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9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17화
17. 소집 명령
난데없는 소집 명령이었지만 시드들은 불만을 품지 않았다.
통솔자인 그를 따르는 것이 데오란트 님을 존중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여긴가?”
시드들은 따분했다.
소집 명령이 반가울 정도로.
“왔나?”
“반갑소. 그대가 우리의 통솔자인 아르키자르요?”
“그렇다.”
“무슨 일로 우릴 모은 거요? 급한 일이라는 건 또 뭐고?”
“그건 전부 모이면 알려주도록 하지.”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시드들이 속속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아르키자르가 흘리는 주파수 신호를 찾아 움직였고 곧 대한민국 어느 산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 다 모였나?”
머릿수를 세어보던 아르키자르는 자신을 포함한 열 명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원래는 죽은 두 명의 시드를 포함해 12명이 파견되었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운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모이지 못했을 테니.’
호스트에 이어 시드까지 사냥하러 다니는 검은 낫.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면 한시가 급하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시드들은 태연자약했다.
몇몇은 왜 모이라고 했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설명할 필요성을 느낀 아르키자르가 입을 열었다.
“먼저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이렇게 모여주어서 고맙다. 그대들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함이지.”
“우리를 위협해? 그게 무슨 소린지?”
“그대들은 이 땅에 오고 나서 호스트의 신호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아르키자르의 질문에 시드들은 하나같이 의문을 느껴야 했다.
“음…… 그러고 보니 호스트의 신호를 느껴본 적은 없어.”
“난 저번에 느꼈었는데 금방 꺼졌었어.”
“지금은 잘 안 느껴지는데.”
“멀리 있어서 신호가 안 잡히나 보지.”
“그게 아니다.”
아르키자르는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주변 호스트가 감지되지 않는 이유는, 모조리 죽었기 때문이다.”
“죽었다고?”
“호스트가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
“열등한 존재가 스스로 괴멸해 버렸나?”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정답에 근접한 이는 없었다.
보다 못한 아르키자르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검은 낫이라는 이름의 인간이 있다.”
“검은 낫?”
“그자가 전 세계의 호스트들을 사냥함은 물론 우리 시드까지 죽이려고 설치고 있지. 이미 볼루아크와 루카이누라는 이름의 시드 둘이 희생당했고.”
씁쓸한 어투로 말했으나 그 누구도 아르키자르의 말을 믿지 못했다.
“인간이 뭘 어쨌다고?”
“허풍이 과하군.”
“이봐, 아르키자르. 남는 게 시간이라지만 그렇다고 자네의 헛소리를 들어줄 시간은 없다네.”
“헛소리가 아니다. 나는 조금 전까지도 그와 싸우다가 간신히 죽을 위기를 모면했다.”
“통솔자가 인간에게 당해?”
“소설을 쓰고 자빠졌군.”
진실을 말했음에도 아홉 명의 시드는 믿지 않았다.
아르키자르의 주장이 너무도 터무니없게 들렸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겠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검은 낫은 플레이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다. 시공의 틈새를 만들어내는 건 물론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도 있지.”
“아무리 심심해도 그렇지, 우리를 모아놓고 헛소리를 진실인 양 말하면 재밌나?”
“헛된 망상을 들어줄 사람을 구하는 거라면 저기 병원이라도 가 보시게. 인간들 세상엔 정신병자들을 모아놓은 병원이 있다고 하니까.”
시드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아르키자르를 비꼬았다.
호스트와 달리 지능이 있는 그들이었기에 오히려 아르키자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의심하고 불신했고 심지어는 함정이라 여기는 시드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안 믿을 줄은 몰랐는지 아르키자르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대들에겐 진실만을 말했거늘, 대체 왜…….”
자조적인 말을 읊조리며 아르키자르가 탄식하던 그때였다.
“원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
갑작스레 들린 제삼자의 목소리에 고개가 위로 꺾였다.
“거, 검은 낫!”
하늘에서 검은 날개를 펼치며 내려오는 류민의 모습은 흡사 사신과도 같았다.
다른 시드들에겐 저게 뭔 까마귀 인간인가 싶었지만.
“저건 또 뭐야?”
“등에 달린 건 날개야?”
“방금 아르키자르가 검은 낫이라 부르던데?”
“저 녀석이 검은 낫이라고? 호스트를 사냥했다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나?”
덜덜 떠는 아르키자르의 반응을 보면 거짓은 아닌 모양.
그럼에도 여전히 의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시드들을 향해, 류민이 미소 지었다.
사신의 미소였다.
“말해도 못 믿을 땐 극약처방을 내려야지.”
딱!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 환경이 어둠에 삼켜졌다.
“뭐야!?”
“왜 갑자기 밤이 된…….”
“그게 아니야!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거라고!”
“그러고 보니 여긴 시공의 공간이잖아?”
“왜 우리가 시공의 틈으로……?”
그 순간 시드들은 떠올렸다.
허황한 헛소리로 치부했던 아르키자르의 주장을.
“그, 그러고 보니 검은 낫이 시공의 틈새를 열 수 있다고 했지.”
“그럼, 진짜로 저놈이……?”
자신이 어디에 갇혔는지 파악한 시드들이 한 남자를 주목했다.
당황한 기색 없이 홀로 여유만만한 웃음을 짓는 검은 낫이라는 인간이었다.
“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다니까? 이렇게 딱 경험시켜 주는 게 낫지. 안 그래 아르키자르?”
“……내 이름도 알고 있었나?”
“그럼.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애당초 너를 풀어준 것도 다른 시드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는데?”
“뭐……?”
그제야 아르키자르는 깨달았다.
자신이 검은 낫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음을.
“그, 그럼 일부러 날 놓아준 거라고? 에너지가 없어서 결계를 풀었던 게 아니라?”
“애당초 권능에는 에너지가 필요치 않아. 필요하다 해도 내가 가진 테라면 충분히 충당할 수 있고.”
“테라? 인간이 테라를 지니고 있다고……?”
신들만 가지고 있는 에너지인 테라를 보유하고 있다?
그 말은 겉으로는 인간의 냄새를 풍겨도 신과 다름없다는 뜻.
아르키자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 어쩌면 난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죽을지도가 아니야.”
생각을 읽듯 대답하자 흠칫 놀라는 아르키자르.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말은.
“너흰 이 자리에서 모두 죽는다.”
사신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 * *
“커허…….”
울컥 검은 액체를 토하던 아르키자르의 머리를 향해 류민이 손가락을 겨눴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파지지지지직!
고압 전류를 쏘아내 완전히 태워 버렸다.
“이걸로 10마리 다 잡았군.”
류민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듯 훑어봤다.
여기저기 시드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새까맣게 태워진 채로.
“이전에 잡은 놈들까지 치면 12마리인가?”
시드 12마리와 호스트 300마리.
류민이 요 며칠 만에 전 세계를 이 잡듯이 뒤지며 처리한 숫자였다.
‘이걸로 세계선 붕괴는 막았군. 적어도 이곳은 말이지.’
한시름 덜었으나 그뿐이었다.
차원의 신 데오란트는 세계선 곳곳에 시드와 호스트를 뿌려두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으니까.
츠츠츠-
시공의 결계를 해제한 류민은 빛의 속도로 움직여 동생이 있는 집까지 단번에 도착했다.
“앗! 깜짝이야. 형!”
“다 끝내고 왔어.”
“끝내고 왔다니? 호스트와 시드를 전부 정리했단 말이야?”
“응. 이제 세계선 붕괴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데오란트가 다시 돌아오면 또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모르는 눈치야. 알았다면 벌써 모습을 드러냈을 테니.”
“정말 잘됐다!”
괴생물체를 모조리 제거했다는 말에 류원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고생 많았어, 형! 형이 또 세계를 구했구나. 정말 대단해!”
“뭘 이 정도 가지고.”
“괴물은 다 잡았고, 이제는 뭐 해야 해?”
“뭐 하긴. 데오란트가 있을 만한 세계선으로 다시 이동해야지. 그곳에서 시드와 호스트가 있으면 막아야 하고.”
“아…….”
류원의 목소리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할 일이 끝난 형이 이곳에 남을 이유는 없다.
류원은 그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함께 평소처럼 지내다 보니 망각한 것이다.
지금 보는 검은 낫은 예전의 검은 낫이 아니었는데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던 류민이 동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 일이 끝나는 대로 다시 한번 들를 테니까.”
“어? 정말?”
“정말이지. 내가 빈말이라도 한 적 있어? 모든 일이 끝나면 반드시 이쪽 세계선에 들를게. 동생만 혼자 남겨두는 나쁜 형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게 달래주어서야 류원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번졌다.
“데오란트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진 알아?”
“몰라. 하지만 놈의 얼굴은 알지.”
“어떻게? 만나 본 적도 없다며.”
“그래도 알아. 과거를 읽었거든.”
류민은 아르키자르를 죽이기 전, 그의 과거를 엿봤다.
초월자 시스템 엘시스의 기능 중 하나인 [리와인드]를 통해서.
“대상의 과거를 테이프 감듯 되감아 보는 기능이 있어. 그걸로 그 괴물이 데오란트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지.”
“어떻게 생겼어? 신이니까 유령처럼 생겼나?”
“아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던데?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류민이 본 데오란트는 신선처럼 흰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의 모습이었다.
이후 얼굴과 이름을 아니 추적이 통할까 시도해 봤지만 역시 먹히지 않았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 그런지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 특정할 수도 없었고.
‘이거 세계선 곳곳을 다 뒤져야 할 판이야.’
또다시 사막에서 바늘 찾기 급의 임무가 닥쳤으나 류민은 낙담하지 않았다.
적어도 진전은 있었으니까.
‘세계선의 붕괴도 막았고, 시드와 호스트에 대해서도 파악했지.’
더구나 데오란트의 얼굴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 정보를 토대로 다음 세계선에선 더 빠르게 움직여야겠어.’
데오란트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마나 걸릴진 몰라도 내가 올 때까진 잘 지내고 있어. 또 목에 밧줄 감는 허튼짓은 하지 말고.”
“에이, 안 그러지. 형이 돌아올 걸 뻔히 아는데.”
“내가 언제 돌아올 줄 알고?”
“…….”
하긴 차원의 신을 막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인 만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세계선 곳곳을 돌아다녀야 할 판이었으니 더욱이 그랬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어. 말했듯이 세계선의 시간은 모두가 다르게 흘러가거든. 내가 수많은 시간 끝에 데오란트를 처리해도 이쪽에선 고작 며칠이 지났을 수도 있단 소리지.”
“그렇구나…….”
“그렇다고 나만 기다리지 말고 뭐라도 해. 18억 명이 죽었다고 세상 끝난 거 아니잖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세상엔 여전히 60억이 넘는 인류가 있었고 이곳에서 류원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형의 조언은 류원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전처럼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알았어, 형. 나 이제 정신 차렸어. 목숨 끊는 건 진짜 못 할 짓이더라.”
“알았으면 됐어. 그럼, 이만 헤어지자.”
“잠깐만. 이번엔 어느 세계선으로 가게?”
그 질문에 역으로 류민이 고민했다.
“음…….”
그리고 결정 내렸다.
‘거기로 가 볼까?’
속으로만.
“간다.”
“말 안 해줄 거야?”
“비밀이야.”
그리 말한 류민이 시간의 권능을 사용했다.
그러자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형?”
혼자 남아 형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로 갔나 보네.”
아쉬웠으나 전처럼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은 없었다.
언젠가 돌아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형. 빨리 돌아와야 해.”
중얼거린 류원은 씩씩하게 일어났다가 다시 침대로 향했다.
잠이 너무도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