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84)
* * *
헬리제 교단의 교회는 풍부한 곡선을 띠는 양식으로 건축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성서에 그리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어느 지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첨탑 위에는 헬리제 교단을 상징하는 관통된 초승달 모형의 석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첨탑 주위로 헬리제 교단의 교회가 둘러싸여 있었다.
교회 예배당.
연분홍빛 머리의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는 홀로 좌석에 앉아 있었다.
온몸을 가린 새하얀 성녀 복. 금빛 장신구. 머리에 씌운 면사포. 공신제 기간 동안 성녀가 반드시 갖춰야 할 복식이었다. 비앙카 앙투라제는 성녀라는 신분 탓에 절제된 외관을 준수해야만 했다.
그녀는 공신제 개막식 때 아카데미 대표로 주신 만할라께 기도를 올린 후, 교회에 돌아와 개인 기도를 마친 뒤였다.
교회는 경건하고 고요했다. 공신제의 열기와는 대조적이었다.
비앙카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구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이름 없는 영웅과 뇌신조-갈리아가 격전을 벌였던 장소, 카를리관에서 가져온 낡아빠진 책.
이미 수 회 완독했다.
이 신비로운 책을 자신이 찾아낸 데에는 필시 주신의 인도가 있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비앙카는 책을 반복해서 읽어댔던 것이다.
반듯하기도 하고, 둥그렇기도 한 문자들은 여전히 읽을 수 없었으나.
그림 만큼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피로 이루어진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저자가 일부러 제 피로 그린 형상이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늘에 구덩이가 있었다. 마치 땅을 뒤집어 놓은 듯이.
빗물은 드넓은 호수에 스며들었고.
호수 주위로는 여러 개의 무언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체 덩어리 같은데, 정확히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세계 어디를 둘러 봐도 하늘에 구멍 뚫린 곳은 없고, 있다고 해도 이런 호수나 피로 이루어진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헬리제 교단의 성서에도 이런 불길한 장소와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긴 대체 어디일까.
“성녀님. 정말 공신제에 참여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예배당 구석에 서 있던 호위 신자, 사일론이 떠보듯 묻자 성녀 비앙카는 그 사내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비앙카는 눈을 감은 채였다. 눈을 뜨나 감으나, 잃어 버린 육신의 시력은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저 신성력이란 신비한 힘으로 앞을 살필 수 있을 뿐. 힘이 고갈되면 그녀는 다시 깜깜한 세상으로 내던져질 것이었다.
“주신의 오락거리가 되어 줄 어린양은 많다네. 나는 그저 기도를 올리며 주신의 거룩한 뜻을 조금이라도 깊이 헤아리고자 발버둥칠 뿐이지. 그것이 성녀 된 자의 사명 아니겠는가?”
고상한 목소리. 성녀다운 엄숙한 뉘앙스였다.
다시 책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비앙카.
“지금은 이 책의 정체가 뭔지, 이 책을 전해 줘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한시라도 빨리 알고 싶네.”
주신의 뜻이라면 목숨까지 바쳐 수행할 각오가 돼 있었다.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자기 손에 넘어온 것이 필시 주신의 뜻일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이 책을 전해 줘야 할 대상에게 전해 줘야만 할 터.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이미 윤곽이 잡혀 있었다.
“아니, 그중 하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분명히 이곳, 메르헨 아카데미에는 어떤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다.
성녀인 자신조차도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비밀.
그 한편에 서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름 없는 영웅’…. 아마도 그자야. 이 책은 그자에게 넘어가야 해.”
이름 없는 영웅이라는 정체불명의 대마법사.
그에게 이 책을 전해 줘야 하리라.
“사일론. 나는 이 책을 이름 없는 영웅에게 전할걸세. 팔다리가 뭉개진다면 땅을 기어서라도 말이지. 그것이 주신의 뜻이지 않겠는가.”
천장에 새겨진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너머.
한낮의 햇볕이 새어 들어와 주신의 상징을 찬연하게 비추었다.
“그러니 만약 내 육신의 숨이 멎고, 내 영혼이 주신의 곁으로 돌아간다면, 부디 자네가 이 책을 그에게 전해 주길 바라네. 그대의 팔다리가 잘리더라도, 두 눈알이 뽑히더라도, 몸의 절반이 날아가더라도, 사명을 우선시해주길.”
사일론은 성녀 옆으로 다가가고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에겐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이미 한번 성녀에게 목숨을 건졌던 그는, 이미 자신의 인생을 주신과 성녀에게 바치기로 다짐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비앙카는 고아한 미소를 흘렸다.
* * *
아크볼 레이스 트랙 위. 세이프 라인을 지난 때.
앞서 나가던 녀석들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곤 클로버 팔라딘, 피에르 플랑체의 막대한 마력에 입을 떡 벌렸다.
‘무지막지하네.’
기초 원소 마법이 저 정도라니. 미친 거 아니냐.
뭐, 이미 예상했다.
우리는 이미 대비가 돼 있었다.
“…뭐야?”
피에르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 자신의 예상을 빗나간 결과가 눈앞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크하하하!!”
이미 트리스탄은 자기 몸에 바람을 휘감은 채 엄청난 속도로 트랙을 따라 날아가고 있었고.
화르르륵!
우리의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은 팔을 뒤로 뻗고 불 원소 마법을 폭발적으로 퍼부으며 로켓처럼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 트리스탄의 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 준수한 수준이었다.
가끔 존재감이 강해졌다가 아싸처럼 조용해지곤 하는 우리 팀 남학생, 도지 투말스는 리제타처럼 발 밑에서 바위기둥을 끌어 올려 소용돌이와 파도를 피해냈다.
고밀도의 물 마법은 그의 바위기둥조차도 박살냈으나, 그때는 이미 도지가 피에르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때였다.
우리 팀 희생자는 0명. 게다가 놈의 목표였던 스노우화이트는 물 마법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피에르는 빠르게 눈을 돌려 나와 화이트를 찾아냈다.
“우와악! 아이작 선배애애애!!!”
차아악!!
나는 화이트를 안아 든 채 발 밑에 얼음 널을 만들어 놓고, 피에르가 일으킨 파도를 타고 서핑하듯 나아가고 있었다.
화이트가 하도 비명을 질러 대니 귀가 아팠다.
머리칼과 옷자락이 마구 휘날렸다. 얼음 널에는 신발까지 얼려 발이 고정된 채였다.
나는 파도 겉면을 얼려가며 빠른 속도로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이 와중에도 단련된 신체 덕분에 몸의 중심을 잡는 건 제법 수월했다.
나는 이미 화이트 팀과 몰래 협의한 상황이었다.
화이트는 내 멘티이므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녀석을 지키겠노라고.
우리 팀에게도 그리 일러 두었고, 다들 수락해주었다.
대련 평가 때 화이트가 무녀에게 당하고 내가 화냈던 일이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오고 갔던 까닭인지, 다들 내 심정을 헤아려주는 분위기였다.
또한, 대량의 마력량으로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인 피에르 플랑체를 조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작전을 공유하기도 했다.
세이프 라인을 넘어선 순간, 카트 게임에서 부스터를 뿜어 대듯이 전력으로 나아가기로 했지. 피에르가 모두를 전멸시키려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뭐, ‘만일의 상황’이란 건 핑계고.
‘[심리 간파]로 이미 파악하고 있었어.’
덕분에 우리 팀과 화이트의 드릴 머리 팀은 피에르의 공격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오.’
꽤 높이 올라왔다. 피에르의 경악한 얼굴이 내려다보였다.
“하! 굼벵이들이!”
트리스탄은 엄청난 속도로 공기를 가로질러 학생들을 제치더니, 단숨에 아크볼에 이르렀다.
그새 또 빨라졌네. 나한테 패배한 이후로 얼마나 더 단련한 건지 감도 안 잡힌다.
트리스탄은 다른 학생의 뜰채에 잡혀 있던 아크볼을 가로채 갔다. 원래 그물망 따위는 없었으므로, 뜰채를 휘둘러 아크볼을 통과시키면 가로채 가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여러 학생이 눈 깜짝할 새에 나타난 트리스탄을 보고 당황했다.
“아앗!”
“안 놓쳐!”
하지만 주위로 덤벼오는 경쟁자가 많았기에, 그들 모두를 감당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 트리스탄은 곧바로 이안을 향해 아크볼을 패스했다.
아크볼은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이안은 뜰채로 가볍게 그것을 받아 냈다.
전격 마력이 흘러나와 아크볼을 붙잡았다.
“칫!”
피에르는 그나마 거리가 멀지 않았던 이안을 향해 물 마법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이안 주위로 물 마력이 형성되더니 파도의 형태가 되어 솟구쳤다.
저건 피하기 어렵겠다.
푸우우우!!
“아이작!!”
그러자 이안은 뜰채를 휘둘러, 피에르의 파도를 타고 가던 나를 향해 아크볼을 던졌다.
단숨에 날아오던 아크볼을 뜰채로 낚아챘다.
치직. 내 뜰채에서 전격 마력이 흘러나와 아크볼을 붙잡았다. 좋아.
푸우우우!!
“으악!”
이안은 파도에 휩쓸려 트랙 밖으로 날아가듯 밀려났고, 연이어 퍼부어진 물 마법에 당해 정신을 잃었다.
나무에 등을 부딪히고 눈을 감아버린 이안. 네 희생, 잊지 않을게.
비단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피에르의 물 마법에 휩쓸렸던 많은 학생이 고통에 신음하거나 뒹굴고 있었다. 대부분 기절한 채였다. 경쟁자 제거 감사하고요.
뭐. 피에르는 앨리스의 강력한 부하 중 한 명, 팔라딘이다.
마력 밀도가 워낙 높은 탓에, 기초 물 원소 마법조차 얻어맞으면 그냥 물 첨벙대는 수준이 아니라 철에 부딪치는 느낌과 비슷할 것이었다.
어쨌든, 다음으로 할 일은 명료했다. 피에르는 자신이 이 레이스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 말은 즉, 나도 아낌없이 녀석에게 공격을 퍼부을 명분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화이트! 지팡이 꺼내!”
“흐극…!”
미리 얘기했던 대로, 화이트는 품 안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잔야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오직 그 마도무기 하나만 들어 있던 마법 주머니였다.
마법 주머니는 던져졌고, 화이트의 손에는 제 몸집 만한 마도무기가 들렸다.
내게 꼭 껴안긴 화이트는 그것을 내 품에 밀착시켰다. 그대로 나는 잔야의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우오오!! 세이프 라인을 넘어선 순간부터 그야말로 난장판!! 그 가운데서 아이작 선수, 피에르 플랑체 선수가 일으킨 파도를 얼음판을 타고 나아가며 아크볼을 차지합니다!!”
에이미의 목소리가 메르헨 아카데미 곳곳에 놓인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고.
푸우우.
피에르는 물 마법을 거두었다. 서서히 가라앉던 파도가 단숨에 푸른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으아아아앙!!”
부양감이 느껴졌다. 단숨에 몸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하자, 화이트는 내 어깨를 힘껏 휘감았다. 그리 나를 꼭 끌어안은 채 두 눈을 꾹 감고 목청껏 비명을 내질렀다.
떨어지던 중, 나는 피에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피에르 주위로는 물 원소 마법이 크게 소용돌이치며 공격과 방어가 상시 겸비된 상태였다.
귀청이 터질 듯한 화이트의 비명을 무시하고, 담담한 얼굴로 잔야의 지팡이를 내밀었다. 여명의 기운을 담은 마석이 놈을 향했다.
그대로 연푸른빛 얼음 마력을 쏟아 냈다. 잔야의 지팡이를 다루기 위해 수없이 반복했던 복잡한 마력 운용을 삽시간에 해냈다.
강력하게 흐르는 수류. 피에르의 강대한 물 마법을 온전히 얼리는 건 아직 내 실력으론 어렵지만.
꼭 저 물 원소 마법을 전부 얼릴 필요는 없었다.
차라라락!
내 [원소 효율]은 수준급이다. 즉, 내가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영역은 무척 넓은 편.
소용돌이 중심, 피에르 주위로 물 원소를 얼려 나갔다.
[원소 시너지]가 발휘된다. 물을 얼릴 때의 얼음 원소 마법은 그 위력과 효과가 증대된다.내가 제 몸을 얼리는 걸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피에르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얼른 소용돌이를 풀었다.
내 노림수는 그게 아니었다.
쿠우우우!!
“……!!”
동시에 피에르 주위로 그림자가 졌다.
파공성. 그제야 녀석은 고개를 들고서 추락하는 큼직한 얼음덩이를 알아챘다.
잇달아 놈이 도망칠 만한 곳을 향해 일제히 큰 얼음덩이를 수 개 만들어냈다.
피에르를 향해 떨어지는 얼음덩이 위로는 2차 공격을 위한 빙괴까지 생성해낸 상태.
녀석이 물 원소를 퍼뜨려 준 덕분에 충분히 가능한 묘기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녀석의 마나 잔흔조차도 잡아먹어 내 힘으로 써먹었으니.
노리는 건 오로지 피에르였다.
“미친놈인가?! 저걸 어떻게 단숨에…?”
“저 새끼…!”
트리스탄과 리제타는 내가 단번에 기초 원소 마법으로 커다란 얼음덩이를 수 개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나와 화이트가 지면에 떨어지기 직전. 얼음 미끄럼틀을 만들어 얼음 널을 타고 부드럽게 쓸려 내려갔다. 지면에 닿자마자 얼음 널을 풀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내 등 뒤로, 멀리서 얼음덩이들이 지면에 추락했다.
낮은 온도의 새하얀 흙먼지가 피어 오르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여파로 땅이 잠시간 흔들리는 듯했다.
홀로 남아 있던 피에르는 피할 곳 없이 떨어진 얼음덩이를 그대로 받아 낸 것일까.
“아이작 선배애!!! 무, 무서웠어요오…!!”
“난 네 비명 때문에 귀 떨어지는 줄 알았다.”
화이트를 공주님 안기로 안은 채 달리면서 녀석을 다그쳤다. 오른손엔 뜰채를, 왼손엔 잔야의 지팡이를 들고 있어서 꽤 불편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새하얀 연기 속, 소름이 끼칠 만큼 섬뜩한 마력이 우수수 터져 나왔다. 역시 네가 이 정도로 기절할 리 없지.
“…아이작….”
팔을 휘둘러 먼지를 헤치고 나온 자는, 베이지색 머리칼 아래로 피를 한 줄기 흘리고 있는 피에르였다. 살의를 머금어 찌푸린 미간이 유독 돋보였다.
[대 인간 전투력] 버프와 잔야의 지팡이 버프, [원소 시너지] 버프까지 곁들인 커다란 얼음덩이를 정통으로 맞고도 저 정도인가.순수하게 [기초 보호 마법]으로 내 얼음덩이를 받아 낸 듯한데도. 훌륭하네.
“화이트, 지팡이 좀 챙겨줘.”
“앗, 네에!”
“꽉 잡아.”
“네…? 흐아악!!”
화이트에게 잔야의 지팡이를 들게 하고, 다리 근육을 한껏 발휘해 트랙을 내달렸다.
아크볼은 내 뜰채에 붙잡혀 있는 상황.
뒤에선 피에르가, 앞에선 다른 참가자가 일제히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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