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59
제458화
연방 수도 세르디온.
구획과 구획을 잇는 전차가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세르디온의 건물 중 유달리 높은 것들은 모두 통치 기구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저마다 연방의 상징기를 게양하고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는데, 그중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그 정도가 더했다.
건물의 주인은 연방의 질병 관리국이었다. 홈의 중독 증상이 질병으로 분류된 시점부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업무에 박차를 가했다.
그곳 집무실의 질 좋은 의자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남자.
우르였다.
똑똑…
집무실 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조식 전에는 방문하지 말라 했을 텐데.”
“한소민데요….”
고용인인 줄 알고 물리려던 우르가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들어와라.”
“히힛….”
끼이이이익…
한소미가 문을 열고 살금살금 입장했다. 그녀의 행동은 우르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안겨주었다.
“잠을 못 잤나 봐요?”
“보름 정도. 연구실을 나가지 못했다.”
“…위험한 거 아니에요?”
“연구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 쟈마드는….”
쿵…
쿵…
“왔군.”
뿌드드드득…
문의 경첩이 뚝 떼어지며 쟈마드의 손에 덜렁 들렸다.
“…문이 약한 건 여전하군.”
“부서지지 않는 문의 연금술식을 까먹은 게 요즘처럼 후회되는 날이 없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다.”
스윽…
우르가 집무실의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부서진 문 5짝이 포개어져 있었다.
“6개째다. 발뺌할까 봐 전부 모아뒀지.”
“…할 말 없게 만드는군.”
“앉아, 새벽부터 길게 대화할 생각은 없을 거 아니야.”
쟈마드를 위한 의자라는 듯, 집무실에는 튼튼하고 거대한 의자가 들어와 있었다.
끼이이익…
물론, 그 의자는 쟈마드가 앉자마자 위태롭게 비명을 질렀지만.
그들이 앉자마자 바로 용건을 꺼내는 우르.
“내가 부탁한 일은?”
“확실히, 배후에서 의회를 흔드는 녀석이 있었다.”
“그랬군. 예상 인물 중에 있었던가?”
“그래. 녀석이 발뺌하지 못할 증인도 구해놨다.”
“…말은 할 수 있는 상태지?”
“말은 가능하다.”
쟈마드는 인간에게 원초적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존재다. 아마, 증인도 그에게 마음을 짓밟혀 어쩔 수 없이 증언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계파가 찢어지겠군.”
“비상시국이니 찢어진 그대로 불에 처넣어지겠지. 다른 일은?”
한소미가 대꾸했다.
“언제나처럼 신나게 때려 부쉈… 저항이 거세서 제압했어요.”
“신사적으로?”
“중요한 건가요?”
“중요 인물은?”
“역시나 없었어요.”
우르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쯤 되니 확신이 드는군. 내부의 정보는 이미 한참 전부터 빼돌려졌고 의회의 간부들은 연방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아마도 비통치 구역이겠지.”
“역시 그곳에 본거지가 있는 건가….”
“확신은 이르지만… 아마도.”
“강설이 놈들을 찾고 있으니 조만간 저지할 수 있을 거다.”
“…아니. 난 좀 다르게 생각해.”
“…뭐?”
우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이 상황이, 나는 너무도 수상하고 괴이하다.”
“무슨 뜻이냐?”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다. 너무 많아. 사건에 어떤 연결 고리도 없이 여기저기 흩어진 문제들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연결되지 않는 문제 모두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니다.”
한소미가 일류 수사관처럼 진중한 표정으로 수첩을 꺼냈다.
“구체적으로요?”
“…첫째, 홈은 왜 탄생한 거지?”
“그야… 의회의 자금책이었겠죠?”
“그건 단면일 뿐이야. 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수하들은 그 수준이 정해져 있어. 분명, 자금책 이상의 역할이 있을 거다.”
“어째서 확신하는 거예요?”
“이 몸이 여태 매달렸는데도 홈의 부작용을 전부 밝혀내지 못했다. 마약처럼 통증을 거세하고 쾌락을 극대화한 조잡한 약물과는 달리, 홈은 지나치게 세밀한 약물이야. 지금도 새로운 부작용들이 밝혀지고 있지.”
“치료제가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오늘 투약 실험이….”
“부풀리기 좋아하는 녀석들이 떠들어댄 거다. 완화제에 불과해. 효과도 아직 미지수고.”
사사삭…
한소미의 메모장에 한 줄이 추가되었다.
“둘째, 아트로밀 잔량의 행방이다.”
“홈의 주요 성분 말이군요. 그야 홈을 제조하는 데 전부 쓰인 거 아닐까요?”
“아니, 녀석들이 획득한 아트로밀 양은 이미 제조된 홈에 들어간 양보다 족히 수십 배는 많을 거다. 채굴지를 확인했으니 이건 정확해.”
“…….”
“한 달 새 감염자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격리 조치로 최대한 늦췄지만 추산하면 연방 절반이 넘는 인원이 이미 감염자야.”
홈도 문제였지만, 사라진 아트로밀도 문제였다. 그 많은 아트로밀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셋째도 있나요?”
“…비통치 구역의 존재다.”
“예?”
전혀 의외의 답.
“비통치 구역의 크기는 연방의 가장 큰 주보다도 훨씬 크다. 토지에서 오는 이점을 생각한다면, 특히나 툰드라 지대에서 멀쩡한 땅의 가치를 떠올린다면 연방이 그걸 포기한다는 게 말이 안 돼.”
“하지만 소수 부족과의 갈등이….”
휙휙…
우르가 고개를 저었다.
“소수 부족의 힘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연방과 그들은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헌을 보면 과거엔 3대 부족도 주변 왕국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다. 소수 부족은 강할 뿐만 아니라 왕국에 호의적이었으니 연방이 설립될 당시, 연방이 그들을 포용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병합 전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다. 소수 부족 학살 사건이라든지, 3대 부족의 무차별 약탈이라든지. 한데, 이러한 사건들은 아직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다.”
“누군가 북부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는 건가요? 어째서?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서로의 분열을 노려 얻는 이득이 무엇일까.
“노리는 건 분열 그 자체다.”
“…네?”
“북부가 가진 힘의 총량은 확실히 우월하다. 하지만, 3대 부족과 연방을 떨어트려 생각한다면….”
“아!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하는 거군요! 서로를 타인이라 여기게….”
“각자를 고립시키는 거지. 힘을 합쳐 대항해온다면 곤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든지….”
“으으… 너무 어려워요.”
우르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오늘, 약간의 실마리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 * *
오후에, 은사자회가 질병 관리국에 방문했다.
“허허허… 드디어 차도를 보이는군요.”
“일이 이제 좀 진행되겠어요.”
저마다 떠들어대는 귀족들이 질병 관리국 지하에 마련된 실험실에 안내되었다.
그들은 유리 밖에 있었고, 유리 안에는 중독자가 있었다.
“푸후으으으… 후으으으으으….”
“끔찍하네요, 우르. 저게 중독 증세인 거죠?”
우르와 시간 여행까지 경험했던 마리쥬가 그에게 물었다.
“…저게 끝이 아니다.”
툭…
실험실 안으로 사슴 한 마리가 던져졌다.
“크르르르르….”
파아아악-!
엄청난 속도로 사슴에게 달려드는 홈 중독자.
카드드득…
푸화아아악…
사슴은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우욱….”
“괴, 괴물이잖아!”
“저런 끔찍한….”
따악-!
우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투여해.”
푸쉬이이이이…
연구실 안에 기이한 연기가 스며들었다.
“크르륵….”
중독자가 갑작스럽게 유리로 달려들었다.
쾅-!
쾅쾅-!
쩌적…
유리에 약간의 금이 갔다.
“꺄아아아악!”
“도, 도망쳐야….”
푸쉬이이이…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털썩…
중독자가 쓰러졌다.
“어? 자, 잠든 건가?”
“발작 증세를 멈췄다.”
“허, 허억… 그렇다면 된 거 아니오? 이제 중독자들은….”
“치료제가 아니야. 발작을 멈출 수 있는 완화제에 불과하지.”
“으음… 그럼 저 완화제를 대대적으로 보급해서 시민들에게 투여한다면….”
우르가 고개를 저었다.
“완화제를 투여하면 한동안 저렇게 잠만 잔다. 이후에 다시 발작이 시작되지.”
“그런….”
“홈은 단순한 마약이 아니야. 단지 실체를 가지고 있던 매개일 뿐. 질병 그 자체가 되어 연방 전체를 오염시켰다. 중독자를 숙주로 해 끊임없이 주변을 감염시키지.”
은사자회의 자금을 책임지는 파라가 마리쥬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완화제를 대대적으로 보급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긴급 상황이 아니고서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라… ‘서리 열병’이라 이름 붙여진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은 연방의 절반이 넘어요. 그 사람들이 전부 잠만 잔다고 생각해보세요.”
“……연방이 붕괴하겠군.”
파라는 어두운 얼굴로 우르에게 조언을 구했다.
“우르 공,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말해주게.”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해야겠지.”
“할 수 있는 일? 무엇을 말인가?”
파라가 우르에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자 은사자회의 다른 귀족들이 속닥였다.
“그 파라가 저렇게 쩔쩔 못하다니….”
“사실상 유일하게 서리 열병의 대규모 확산을 막고 있는 남자라 그렇죠….”
“특대위의 위원장도 그렇고 전부 어디서 나타난 괴물들이야….”
“그러니까 말이에요….”
우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내부를 어지럽히는 자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겠군.”
“…뭐라?”
우르의 발언은 모두의 눈을 그에게 집중시켰다.
“그, 그 말은 이곳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인가?”
“정말이에요? 확실한 건가요?”
우르가 한 귀족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일라, 변명할 기회를 주지.”
“…무엄하다. 대체 변명이라니… 무슨 헛소리를….”
“그대는 꾸준히 소수 부족에게 강경 정책을 펼치도록 의회를 주도해 왔다.”
“나 참… 정치의 일환일 뿐이다. 무뢰배가 국가 경영에 떠들어대다니, 은사자회는 이런 집단인가?”
따악…
“들어와.”
쿵…
쿵…
쟈마드가 포박한 남성을 데리고 들어왔다.
남성의 얼굴을 확인한 차일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해라.”
“잠시만요, 그자는 누구인가요?”
“차일라를 잘 아는 자다.”
쟈마드가 남성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자, 그가 증언하기 시작했다.
“차, 차일라는 사병을 이용해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그걸 소수 부족의 소행으로 꾸몄고 전 옆에서….”
“그만! 뭣 하는 짓이냐? 나는 널 모른다.”
차일라는 항변하며 주변을 쳐다보았다. 그를 향한 은사자회의 눈은 곱지 않았다. 이전부터 그를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던 듯하다.
“모두… 저 말을 믿는 것 아니겠지요? 아니… 믿는다고 한들, 원숭이 몇이 죽었다고 뭐가 달라지나?”
“차일라….”
귀족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우르 공에게 정보를 제공한 건 나일세.”
“……벨가, 자네가?”
“이전부터, 당신의 행적이 수상하여 사람을 붙였는데 최근엔 조금 조심성이 없었더군.”
“…….”
“의회 인물들에게 우리 측이 손에 넣은 정보를 넘긴 것도 자네겠지?”
차일라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다, 날 듯이 뛰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파아앗-!
“흥.”
쟈마드가 파리를 잡든 휘두른 손이 그와 부딪혔다.
파아아앙-!
“커허어어억….”
그대로 땅으로 내쳐지는 차일라.
파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맙소사, 차일라… 정말 자네가….”
“쿨럭… 입 닥쳐라! 아비 품만 알고 자란 녀석이 뭘 안다고 떠드는 거냐!”
“…이럴 수가.”
차일라는 나름 파라의 신임을 받았던 듯, 파라가 충격으로 휘청였다.
스으으으…
차일라의 몸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서리 열병!’
우르가 곧장 그의 변화를 눈치챘다.
까드드득…
입에서 피를 흘리는 차일라가 중얼거렸다.
“다시금, 이 땅에 진정한 왕이 오리라.”
“…뭐?”
“킥… 킥킥… 이미… 늦었다.”
후우우우우웅…
푸른빛에 휩싸인 차일라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아, 안 돼!”
“꺄아아아악!”
파아아앗-!
우르가 손을 뻗어 차일라와 접촉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얼어붙는 차일라.
폭발의 전조도 얼음 속에 남았다.
“후우우….”
“위험했어요.”
“폭발하려던 거 맞죠?”
“서, 서리 열병….”
우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진정한 왕… 다시금?”
알 수 없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던 그.
그때, 한 마리의 새가 날아들었다. 깃이 푸르게 빛나는 새. 마법으로 만들어진 전령이다.
푸드드드득…
새가 우르의 어깨에 앉아 한쪽 발을 내밀었다.
촤르륵…
“…강설이군.”
종이엔 생소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벌써 3대 부족 중 두 부족과 접촉했다는 것뿐 아니라 케시이가 섬기는 최초의 진 라진이 실은 몬트라의 수호성이었다는 것까지.
“음….”
그런데 종이에 적힌 제일 마지막 줄을 확인한 우르가 눈을 부릅떴다.
“…뭐?”
“우르 공? 왜 그러나? 혹시 문제라도….”
파아아앗-!
우르가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자 놀란 귀족들이 따라붙었다. 사실, 그들은 차일라가 얼어붙은 이 공간에 우르 없이 남겨져 있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콰아앙-!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선 우르.
밖은 초저녁.
맑으면서도 어두운 하늘이 비추었다.
우르는 다시, 종이의 마지막 줄을 확인했다.
– 우르, 라진이 말하기를 시대 유성의 추락이 임박했다고 해. 라진이 말한 시대 유성이 무엇인지는 따로 동봉한….
시대 유성.
“이런….”
강설은 우르에게 구태여 시대 유성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에라곤.”
우르에게는 시대 유성보다 이 이름이 더 부르기 편했다.
시대 유성의 존재를 아는 몇 안 되는 판데아의 초월자.
우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우르! 왜, 왜 그래요!”
한소미가 우르에게 바짝 붙어 묻자, 우르가 말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을 게 아니었군. 보름 만에 에라곤이 이렇게 가까워졌다니….”
“에라곤이 뭐예요?”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가 곧 전환점을 맞이할 거다.”
“…예?”
한소미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르가 입매를 비틀었다.
“한 달 내로 결판이 나겠군.”
시대 전환의 유예 기간, 고작 한 달.
쿵…
쿵…
쟈마드가 걸어 나오자, 우르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다음 시대의 왕께서는 참을성이 없는 편이군. 에라곤의 접근이 너무 빨라. 천천히 오는 편이 좋았을 텐데. 이러면….”
휘오오오…
우르의 눈에 광기가 휘몰아쳤다.
“넘어트리고 싶어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