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27)
〈 227화 〉 변화 (1)
* * *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말이 있다.
메르헨 아카데미에 돌아온 이후, 이브 로펜하임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하고 말았다.
청은발을 한쪽만 묶은 여학생, 이브는 오르핀관 2학년 층을 기웃거렸다.
2학년 B 클래스 강의실.
이브는 모서리를 짚고 출입구로 고개를 슬쩍 내민 채 강의실 내부를 살폈다. 복도를 지나던 학생들은 의구심 어린 얼굴로 이브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이브는 자기 동생 아이작을 몰래 바라보았다. 금발의 남학생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B 클래스 학생이 아이작을 중심으로 모여 오순도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이작 인기 많네….’
동기들과 대화하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아이작의 옆 얼굴이 얼핏 보였다. 사근사근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걸려 있었다.
이브는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아이작을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돌연 아이작 주위에 있던 여학생과 눈이 마주치자 이브는 재빨리 고개를 빼고 벽에 등을 기댔다.
복도 창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창밖엔 푸른 나무와 맑은 하늘,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 여러 마리가 보였다.
“에휴.”
이브는 복도 모퉁이를 지나 벽면에 기댔다.
허한 한숨을 내뱉으며 쪼그려 앉고 무릎을 안았다. 이제는 깔끔한 복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작.
재능도 없고 허약해서 이브 자신이 지켜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무척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밥 먹여주던가. 필요한 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돈이었다.
마침 이브의 마법적 재능을 알아본 아드리안 로펜하임 남작은 그녀를 입양하려 했다. 한번 버리긴 했어도 친딸이었기에 나름 눈여겨봤던 것이었다.
이브는 자신이라도 잘 돼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로펜하임 남작의 입양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로펜하임 남작은 이브에게 가족과 연을 끊으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하등 쓸모가 없다면서.
어머니는 사정을 이해하며 이브를 보내주기로 했고.
이브는 울고 불며 자신을 보내지 않으려 했던 아이작에게 모진 말을 하고 집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엔 로펜하임 남작가가 시종을 부려 몰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하게 연을 끊는 모습을 보이라고 로펜하임 남작이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작은 거미 마수가 이브의 옷 안에 들러붙어 있었다. 크기가 작고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못하지만, 로펜하임 남작과의 계약 내용은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마수였다.
이브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며, 방학 때 저택으로 돌아가면 이브가 약속에 어긋난 행위를 하지 않았는지를 알리는 게 거미 마수의 역할이었다.
‘내가 많이 원망스럽겠지….’
당연하게도 아이작은 이브를 원망했다. 그 탓에 이브는 우울감을 느꼈지만 행복해질 미래를 상상하며 버텨 냈다.
인생을 탄탄대로로 만들어 주는 메르헨 아카데미 졸업장만 따고 나면, 어떻게든 로펜하임 남작가와 연을 끊고 아이작에게 돌아가리라고 다짐했으니.
아이작을 책임지고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때가 되면 아이작에게 용서를 빌고 그를 마음껏 사랑해 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못 본 새에 아이작은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준수한 마법 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때 정말 쌀쌀맞았어.’
작년 합동 실습 평가 때.
이브는 거미 마수로부터 수 시간 자유를 되찾았다. 사역마를 마음껏 데리고 다닐 수 없다는 시험 규칙 덕분이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아이작을 지켜주려고 나서기도 했지만.
─ ‘아이작! 엄마가 돌아가고…,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것도.’
아이작에겐… 단순히 어린 동생과 아픈 어머니를 내쳐 버렸던 누나로서의 마지막 양심처럼 보였으리라. 무뚝뚝하게 이브를 배척하는 기색을 보였으니.
그 이후로는 아이작을 멀리서 지켜보는 게 이브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 포기했다. 아이작에게 미움 받을 게 분명하니까. 염치없는 짓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내 동생이 원왕?’
알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재능 없고 힘없다고 여겨졌던 아이작이.
천 년간 인류를 유린해온 강력한 마족 부유섬을 단신으로 해치운 이름 없는 영웅이었고.
인류 역사상 역대 최연소 희대의 대마법사였고.
이제는 얼음의 원왕이 되어 세계 최강자 반열인 원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사는 세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 애, 사실 아이작이 아닌 걸까? 그런 의문도 품어 봤지만 역시 동생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저 청은발의 잘생긴 후배는 틀림없는 이부동생 아이작이었다.
이제까지 아이작이 자기 정체를 가족에게마저 숨겨 왔다는 게 가장 합리적인 가설일 터.
이제 아이작은 조금도 보살필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아이작에겐 이미 성공 가도가 보장된 잘난 여자들이 붙어 다니기까지 하므로, 동생의 결혼 문제를 걱정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단지 이브는 그 동생에게 원망과 미움만 받는 처지가 되었을 뿐.
지금 와서 ‘사실 난 널 책임지기 위해 로펜하임 남작가에 들어간 거였어’라고 하소연하고 용서를 빌어봤자 가식으로밖에 안 보일 것이었다.
로펜하임 남작가를 택하고 동생을 챙겨주지 못했던 건 틀림없는 자기 잘못이었으니까. 구질구질한 여자처럼 보일 뿐이겠지.
합동 실습 평가 때처럼, 이브는 아이작의 싸늘한 눈초리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플 게 분명했다.
‘내가 사라지는 게 맞겠지….’
왜 진작 아이작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려 희대의 대마법사라고 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마법적 재능을 타고 난 아이니까, 필시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으리라.
이브는 스스로가 저주스러웠다. 이래선 자신이 사라지는 게 아이작을 위한 일이 돼 버렸잖은가.
복도 모퉁이를 지나던 학생 둘이 이브를 보며 당황했다. 그 소리가 들리자 이브는 벌떡 일어나 자연스레 3학년 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지….’
난감했다.
걷는 중에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어쩌지이….’
아이작이 사랑스러운 만큼, 아이작과 함께 할 행복한 미래를 그려온 만큼, 이브는 막막할 따름이었다.
* * *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와는 이튿날 방과 후에 만나기로 했다. 비앙카가 오늘 철야 예배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비앙카는 아무 상관없다며 새벽에라도 나와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긴 이야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으므로, 내일 방과 후에 여유롭게 보자고 내가 말했다.
‘내 컨디션에 지장이 갈 테니까.’
내 생활 패턴을 고려한다면 수면 시간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비앙카는 아쉬워하면서도 내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야외 대련장. 예전에 홍련의 무녀 메이와 싸웠던 장소가 아닌 좀 더 교정에 가까운 곳에 도착했다.
나는 대련장 위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서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대로면 원소 마법으로 의자를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마력 고갈 상태라 그냥 의자를 챙겨 왔다.
내 옆에는 얼음 기사 모르칸이 서 있었다. 일부러 아카데미에 남겨둔 유일한 하수인이었다.
“아이작!”
“왔어?”
한 남녀 커플이 대련장에 찾아왔다.
한쪽 팔을 위로 번쩍 들며 활기차게 인사하는 여학생은 에이미 할로웨이였고.
그녀의 동행자는 우리의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이었다.
아까 강의실에서 실컷 대화를 나누었던 에이미에 비해 이안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안은 내 앞에 서자마자 절도 있게 상체를 90도로 숙였다.
“지고하신 빙제님을 뵙게 되어 영광…!”
“아이작은 그런 거 싫어해!”
“어?”
에이미는 이안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이안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상체를 일으켰다.
“근데 아이작, 이안은 왜 부르라 한 거야?”
“볼 일이 있어서. 네 남자친구 좀 빌린다.”
“어…? 으응…?”
웃는 얼굴이었던 에이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녀의 두 눈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얜 뭔 이상한 생각 하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안은 주위를 둘러보고 내 의도를 대번에 짐작한 듯 보였다.
안경을 들치고 웃는 얼굴로 물었다.
“이안, 싸움 실력 좀 팍 늘려보고 싶지 않냐?”
이안은 진중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제야 에이미의 표정이 풀렸다.
어차피 내 정체가 이름 없는 영웅이란 것도 까버렸고, 시나리오도 진작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즉,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이안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이안의 최대 문제점은 반사신경. 그걸 위주로 해결해주자.
“도와주실 생각입니까?”
“응. 근데 우리 동기잖아. 존댓말은 쓰지 마라.”
“알았어…. 근데 왜 도와주겠단 거야?”
네가 강해질 수록 내가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이안. 왜 너만 빛의 힘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냐? 성녀와는 다르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왜 나만 그럴 수 있는 건지.”
“네가 특별하니까 그런 거야.”
“……?”
“분명 너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야. 난 네 힘이 나중에 사람들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이유야.”
이안은 내 말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비장한 얼굴을 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이안. 주인공 다운 멋있는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빙제라는 입장은 참으로 편리했다. 내 말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지레짐작하는 경향이 있었으니.
하물며 ‘사람들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같은 막연한 이유를 입에 담아도 그럭저럭 숭고하고 무게감 있게 들릴 수도 있었다. 지금 이안과 에이미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맞나?’
악신을 막기 위한 일이니까 나름 숭고한 뜻이 맞긴 하네.
어쨌든.
내가 얼음 기사 모르칸을 가리키자 이안과 에이미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내 하수인이랑 붙어봐라. 매일.”
“……!”
이안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시간 지나면 다른 녀석들도 붙게 해 줄게.”
이러면 반사신경이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겠지.
‘난 하수인만 붙여주고 단련하러 가면 되겠고.’
어서 신체를 단련하러 가야 했다.
천족은 어느 기믹으로 인해 원소 저항력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대비하려면 강한 신체 능력이 필수였다.
이는 그간 신체 단련에도 힘써 온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력 고갈 상태인 이때야말로 신체 단련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편이 효율적일 터.
그래도 오늘은 첫날이니 조금은 지켜보다 갈까.
“정말로… 그래도 돼?”
이안은 피가 끓어오르는지 몸을 덜덜 떨었다.
빙제의 하수인 상대로 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태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안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에이미와 시선을 교환했고.
다시 나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나야 고맙지! 얼마든지!”
이안은 주인공 답게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 표정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모르칸, 적당히 봐줘라.”
[존명, 받들겠습니다.]그리고 5분 뒤, 이안은 기절했다.
나는 이마를 턱 짚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