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20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20화
태동 (5)
#. 2015년 5월 21일
#-1. 스웨덴 스톡홀름
#-2.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
2000년대 이후 테니스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겐 의외의 사실이겠지만, 스웨덴은 2000년대 이전 테니스계를 이끌었던 주요 강국 중에 하나다.
1974년부터 1992년까지 벌어진 74차례의 그랜드슬램 중, 스웨덴 출신의 선수들이 차지한 개수는 무려 24개다.
그리고 이 기간 스웨덴은 물론이고 전 세계 테니스계를 주름잡은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스톡홀름 출신의 비외른 보리(Bjorn Borg)다.
스웨덴 역사상 가장 뛰어난 테니스 선수이자 나아가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이기도 한 그는, 존 메켄로/지미 코너스와 함께 당대의 3대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만 무려 11번.
1972년 16살의 나이에 U.S 오픈에 참여한 걸 시작으로 은퇴를 결정했던 25살까지, 비외른 보리는 승률 89.24%(141승 17패)란 압도적인 전적을 과시했다.
특히 롤랑가로스에서의 승률은 96.08%(49승 2패)로, 라파엘 나달이 나타나기 전까진 클레이코트의 절대자로 불렸다.
이런 비외른 보리의 나라.
이곳에 신우주가 도착했다.
“저기에 네 가방.”
“오.”
컨베이어벨트에 있는 본인의 캐리어를 발견한 신우주가 얼른 달려가 가방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걸 본 안드레이 시미치는 소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함께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문밖을 바로 나서자,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판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쪽.”
“네.”
며칠 전 신우주가 베오그라드로 향했던 이유는 코치들의 로테이션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오랜 기간 가족의 곁을 떠나있던 플라브시치가 TTA 업무에 복귀하고, 한동안 아카데미에서 수강생을 가르치던 안드레이가 다시 신우주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이들의 첫 목적지는 스웨덴으로. 앞으로 약 3주 동안 스웨덴 최고의 테니스 아카데미인 ‘Good to Great’에서 테니스 수업을 받게 될 예정이다.
다만 이전과의 차이가 있다면, 실전과도 같은 몇 개의 경기를 잡아두었단 점이다.
판넬을 들고 자신들을 기다리던 여성 앞으로 다가간 안드레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오! 당신이 안드레인가요?”
“네. 영어 괜찮나요?”
“물론이죠. 그리고 이 아이가 저희 아카데미에서 앞으로 함께할 친구인 것 같네요.”
미소와 함께 우주를 돌아본 여성은 GTG(Good to Great Tennis Academy)의 고객 관리 매니저 스티나 호칸손(Stina Håkansson)이다.
그녀는 아카데미를 찾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했고, 곧바로 주차된 차량이 있는 곳으로 두 사람을 인도했다.
“타세요. 거리는 가까워요.”
“트렁크 좀 열어주시겠어요?”
“물론이죠.”
탁.
가져온 짐을 실은 신우주와 안드레이가 뒷좌석에 탑승하고, 안전띠를 채우라고 전한 스티나가 차량을 출발시킨다.
“스탠과는 친하신가 보죠?”
“인연이 좀 있죠.”
“그가 부탁을 할 땐 깜짝 놀랐어요. 보통은 이런 부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하. 뭐든 예외는 있는 법이죠.”
스웨덴 제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테니스 아카데미로 거듭나고 있는 GTG는 쉽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수강생들로 붐비는 시즌이면, 최소 몇 주에서 길게는 석 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실제로 안드레이 역시 처음엔 수습 제안을 거절당했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TTA는 본인들이 가진 인맥을 발휘하여 어렵지 않게 일정을 만들었다.
이번 경우는 한 랭커가 도움을 줬다.
스탠 바브린카(Stan Wawrinka).
지난해 그랜드슬램 중 하나인 호주 오픈에서 우승하며 잔뜩 주가를 끌어 올린 스위스 국적의 테니스 선수는, 투어 준비를 위해 종종 GTG를 찾곤 했다.
실제로 바브린카는 활발히 GTG를 홍보했고, 아카데미는 그런 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끼-익.
“여기예요. 내리셔도 돼요.”
탁.
주차장에서 내려서자, 스톡홀름 북쪽 외곽 한산한 지역에 자리 잡은 GTG의 전경이 넓게 펼쳐졌다.
신우주는 눈에 바로 들어오는 코트 쪽에 관심을 두었고, 곧 그곳을 가리키며 안드레이를 향해 외쳤다.
“보세요! 클레이예요!”
“그래. 정말 그렇구나.”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곁으로, 다시 스티나 호칸손이 다가왔다.
“우리는 바깥에 다섯 개의 클레이코트가 있어. 그리고 그 옆에 하드코트 하나가 있고. 그러고 안에도 총 세 개의 하드코트가 있는데, 빠델도 원한다면 할 수 있을 거야.”
“빠델 좋죠. 재미있어요.”
“하하. 너도 영락없는 테니스 선수구나. 그렇지?”
“네.”
스티나는 신우주의 티 없이 맑은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곧 이들을 오피스로 안내했다.
걸어가는 길에도 스티나는 카텔라 아레나(Catella Arena)로 알려진 GTG의 실내 테니스 복합 시설에 관해 설명했다.
“안에는 실내 코트 말고도 짐/식당/미팅룸/의료시설이 있어.”
“그렇군요.”
“음?”
“네?”
“별로 놀라지 않는구나? 보통 아이들은 이곳을 소개해 주면 놀라곤 하는데.”
“아, 제가 좀 그랬나요?”
“하하. 괜찮아. 따라오렴.”
시설이 아카데미의 수준을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신우주는 이미 GTG보다 훨씬 훌륭한 시설에서 훈련했다.
그래서 이곳의 시설에 크게 감동받지 않은 것인데, 머리를 긁적인 신우주는 혹시 스티나를 기분 나쁘게 한 것은 아닌지를 걱정하며 안드레이에게 물었다.
“제가 실수했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단다.”
“음, 다음엔 좀 놀라는 척을 해야 할까 봐요.”
“하하! 그래- 그럼 사람들이 좀 뿌듯해하긴 할 거야.”
“그렇겠죠?”
“응.”
잔뜩 미소 지은 안드레이가 문을 잡으며 신우주를 먼저 들여보내고, 오피스 안으로 들어선 둘은 GTG의 기술이사인 마그누스 노르만(Magnus Norman)을 만났다.
북유럽에서 꽤 유명한 테니스 코치이기도 한 마그누스는 아카데미를 찾은 소년이 동양인이란 사실에 놀란다.
“한국이라고요? 그거, 보기 드문 경우네요.”
“네. 그렇지만, 우주는 정말 테니스를 잘합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생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일단, 서류를 먼저 작성하시죠.”
안드레이가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신우주가 벽에 부착되어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독특한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우주는 곧바로 그 단어를 읊조렸다.
“CARE?”
“그래, 맞아.”
소년의 혼잣말에 처음 보든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곤 바로 설명을 보탰다.
“집중력, 태도, 존중, 에너지. 이 네 가지가 저 Care라는 단어에 포함된 거야. 우리는 수강생들이 단순히 테니스만 잘하는 선수가 되길 바라지 않거든.”
“그러면요?”
“테니스가 곧 삶의 방식이 되길 바라지. 그 밑바탕엔 존중과 에너지가 숨어 있고.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 부모, 친척. 모두가 다 같은 것들을 가슴속에 간직해야 한다고 믿는 거야. 하지만 최종 단계를 밟는 것은 선수의 몫이지.”
“어째서죠?”
“글쎄.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음…….”
낯선 자신을 전혀 어려워하지도 않았고, 무턱대고 시작한 말에 대해서도 잘 소통되는 모습을 보였다.
GTG의 공동 설립자이자, 아카데미 내에서 수강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기로 소문난 미카엘 틸스트룀(Mikael Tillström)은 소년의 행동에 흥미를 느꼈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시작한 신우주가 곧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프로가 되는 건 강요할 수 없다, 로 들려요.”
“?! 놀라워. 정답이야.”
“정말요?”
“그래. 100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90점짜리 대답이었어. 놀랍구나. 저 단어를 설명 듣고 너처럼 대답한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기뻐하며 환하게 웃는 소년을 향해, 마찬가지로 환한 미소를 지은 미카엘이 손을 뻗는다.
“반갑구나. 난 미카엘이란다. 이름이 뭐니?”
“우주요. 우. 주.”
“우주. 뜻은 모르지만, 좋은 이름인 것 같구나.”
스웨덴 최고의 테니스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북유럽 특유의 삶의 방식과 관련이 깊다.
혹독한 환경과 그보다 더 가혹한 겨울을 보내야만 했던 북유럽인들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무척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이 과정에서 스웨덴인들은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웠다.
아무리 많은 것을 원해도 주어진 환경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가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그것을 대표하는 단어가 바로 이것이다.
“라곰.”
“라곰?”
“그래. 라곰.”
라곰(Lagom).
스웨덴어로 ‘적당한’ 혹은 ‘딱 알맞은’을 뜻하는 이 단어는 소박하나 균형 잡힌 생활 방식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며 살아가는 삶의 여유를 표현한다.
이것을 GTG는 테니스와 결합해 ‘CARE’라는 단어로 재탄생시켰는데, 앞으로 신우주가 아카데미에서 배우게 될 것들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보낸 시간이 테니스의 기술적인 요소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곳은 소년에게 프로 테니스 선수로서 가져야 할 태도들을 알려줄 예정이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네!”
짐을 오피스에 놔두고 바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하는 미카엘. 신우주를 수강생으로 받아주는 걸 조건으로 단기 인스트럭터를 맡은 안드레이 또한 함께 이동한다.
스티나가 카텔라 아레나라고 부른 실내에는 GTG에서 훈련을 받는 수강생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너도 저 뒤에 가서 앉거라.”
“저도요?”
“그래. 이곳에선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 거야.”
“……네.”
훈련의 시작 단계로 단체 명상을 실시하는 GTG의 모습은 지금까지 신우주가 겪었던 것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그것이 낯설기보다는 즐거웠던 소년은 처음 본 아이들에게도 서슴없이 인사를 걸며, 미카엘이 말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 이방인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가까운 이들끼리 서로 수군대며 신우주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몇몇 여자아이들은 얼굴을 붉히고 미소를 숨기지 않으며, 신우주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쟤, 귀엽다. 안 그래?”
“나중에 말 걸어봐.”
“내가? 싫어~ 네가 해.”
말괄량이도 부끄럼쟁이 소녀로 만들고 있는 신우주는 오늘도, 수습생이기보다는 아카데미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늘 그런 것처럼.
“쯧.”
누군가는 이를 달갑게 보고 있지 않다.
* * *
#. 카텔라 아레나 실내 코트
“좋아! 준비하렴!”
앞선 일정을 모두 끝낸 미카엘 틸스트룀이 새로운 수강생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자 코트에 들어선다.
네트 너머에서 몸을 풀던 신우주는 곧장 라켓을 집어 들었고, 베이스라인 앞에 서서 진행될 스트로크를 기다렸다. 이는 훈련보다는 히팅에 좀 더 가까운 것이다.
“준비됐니?”
“네-!”
신우주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미카엘이 테니스공 하나를 네트 너머로 넘긴다.
탕.
그러자 라켓을 왼손에 쥔 신우주가 백핸드로 넘어온 공을 다시 돌려보냈다.
탕.
‘흠. 왼손잡인가?’
몇몇 아카데미들과 마찬가지로, GTG 역시 수강생에 관한 사전 정보를 듣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미 투어를 시작한 레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아카데미의 코치들이 직접 볼을 주고받으며 선수의 수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훈련 일정을 계획한다.
사전에 어떤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편견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지금 미카엘이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랬다.
탕.
탕.
랠리를 몇 번 주고받은 지금, 미카엘은 신우주가 동년배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가졌음을 깨닫는다.
샷의 속도가 상당했던 것이다.
탕!
탁.
“응?”
신우주의 왼손 포핸드를 가볍게 테니스 채로 받아내며, 테니스공을 라켓에 얹은 미카엘이 짧게 감상을 전한다.
“아주 좋아! 멋진데? 힘이 느껴졌어!”
“감사해요!”
“그래, 그러면 이번엔…….”
“오른손이죠?”
“그래. 오른…… 뭐?”
테니스 선수의 히팅 순서는 보통 센터마크에서 진행하는 스트로크와 애드/듀스코트를 번갈아 가며 보내는 스트로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비스 연습을 한다.
상호 합의에 따라 다운 더 라인이나 슬라이스 샷을 몇 번 주고받기도 하는데, 보통은 위의 세 과정에서 끝난다.
그래서 미카엘은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애드코트로 움직여 신우주의 샷의 앵글(Angle)을 얼마나 가져가는가를 보려고 했다. 한데 갑자기 소년은 라켓을 오른손에 쥐었다.
바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미카엘은 손을 들어 올렸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든 생각을 이야기했다.
“혹시 지금, 약한 손 훈련을 하려는 거니?”
“네? 아닌데요?”
“그럼?”
“약한 손 훈련은 이미 했으니까, 본래 쓰는 손으로 하려고요.”
“……응?”
오른손에 쥔 라켓을 빙그르르 돌리며 환하게 웃는 신우주. 어느새 멍한 표정이 된 미카엘이 자신이 금방 들은 의미를 깨닫는 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
뒤이어 약간의 의심과 함께 진행되는 랠리.
미카엘은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우주. 혹시 네가 장난을 치는 거라면……”
몇 번 가볍게 샷을 주고받던 중 말을 꺼내 드는 찰나, 신우주가 오른손에 쥔 라켓을 강하게 움켜쥐며 강한 플랫 형태의 포핸드를 선보였다.
탕-!
“!!”
강력한 샷이 네트를 빠르게 통과해 미카엘의 앞쪽에 떨어지고,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라켓을 가져간 GTG의 코치는 황당하게도 손에 쥔 물건을 그만 놓치고 만다.
전(前) ATP 프로이자, 한 차례의 우승 경력 역시 보유했다. 프로로서 최고는 아니었어도, 14살 어린 소년의 앞에서 라켓을 놓치는 모습은 보여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미카엘은 실내 코트에 떨어져 튕기고 있는 라켓과 손에 느껴진 감각을 분명히 보고 느끼고 있다.
너무나도 놀라 버린 미카엘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자신이 라켓을 떨어트리는 것을 본 소년이 걱정스러운 얼굴과 함께 네트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그리고 얼마 뒤.
“양손…… 이라고?”
“네. 전 양손으로 전부 테니스를 잘하고 싶거든요.”
“…….”
지금까지 신우주를 만났던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카엘 역시 커다란 혼돈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다시 새로운 테니스를 경험하기 위한 신우주의 여정. 휴식 이후의 첫 목적지인 스웨덴에서의 시간은 이제 겨우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