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30
제329화
“흥….”
대주술사 크롬이 그런 시선을 느끼고 강설을 경계했다. 강설은 재빨리 수정구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목적이 수정구라는 사실을 감추었다.
‘이건 기회다.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
아니, 하늘에 어떤 놈들이 살고 있는지 이제는 알았으니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저걸 이곳에서 별문제 없이 손에 넣는다면….’
이리자드와의 결전은 이미 맹우와 약속한 것. 그것을 어길 수 없는 이상 새벽녘의 수정을 이곳에서 얻는다고 하더라도 보상을 먼저 얻느냐 나중에 얻느냐의 차이였다.
그래도, 확실하게 손에 들어올 수 있는 물건이라면 지금 얻어두는 게 좋을 듯했다.
– 저것이로군… 과연…
우르가 음흉한 목소리로 강설을 종용했다.
– …저걸 당장 어떻게 빼앗을지를 고민해봐야겠군.
강설도 그 말에 깊은 공감을 표했지만, 상황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서리아귀의 영역이야, 함부로 행동하면 위험해질 거야.’
남의 집에 와서 행패를 부렸다간 두더지는 물론이고 서리아귀까지 적으로 돌릴 우려가 있었다.
‘마땅한 방법이 없으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지만….’
강설에게는 그림자 강탈이라는 아주 훌륭한 도둑질 능력이 있었다. 이 그림자 강탈은 놀랍게도 강설의 경지가 상승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능력의 경지가 상승했다.
여전히 대상과 적절한 충돌이 있을 경우, 시도 때도 없이 발동하기는 했지만, 임의로 발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 이젠 정말로 도둑질이 가능해진 것이다.
강설은 이것을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품었다.
후에, 우르가 이 능력이 제멋대로 발동하는 부분 또한 고칠 수 있다고 말했으니 어차피 전이자들과 딱히 부딪히지 않는 지금에선 실보단 득이 많은 능력이었다.
“…….”
강설이 계속해서 크롬을 흘깃거리며 그와 접촉할 방법을 생각했다.
‘어정쩡하게 들켰다간 크게 후회할 것 같은데… 어쩐다?’
강설이 음흉한 속셈을 품거나 말거나, 대화는 진행되었다.
브론이 자크챠를 보며 웃었다.
“큭큭… 왜 성채를 내주고도 잠잠하나 했더니, 여기들 있었군.”
“브론… 정말로 살아 돌아왔구나.”
“나를 아나?”
“나, 자크룸의 아들이다.”
“아, 그 녀석. 이제 보니 좀 닮았군. 아니, 사실 거짓말이야. 두더지 생김새 따위 전혀 구분이 안 되거든.”
자크챠가 거느린 두더지가 말했다.
“끼이이익! 자크챠는 대장군이다! 자크챠는 젊어!”
“아! 그러셨군. 젊은 두더지 대장군이라… 큭큭… 그러고 보니 이리자드는 병졸 놀이가 취미였지.”
브론은 여유롭게 두더지 측 진영을 도발했다. 충분히 위험에 처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죽고 싶나?”
“이런, 기분이 나빴나? 한 번 죽었던 나를 곧바로 무덤으로 돌려보내려 하다니.”
“흥… 입만 산 자.”
“입도 죽었었어.”
강설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자크챠에 대해 평가했다.
‘대장군이라… 확실히, 다른 두더지들과는 다르네.’
느껴지는 기세가 굉장했다.
브론의 말처럼 두더지의 생김새 따위 알지 못했으나 젊다고 하니 꽤 젊을 것이다.
젊은 나이, 하물며 두더지인 녀석이 이 정도 경지에 대가 없이 올랐을 리가 없었다.
‘원신이 수작을 부렸을 텐데….’
대가 없는 힘 따위는 없다.
아마도 자크챠는 적어도 죽기 전에는 그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크챠의 몸집이 눈에 들어왔다. 트롤보다는 작고, 인간보다는 큰 몸집.
서리아귀와 비교했을 땐 초라했지만 그들도 충분히 흉측한 괴물이었다.
철컥…
자크챠가 허리춤에 매달린 검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지금 여기서 널 무덤으로 되돌려보낼 수 있다.”
쿵…
쿵…
스콜라가 자크챠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두더지, 죽을 자리를 잘 골라라. 이곳엔 이리자드가 없으니 울면서 이를 수도 없으니 말이야….”
“스콜라…인가. 그렇군. 이리자드 님의 말이 사실이었어.”
“…뭐?”
“운명이 뒤틀렸다고, 살아 돌아와서는 안 되는 자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강설이 미간을 꿈틀했다.
‘알면서도 막지 않은 건가?’
원신의 파편인 이리자드라면, 브론의 계획 정도는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막지 않았기에 의아한 심정이었는데 자크챠의 입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흥!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막지 않았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 하셨다. 대신, 눈여겨보라 하셨지.”
휙…
자크챠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멈춘 곳은 강설이었다.
“너인가, 인간?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는 녀석이?”
“…….”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
졸지에 자크챠의 지목을 받은 강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열세다.’
스콜라와 강설, 브론이 있었지만 부르툴을 포함하여 다른 두 전이자들은 솔직히 기대하기 어려운 전력.
반면에 저들은 대장군을 비롯하여 장군들이 총출동이라도 한 듯이 막대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아마, 인근에 병력도 숨겨두었겠지.’
이시이와 예바가 바들바들 떨었다.
“싸, 싸우는 거야… 우리?”
“이런 얘기는 없지 않았나….”
그때, 얼어붙은 분위기를 우렁찬 목소리가 깨트렸다.
“크하하하! 가만히 구경이나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인내심이 없는 편이라….”
고오오오…
브람.
추방자, 서리아귀의 족장이 브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브론… 나의 형제.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하라.”
브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바로 옆에 두더지들이 있었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두더지와 이리자드를 쳐 죽이고 싶다. 힘을 빌려줘.”
“저, 저자가!”
“끼이이이익! 죽인다!”
두더지들이 그 말에 성을 내는데, 브람은 어째선지 웃기만 했다.
“큭큭… 큭큭큭… 크하하하하하하!”
“왜 웃는 거지?”
브론의 질문에 브람이 이렇게 답했다.
“두더지들도 비슷한 말을 하더군. 이봐, 자크챠! 네가 여기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다시 한번 읊어봐라.”
자크챠 또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빙하아귀를 쓸어버릴 생각이다. 힘을 보태면 후에 이리자드 님께서 치하하실 것이다.”
씨익…
브람이 흉악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아무래도 가만히 처박혀 있는 사이에 시끌시끌했나 보군. 그럼… 서리아귀가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까…?”
서리아귀의 선택에 많은 것이 달려 있었다. 실제로 이 추방자 무리의 규모는 강설의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이 브람이라는 자… 브란카의 힘을 물려받았어.’
실제 친형제인지는 정확히 듣지 못했으나 브람은 브란카를 참 많이 닮았다. 그 힘마저도.
“어쩐다….”
브람이 잠시 턱을 긁적이다가 미소를 지었다.
씨익…
“이러면 되겠군. 힘, 힘이다. 서리아귀는 힘 있는 자를 따르겠다.”
그 말에 브론과 자크챠가 동시에 답했다.
“두더지 정도는 점심 먹기 전에 해치울 수 있다.”
“빙하아귀는 이번에야말로 멸망할 것이다.”
“큭큭… 그래, 누구 말이 맞는지 나는 모르니 직접 봐야겠단 말이지.”
브람이 손을 휘저었다.
“싸워라, 이곳에서.”
“…….”
“…….”
“너희들이 직접 싸울 필요까지는 없다. 아랫것들을 내보내도 좋아.”
그 말에 두 우두머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좋다.”
“나쁘지 않군.”
뿌드득…
직접 몸을 푸는 브론과 달리, 자크챠는 그의 측근인 크롬을 쳐다보았다.
“제가 나서지요… 킥킥킥….”
“크롬. 그래, 네가 질 리 없겠지.”
“이리자드 님이 하사하신 힘이 이 늙은 몸을 깨웠습니다. 제가 어찌 주술사 따위에게 지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나서라.”
두더지 쪽은 크롬이 나서기로 한듯했다.
‘…쟈마드, 좋은 생각이 있다.’
강설이 쟈마드에게 떠오른 계획을 설명하자 쟈마드 또한 그 계획을 받아들였다.
– 재밌겠군. 녀석의 표정이 볼 만하겠어.
짧은 계획을 수립한 강설이 브론의 어깨를 두들겼다.
톡톡…
“응?”
“내가 나서지.”
브론이 강설의 반응에 놀라며 물러섰다.
“정말이냐? 쉽지 않은 상대로 보인다만.”
“그래, 이번엔 내가 나선다.”
브론은 자신이 나서겠다고 우기는 스콜라를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강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리아귀의 부족원들이 모두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낯선 이를 향한 경계, 그리고 어떤 힘을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까지.
많은 것이 담긴 그 눈빛들을 훑어보던 강설의 시선이 이제는 두더지 주술사 크롬에게 가 닿았다.
“킥킥… 이제는 인간까지 끌어들인 건가.”
“이런, 늙은 두더지까지 전쟁터로 내몰리다니. 그쪽 사정도 좋지만은 않은가 보지?”
“…미천한 녀석과 말을 섞다니 내가 어리석었군.”
“동감이다.”
휘리릭…
대주술사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서릿발이 휘몰아쳤다.
휘이이이이이이…
크롬이 브람에게 물었다.
“죽여도 되나?”
“상관없다. 가능하다면.”
강설도 무언가 질문하려다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싸움을 준비했다.
“킥… 키이익… 도망쳐도 되냐고 물으려던 거냐?”
“뭐, 좋을 대로 생각해.”
브람이 말했다.
“시작해라.”
콰직-!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크롬이 지팡이를 지면에 꽂았다.
그 순간, 지면을 덮었던 눈이 마치 뜀뛰기라도 한 듯이 전부 위로 튕겨 올랐다.
쒜에에엑-!
눈덩이 밑에 숨겨져 있던 얼음으로 만들어진 송곳들이 전부 강설에게 쇄도했다.
‘미리 숨겨둔 거군.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파츠즈즈즈즉-!
강설이 쟈마드와 순식간에 합일하여 대지의 갑옷을 뒤집어썼다.
파지직!
파지지지지직!
밤까마귀의 몸에 부딪힌 송곳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전부 깨져나갔다.
강설과 쟈마드는 주술사와 싸운 적이 꽤 빈번했다. 그러나 여태 경험했던 주술사들은 모두 육체적으로도 뛰어났기에 다소 거칠게 싸웠었다.
반면, 지금 눈앞에 있는 두더지 대주술사 크롬은 완벽하게 주술에 의존하는 타입이었기에 마법사를 상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큰 기술을 사용할 틈이 없어.’
파자자작-!
얼음으로 된 칼날이 밤까마귀에 와 부딪혔다.
크롬은 접근전을 불허하는 것처럼 강설을 향해 주술을 있는 대로 퍼부었다.
[크롬이 빙하 주술 : 빙어 낚시를 사용합니다.]
[얼음이 깨지면서 충격파가 발생합니다.]
[충격파에 휩쓸리면 상태 이상 : 기절에 노출됩니다.]
콰자자자작-!
사람 몸통만 한 얼음이 수도 없이 깨져나가며 밤까마귀의 시야를 막고 움직임을 봉쇄했다.
“킥킥…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렵지?”
“…확실히.”
크롬은 노련했다.
밤까마귀가 아닌 다른 전사를 상대로도 훌륭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이 정도로는 날 이길 수 없을 텐데?’
크롬이 앞서 펼친 주술들은 숙련된 전사를 곤란하게 할 수는 있지만,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롬이 빙하 주술 : 성에 그물을 사용합니다.]
[냉기에 노출된 적을 속박합니다.]
쩌저저저저적-!
크롬의 주술이 밤까마귀의 몸을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었다.
“킥… 끝이다.”
휘오오오오…
얼음으로 된 말뚝이 밤까마귀의 심장을 노렸다.
그때.
화르륵-!
[유황 주술 : 다한증을 사용합니다.]
[막대한 열기가 발생합니다.]
[열기는 상태 이상 : 화상을 유발합니다.]
치이이이이이…
빠가가각!
얼음덩이를 순식간에 부수며 나타나는 강설.
파아아악-!
날아오는 말뚝까지도 잡아챘다.
치이이이이…
말뚝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브람이 감탄했다.
“…재밌군. 다중 근원인가.”
반면, 크롬은 오히려 이죽거렸다.
“킥킥킥… 다중 근원? 제법이긴 하다만….”
크롬의 지팡이가 진동했다.
“이리자드 님의 힘 앞에선 그 무엇도 소용없다.”
스으으으…
크롬의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 브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저 힘? …설마!”
“네가 자랑하는 그 힘이 널 지켜줄 수 있을까?”
서리의 힘이 강설을 에워쌌다.
“음?”
[크롬이 주술 잠식을 사용합니다.]
[연결된 대상의 주술을 봉쇄합니다.]
끼긱…
끼기기기긱…
얼음으로 된 사슬이 생겨나 밤까마귀의 양팔을 휘감았다.
“킥킥킥! 어떠냐?”
“…….”
강설이 사슬에 휘감긴 채로 주술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끼긱…
끼기이이이익…
주술력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브론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이리자드의 힘이다! 놈은 주술력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얼어붙게 만들어!”
“그걸 알려준다 한들 뭐가 달라지지?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크롬이 이죽거리며 승리를 확신했다.
‘제법인데….’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주술력을 얼어붙게 만들어 아예 꿈쩍도 못 하게 만들다니.
벼락의 근원도, 서리의 기운에 대항하는 유황의 근원도 심지어는 가장 자신 있는 대지의 근원도 이리자드의 권능에 속수무책이었다.
‘…어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밤까마귀는 이내 손쉬운 해법을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자, 패배를 시인해라. 그렇지 않으면….”
쩌적…
쩌저저적…
주술 잠식에 밤까마귀의 모든 근원이 얼어붙는 와중, 단 하나의 힘은 홀로 활개를 쳤다.
휘오오오오오…
밤까마귀의 몸에서 막대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럴 수가!”
그 힘을 목격한 브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서리아귀 부족도 크게 동요했다.
“저건….”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지금 강설이 내뿜는 기운은 서리아귀와 깊은 관련이 있는 힘.
브란카의 고대 빙하 주술이었다.
팔과 연결된 얼음의 사슬이, 또 다른 얼음으로 뒤덮여갔다.
쩌저저저저저적…
[고대 빙하 주술 : 한겨울을 사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