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59
제158화
강설은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프래넌에게 시선을 보냈다.
‘…나를 왜?’
프래넌이 강설에게 기껏 성위의 제자라는 특수한 위치의 신분을 던져주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강설은 현실을 잘 알았고 그래서 프래넌이 그에게 마법적인 스승이 되어주지 않을 거란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전이자의 스승을 자처하는 것일까?
‘무조건 데려가겠다는 건가?’
사실, 여기서 철사자 대주와 충돌을 일으켰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강설의 처우였다.
철사자 대주는 명백히 이끄는 세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강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아마 철사자 대주 또한 누구나 아는 이 사실을 이용해 일부러 충돌을 일으키려 한 것이 분명했다.
충돌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전이자인 강설이 이 원정에 참여하기가 상당히 껄끄러워질 테니까.
강설은 모두 그런 속사정을 대강은 짐작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가끔은 뻔히 보이는 수일지라도 사안이 절박하다면 눈을 가릴 수도 있는 법.
천칭의 성위 중 한 명인 카르테진이 말했다.
“드, 드디어 제자를 들일 셈인가?”
또 다른 성위인 리드웬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반응이 카르테진과 약간은 달랐지만.
“그런데… 전이자라니? 하필 전이자라니?”
“그, 그렇지. 굳이 전이자를 제자로 들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 혹시 생각이 있다면 천칭의 아이들 중 괜찮은 아이를….”
프래넌은 덧붙인 카르테진의 말을 딱 잘라 거절했다.
“집어치우게. 나는 내 사는 방식대로 살 테니. 나는 전이자든 천칭의 아이든 그 신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네.”
카르테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태도를 바꾸었다.
“그렇지. 비록 전이자라고 할지라도 일단 마음이라도 먹은 게 어딘가? 탑의 입장에서는 프래넌 개인의 성취가 사라지는 게 가장 위험한 일이니 말이야.”
“하하하! 그래도 드디어 후세에 가르침을 전할 생각이라니, 이런 좋은 일이 있나?”
“그래, 유린의 일 때문에 아예….”
기분이 좋아진 카르테진이 유린의 이름을 입에 담자, 프래넌이 대화를 일축했다.
“그만, 그녀의 이야기는 굳이 이런 자리에서 꺼내지 않는 게 좋아 보이네.”
“음, 그렇지….”
성위들의 이야기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다가 잠시 대화가 멈춘 틈을 타 용병대의 대주 한 명이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래서 그 알카트론인지 뭔지 거기까진 어떻게 진입한다는 거지? 일단 국경을 한 차례 더 넘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
난쟁이 요핌바가 답했다.
“그렇지. 먼저, 말해두겠지만 이건 굉장히 시간을 다투는 일이고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야. 모두 각오가 없다면 알카트론까지 향하는 길에는 함께할 수 없어.”
“뭐? 그 정도라고? 어째서? 유물회가 길을 뚫어놓았다면서? 거기를 통과해 알카트론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요핌바가 굵은 목을 긁적이며 곤란해했다.
“그게… 우리 쪽 정예 선발대가 얼마 전에 확인했는데, 산사태 때문에 미리 정비했던 길들이 전부 엉망이 됐어. 덕분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가야 해.”
“뭐?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는 동안 천칭께서는 이미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겠군.”
“말을 함부로 하면 곤란해. 여긴 엄연히 천칭이니까.”
“그렇잖아, 할 말은 해야지. 들어보니 우리의 문제는 부족한 전력이 아니야. 이 근방에 천칭에 협조적인 집단 중 이만한 전력이 또 있을 것 같아? 다들 천칭의 위기에 한달음에 달려와 준 거라고. 문제는… 이런 전력이 모였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확률이 높다는 거지.”
그 말을 들은 요핌바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마치 이 말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표정.
“음… 그래서 말인데… 음… 사실 문제는 하나 더 있어.”
“뭔데?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 시간 아까우니까.”
“수색조를 둘로 나누려 한다.”
“뭐?”
“왜?”
“우회로에서 길을 뚫는 게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 우회로가 제대로 가동하더라도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 한마디로 지금 인원이 전부 그곳으로 향했다간 나머지는 대기만 하다 끝날 판이야. 그래서 가능성이 있는 길에 또 다른 수색조를 구성하자는 거지. 마침 전력도 꽤 여유가 있는 편이니까.”
“어떻게? 둘로 쪼개봤자 길은 하나라며?”
“아니지, 길은 처음부터 두 갈래였지. 우리가 애써 잊고 있었을 뿐이지.”
“…설마?”
“아니지, 그건 아니야!”
착석한 모든 이들이 술렁였다.
모두의 짐작대로, 요핌바는 문제의 화두를 꺼냈다.
“검둥우레 부족이 점거한 길을 이용할 생각이야.”
“푸하하하하! 미쳤군, 유물회는 모조리 정신이 나간 건가? 차라리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 게 낫지, 마물에게 뜯어먹히는 건 사양이야.”
“나도 동감이야, 검둥우레는 트롤 중에서도 꽤 강한 놈들이잖아?”
“거길 미쳤다고 기어 들어가?”
요핌바가 곤란해했다. 원정대의 반발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격렬했기에.
“트롤은 마물이야. 설령 우리가 멀쩡히 지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낸다고 하더라도 언제 돌변해서 우리를 가마솥에 집어넣을지 모른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
철사자 대주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더니 마엘을 걸고넘어졌다.
“어이, 넌 어떻게 생각해?”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말이야. 같은 트롤이잖아?”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트롤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닙니다. 대개의 트롤은 호전적인 성향을 드러내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 또한 존재합니다. 또,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 그 호전성 또한 통제되는 일도 종종 있고요.”
“그래? 검둥우레의 지도자들은 어떤데?”
“형제… 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정보는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완전히 백지잖아?”
“저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들과 접점이 없었으니까요.”
마엘이 이렇게 말하며 강설을 흘깃 쳐다보았다. 강설은 그의 시선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그림자 공간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검둥우레의 족장과 접점이 있을 만한 존재, 바위 어금니 부족의 대족장 쟈마드였다.
‘듣고 있었지? 검둥우레의 지도자를 알아?’
– 알지, 웅골라와 웅구스 형제인데 괜찮은 녀석들이다.
‘얘기를 나누면, 원정대를 안전하게 보내줄까?’
– 글쎄… 본 지 워낙 오래됐기에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아는 놈들이니 대화가 통할지도?
‘음… 그래?’
철사자 대주가 말했다.
“차라리 비무장으로 마물과 싸워 이기라는 게 더 현실적인 제안 같은데….”
요핌바가 화를 억누르며 그에 답했다.
“뭐,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지. 그래서 말인데, 이쪽은 희망자만 받을 생각이야.”
“자살 희망자로군. 난쟁이 너는 어디로 갈 생각이지?”
“나? 나는 우회로 쪽이지. 유물회에서도 우회로의 원래 지형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니까. 그중 하나가 나고.”
“좋아, 나도 그쪽으로 간다. 그리고 조건을 걸지.”
“…조건? 조건이라니?”
“우회로에 저 트롤과 여기 이 전이자랑은 가지 않겠어. 둘은 원정에 빠지든지 검둥우레 자살조 쪽으로 합류하라고 해. 난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이랑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일 안 하니까. 싫으면 거부해도 좋아. 철사자는 바로 원정대에서 빠질 테니까.”
“무슨 그런 억지가….”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최선이야. 이쪽도 짊어지고 있는 목숨이 많으니까.”
– 키야아아아 마물 요리 함 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긴데 ㅋㅋㅋ
– 마 함 무 봐라, 쥑인다 안 카나 ㅋㅋㅋ
– 이걸 마엘을 거절하네 ㅋㅋㅋ 사실상 달리는 버스에서 유리창을 깨고 탈출한 거나 마찬가지ㅋㅋㅋ
– 버스 기사 마엘 어리둥절;;
뜻밖의 제안에 모두 당황하여 강설과 마엘의 얼굴만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들이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철사자가 이 원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가 정해졌으니.
그런데, 강설과 마엘은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둘의 입에서 동시에 답이 튀어나왔다.
“좋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좌중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저, 정말 그래 줄 건가?”
“검둥우레라니까? 괜히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걸지 마.”
“그래, 철사자 대주도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괜찮습니다, 저희는 검둥우레 쪽으로 향하겠습니다.”
강설은 철사자의 조건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둘 중 어느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다만, 선택의 기준은 있었다.
‘마엘과 함께할 수 있는 길, 거기가 훨씬 안전할 거다.’
마엘은 평범한 트롤이 아니었다.
요그나툰에서 그의 신비로운 힘을 경험했으니, 이번 선택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 이거이거 위험한 콤비가 탄생했구만!
– 어이! 이대로 괜찮겠냐고 판데아! 이 콤비가 너를 부술지도 모른다고?
– 판데아 : 큭… 하필 그 둘이…
철사자 대주는 기가 찬 듯이 둘을 바라보다가 차멜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순례자들은 반으로 나뉘어 행동할 거지만… 교구장님은 어디로 향하실 겁니까?”
“저는….”
사람들은 그녀가 당연히 철사자 대주가 있는 곳으로 향할 거라 생각했다. 우회로 쪽의 전력이 누가 보아도 월등해 보였으니까.
차멜리가 불쌍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검둥우레 쪽으로 향할 생각이에요.”
“…말도 안 돼.”
까드득…
철사자 대주는 억지로 화답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들 외에도 내편 네편 나누어 조를 구성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대강의 전력이 나누어지자 요핌바가 불평했다.
“음… 검둥우레 쪽이 좀 처지는데….”
“어쩔 수 없지, 희망자만 받겠다며?”
“좋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 다음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요핌바가 천칭의 성위들을 바라보았다.
“이번 원정의 책임자는 누가 맡아주실 건지요?”
탑주가 실종됐다고 하여 성위 셋이 모두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그들이 모두 죽기라도 한다면 천칭은 암흑기에 빠질 것이다.
“날세.”
대답은 곧장 들려왔고, 그 대답의 주인은 프래넌이었다.
“뭐? 프래넌! 자네가 나서는 게….”
“우웁….”
파팟-!
갑작스럽게 누군가 헛구역질을 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프린?’
강설은 방금 나간 여인이 프린이었음을 확인했다.
뒤이어, 그녀의 스승인 블레인이 따라나서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자가 몸이 아픈 듯하여 속히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나가보게.”
끼이익…
‘왜 저러는 거지?’
프린은 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다. 오히려 이곳을 구경하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방방 뛰어다녔었다.
강설이 그런 의문을 품을 때, 원정 책임자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도 각오를 다질 때야. 천칭이 어려운 때에, 불러주어서 고맙네.”
“…정말 자네가 갈 생각인가?”
“그러고 싶네.”
“도망치려는 게 아니고?”
“…….”
“유린에게 일어난 일에서 도망치려는 게 아니고? 그날로부터… 도망쳐 죽으려는 게….”
프래넌이 싱긋 웃었다.
“도망칠 거였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네.”
“…….”
“확인하기 위해 온 거야. 보내주게.”
성위 리드웬과 카르테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러면….”
“물어볼 필요도 없네. 난 내 제자와 같이 가겠네.”
“흐음….”
“그럼 우회로 쪽은 요핌바와 철사자 대주께서 이끌어줘야겠군.”
요핌바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흥, 일단은 전부 정해졌으니 일어나겠습니다. 트롤과 전이자랑 한 공간에 있었더니 머리가 조금 아파서요.”
“저, 저런….”
드르륵…
철사자 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런데.
【뾱… 뾱… 뾱… 뾱….】
비탄이 그의 발걸음마다 갓난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효과음을 넣어 그 모습을 볼품없게 만들었다.
“이… 이… 후우… 다음에 봅시다.”
끼이익…
철사자 대주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화를 낼 기력조차 없는지 별말 없이 문을 열고 사라졌다.
강설이 등불을 쓰다듬었다.
그 나름의 칭찬의 표현이었다.
비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크크큭… 내 악행을 칭찬하다니, 네 타락도 머지않았다. 앞으로… 곧이야.】
* * *
다다다…
블레인이 탑을 뛰어다니며 프린을 찾아다녔다. 금방 찾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그래도 기어코 찾아냈다.
그녀는 후미진 구석에 처박혀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프린… 여기 있었구나.”
“…스승님.”
블레인은 프린의 눈을 바라보았다.
스으윽…
몽롱한 기운을 뿜어내는 눈.
“본 거니?”
“예… 보였어요. 보고 싶지 않았는데… 보였어요.”
그녀는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아니, 미래라고 생각되는 어스름한 환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또렷하지 않았고 의미를 알기 어려웠지만 대체로 잘 들어맞았다.
그녀는 불길한 미래를 보고 난 후에는 꼭 이렇게 어딘가로 숨었다.
“무엇을… 보았어?”
“말하기 싫어요… 말하면 안 돼요…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실 거잖아요. 저는 저주받지 않았어요.”
프린에게 이 능력은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다.
물병자리 마탑이 그녀를 거두기 전, 그녀는 저주를 예언하는 아이라고 불렸으니까.
“괜찮다, 괜찮아. 우리는 그들의 일에 개입하지 않을 거다. 오로지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저… 지켜볼 뿐이야.”
“흑… 흑….”
“말해다오, 네가 본 장막 너머의 앞날을….”
프린이 입을 열었다.
“피와 송장… 모두의 죽음이 보였어요.”
“…….”
“이 일에 가담한 많은 사람이… 죽어요. 너무도 끔찍한 미래예요….”
블레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알카트론은… 아무래도 평범한 유적이 아니겠죠? 이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 이상해요… 너무… 무서워요, 스승님.”
“프린, 너무 끔찍한 악몽은 어떻게 한다고 했지?”
“방에 넣어… 문을 꼭 닫는 상상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 맞다. 그리고 어른을 찾는 거야.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지?”
“네… 나는… 아이예요.”
“말해다오, 이 끔찍한 악몽의 방을 수습할 수 있는 어른이 누구인지.”
“그건….”
스으으으…
프린의 눈이 또다시 몽롱해졌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그가 어른이에요. 그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빛이 보였어요.”
블레인이 그 대답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