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Time Stop Player RAW novel - Chapter (120)
쾅!
후우웅――――!
그저 노력과 끈기로 모인 중첩된 묵직한 한 방.
지축이 뒤흔들 정도의 거대한 충격과 동시에 사방에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레인이 기댔던 벽이 쩌저적- 갈라지며 그녀의 중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고 사방에 파편이 튀었다.
위이잉!
동시에 바르바돈의 도시에 사이렌 소리가 사방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싸움의 여파로 소란이 생겼으니 당연했다.
곧 이곳에 영웅을 포함한 바르바돈의 경비들이 몰리겠지.
그 성가신 일에 말려들기 전에 하준은 레인을 끝내기로 했다.
후우웅~
곧이어 사방에 피어오른 흙먼지가 개이며 레인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에 성한 곳 없이 다쳐 있었으며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는 그녀.
그러나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레인이 온몸에 두른 용의 비늘이 그녀의 몸을 보호했으니.
물론.
툭- 쩌저적-
그녀의 몸을 보호했던 비늘은 이미 그 충격을 전부 버티지 못하여 부서지고 갈라지고 깨지며 레인의 몸에 투둑-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이제 그녀를 보호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준은 다시 그녀를 향해 망치를 들어 올렸고 레인은 그저 힘겹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레인은 고개를 들어 하준을 바라봤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죽일 수 없는 상대.
그의 모습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극복했다고 생각한 레인의 감정에 두려움이 돋아났다.
레인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망치를 들어 올린 소년의 모습이 너무도 높게 보였다.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거리.
“아, 아!”
레인의 입에서 복합적인 감정의 비명이 흘러나온다.
과거 레아논이 말했던 절대적인 존재가 자신을 향해 망치를 내리치려 했다.
죽음.
지금 이 순간 레인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 안 돼··········.’
살아야 한다.
아직 죽을 수 없다.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약속이 있는데··········.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서 공포와 함께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레인.]레아논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후우웅!!
쩌적-
레인의 바로 위 허공에서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가라진 공간 속 무저갱의 어둠 속에서 용의 눈동자가 살며시 눈을 떴다.
레아논.
레인과 계약한 용은 레인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리석구나.]그 목소리가 레인의 귓가에 이명처럼 울려온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의지와 상관없이 살며시 감기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을 잃었지만 하준의 망치는 망설임 없이 휘둘러졌다.
그대로 시간 정지를 한 하준은 망치를 휘둘렀고 정지를 푼 순간.
캉!
하준의 망치가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분명 내리치고 있었을 때는 방어막을 두른 거 같지 않았는데.
하준은 미간을 좁힌 채 레인을 자세히 살폈고 그 순간 레인의 몸 전체에 무언가 얇은 막이 둘러져 일렁이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똑같은 방어막일 뿐.
조금 고생하더라도 지금 그녀를 없애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하준은 다시 망치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기절했다고 생각한 레인의 입이 열린 것은.
[마하라즈와 계약했구나, 초월자여.]레인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레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마치 공간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
눈앞의 거대한 눈동자.
용의 목소리였다.
그는 인간의 언어로 입을 열고 있었다.
레인의 몸을 빌려서 그런가?
과거와 다르게 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하준은 놈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하준은 그 거대한 눈동자를 무시하며 다시 레인을 향해 망치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놈이 하준을 향해 입을 연 것은.
[초월자여, 나는 그대와 적대할 생각이 없다.]“······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의 뜻이다.]그 말에 하준의 기이한 얼굴로 놈을 노려봤다.
놈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시간 벌기인가?
하준은 잠시 생각하다 망치를 어깨에 걸치며 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차피 하준에게 넘치는 것이 시간이었다.
놈의 말을 전부 들어본 다음에 판단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놈이 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라면 어렵지 않게 이 방어막을 부수겠지. 하나, 나는 그대와 적대할 생각이 없-.]“적대할 생각이 없으면.”
하준은 놈의 말을 끊고 눈동자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안 그래?”
그 말에 잠시 침묵한 레아논이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가라앉은 눈동자로 하준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고요한 침묵이 이어지다 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속하지, 이제부터 그대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없을 거다.]“그걸 믿-”
믿으라고? 라고 말하려 했던 하준이지만 중간에 그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준의 눈앞에 갑작스럽게 떠오른 퀘스트 창 때문이었다.
그것도 과거에 하준의 실수로 받은 붉은 퀘스트.
그것을 본 순간 하준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메인 퀘스트]퀘스트 가능 캐릭터 : 김하준(리베르 라필턴 필 에르만)
설명 : 로키아 아카데미를 동료들과 함께 무사히 졸업하십시오
● 한시영 (보류)
● 안나 엘리자베스 하르텔 (보류)
● 하르나 루엘 (보류)
● 리암 마르텔 (진행률 45%)
실패 : 사망
‘······?’
붉은 퀘스트 창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보류로만 쓰이던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가로 칸에 진행률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왜 이게 갑자기······.’
하준은 잠시 침묵한 채 생각에 잠겼다.
용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잠잠하던 붉은 퀘스트가 갑자기 변화를 일으킬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거기다 진행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거 같았다.
아마 리암 마르텔의 스토리 진행률을 말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방금 용의 발언으로 진행률이 오른 걸까?
‘······.’
하준은 생각에 잠겼다.
만약 지금 레인을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을 하자마자 상황이 일어났다.
파지직-
하준의 몸에 잔류의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파직- 따끔거릴 정도로 미약한 전류였으나 하준은 이 기운이 익숙했다.
‘강제력?’
하준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솔직히 지금 현상은 아무리 하준이라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저 붉은 퀘스트가 메인 퀘스트이니 강제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하준은 퀘스트 내용에 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하준의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시스템은 다르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예를 들어······.
‘레인을 죽이면······.’
레인을 죽이면 리암이 아카데미를 졸업하는데 문제가 생기나?
하준은 리암 마르텔의 스토리를 알고 있었고 레인이 리암 마르텔을 죽이려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준이 생각하는 메인 빌런들은 무조건 없애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들로 말 그대로 해악이니.
그 전부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현상으로 하준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리암이 졸업하려면······, 아니 정확히 살려면 레인도 살아 있어야 한다.
‘성가시네······.’
하준은 혀를 찼다.
고민해봤자 어차피 해야 하는 선택은 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하준은 짜증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입술을 비틀며 놈에게 경고했다.
“명심해라. 리암이나 내 앞에 레인의 얼굴이 보이면 죽인다.”
[명심하지.]그 말을 끝으로 하준은 별수 없이 뒤돌아섰다.
주변에 바르바돈을 지키는 영웅들이 몰려드는 것이 보였으니.
“야, 가자.”
“어?”
하준은 멍하니 상황을 보고 있던 리암에게 말했다.
막상 리암은 멍하니 벙찐 표정으로 하준을 올려다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은 안 잡아도 돼?”
“어차피 영웅들이 알아서 잡겠지.”
적어도 레인은 살 수 있겠으나 영웅들이 레인을 알아보고 체포할 게 분명했다. 저 상태라면 나머지 동료들이 와도 레인을 구할 수 없을 테니.
“그래, 일단 돌아가서 치료받아야겠네.”
그 말과 함께 리암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으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리암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하준에게 말했다.
“아하하, 힘이 안 들어가네. 도와줄래?”
그 말에 하준은 쯧쯧- 혀를 차며 리암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게 퍼레이드나 구경하러 가지.”
“응? 아하하, 그러게.”
* * *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 빌란트의 수장 레인이 수중 도시 바르바돈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은 들렸으나 이레귤러와 관련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CCTV가 없는 은밀한 장소에서 거래를 했으니 정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준은 자신이 그녀를 잡았다고 광고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럴 경우 정황 파악 같은 귀찮은 것을 설명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거 하준 씨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아이들은 TV에 나오는 속보를 보고 있었고, 안나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하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리암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 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암만 봐도 정황상 빌란트의 레인을 잡은 영웅이 하준밖에 없었으니까.
“어.”
막상 하준은 귀찮은 듯이 대답하며 태평하게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뮤튜브를 볼 뿐이었다.
그런 하준의 대충인 대답에 안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안나의 시선이 하준에서 리암으로 향했다.
“야, 너가 말해.”
“그게······, 어제 하준이가 구해줬어. 도중에 빌란트의 레인과 싸웠고.”
“어쩐지 어제 오른쪽 왼쪽 늑골이 하나씩 부러진 상태로 돌아온 게 이상하긴 했어요.”
유설아의 말이었다.
그녀는 그날 늦은 저녁 크게 다쳐서 온 리암에 깜짝 놀라 능력을 써서 치료해준 상태였다.
물론 당시 치료하자마자 리암이 기절했기에 상황을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였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놈들이 갑자기 숙소를 습격했으니까.”
“어쨌든 다행이네.”
“이번에도 타이밍 좋게 오셨네요, 하준 씨.”
“응? 응.”
하준은 유설아의 말에 대충 대답하며 등을 긁적이고는 다시 뮤튜브를 볼 뿐이었다.
아이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런 하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일레인을 바라봤다.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안나가 일레인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혹시 하준 씨는 옛날에도 저랬니?”
“어······, 옛날에는 저런 괴짜는 아니었는데요?”
일레인도 솔직히 다른 아이들의 마음과 마찬가지였다.
안 본 사이에 오빠가 어쩌다 저런 괴짜가 됐을까?
현시대에 가장 유명한 영웅의 실체를 본 일레인은 조금 복잡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아직도 낄낄거리는 오빠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뮤튜브를 보고 있던 하준의 폰에 전화가 왔다.
하준은 조금 귀찮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한 발신자는 미국 히어로 협회의 협회장 안드로 한스였다.
-오늘 뉴스 속보를 들었습니다, 이레귤러. 혹시 빌란트의 레인을 잡은 게 당신입니까?
“예, 그런데요?”
-이런 정말 이레귤러에게 여러 번 빚을 지는군요.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협회장 안드로의 치하에 하준은 태평한 목소리로 겸손을 떨었다.
딱히 협회장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한 행동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렇게 협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단순히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전화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준의 예상이 맞았을까?
감사 인사를 전한 협회장은 곧바로 은근한 투로 하준에게 용건을 말했다.
-저기······, 그래서 그렇습니다만, 지금 세계 영웅 협회에서는 이레귤러님께 영웅 명예 훈장 수여에 대해 논의 중입니다.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영웅 명예 훈장.
영웅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로 국적 상관없이 그 훈장을 받은 영웅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과거 대혼란을 끝낸 대영웅들부터 현 세계 영웅 순위 1위부터 5위까지 과거의 세계를 위협할 재앙을 막은 영웅들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훈장이었다.
그리고 협회장의 제안에 하준은 고민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거절할게요.”
-······예? 어, 그게 어째서······.
어찌나 당황했는지 협회장의 말투에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하준도 이유가 있었다.
영웅 명예 훈장을 받음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특혜를 떠올리면 딱히 하준에게 필요 없는 특혜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걸 받아서 더욱 관심을 받을 필요도 없고.
하준이 말했다.
“아무튼 괜찮습니다.”
-어, 그게······, 정말로 괜찮습니까?
“예.”
-그, 일단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시면 다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협회장 안드로는 연락을 끊었고 옆에서 통화음을 듣고 있던 일레인은 입을 벌린 채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방금 영웅 명예 훈장이라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아니지?”
통화음 너머에서 영웅 명예 훈장 소리가 들려왔고 오빠는 ‘아니요’라는 말로 거절했던 거 같은데?
설마 하는 생각으로 하준에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경악이었다.
“맞는데.”
그 대답에 숙소에 있던 아이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하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