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29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29화
토니 나달
#. 2015년 6월 10일
#-1. 대한민국, 대전시
#-2. 대전 대성고등학교
“응? 인도라니? 우주야. 아들!”
딸깍.
이번에는 인도로 가게 되었단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나흘 만에 걸려온 전화라 반색했던 신현철은 이제,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37분.
조금 있으면 학생들이 온다.
“허- 이것 참.”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을 걱정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신우주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부모에게 말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정보 전달이 부족할 때가 있다.
신현철은 이를 아내 장미애에게 보고했다.
서운하다며 투정을 부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당신하고 똑같지, 뭐. 기억 안 나?
“어? 뭐가?”
-아니, 옛날에 우리 데이트할 때. 뻔히 약속까지 다 잡았는데, 갑자기 전화해서 합숙하게 되었다느니 당신 그랬었잖아. 나 바람맞히고. 기억 안 나?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어우- 열 뻗쳐.
“크흠. 흠. 내가 그랬나?”
본전도 못 찾은 신현철은 학생들이 왔다고 거짓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장미애가 뻔히 다 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순간이 되면 도망치는 게 습관이 됐다. 결혼하기 전엔 세상 그 누구도 무섭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내만큼은 무섭다.
현재 장미애는 대전시설관리공단의 수영 코치로 근무하며, 팀에 전국체전 메달을 무려 10개나 안긴 명(名)코치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선배의 부탁으로 서울에서 대전으로 온 신현철 또한, 신생팀을 잘 성장시키고 있다는 평을 듣는 중이다.
선수로서도 또 코치로서도, 신현철과 장미애는 각자의 종목에서 여전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야, 종수야.”
“네, 형님.”
“인도는 좀 위험하지 않냐?”
“인도? 왜요? 차가 들이받기라도 했어요? 사곤가?”
“아니, 인마. 그 인도 말고. 나라 인도.”
“아- 인도하면 카레죠. 쓰-읍. 오늘 저녁에 일 마치고 3분 카레에 소주나 한잔해야겠는데요?”
“야. 누가 3분 카레에 소주를…… 하아- 됐다. 됐어.”
“어, 그 얘기 아니에요?”
“됐수다. 그대 일이나 잘하세요.”
“?”
TTA의 코치들을 전적으로 믿고 있긴 했지만, 인도로 테니스 수업을 떠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걱정이 됐다.
고민하던 신현철은 결국, 장미애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데니스 포포비치에게 얘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이미 메시지를 보냈단 것이었다.
“역시, 우리 마누라! 아주 굿이야, 굿!”
-으이그. 이럴 때만?
“아니, 매일 그렇지~ 오늘 마치고 둘이 데이트 좀 할까? 왜 당신 영화 보고 싶다고 했잖아. 맥스 매드인가 뭔가.”
-매드 맥스. 전에도 바꿔 부르더니 이번에도 그러네.
“그래, 그거. 그거 보러 가자.”
남편의 데이트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장미애가 7시까지 데리러 오라고 말한다.
이미 기분이 좋아졌었던 신현철은 알겠다 말했고, 이후 콧노래를 부르며 훈련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를 보던 대성고등학교의 코치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형님 또 저런다. 아주 오락가락이야?”
“냅둬. 어디 하루 이틀이야.”
“어휴. 잡혀 사는 남자가 그렇지 뭐.”
“그러는 넌? 아니야?”
“아니, 왜 갑자기 내 얘기가 나와? 넌 결혼이나 해!”
“안 할 건데? 두 사람 보고 할 생각이 없어졌는데?”
티격태격하는 코치들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신현철.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에 시작된 일인지도 모르고, 그는 손뼉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재촉했다.
대한민국에서의 평범한 일상.
저 멀리 스웨덴에서는 지금.
위-잉!
신우주와 안드레이를 태운 비행기가 막 날아올랐다.
* * *
#. 2015년 6월 12일.
#-1.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푸타파르티
#-2. 스리 사티야 사이 공항
스웨덴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인도로 오는 여정은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여정과 기다림에 지쳐 쓰러진 신우주를 본 안드레이는 쓰게 웃으며 뻗어버린 소년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공항 내부를 바라보았다.
약속했던 시간에서 한참이 지났다.
인도에 관해 들었던 많은 악명(惡名) 중엔 시간개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게 떠올랐다.
안드레이는 조금씩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는 걸 느꼈다.
전화를 걸어보아도 전혀 받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중은 필요치 않다고 말할 걸 그랬단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고 싶었지만, 신우주의 컨디션과 밖에서 겪었던 살벌한 기억 때문에 망설여졌다. 아까 자신들을 본 인도의 택시 기사들은 전투적으로 짐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판단된 공항 내에서 기다리고 한 것인데, 인도행을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은 아닌지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렇게 이대로 세르비아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멀리에서 두리번대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얼마 뒤, 그 남자가 안드레이를 발견하곤 달려왔다.
“정말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많이 늦으셨군요.”
“진짜 미안합니다. 이곳으로 오는 도로 위를 소 떼가 점령했지 뭡니까? 그것도 흰 암소들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흰 암소는 이곳에선 신과 동급입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 일단 이동하시죠.”
“아?”
“저희 선수가 피곤해하고 있습니다.”
“아.”
수다쟁이의 기질이 다분해 보인 남성은 그제야 지쳐 있는 신우주에 눈길을 주었다.
어깨를 흔들어 신우주를 깨운 안드레이가 짐을 챙겨 남성의 뒤를 따랐고, 걸어가는 길 내내 컨디션이 무척 저조해 보이는 신우주를 살폈다.
가벼운 몸살이나 여독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드레이는 차에 타자마자 챙겨둔 비상약을 꺼냈다.
“혹시, 물 있습니까?”
“아, 네.”
트렁크로 향한 남성이 아이스박스 안에 넣어두었던 생수 한 병을 안드레이에게 건넸다.
그것을 다시 신우주에 전달한 안드레이는 약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고, 이후 뚜껑을 닫으며 신우주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마를 만져보았으나 다행히 열은 없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기에, 안드레이는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라 말하곤 안전띠를 채워줬다.
차량이 출발하고, 뒤늦게 자신을 비니트 파텔(Vineet Patel)이라 소개한 남성이 숙소를 물었다.
“저희가 머물 만한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럼 VIP로군요. 알아 모시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어디 출신이시죠? 한 분은 서양인이고 저기 잠든 사람은 동양인처럼 보이는데요. 보기 쉬운 조합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하핫.”
너무 오래 기다린 데다가 신우주의 컨디션 역시 좋지 않아, 안드레이 역시 덩달아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수다쟁이 기사는 최악 중의 최악이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자신은 세르비아인이고 신우주는 한국인이란 것을 밝혔다.
“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안드레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여기서 말을 끊어야 한다.
상대가 내던진 미끼를 덥석 물게 되면, 목적지로 향할 때까지 시달릴 게 뻔했다.
그래서 안드레이는 입을 다물기로 하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잠이 든 척했다. 후방 거울로 뒷좌석을 본 비니트는 약간 실망하며 입맛을 다셨다.
“쩝.”
다행히 올라가는 길은 한적했다.
물론 공항에서 목적지까진 2시간 정도를 차로 운전해야 하지만, 인도에서 이 정도는 가까운 거리 축에 속한다. 그래서 비니트는 여유롭게 콧노래를 불렀다.
“흥~ 흥흥 흥~♪”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도의 첫인상.
안드레이도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다.
비행기를 오래 타기도 했고, 시차도 꽤 많이 났기에 컨디션이 저조해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느새, 안드레이도 신우주를 따라 곯아 떨어졌다.
하지만 이들을 태운 차량은 또.
“아, 농담이지. 또?”
아난타푸르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마주친 소 떼에 의해 다시 또 멈춰 서고 말았다.
* * *
#. 2015년 6월 13일
#-1. 인도, 아난타푸르
#-2. 아난타푸르 스포츠 빌리지
#-3. VIP 게스트룸
발리우드(Bollywood)로 대표되는 인도 문화의 성장은 스포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SAI(Sports Authority of India)에 의해 주도된 ‘인도 스포츠 개발 프로그램’은 제각각이었던 지역/주/국가의 철학과 조직을 하나로 묶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SAI는 정부와 함께 인도 반도 각지에 대규모 스포츠 단지를 건설했는데, 아난타푸르에 있는 시설 역시 이러한 정책 때문에 지어진 곳이다.
정부의 기관이 주도한 만큼 막대한 예산이 쓰였고, 오래전인 2000년에 완공된 시설임에도 훌륭한 환경을 자랑한다.
전날 오후 도착해 하루를 꼬박 쉬는 데 사용한 신우주와 안드레이가 묵은 숙소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5성급 호텔보다도 깨끗하고 또 호화로운 VIP 시설은, 신우주의 컨디션을 저조하게 만든 여독과 안드레이의 짜증을 모두 말끔히 씻어주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노크에 대답한 안드레이의 목소리 이후,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등장한 인물은 안드레이에겐 익숙하지만, 신우주에겐 어딘가에서 본 것 같으면서도 낯설단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덥수룩한 잿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그의 입에선 스페인어가 흘러나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어제 기다리느라 컨디션이 저조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더 휴식이 필요하십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푹 쉰 덕분에요.”
“멋지군요. 따라오시죠.”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몸을 돌린 이의 이름은 토니 나달. 단지 내에 있는 아난타푸르 스포츠 아카데미(ACA) 테니스 부서 총괄이자, 라파엘 나달의 삼촌이다.
눈치를 보다가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신우주는 안드레이에게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하하. 그건 좋은 생각이구나.”
“일단, 검정고시가 끝나면 그래야겠어요.”
“그래. 순서대로 하자. 서두를 건 없어.”
“네. 그런데 혹시, 스페인어는 어렵나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너라면 쉽게 배울 것 같구나.”
“그랬으면 좋겠어요. 대화가 되지 않아서 조금 답답해요.”
배움에 관한 목마름도 신우주의 장점 중 하나다.
그래서 늘 이 소년은 책을 곁에다 두고 있다.
이미 세 개의 언어(한국어, 세르비아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고, 한국의 교육 과정 진행 정도도 3년 정도 앞서나가고 있다 들었다.
어떠한 이들은 테니스에만 집중해 기초 교육과정을 등한시하지만, 그런 경우는 대체로 멘탈에서 문제를 드러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우주는 부지런히 기초를 쌓아가는 중이다.
딸깍.
“들어오시죠.”
얼마 뒤, 토니 나달이 자신이 일하는 건물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그러곤 안드레이에겐 응접실에서 기다리라 말한 후, 신우주를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해 걱정하는 소년을 위해, 토니 나달은 자신이 영어를 잘 구사한다는 걸 보여줬다.
“반갑구나. 자리에 앉으렴.”
“아. 네. 감사합니다.”
“미리 네 정보를 받았는데, 14살이라고?”
“네. 2000년 12월생이요.”
“키는 180.3㎝로 적혀 있는데, 그보다 큰 것 같군.”
“스웨덴에서 쟀을 땐 182.0㎝였어요.”
“네가 또래보다 크다는 건 아니?”
“전반적으로는요.”
“좋아. 혹시, 장비 가방을 좀 볼 수 있을까?”
“……네.”
내키지 않는단 얼굴로, 신우주는 바닥에 내려두었던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그러자 그것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토니 나달이 지퍼를 열고 내부를 살폈다.
신우주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지만, 토니 나달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세 개의 라켓. 전부 미드 플러스. 무게는 흠……. 얼추 280g 정도 되겠구나. 300g이 되진 않을 거야. 그보다는 조금 가볍게 느껴지는군.”
“?”
“응? 왜 그렇게 놀라지?”
“그걸 그냥 보기만 해서 아시는 거예요?”
“하하. 너도 나 정도의 경력이 되면 그럴 거란다. 어쩌면 더 빨라질 수도 있지.”
테니스 라켓은 단일 종류가 아니다.
크기와 무게가 각기 다르다.
그에 따라 라켓 밸런스 지점 역시 달랐는데, 이 위치에 따라서도 샷(Shot)의 형태가 많이 달라진다.
이번에 토니 나달은 테니스 줄을 살폈다.
“스트링은 오픈이구나.”
“네.”
“이렇게 한 이유를 물어도 될까?”
“제가 가장 맞는 방식이거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답이 가능하겠니?”
“그럼요. 얼마든지요.”
프로의 테니스 라켓은 기본적으로 스트링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또 심심치 않게 끊어지기 때문에, 모든 선수는 어렸을 때 스트링을 매는 방법을 배운다.
아직 스트링거가 없는 신우주는 본인의 장비를 직접 점검했고, 줄이 끊어지면 그날 밤 본인의 손으로 줄을 맸다.
그리고 이런 스트링은 패턴에 따라 오픈(Open/16*19)과 덴스(Dense/18*20)로 구분되는데, 전자의 경우 간격이 넓어 과감한 샷에 장점이 있고 후자는 안정적인 샷 처리가 가능하다.
또한, 스트링의 종류와 텐션을 얼마만큼 주느냐에 따라서도 샷의 느낌이 달라진다.
그래서 선수들은 자신만의 것을 찾는다.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스트링을 매는 선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선수는 단점을 최대한 억눌러 주는 방식으로 스트링을 매기도 한다.
무엇을 택하는지는 일차적으로 선수의 의지가 반영되지만, 선수에게 가장 나은 걸 찾아주는 건 코치의 몫이다.
지금 토니 나달은 편하고 가볍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지만, 사실 이것은 신우주가 그동안 해온 테니스와 곁에 있는 코치들의 능력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대화였다.
구체적인 답변을 해달란 토니 나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우주가 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는 제가 충분히 테니스공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거든요. 덴스로 스트링을 매어봤을 때도 있었는데, 오픈 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렇구나. 그럼 이 브랜드를 택한 이유는?”
“음, 일단 가벼워요.”
“또?”
“또…….”
신우주의 대답이 하나 나올 때마다, 토니 나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하고 다시 질문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너무 포괄적인 대답이 들려올 때면, 어김없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상대의 성향을 파악한 신우주는 아예 처음부터 상세하게 말하며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였다.
라켓으로 시작되었던 두 사람의 대화는 테니스화로 옮겨간 뒤에도 한참을 이어졌다.
밖에 있던 안드레이는 심심함을 느껴 잡지를 뒤적였고, 마침내 노트를 덮은 토니 나달은 신우주를 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래. 양손으로 테니스를 한다고?”
“네.”
“이유는?”
“더 다채로우니까요.”
“다채롭다. 재미있는 설명이로구나.”
“혹시…….”
“응? 왜 그러지?”
“싫어하시나요? 양손 테니스요.”
“…….”
어렸을 때 양손으로 포핸드를 구사했던 조카에게, 토니 나달이 한쪽 손으로만 테니스를 하도록 권유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오른손잡이임에도 왼손을 택했던 라파엘 나달은 현재 세계를 대표하는 남자 테니스 선수 중 하나가 되었고, 역대 가장 뛰어난 왼손 테니스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토니 나달은 늘 이를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믿었다.
양손 테니스는 이론적으론 훌륭하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두 배 노력을 들여서 양손 테니스를 습득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많은 양손잡이 선수가 타이틀을 획득하고 ATP 랭킹 상위권에 자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론 그렇지 않은 이유는, 두 배의 노력을 한다 쳐도 얻는 성과가 그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토니 나달.
그는 앞에 있는 소년을 본다.
‘이 꼬마가 자신이 본 최고라고 했어.’
토니 나달은 파트리크 무하토글루가 보낸 추천장에 적힌 문구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장비를 챙기라고 말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질문에 관한 답은 테스트 후에 할 예정이다.
지금은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았다.
“히팅에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지?”
“스트로크 훈련부터 하나요?”
“그래.”
“그럼 최소 한 시간은 필요해요.”
“90분 주지. 밖으로 나가면 사람 하나가 코트를 안내해 줄 거야. 오늘은 밖이 무척 더우니 실내에서 진행할 거란다. 하드코트이고, 다른 곳보다 살짝 단단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니?.”
“네. 제가 직접 대화해 볼게요.”
“?”
나가는 문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코트와 대화해 보겠다고 말한 신우주. 토니 나달은 살짝 놀라 그런 소년이 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표현한 방식은 조금 특이했지만, 소년이 말한 부분은 타고난 재능과 크게 관계된 것이었다.
문이 닫힌 후 홀로 남겨진 자리.
토니 나달은 머리를 긁적인다.
“이거야 원.”
8살 때 마요르카의 12세 이하 대회에서 우승한 조카가 10대의 나이에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지금도 여전히 조카와 함께 투어를 다니며 코칭을 아끼지 않고 있었지만, 예전만큼의 두근거림이나 만족감은 느끼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오히려 토니 나달은 ACA에서의 삶이 좋았고, 내년 마요르카에 아카데미가 완성된 후 코칭을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정직하고 또 강직한 성격의 토니 나달.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재미있겠어. 저 꼬마.”
마지막 한마디에서 살짝 드러난 반짝이는 편린(片鱗)을 발견한 지금, 토니 나달의 열정은 10대의 그것보다도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