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71
제570화
콰지이이이익-!
짜아악-!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세찬 물보라가 일어나 망자들을 휩쓴다. 그러나 빙하아귀 브론이 일으킨 그 물살은 처음과 달리 약해졌다.
“허억… 허억….”
“끝도 없군….”
“히히히히! 온통 괴물이군, 괴물이야! 세상이 정말로 끝나려나 보군.”
“계획은 실패다, 브론. 군대를 수습해야….”
“수습? 어떻게? 이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우리에게 미래가 있는가?”
“…….”
없다, 미래는.
내일은 올지라도 그다음 내일은 가슴 졸일 것이며 또 그다음 내일은 눈물지을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
콰지이익-!
콰지직!
뚱뚱이가 날뛰며 망자들을 부쉈다. 망자들은 무기를 놓쳐도 제 이빨이라도 박아넣기 위해 오우거의 몸에 달라붙었다.
콰지이익!
콰지이이이익!
짐승들은 인정이 없었다.
지침이 없었다.
피에 물든 거구만이 이 싸움이 얼마나 참혹하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나타내었다.
밤을 빛내는 불빛은 줄어든다.
어둠에 저항하는 생명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그것들은, 점차 사라져간다.
온 세상을 어둠이 먹어 치우도록, 내버려 둔다.
콰지이이익-!
다른 오우거보다 훨씬 작은 오우거가 망자의 머리를 부쉈다.
“허억… 허억….”
끓는 가래를 무시하고 소리쳤다.
“아직이다! 저항하라! 쉽게 죽지 마라!”
죽음에 저항하라.
그대를 탄압하는, 죽음에 저항하라.
결코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라.
울부짖는 사령관.
그 외침은 어쩌면, 단말마일지도 몰랐다.
…방금까지는.
기이이이이이이이이잉-
수상하고 소름 끼치는 기운과 소음.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망자가 아닌, 산 자들 모두가 저 멀리 있을 왕성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곳이다.
저곳에서 무언가…
“설마….”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속였다.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신으로 덧칠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랐으며 기대했다. 이 전쟁을 끝내기를.
다시 한번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기를.
왕이여.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온 세상이 빛으로 물든다.
새하얀 빛이 기나긴 어둠을 찢는다.
빛기둥은 잊었던 낮을 몰고 와 나지막이 속삭인다. 결코 헛된 희생이 아니었다고.
승리를 말이다.
“마, 맙소사….”
“정말로… 해냈잖아.”
“하… 하하… 하하하하하!”
푸스스…
망자들의 살점이 바스라진다.
푸스스스스스스…
모래로 되돌아간다.
손부터, 발까지.
아주 천천히.
그들은 싸움을 멈추었다.
아주 잠깐, 이성의 조각이나마 되돌아온 듯했다.
균열이 쩍쩍 생겨난 얼굴로 표정을 만들었으니까.
그것이 우는 표정인지, 웃는 표정인지는 그들과 맞선 자만이 규정할 수 있었다.
“아아….”
백야가 도래했다.
이와 같은 시각, 칸 제국.
기이이잉-!
철컥-!
“아아아아아!”
홀로 남은 황제, 설홍은 거병에 직접 올라타 병력을 지휘했다. 수도 홍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2차 저지선. 기괴할 정도로 빠르고 지치지 않는 망자들이 먼저 그 저지선에 도달했다.
그것만으로도, 저지선은 이미 크게 무너졌다.
그라보를 비롯하여 상당수의 망자가 몬트라로 회군했기에 처음 장벽을 무너트린 병력의 절반 정도를 상대하는 것이었지만 이마저도 지금의 여력으론 버거웠다.
투두두두두-!
화르르르르르륵-!
거병이 한쪽 손에서 불길을 내뿜었다.
파바박-!
끼긱…
끼기기긱-!
망자들이 거병에서 설홍을 끄집어내기 위해 철판을 뜯기 시작했다.
우지지직-!
막아라!
“폐하를 보위하라!”
“폐하!”
매캐한 연기와 망자의 썩은 악취가 뜯어진 철판 사이로 스며들어 왔다.
휘익-!
휘이이익-!
몸을 욱여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망자. 그 손만큼은 거병의 조종석에 앉은 설홍을 끄집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설홍은, 거병이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하게 미소 지었다.
“…끝이구나, 모든 게.”
기이이이이이이이잉-
거병의 이상 반응.
출력이 갑작스럽게 치솟았다.
“무슨….”
그리고 곧 그 원인이 저 멀리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빛기둥.
“…….”
“어… 어어….”
전선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었다.
빛기둥이 어둠을 밀어내며 감추고 있던 태양을 드러냈다.
그래, 어느새 아침이 되었던가.
푸스스…
푸스스스스…
설홍이 철판 틈으로 그 동공을 내보이는 망자를 보았다.
초점이 잡힌 눈.
우는가, 웃는가.
그렇게 사라졌다.
“…아침이, 왔구나.”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아침이 왔다.
온 세상의 어둠이 물러났으며 불씨는 끝끝내 살아남았다.
그러나…
쩌적…
“균열이다! 피해!”
쩌저저저저적-!
* * *
몬트라의 왕성.
흰 나무의 기사는 주검이 되어 흩어진 황제와 불사의 잔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게 끝난 것일까.
[스노우맨이 대단한 업적으로 변혁을 이루어냅니다.]
[영원의 세계에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태양의 제국 몬트라의 망령들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
[압도적인 양의 시대력을 획득합니다.]
[시대력이 한계치를 초과했기에 잉여 시대력이 격으로 변환됩니다.]
[모든 업적과 칭호가 격으로 변환됩니다.]
[모험가 점수가 격으로 변환됩니다.]
[판데아가 초신성 말기에 접어듭니다.]
파츠즈즈즈즛…
새하얀 기사는 사라지고, 대전에는 세 사람이 남았다.
그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콰직…
콰지지지직-!
그들이 디딘 땅 역시도 뒤흔들렸다.
콰르르르으응-!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심상치 않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세 전신을 적시는 빗줄기.
해가 뜬 낮인데도, 끔찍하게 많은 양의 비가 왔다.
손으로 지붕을 만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쩌면, 이 세상 역시도 지금의 날씨와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일지 모른다.
겉으로는 나아진 것 같은, 기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지만 아무것도 바뀐 건 없었다.
쏴아아아아아-!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짧은 시간 내에 급류를 만들고 대지를 무너트렸다.
살아남았으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초신성이 된 행성은, 이제 모든 생명을 거두어들일 것이며 무엇도 살 수 없는 세계가 될 테다.
별의 숨이 다 하는 그날까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생명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강설은, 그렇게 되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인간의 시대 말기, 거악들이 준동하고 시대 유성은 빼앗겼다. 그것으로 모자라 온갖 비정상적인 마력 현상을 발생시킨 불사까지.
이제 세계는 멸망으로 치닫는다.
그때, 등을 보이고 선 카렌이 말했다.
“…있잖아.”
“……그만.”
“…….”
카렌이 무슨 말을 할지, 강설은 눈치챘다.
카루나가 그녀를 대신해 말했다.
“…시간을 벌 방법이 있습니다.”
“알아, 말하지 마.”
등 돌리고 서 있던 카렌이 뒤돌며 웃는다.
“들어줘.”
“…….”
“들어줬으면 해, 설.”
강설은 초신성이 되었다.
그 자체로 거대한 힘의 덩어리.
신들이 사는 세계로 가지 못한 이방인.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안엔, 인간이 있었다. 도덕이, 감정이, 인간이 가질 법한 모든 게.
여전히 그의 안에 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스윽…
카렌이 다가와 양손으로 강설의 한쪽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꼭 끌어안았다.
“해내야 하잖아. 그렇지?”
“…….”
강설은 눈을 감았다.
“흰 나무의 힘이라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카루나가 기어코 방법을 내뱉었다.
으득…
강설이 이를 갈며 부정했다.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
“…설.”
카렌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눈동자로 물었다.
“무엇일까? 이 감정은.”
“…….”
“우리의 모든 건 부정당했어. 단 한순간도 운명을 벗어난 적 없이… 꼭두각시처럼 살아온 거야.”
“그러니까….”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선택해야만 해. 감히 해낼 수 없는 선택이라도… 해야만 해.”
불합리하고 괴로운 선택을.
운명에 속박된 다른 이들처럼.
분기점은 모든 길 위에서.
“마지막이잖아, 그렇지?”
이것을 감히 선택이라 부르지 말라.
이것은, 운명이다.
선택하는 게 아니니.
받아들이고 삼키는 것이다.
다음에 찾아올 진짜 선택을 위해.
“실패했다고 생각해. 괴로웠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남지 않고, 구멍이 뚫려 버려서 우리의 모든 게 빠져나갔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럼에도….”
카루나는 말했다.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무언가를 남기고 갈 테니까. 그건 아마도….”
물기 어린 눈으로 웃는 카렌.
“너야, 설.”
“어째서….”
“네가 해낼 테니까, 분명히 해낼 테니까.”
카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누이는 담담하게 이어갔다.
“네 선택의 시간을 유예할 거야. …다음에 찾아올 진짜 선택을 위해.”
“…….”
카렌과 카루나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이건….”
그들은 잠시 강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까지 발버둥 쳐봤지만, 끝끝내 실패한 우리의 몫이야.”
“하지 마!”
강설이 둘에게로 뛰어든다.
투우우웅-!
그러나 곧 저항감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미 의식은 시작되었다.
카렌과 카루나가 악수한다.
그들의 손목에 새겨진 인장이 새하얀 빛으로 타오른다.
흰 나무의 인장이자 가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후우우우웅-
쿠구구구구구구…
콰직-!
콰지지지지직-!
묘목 한 그루가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쌍둥이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후우우우우우웅-!
강설이 무어라 소리쳤지만, 흰 나무가 발휘하는 기운이 그 소리를 전부 잡아먹었다.
으지지직…
묘목은 덩치를 불려 나갔다.
그것은 어느새 꽤 울창한 나무가 되어 쌍둥이가 그 줄기이자 몸통에 손을 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대가는, 존재했다.
푸스스…
스르르륵…
쌍둥이의 머리칼.
백발이 있는 영역이 점차 넓어졌다.
어느새, 머리칼의 상당 부분이 새하얗게 물든 둘.
이 순간, 셋은 이곳에 오기까지 벌어졌던 많은 일을 떠올렸다.
– 몬트라 황가의 수호자 제10위 카렌, 오늘부로 수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요그나툰 화산의 일전.
– 나, 바다가 좋은 것 같아!
– 비린 냄새가 싫지 않아?
– 그것도 좋은걸! 육지와는 다르잖아.
처음으로 바다를 본 날.
– 돌아오셨군요,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칠흑의 미궁 정복.
수많은 날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함께 보낸 시간은 분명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들이 지옥으로 변할 때이다.
“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
카렌은 눈물지었다.
“연꽃은…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우릴 대신해서 찾아줘, 그 연꽃.”
늪이 있다면.
모두가 그 늪을 빠져나갈 수 없다면.
“우리를 밟고, 숨을 내쉬어.”
동료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나아가야 한다.
카루나가 말한다.
“왕이여, 부디… 이 길의 끝에 다다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푸스스스스…
그들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동공 역시도, 새하얗게.
흰 나무가 그들의 몸을 감싼다.
우지직…
우지지지지지지직-!
솟구쳐오른다, 저 높이.
쌍둥이를 집어삼킨 거대한 나무가.
[그간 이어져 온 선택의 결과로,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종장 ‘흰 나무’로 이어집니다.]
종장 ‘흰 나무’
당신은 쌍둥이 기사의 운명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당신과 함께했으며 많은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강인했고 용기 있었으며 때로는 당신보다도 당신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참혹한 운명입니다.
부활한 그들의 조국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그들은 거짓말쟁이에게 속아 좌절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끝내, 거짓말쟁이의 사악한 계획을 저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나, 그것은 불행히도 이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 생명의 땅에 전해진 부담을 대신해서 짊어져야 했기에.
그들은, 흰 나무에 잠듭니다.
세상을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콰르르으으으응-!
어느샌가 흔들림은 멈추었다.
강설은 게임판의 첫 번째 결말을 맞이했다.
“아… 아아….”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강설은 땅을 짚고 탄식만을 내뱉었다.
그것은 숨이었고 거칠었으며 괴로웠다.
그렇게라도 숨을 쉬어야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푸스스스…
빛무리가 다가와 그에게 맺혔다.
[‘실로이’의 전승이 시작됩니다.]
[실로이의 환상 절기 : 이기적인 일기장이 발동합니다.]
[실로이가 전승 과정을 무시합니다.]
[실로이가 가진 기억 일부가 대상에게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