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10
제409화
강설이 이용한 카스트랭은 다음 역에서 정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승객을 그곳에 내려주었다.
습격자들이 승객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부상자도 속출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르가 얼어붙게 한 녀석이 이 사태의 주모자 중 한 명이었기에 보안 요원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착실하게 제공하고 있는 듯했다.
덕분에 강설 일행이 보안 요원들의 정보 조합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었다.
“곧 빈 객실을 마련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알겠습니다.”
결국, 눈이 펑펑 내린 팔빈이라는 도시에 머물게 되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함께 움직일까요?”
강설에게 말을 걸어오는 실비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강설 일행에게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단한 자들이야… 심지어 아이까지….’
아이의 손짓 한 번에 덩치 큰 성인이 카스트랭의 단단한 유리창을 깨부수고 추락했다.
심지어,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별다른 죄책감이라거나 감정적인 동요가 보이지 않았다.
아, 한 가지 있다면 있겠지만.
계속 자두가 하나 사라졌으니 어떡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눈치이기는 했다.
‘오히려 강설이란 자는 평범한 축에 속하는 것 같아. 그래, 저 가면을 쓴 남자가 실질적인 무리의 대장일 거야.’
이름 있는 용병단의 비밀 행보이거나, 혹은 마법사인 것으로 보아 조디악의 거물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천칭자리 상징을 보유한 강설이란 자는 사실 그의 시중을 드는 일개 호위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강설이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할지 정하는 눈치였다.
실비아는 재빨리 파고들었다.
“팔빈은 종종 오가던 곳이었어요. 아마 이곳 야시장이 볼거리가 정말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노상 점포 거리가 모두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거든요.”
“…….”
“숙소도 꽤 멋들어진 곳을 알고 있는데… 여기 구획 정비가 꽤 엉성해서 잘못 찾으면 제대로 된 숙소를 찾지 못할지도….”
“…….”
“그, 그럴지도… 제가 없으면 조금 고생할지도….”
어흠…
괜히 알버트가 딴청을 부리며 자리를 비웠다. 그녀와 같은 자리에 있기 민망해서일지도.
생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 없던 실비아는 귀까지 빨개져 얼굴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가, 같이 구경하실래요?”
추운 겨울, 모피를 걸친 진주 같은 여인이 이런 제안을 해오면 거절하기 무척 어려웠다.
– 예!
– 무조건!
– 갑니다!
강설이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예. 그러죠.”
그의 호쾌한 대답에 실비아가 밝아졌다.
“그럼… 둘이….”
“탄시아가 좋아할 것 같군요.”
“…네? 아…… 그렇죠, 네.”
* * *
– 죽어라.
– 쓰레기.
– 넌 살아갈 자격이 없어.
– 제발 제게 양도해주세요. 저도 야시장을 참 좋아해요.
실비아는 강설과 야시장을 거닐며 가면의 남자에 대한 정체와 이모저모를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대가족의 관광이 되어버렸다.
“탄시아, 저것 봐! 이국의 도마뱀이야!”
“와! 색이! 색이 바뀐다!”
카렌은 탄시아의 친언니라도 된 듯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그녀에게 세상을 알려주었다.
“뭐? 진짜잖아? 이런 건 처음 봤어!”
“카렌도?”
“응! 제법이잖아, 도마뱀! 힘을 내!”
문제는… 본인도 세상을 알아가는 와중이라는 것.
“사탕이다! 사탕!”
“안 돼! 너무 단 건 이가 썩어!”
탄시아가 양손으로 입을 양쪽으로 벌렸다. 송곳니가 도드라진 귀여운 치열.
“나도 이가 썩어?”
“어… 썩나?”
이빨 썩은 용의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기에, 카렌은 주섬주섬 돈을 챙겨 사탕을 선물했다.
할짝… 할짝…
사탕은 총 3개를 샀다.
탄시아와 카렌.
그리고 남은 하나는 비탄을 위한 것이다.
“비탄! 선물이야!”
탄시아가 일행 중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놀랍게도 비탄이었다. 카렌보다도 오히려 더 높은 순위였다.
비탄은 사탕을 거절했다.
【사탕은 됐어, 나의 길엔 어울리지 않아.】
“…길?”
【나는 이제까지의 비탄과는 달라. 강설과 함께 고난을 경험하며 새로 태어났지! 위대한 성게는 무척 위대한 성게가 된 거야!】
어디서 배운 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동작을 취하는 비탄에게 사탕을 내미는 탄시아.
“응, 축하해. 사탕을 선물로 줄게.”
【오, 새로 태어난 나를 위한 선물인가? 고맙게 받지.】
할짝… 할짝…
자신이 했던 말을 금세 잊어먹은 비탄은 탄시아의 품에 안겨 같이 사탕을 핥았다.
【이것 봐라, 꼬마!】
“응?”
비탄이 점을 보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묘사했다.
【으뜨냐, 똑같지?】
“끄하하학! 똑같아! 응!”
탄시아가 합류하고 나서, 일행에겐 구심점이 생겼다.
어린아이의 웃음에는 그런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세상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하고 부드러운 힘일 것이다.
우르가 강설의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꼈지?”
강설이 우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죽일까?”
“이곳에선 내버려 둬, 우리가 목표가 아닌 듯하니.”
“흐음….”
“여차하면 내가 직접 나서면 돼.”
“그러든지.”
우르의 입에서 나온 말의 주제는 살인이었다. 돌려 말하지 않고, 단박에 살인이라는 주제까지 도달했다.
“까하하! 우르! 이거 봐! 물고기 꼬리가 신기해!”
“이런, 꼬마야. 세상엔 신기한 게 이것보다 훨씬 많다.”
“그래? 그래도 신기한 건 신기한 거잖아! 물고기 꼬리도 신기해!”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작은 물고기의 꼬리를 바라보며 우르가 말했다.
“뭐… 네 말도 맞다.”
강설은 잠시 우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칼날 같은 자.
지옥에서 마주했던 왕이자 강설의 대적자였던 이다.
그런 우르가, 시간이 흐르며 세상에 내리고 있었다. 강설은 이따금 그것이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을 증오하던 잔혹한 마도사가, 세상에 스며든다는 그 사실 자체가.
‘뭐… 괜찮겠지.’
예전이었으면 좀 더 심도 깊게 고민했을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설에게는 짧은 번뇌 이상의 무언가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건 그가 충분히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변화하든, 억제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야시장에서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카루나와 카렌, 그리고 우르와 비탄은 탄시아의 곁에 머물며 얘기를 나눴고 강설은 실비아와 대화했다.
상대에 대해 평가를 달리한 건 실비아뿐만이 아니었다. 강설도 실비아에 대한 평가를 고쳤다.
‘미셴 가문이라… 알아두면 쓸모가 있겠어.’
연방에 소속된 국가들이 모두 한때 동등한 힘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강대국의 유서 깊은 가문이 지녔던 힘은 때에 따라서 연방까지 그 힘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셴 정도면… 연방에 입김이 닿는 편이니까. 잘만 하면….’
그에 따라오는 정보도 무시할 수 없었고.
다만,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실 때문에 그녀와 가깝게 지내기가 꺼려졌다.
‘그런데 미셴 가문의 여식이 어째서 홀로 떠도는 거지? 강도로 위장했던 그자들도 실비아를 노렸던 것 같고….’
강설은 머뭇거리지 않고 그녀에게 물었다.
실비아는 잠시 당황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연구 때문에 잠시 타국에 가 있었어요. 뭐… 잘 풀리지 않아 금방 돌아오는 중이긴 하지만….”
“그랬군요.”
실비아는 묻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 말했다.
“돈 많은 여행객을 노리는 자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 위험한 지역은 용병을 고용했었는데 딱히 만족스럽진 않더군요. 특히나, 전이자 쪽은….”
그녀는 전이자를 혐오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강설이 그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꼭 여행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것 같더군요.”
“…아.”
모험심으로 포장된 중독 증세다. 늘 그런 자극을 찾아다니는 게 그들이었으니까. 그녀의 혐오엔 그래도 뿌리가 있었다.
강설이 물었다.
“그런데… 열차에서 당신을 노렸던 자들은 평범한 강도가 아닌 것 같던데….”
“미셴은 카스트랭의 개발과 밀접하게 관련된 가문이에요. 사실… 최근에 습격을 받았던 다른 귀족들도 모두 카스트랭과 연관된 자들이었죠.”
카스트랭과 얽힌 지저분한 사정이 있는 듯했다. 강설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는 사정이기는 했지만.
“저… 그래서 말인데….”
그래서인지 실비아가 적극적이었다.
“강설 님이 일행분을 설득해… 연방으로 향하는 며칠 동안만 호위를 부탁해주실 순 없을까요?”
– ㅋㅋㅋㅋㅋㅋ
– 너 말고 네 소환수…
– 사랑했다…
강설이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목적지라면….”
“쉬를렌까지요.”
가깝다.
“보상은….”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돌아가면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으니….”
그들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카루나가 다가왔다.
“탄시아가 피곤한 모양입니다.”
“그래, 돌아가자.”
야시장을 실컷 구경한 그들은, 숙소로 되돌아왔다.
숙소의 문 앞에서 강설이 일행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을래?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그러지.”
우르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탄시아는 승복하지 않았다.
“나도 같이 갈래!”
“그게….”
“나도 데려가!”
우르가 카루나에게 말했다.
“카루나, 그 방법을.”
“으음!”
카루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로 탄시아를 퍼 올렸다.
목마다.
카루나가 탄시아를 목마 태운 상태로 숙소로 향했다.
“높아! 높아아아!”
탄시아가 까르르 웃으며 거부하지 않았다.
“아이가 참… 활기차네요.”
“…가시죠.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강설은 따로 마련된 실비아의 숙소로 향했다.
꽤 큰 별채를 통째로 빌린 모양.
불 켜진 별채를 바라보며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보상은….”
“보상, 정했습니다.”
“예.”
강설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별무덤의 출입 자격입니다.”
“벼, 별무덤….”
연방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암시장. 온갖 귀물들이 흘러들어오는 곳. 전이자들이 이 땅에 내려오며 더욱 많은 물건이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그곳으로.
“과한 요구를 할 만한 분이 아니신데, 어째서 별무덤의….”
“과하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당신 앞에 놓인 문제에 비하면, 전혀 과하지 않을 겁니다.”
“…….”
마치, 고난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자처럼 신비로운 눈을 한 강설.
실비아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좋아요, 절 쉬를렌까지 안전히 호위해주면 강설 님의 별무덤 출입 자격을 어떻게든 마련해보죠.
“그럼 이 순간부터 전 고용된 거군요.”
“그런 셈이죠?”
“누군가에겐 불운이겠군요.”
“…네?”
알버트가 이야기의 결과를 듣고 반발했다.
“실비아 님! 그건… 너무 과한….”
그때, 강설이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쉬이….”
“……?”
그가 바닥에서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별채의 유리창을 향해 던졌다.
가벼운 동작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파아아앙-!
챙그랑-!
“무슨….”
푸화아아아악-!
“크아아악-!”
놀랍게도 별채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간, 실비아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숙소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들어가려던 숙소에.
스으으으…
비명을 시작으로 주변에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인 거에요. 설명을 좀 해주세요….”
“팔빈에 도착한 후로 줄곧 누군가의 시선이 우리를 좇았습니다.”
안개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 명이 아니다.
여럿이다.
스릉…
꿀꺽…
알버트는 이 안개 너머의 암살자들을 자신만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일행분들을….”
강설이 손을 가볍게 들어 알버트의 말을 막았다.
“뒤로 물러나 계세요.”
어쩐지, 반발할 수 없었다.
알버트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실비아 님! 제 뒤로!”
“으, 응….”
휘오오오…
안개를 따라 열이 넘는 인영이 흐릿하게 보였다.
변조된 목소리가 안개에서 흘러나왔다.
“매복을 어떻게 눈치챘지?”
“촉이 좋은 편이거든.”
상대는 악의가 충만했다.
굳이, 정중하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큭큭… 그래? 운도 좋군, 쉽게 끝날 일이었을 텐데…. 그거 알아? 오늘 내 운세는 기막히게 좋은데. 네 운과 내 운, 뭐가 더 강할까?”
실비아의 심장이 철렁했다.
만일 강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살아있었을까?
실비아의 심장이 철렁할 만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상대가 강설을 포섭하려 했다.
“이쯤에서 물러나라, 피차 불필요한 피를 흘릴 필요는 없잖아?”
“이런… 방금 고용됐는데, 그건 고용되기 전에 말을 하지.”
“…너, 우리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이러는 거냐?”
“지금은 아무도 없는데?”
강설이 비아냥대자, 상대가 공격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스릉…
“이 상황에 말장난까지… 제정신인 놈은 아니군.”
강설은 태연자약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파아아앗-!
안개가 일순간 흩어지며 그 안에서 십 수명의 복면인이 나타났다.
맹렬한 기세로 각자가 가진 병기를 휘두르려는 찰나.
“죽….”
강설은, 감춰두었던 기운을 퍼트렸다.
휘오오오오오…
그 찐득하고 끔찍한 존재감을.
[시대의 거인의 특수 능력이 발동합니다.]
[위엄이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보유한 위엄만큼의 부담을 줍니다.]
쿠지지직…
“뭣….”
쿵-!
쿵-!
일순간, 바닥에 머리를 처박는 암살자들.
“켁… 케에엑….”
“수, 숨이….”
저벅…
저벅…
강설이 달을 등지고 습격자들의 수장에게 다가갔다.
버둥대며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치켜들려는 남자.
“이게… 이게 대체….”
강설의 살가운 태도 속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기운이 고개를 들었다.
“엉터리 운세군.”
읊조리는 강설.
남자의 눈에, 강설의 동공이 비추었다.
용의 눈이었다.
그 순간, 남자는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불운하잖아, 너.”
[용혈안의 첫 번째 능력이 밝혀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