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26)
〈 226화 〉 인기
* * *
곧 학기말 평가다. 2학년 1학기도 막바지였다.
아카데미는 학생들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휴강을 끝내려고 했다.
그래서 나와 카를로스 황제의 논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튿날에 수업을 재개하기로 한 것이었다.
수업에 앞서 생각해 본다.
천족이나 요정, 그리고 EX급 능력치를 생각한다면 꾸준한 단련과 성장은 여전히 필수였다.
이번엔 무저갱에 대비하기 위해 7성급 [빙뢰]까지 조급하게 익히느라 원소 마법을 얇게 숙달한 경향이 있었다.
심화 과정으로 각 마법을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다른 7성급 얼음 원소 마법도 익히는 게 좋을 테고, 바위 마법도 숙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오로지 단련만 하기보다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명망 있는 강의의 효과도 병행해서 누리는 편이 효용이 컸다.
내가 그간 성실히 강의를 들어오며 모범생 소리를 듣는 이유였다.
참고로 나는 마수생태학처럼 단련에 도움 안 되는 과목은 전혀 수강 신청하지 않았다.
장래를 생각한다면 그런 과목도 듣는 게 좋겠지만, 일단 눈앞에 닥친 악신이라는 과제부터 끝내야 했으니까. 참고로 수강 신청 안 한 과목의 수업 시간은 공강이라고 보면 된다.
즉, 내가 듣는 건 모두 실전 마법 과목뿐. 선택과 집중이었다.
“큰 거 하나 끝냈다….”
기숙사 엘마관.
「9막, 앨리스 토벌전」이 완전히 끝났다는 여운을 만끽하고자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댄 채 휴식을 취했다.
앨리스나 괴묘-체셔를 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한시름 놓아졌다.
이제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아직 마음이 온전히 편해질 순 없을 듯했다.
고개를 뒤로 젖혀 뒤통수를 침대에 눕혔다. 항상 책 보느라 고개를 숙인 채로 살다 보니 어째 천장이 낯설게 보였다.
고요했다.
이러고 있으니 문득 앨리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어이 키스했네….”
방심했어.
앨리스가 나를 남자로 보고 있었다는 건 이미 눈치챘지만, 설마 키스를 퍼부을 줄은 몰랐다.
고유 특성 [붉은 여왕의 역설] 때문에 심리가 제대로 읽히지 않는 까닭이었다. 내 하수인이 되면서 그 효과가 다소 약해졌지만, 여전히 심리를 읽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키스가 전해준 자극은 생각보다 강했다. 예전에 도로시와 키스했는지 확신이 안 서는 걸 제외하면, 맨정신으로 한 첫 키스라서 그럴까.
하물며 앨리스가 완전히 내 편이 된 까닭인지, 그간 그녀와 함께 보냈던 나날만큼 정이 쌓여 버린 기분이었다. 그 탓에 키스의 여운은 더욱 강렬했다.
썩 황홀한 감각에 앨리스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이래선 단련할 때 집중이 흐트러지고 말 터.
어쩔 수 없이 속으로 애국가를 제창하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이런 건 아직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두는 편이 좋으리라.
시간이 되자 책과 필기구, 가방을 챙기고 기숙사를 나섰다.
‘때가 됐다.’
드디어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할 때가 왔다.
평민이지만 나름의 재능을 타고 났다고 여겨졌던 아이작이 갑자기 원왕이라는 인류 최강자 반열에 올랐다. 교수진과 학생들은 무척 혼란스럽겠지.
그리고, 기숙사를 나서자마자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흡…!”
“허억…!”
중상위권 기숙사인 엘마관 규모에 걸맞게 기숙사를 떠나가는 교복 차림의 학생이 매우 많았다.
저마다 수다를 떨면서 기숙사 대문으로 향했는데, 내가 나타나자 일순 조용해졌다.
이따금 헛숨 집어삼키는 소리만 들릴 뿐.
학생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무서운 사람 보듯 쳐다보았고.
길이 넓은데도 모세의 기적처럼 학생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기숙사 대문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다.
“…….”
나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며 그 길을 쭉 나아갔다.
기숙사 대문을 나서자, 대문 바깥쪽 가로수 앞에서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곱상한 아가씨 같은 자태였으나, 눈가엔 어두운 그늘이 져 있었다. 무뚝뚝하게 나를 노려보는 눈빛에 나는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안녕, 아이작.”
“안녕, 루체…. 몸은 이제 괜찮아?”
……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을 향해 걸으면서 루체에게 내 사정을 설명했다.
황제에게 했던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메르헨 아카데미에 온 이유는 마족들 때문이라고. 앞으로도 사람들을 지킬 생각이라고.
어차피 자세히 설명해봤자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루체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그동안 쌓아온 업보가 많았다. 표면적으론 루체가 내 위장용 모습을 좋아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는 거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의 내가 루체보다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젠 그리 걱정되지 않지만, 만약 루체가 배드 엔딩 「새장」처럼 급발진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루체는 내 이야기를 듣고도 무척 차분해 보였다.
“별로 안 놀랐나 보네.”
“응. 사실 이미 처음부터…, 아니, 상상도 못 했어. 깜짝 놀랐어.”
루체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다급히 말을 돌렸다. 말투가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어색했다.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어’라고 말하면, 처음부터 아이작인 나를 좋아했다고 시인하는 꼴이 되니까 그러는 듯했다.
“그러냐.”
귀여운 모습이었다. 덕분에 입꼬리가 올라가며 긴장이 풀렸다.
“며칠 동안 쭉 잤다면서? 일어나고 뭐 했어?”
“갈리아 추궁했어. 아이작 정체 왜 안 말해줬냐고. 모르쇠로 나오더라.”
미안하다, 갈리아.
“근데 아이작…, 그 정도로 강하면서 왜 그렇게 단련했던 거야? 애초에 너, 항상 한계까지 단련하는 느낌이었잖아. 그게 연기 같진 않았는데….”
“사정이 좀 있어. 나중에 단둘이 있을 때 설명해 줄게.”
>메르헨의 마법 기사>나 빙의나 상태창 같은 이야기를 해줘도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러니 거짓말이 아닌 선에서 루체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내가 신기한 체질이라고 돌려 말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설명이 어려운 부분은 나도 뇌신조-갈리아처럼 모르쇠로 나가면 그만일 테고.
‘어차피 설명 안 한다고 누가 나 단련하는 거 막을 것도 아닐 텐데.’
그냥 평소처럼 살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서 말이 되는 이유를 갖다 붙여줄 것이었다.
“단둘이….”
그 와중에 루체는 단둘이 있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 말을 곱씹었다.
어느덧 우리는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에 도착했다.
복도를 지날 때도 학생들은 숨죽이고 나를 곁눈질했다. 그들의 심리를 읽어보았다. 내가 무섭다거나 존경스럽다거나 멋있다거나…, 전부 나에 관한 감상만 느끼고 있었다.
루체는 워낙 사람 시선에 무관심한 애였기에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나도 애써 무시했다.
“아이작, 수업 들을 필요 없다고 졸면 안 돼.”
“내가 졸겠냐.”
루체는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더니 실실 웃었다.
서로 강의실이 달랐기에 그녀하고는 여기서 헤어져야 했다.
평소 루체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내 곁에 있으려 하는 편이었지만.
당분간 나는 동기들에게 해명할 시간을 가져야 했기에 붙어 다닐 수 없다고 일러두었다.
루체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 나름 얘도 성장했다는 실감이 났다.
“루체.”
“응?”
낯간지럽지만, 이제 진심을 풀어도 될 듯했다.
“나 마족한테 먹히고 뭐 했는지 들었다.”
“응.”
“고마워. 무리하게 해서 미안하고.”
“으음….”
루체는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더니, 내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툭툭 건드렸다.
고개는 살짝 숙인 채였다. 흘러내린 머리칼 너머로 은은히 붉게 달아오른 뺨이 엿보였다.
“…그럼 보답하든가. 단둘이 있을 때.”
루체는 그리 속삭이고는 등을 돌리고 A 클래스 강의실로 향했다.
“무슨 보답?”
루체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친구 사이의 선을 넘을 수 있는 연애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했지만, 미안하게도 아직은 그러기 어려웠다. 그냥 적당히 좋은 거나 주자.
나는 2학년 B 클래스 강의실에 들어섰다. 시끌벅적했던 강의실은 내가 등장하자 적막으로 들어찼다.
내게 자주 시비를 걸던 트리스탄 험프레이도, 친한 사이였던 마테오 조르다나도, 날 살갑게 대하던 에이미 할로웨이도.
모두 말없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기계 같은 발걸음으로 가까스로 중간 자리에 이르렀다.
‘진짜 불편하네….’
중간 자리에 이르기까지 이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이켰다.
‘기만자인가.’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학생 놀이나 해온 기만자나 다름없었다.
물론, 여태 나는 아카데미를 지켜왔으니 다들 내 사정을 헤아려주긴 할 것이었다.
그저 이 숨막히는 분위기가 빠른 시일 내로 해소되길 바랄 뿐.
나는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칫.”
맨 앞자리에 있는 트리스탄은 내게 눈길을 주다가 퉁명스럽게 혀를 차고 교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목표로 삼았던 동기다. 어떻게든 나를 따라잡겠다고 녀석이 쉼 없이 단련해 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름 없는 영웅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까닭에 꽤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트리스탄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저기….”
한 여학생이 다가왔다.
수업 때 말 몇 마디밖에 안 섞어본 안 친한 여자애였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평범한 NPC였지.
그런데 양손을 모으고 긴장한 모습이 영 심상치 않았다. 어째 내게 호감과 존경심,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러네. 고민되겠구나.
내게 반말을 써야 할지, 존댓말을 써야 할지.
호칭을 뭐라 불러야 할지.
‘그냥 아이작이라 부르기엔 내 신분이 너무 높아졌으니까.’
원왕이 무슨 취급인지 안다. 이 세계를 이루는 힘의 중심은 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침 학생들의 주의가 내게로 집중됐으니 이참에 정리해주는 편이 좋으리라.
“그냥 평소대로 해. 아이작이라 불러.”
“아, 아이작…. 그럼, 그게…. 정말 미안, 아니, 죄송해요…. 예전부터 말하려 했는데…. 작년 초에 못 알아보고 무시해서, 정말 죄송…해요.”
말 엄청 더듬네.
몰랐는데 얘도 1학년 1학기 때 날 무시했던 대열에 끼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딱히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괜찮아. 그리고 부담되니까 말 높이지 마라.”
내가 평범하게 대하자 여학생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그녀는 사과의 선물이라며 내게 작은 선물을 건넸다. 포장지 안에 자기가 만든 쿠키가 들어 있다고 했다.
문득 내 방에 몰래 들어와 쿠키를 놓고 가려 했던 루체가 생각 나서 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나름 호감이 담긴 선물이기도 했기에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대답하며 받자 여학생은 활짝 웃었다.
“아이작.”
이번엔 적당히 친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작년 1학년 1학기 때 마테오 패거리에서 함께 나다녔던 녀석 중 한 명이었다. 마테오 패거리가 해산하면서 나름 깨달음을 얻고 철이 들었다고 했다.
“하늘에 나타났던 마족, 별하늘…. 그 마족한테 먹혔다가 해치우고 나왔잖아.”
학생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느낌이 났다.
황국은 마족 무저갱을 ‘별하늘’이라 칭했다. ‘부유섬’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무저갱의 내부를 모르니까 겉모습만으로 이름을 지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학생들은 내게 다가오길 망설여하면서도 퍽 흥미를 보였다
물어봐 줘서 고맙네.
“궁금하냐?”
“마, 말, 안 해도 상관은 없는데…!”
“조금은 알려줄 수 있는데.”
안경을 들치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유한 반응에 학생들은 점차 경계심을 풀고 슬그머니 몰려왔다.
나는 문제가 없는 선에서 무저갱의 내부 모습을 적당히 언급했다.
어느새 트리스탄을 제외하고 B 클래스 동기들은 내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온갖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점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다들 내게 경계심을 풀어가는 듯했다. 내가 싸울 때의 모습을 칭송하는 학생들도 속출했다.
이름 없는 영웅이나 내 비밀, 마족에 관한 질문도 연달아 쏟아졌다. 그러나 알려주기 곤란한 내용은 황국과 아카데미와 상의할 문제라며 대답을 거부했다. 학생들은 이해하는 눈치였다.
“저기, 아이작. 이 아카데미, 계속 위험한 건 아니지?”
한 여학생의 진중한 질문에 모두의 신경이 집중됐다.
그들로선 내통자가 드러나고 큰 사건이 해결된 지금, 아카데미가 안전할지 말지가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일단.
이전까지와는 달리 이제부터 나올 빌런들은 아카데미 밖에서 출현한다.
‘2학년 2학기 파트의 주요 보스들은….’
반역의 천인 뷔엘.
철의 요정 라크닐.
사령의 칼가르트.
사멸의 타나토스.
3학년 1학기 파트의 최종 보스인 계약의 메피스토는 어떻게든 찾아내서 조질 생각이었다.
무저갱은 3학년 파트에 메피스토와 함께 나올 놈이었는데 이미 끝장냈지. 사실상 2학년 2학기 파트에 나올 위험한 놈들만 착착 처리하면 3학년 파트엔 군데군데 시나리오 공백이 생길 것이었다.
악신이 그 공백을 메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면 슬슬 부활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 마력을 아껴둘 것 같기도 한데….
나야 경험치를 더 준다면 감사히 받아먹고 악신을 해치우면 될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이제는 아카데미에서 마족이 튀어나올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물론 악신이 남았지만, 그건 여기서 언급해도 될 말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환호했다. 얘네도 많이 불안했을 테니까.
끝내 내가 대단하다며 아부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전생에서 못 누렸던 인기를 여기서 누려 보네….’
조용했던 내 지난 학창 시절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