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39)
─ 스노우화이트 황녀님의 멘토가 됨.
─ 우연인가?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2학년, A 클래스 5등.
화이트클락 공작 가문의 분홍색 단발머리 영애, 케리드나 화이트클락.
그녀는 이름 없는 영웅이 아이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언니인 에이첼 화이트클락의 지시대로, 케리드나는 아이작에 관한 소문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었다.
밤이 깊은 시각. 최상위권 기숙사 샤를관.
책상 위에 놓인 발광 램프가 어둑한 방 안에 은은한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케리드나는 책상에서 아이작 정보 모음 노트를 덮고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느 때나 하던 바로 그 고민이었다.
‘왜 언니는, 아이작한테 그렇게 집착하지…?’
화이트클락 공작 가문은 [시야 동화]라는 가계 마법을 통해 귀족계를 주시하고 있었다.
덕분에 제르베르 황국의 온갖 귀족들이 이름 없는 영웅을 중심으로 몰래 움직이기 시작한 것 또한, 케리드나는 에이첼로부터 전해 들어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수상쩍은 건 카르네다스 가문. 동기이자 삼석, 시엘 카르네다스가 속해 있는 가문이었다.
그들은 영문 모를 행보를 보이고 있어 에이첼이 가장 중점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이름 없는 영웅, 아이작은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마법사.
만약 그가 인류의 편이라는 게 확실시 된다면, 전 세계는 그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에이첼 화이트클락이 아이작의 행보에 집착하는 건, 그가 이름 없는 영웅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해 보였다.
아이작에게 숨겨진 비밀이 많아 보이듯이 에이첼에게도 그런 게 있는 것일까. 케리드나 자신도 모르는, 언니만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
케리드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처연한 달이 밤하늘에 동그랗게 떠 있었다.
왠지 정세가 크게 뒤틀릴 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
아침.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
무녀 미야는 복도를 지나던 중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황녀 스노우화이트와 마주쳤다. 학사 건물 안에는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이상 호위를 둘 수 없기에 두 사람 모두 혼자였다.
화이트는 미야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흠칫 떨더니 눈을 엉뚱한 데로 돌렸다. 어째 식은땀도 흘리는 듯했다.
이내, 무슨 결심이라도 선 건지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끄덕이는 화이트.
그녀는 발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미야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억지로 웃는 표정엔 긴장감이 또렷하게 묻어났다.
“저, 저기, 안녕…?”
“…….”
휙.
미야는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태평한 얼굴로 화이트를 지나쳤고.
화이트는 인사하는 자세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복도를 지나다니던 학생들은 화이트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속닥거렸다.
“봤어? 방금 화이트 황녀님, 무녀한테 인사했다가 무시당했어.”
“세상에….”
“분위기 살벌하네….”
이미 학생 식당에서 화이트가 미야에게 식판을 엎었던 일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그 탓에 두 사람의 관계는 학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그러나 화이트에겐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무시할 것까진 없잖아아….’
눈망울에 눈물이 맺힐 듯했다.
자신은 단지 친해지고 싶을 뿐이었는데.
화이트는 가슴이 아팠다.
‘스노우화이트….’
미야의 붉은 도화살 화장을 한 눈이 좁혀졌다.
입학 첫날, 화이트를 얕보았다. 성적은 꼴등. 무슨 일만 있으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떨어대기 일쑤였지. 단지 태생만 좋은 버러지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학생 식당에서 화이트가 자신에게 식판을 엎었을 때, 미야는 몇 가지 사실을 새삼스럽게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스노우화이트는 제르베르의 황녀.
‘지금껏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 한가운데에 있었겠지.’
제르베르 황국의 차기 황권 다툼이 치열하다는 사실은 통치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편이다. 바로 스노우화이트가 자라온 환경이었다.
거기다, 황실에선 황후가 암약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예전에 전해 들었다.
정신병자였던 이전 황후가 자기 딸을 배후에서 수차례 암살하려고 했다지. 그 딸이 스노우화이트였다는 정보도 미야는 알고 있었다.
‘제르베르 황실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전장에서 살아온 버러지가, 순진무구한 겁쟁이일 리가….’
살아남기 위해 순한 양 같은 가면을 뒤집어쓴 채, 상대가 방심하길 노리는 모략꾼이라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아닌가.’
물론 그 생각은 단지 일말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예민한 상상인지도 몰랐고, 여전히 미야는 화이트가 정말로 순진한 버러지라는 쪽에 생각이 더 쏠려 있기도 했다.
평소에 보이는 그 찌질한 모습은… 역시 진짜라고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천천히 알아가면 될 일이겠지.’
미야는 표정을 갈무리했다.
……
“특별 교육 시간이다.”
마법학부 1학년 교수, 페르난도 프로스트가 확성기를 들고 입을 열자 많은 여학생이 얼굴을 붉히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대형 강의실. 마법학부 1학년생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고.
무대 위에서 페르난도는 특별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 너희들에게 가르칠 건 ‘마력 방출’이다. 마력을 강하게 방출할수록 마법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진다는 건 당연한 얘기지. 따라서, 너희들이 얼마 만큼의 마력을 방출할 수 있는지 체감시킨 뒤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페르난도는 무대 옆 대기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체 엘타니아, 앞으로.”
무대 옆에서 한 여성이 걸어나왔다.
로즈골드색 머리칼을 땋아 내린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었다. 몰포나비 머리 장식이 잘 어울리며, 놀라우리만치 외모가 아름다웠다.
그녀는 페르난도 옆에 서서 1학년생들을 바라보았다.
교복 리본에 달린 브로치는 파란색. 2학년생이었다.
마법학부 1학년생들은 ‘루체 엘타니아다’하고 모두 놀란 얼굴로 신경을 집중했다. 하도 유명한 인물이 튀어나온 탓이었다.
그녀를 동경하는 이가 이 강의실 안에선 대부분일 것이었다.
“저분이 루체 엘타니아…!”
황녀 스노우화이트의 동경심 어린 눈빛이 반짝였고.
“루체 엘타니아…?”
무녀 미야는 갑작스러운 루체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했다.
반면에 루체는 그저 무표정이었다. 1학년생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든 말든 조금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이내, 루체의 파란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한 여학생에게 고정되었다.
“어, 어어…?”
황녀 스노우화이트는 루체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설렜으나, 마음마저 얼어붙을 듯한 싸늘한 눈초리에 진득한 살기가 느껴져 본능적인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화이트의 몸이 반사적으로 덜덜 떨렸다.
루체에게 황녀 화이트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요새 아이작이 멘토링이다 뭐다 하면서 저 후배와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 탓에 아이작과 함께 있을 시간이 줄어 들었다는 점이, 루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루체, 마력을.”
페르난도의 지시.
이내 루체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눈을 떴고.
고오오오오오───!
그녀의 묵직한 마력이 강의실에 격풍처럼 퍼져나갔다.
1학년생들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감각을 느꼈다.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듯했다. 피부를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마력에 저마다 크게 놀란 눈치였다.
“자, 너희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전력으로 마력을 쏟아부어 루체 엘타니아의 마력을 흐트려 보거라. 너희들의 최대 마력 방출량은 전부 측정될 거다. 이는 차후 개별 상담과 교육을 위한 참고 자료가 될 테니 모두 성실히 임하도록.”
페르난도의 지시에 학생들은 마른침을 삼키고 수군거렸다.
튼튼하게 구축된 마력의 형태가 학생들의 눈에 보였다. 대체 얼마나 마력 운용력이 높기에 저리도 정교할 수 있을까.
하물며 저렇게 밀도 높은 마력 앞에서 자신의 마력은 얼마나 초라한가, 하고 학생들은 열등감을 느꼈다.
그러나 루체의 마력을 공격하는 건 어디까지나 수업의 일환.
이때 아니면 언제 수석과 힘겨루기를 해볼 수 있겠는가.
1학년생들은 저마다 마력을 끌어올리고서, 루체를 향해 공격적으로 쏟아부었다.
…이윽고, 많은 학생이 코피를 흘리거나 지쳐 쓰러졌다. 황녀 스노우화이트는 진작 책상에 쓰러진 채 팔을 덜덜 떨고만 있었다.
루체의 마력은 학생들의 마력이 맹렬히 퍼부어졌음에도 철옹성처럼 견고해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1학년생들은 모두 재능을 타고난 영재들이나, 루체 앞에선 그저 평등한 약자일 뿐이었던 것.
반면에, 무녀 미야와 연분홍빛 머리의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는 가만히 루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페르난도는 미간을 좁히고서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너희들은 왜 덤비지 않는 거냐?”
“질 게 뻔하니까요.”
턱을 괴고 있던 무녀 미야는 페르난도의 질문에 툭 던지듯 대답했다.
페르난도가 성녀 비앙카에게도 눈짓을 주자,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페르난도는 한숨을 내뱉었다. 수업에 비협조적이나, 참여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불이익은 그녀들만 떠안을 뿐이므로.
“루체 엘타니아, 마력을 거둬도 된다. 수고했다.”
루체의 마력이 사그라졌다. 곧 그녀는 무대에서 떠나갔다.
살 떨리는 강의실 분위기가 금세 가라앉았으나,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과하게 마력을 방출한 탓에 무리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그러나 페르난도는 상관 없다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수업을 시작했다. 무녀와 성녀를 제외한 학생들은 좀비처럼 그어억, 거리며 수업을 들었다.
……
“루체 엘타니아 선배, 맞지?”
“……?”
수업이 끝난 시각.
땋아 내린 로즈골드색 머리칼. 나비 머리 장식. 루체 엘타니아가 수업동을 나서고 길을 지날 때였다.
붉은 매화 나무가 피어 있는 곳에서, 흑옥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한 여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자 루체는 발을 멈추었다.
붉은 도화살 화장이 여학생의 순한 눈매를 앙칼진 눈매처럼 돋보이게 했다.
호위 마법사를 대동한 걸 보니 신분이 꽤 높은 모양. 저런 호위병이 학사 차원에서 허용되는 존재는 루체가 알기로 이번 신입생 중 셋밖에 없었다.
교복에 달린 붉은 브로치를 보니 1학년생.
‘아, 무녀.’
루체는 바로 알아챘다.
“‘미야’야. 아까 강의실에서 봤는데,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기억할지 모르겠네.”
“…….”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어. 나 선배 좋아하거든.”
미야는 루체에게 상체를 기울여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더니, 씨익 웃었다.
“후후. 앞으로 잘 부탁해, 루체 선…. 어?”
루체는 무녀 미야가 악수하려고 내민 손을 무시하고 발을 옮겼다.
어서 아이작이 보고 싶었다. 이 검은 머리 후배가 동방국의 무녀든 말든 간에 루체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호위 마법사는 당황했으나, 미야는 이럴 줄 예상했다는 듯 태평하게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역시 소문대로 쌀쌀맞네.”
루체 엘타니아.
전설의 마수, 뇌신조-갈리아를 사역마로 다루며 부유섬의 거대한 공격으로부터 메르헨 아카데미를 지켜낸 장본인.
그 재능은 가히 압도적이며, 그녀는 현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2학년 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석이었다.
그뿐만인가. 루체는 대체로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으며, 누구에게든지 싸늘한 시선만 보내는 얼음공주의 표본이기도 했다.
“어디 가는 거야? 나 무시해서 좋을 거 없을 텐데?”
루체는 대답 없이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이윽고, 미야는 루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미야 님?”
“마음에 들어. 더 갖고 싶어졌어.”
접힌 검은 부채를 입술에 대고 뺨을 붉히는 미야.
호위 마법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메르헨 아카데미에 오면서 무녀 미야가 노래 부르듯 원하던 것이 있었다.
단연 첫째는 이름 없는 영웅.
둘째는 각 학년 마법학부 수석을 차지하는 루체 엘타니아와 별의 마녀, 도로시 하트노바였다.
이름 없는 영웅과 더불어 대륙 전역과 바다 건너 동방국에까지 퍼진 그녀들의 소문은 미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야는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반드시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만약 가지지 못할 이유가 있으면, 그 이유가 되는 것들을 모조리 없애서라도 가지고 만다.
그리고 지금, 미야는 루체 엘타니아가 더욱 갖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미야라면 원하는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르려 할 터.
“저런 선배가 비굴하게 내 명령에 복종하면서, 내게만 미소를 보여 준다면… 정말 황홀할 것 같지 않아?”
미야는 저런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다.
피도 눈물도 없으며, 자신이 바라는 것,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냉혈한.
필시 저 선배는 그런 자다. 그것이 루체 엘타니아일 터.
왜냐하면.
“남들을 버러지 취급하는, 아무에게도 미소 지어 주지 않는… 얼음 같은 여자. 저 마음 잘 알아. 저 사람은… 나랑 동류야.”
자신이 그런 자이기 때문.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이었다.
“후훗.”
미야는 몰래 루체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루체를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 * *
수국 정원 구석. 나는 마법을 단련하면서 황녀 스노우화이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엉뚱한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작, 배고프지? 밥 안 먹었을까 봐 먹을 거 싸 왔어. 먹여줄까?”
갑작스레 찾아오더니, 자연스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그녀.
“루체….”
…얘, 여긴 어떻게 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