는 발언에 류민이 놀랐다.
이 세계는 검은 낫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
‘아…… 닉네임을 부른 게 아니라 이 낫을 보고 말한 건가?’
하긴 황용민이 자신의 닉네임을 알 리가 없다.
이곳, 102번째 세계선은 생존게임이 벌어지지 않은 세계.
천사든 플레이어든 닉네임이든.
그런 걸 알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류민의 눈은 다시금 휘둥그레 떠질 수밖에 없었다.
“류민…… 검은 낫…… 생존게임…… 플레이어…… 천사…….”
결코 황용민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단어가 줄줄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지? 저 단어들을 어디서…….’
검은 낫은 낫의 생김새를 보고 말했다 치자.
하지만 다른 단어들은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어려웠다.
류민은 즉시 황용민의 속내를 읽어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던 중얼거림이 머릿속으로 또렷하게 들려왔다.
-내가 생존게임을 했었다고……? 매달 이계로 영혼만 전이되어서……? 검은 낫과 함께……?
류민의 동공이 확장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황용민이 생존게임에 대해서 알지?’
이곳에서 생존게임에 대해 아는 건 자신뿐이다.
일어나지 않은 정보를 아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류민은 좀 더 황용민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녀석의 머릿속이 아주 복잡하다.
‘뭐지? 주제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생각을 떠올리고 있어. 마치 정보가 주입되는 것처럼.’
자세한 건 황용민에게 캐묻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늦었다.
털썩!
놈이 기어코 정신을 놓고 기절해 버렸으니까.
“야, 황용민. 일어나. 황용민.”
툭툭 건드려 깨워봤지만, 황용민은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낫을 집어넣고 곰곰이 상황을 정리해 봤다.
이 세계의 황용민은 다른 세계의 황용민과 엄연히 다르다.
황용민이 플레이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는 없다.
절대로.
‘뭔가가 잘못됐어.’
세계선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세계의 정보가 떠오를 리는 없지 않은가?
‘안 되겠어. 크로노스에게 물어봐야지.’
류민의 손에는 이터널 아이템인 영혼의 건틀릿이 있다.
신족을 죽여서 영혼을 갈취해, 그 영혼의 능력을 사용하는 영혼 귀속 아이템.
과거에는 수많은 신들을 붙잡아 놓고 능력을 사용했었다.
창조의 권능부터 파괴의 권능까지.
하지만 지금은 건틀릿에 있던 신족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자체적으로 만든 생존게임에 집어넣어 버렸다.
하여 더 이상 권능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이었으나.
‘한 가지는 남아 있지.’
바로 크로노스가 가졌던 시간의 권능.
류민은 크로노스의 영혼만큼은 풀어주지 않았다.
두고두고 쓰겠다는 듯 건틀릿에 고이 저장해 둔 상태.
부모님이 살아계신 시간대로 회귀하고 생존게임이 벌어지지 않는 세계선을 만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짓이지만.
-이봐, 크로노스.
건틀릿에 대고 물은 거였지만, 실제로 류민의 손은 깨끗했다.
영혼에 착용된 건틀릿이라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실로 오랜만이군. 이런 감옥에 가둬놓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건.
-물어볼게 있어서 불렀다.
-대답하면? 날 풀어줄 건가?
-미쳤다고 풀어주겠냐?
-하긴. 천하의 검은 낫이 그럴 위인은 아니지.
-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싫다면?
-그럼, 분자 단위로 소멸당하던가. 아니면 너도 인간이 되어서 너희 부모님처럼 내가 만든 생존게임에 참가할래?
-…….
협박은 통했다.
크로노스도 영혼이 소멸할 때의 고통에 대해선 알고 있으니까.
아니면 생존게임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고.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물어라.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선 대답해 주지.
류민은 방금 일어났던 일을 크로노스에게 설명했다.
-흐음……. 이 세계의 존재가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를 뱉어냈다라…….
-그래. 속마음을 읽어보니, 마치 정보가 강제로 주입되는 느낌이었어. 이에 대해 뭔가 짚이는 거 없어?
-아무래도 정보 동기화가 일어난 모양이군.
-정보 동기화?
-다른 세계선의 인간이라도 이쪽의 인간과는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동기화하기에 적합한 몸인 거지.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아마도 다른 세계선의 정보가 이쪽 세계선으로 흘러들어온 것 같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거지?
-세계선이 붕괴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세계선… 붕괴?
-네가 만들어 냈던 세계선 중의 하나가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세계선 하나가 무너졌고, 그곳에 살던 황용민의 정보가 이쪽 세계선으로 넘어왔단 말인가? 서로 동기화가 된 육체는 정보 공유를 이룬 거고?
-그렇다. 이해를 잘하는군.
다른 세계선이 붕괴하면서 흩어진 기억의 파편이 이쪽 세계선의 황용민에게 흘러들어 왔다?
-설마 다른 사람들도……?
-아마 그럴 거다. 어떤 세계선이 붕괴했는지는 시간의 권능으로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102번째 세계선으로 들어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멀쩡한 세계선이 왜 붕괴한 건데?
-아마 누군가 간섭했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짚이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그래, 그 사람밖에 없겠군.
크로노스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차원의 신, 데오란트. 녀석의 짓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