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28)
〈 228화 〉 변화 (2)
* * *
“이안, 또 기절했네.”
관중석에서 에이미 할로웨이는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천연하게 말했다. 이안 페어리테일이 기절하는 게 그녀에겐 예삿일인가 보다.
나와 모르칸은 이안을 내려다보았다. 이안은 대련장 위에 드러누운 채 눈이 까뒤집힌 상태였다.
‘이건 아니잖아….’
반쯤 농담으로 SSS급 기절 전문가라 칭할 때도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모르칸은 초반엔 이안의 검격을 피하거나 받아주다가 5분이 지나자 반격했다.
어린애처럼 약하게 무기를 휘두를 수도 없는 노릇. 모르칸은 빠르게 무기를 휘둘렀으나, 이안은 한 합을 넘기자마자 머리를 허용하고 기절해 버렸다.
“…….”
문득 어떤 의구심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시나리오 주인공이 이안이라지만, 얘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컨트롤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간 내가 생각해온 이안은 어디까지나 게임 속 이안일 뿐.
‘근데 이 세계는 단순히 게임 속 세상으로만 볼 수 없잖아.’
반사신경 출중하고 잘 싸우는 게 진짜 이안의 모습이라고 여겨 온 건 순전히 내 착각일지도 몰랐다.
‘이게 진짜 이안인가?’
그러면 이안을 중심으로 한 게임 속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이안에게 어느 정도의 실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게임 시나리오 자체에 오류가 생기지 않는가.
예전부터 느꼈지만, 명백히 모순적인 부분이었다.
심지어 나는 이안의 역할을 대신했음에도 경험치가 쌓였고, 업적이 클리어됐고, 잠재력에 스탯을 분배할 수 있었다.
‘그것도 시나리오를 따라가야 그렇게 되는 느낌이었어.’
마치 내가 나아가야 할 트랙이 정해져 있고.
그 트랙 안에서 장애물도 잘 넘고 잘 나아갈 때마다 보상이 주어지는 듯한 기분.
‘어쩌면 흔한 클리셰처럼…, 신의 유희 같은 건가?’
…아니, 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적인 존재가 뭐 하러 날 빙의시켜서 유희를 즐긴단 말인가.
상류층 부자면 몰라도,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라서 나 혼자서 쇼하는 일에 신적인 존재의 유희란 잣대를 들이미는 건 과장된 추측이었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테고, 그 목적의 핵심은 ‘악신 처치하기’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메르헨의 마법 기사> 자체가 단순히 ‘메시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떠올랐다.
이는 내가 아는 이안의 모든 이야기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했다.
어쨌든…, 지금은 답을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나는 악신을 쓰러뜨려야만 했고, 이안은 어서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안, 일어나.”
나는 쪼그려 앉아서 이안의 뺨을 툭툭 두들겼다. 그러나 녀석이 깨어나는 데에는 수 분이 걸렸다.
“허억! 여, 여긴 어디?!”
이안은 눈을 번뜩 뜨더니 나와 모르칸을 번갈아보며 소리쳤다.
“야외 대련장.”
“아…, 미안. 나 기절했었나…?”
“어때? 그만둘래?”
“아냐, 괜찮아! 다시!”
의욕이 넘치는 건 다행이었다.
“모르칸, 더 적당히 봐줘.”
[존명, 받들겠습니다.]5분 뒤, 이안은 다시 기절했다.
……
“역시 여기 있었군!”
“도로시 선배?”
적적한 달이 하늘 한가운데에 걸렸다.
모르칸에게는 이안이 지치면 알아서 해산하라고 했고.
나는 나비 정원 구석에 가서 강도 높은 맨몸 운동을 했다. 지금은 쉬는 차원에서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안경을 포함한 옷가지는 나무 앞에 정돈했다. 나는 상체를 훤히 드러낸 모습이었다. 바람을 만끽하며 운동하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팔굽혀펴기 200회를 막 넘긴 참에 마녀 모자를 쓴 여학생이 다가와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도로시였다. 늦은 시각이라 아무도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 시간엔 웬일이에요?”
“그냥 심심해서. 회장 있을까, 하고 와봤지. 등 위에 앉아도 돼?”
“저 지금 땀 흘렸는데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땀 냄새도 꽤 날 것이었다. 닿으면 기분 나쁠 텐데.
그러나 도로시는 천연덕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그건 상관없어. 어차피 이따 씻을 거거든. 이 옷도 오늘 빨 생각이었고.”
“그럼 얼마든지요. 마침 중량이 필요했던 참이라.”
“니히히, 딱 좋을 때 왔구만! 읏차.”
도로시는 망설임 없이 내 등 위에 앉았다.
“회자앙, 누나 완전 깃털처럼 가볍지 않니?”
“마법 풀어 주세요.”
“속지 않는군….”
도로시는 별빛 마법으로 자신만 받는 중력을 약화해 무게를 확 줄인 채였다.
“이봐, 회장. 이 누나는 오늘 저녁에 닭을 2마리나 먹었다구? 감당하기 어려울걸?”
“더 좋습니다.”
“거, 왠지 부끄럽구만….”
도로시는 별빛 마법을 풀고 체중을 온전히 내게 맡겼다.
“어?”
오, 뭐야.
잠깐 휘청거렸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지금 반응 뭐야…? 누나 놀릴래?”
도로시는 뾰로통한 목소리로 따졌다.
도로시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고 느껴야만 했기에 나는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냥 아주 잠깐 무게가 살짝 달라져서 놀란 거예요. 여전히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느흐흐, 이 녀석 입발림 보소. 기분 좋으니까 넘어가 줄게.”
치마 너머로 보드라운 것이 등허리를 감싸며 밀착했다. 꾹 눌리는 감각. 도로시의 엉덩이가 생각보다 더 크고 무거워서 놀랐다.
자세가 흐트러지진 않았다. 그대로 팔굽혀펴기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얘, 아직 몸에 열이 좀 남았나 보네.
“축축해지고 들썩이는 게…, 이거 꽤 기분 묘하다.”
도로시는 능청맞게 실실 웃었다.
안 찝찝하냐.
“내려오셔도 돼요.”
“싫어. 재밌어.”
“그러면 뭐….”
재밌다니까 상관 없겠지.
“근데 도로시 선배, 몸은 좀 어때요?”
“그때보단 나아졌는데, 아직 좀 어지러워.”
“열은요?”
“여전히 고열. 그래도 체온 많이 줄었다?”
“안 쉬고 뭐해요…?”
“회장이랑 얘기하고 싶어서. 뭐, 감기도 아니고. 걱정 안 해도 돼!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그럼 다행이고요.”
어찌 됐든 도로시는 나와 함께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굳이 기숙사로 돌려 보낼 필요는 없겠다.
도로시는 한동안 기숙사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니 오늘은 실컷 바깥 공기를 쐬는 편이 좋겠지. 몸 상태도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문제 없으리라.
이윽고, 도로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회장.”
“네.”
“누나 내일 징계 받는다더라. 이번 일 때문에.”
도로시에겐 하트 왕국의 팔라딘 4명을 데리고 난동 피웠던 혐의가 걸렸다.
별빛 마력 폭주 건은 사고로 취급되어 넘어갔지만, 도로시가 의지를 갖고 벌인 일은 그러하지 못했다.
팔라딘 4명이 내 수하가 됐다는 사실과는 관계없이 도로시는 징계위원회로 회부되었다.
“들었어요.”
“응? 그래?”
“정상참작될 거 많다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웬만해선 가벼운 처벌로 넘어가려는 분위기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근신 며칠로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황실 기사단을 건드리고 공무를 방해했던 사안이라, 원래는 중징계조차 넘어 황국에 잡혀가는 게 맞았다.
그래도 도로시가 앨리스 사건에서 크게 활약했다는 점, 황실 기사단을 도와 무저갱에 총 공세를 펼쳤다는 점, 몹시 불안정한 상태였다는 점 등 이것저것 참작되어 징계 수위가 많이 낮아질 것이라고 교장 엘레나로부터 전해 들었다.
황실이 눈 감아준 것이었다. 아마 그리 된 까닭엔 내 영향이 꽤 큰 것 같았다.
“회장 완전 비선실세 다 됐구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이번 사건 관련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나눈 것뿐이에요.”
“농담이야. …요번에 사고쳐서 미안해.”
“선배 무사하면 됐어요. 저야말로 죄송했습니다.”
“나도 너 무사하면 됐어. 니히히.”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제 그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됐다.
“도로시 선배. 그때 일, 뭐라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어.”
도로시는 내 질문을 곧바로 이해하고 단답했다.
별빛 마력이 폭주하기 전, 도로시는 누군가에게 손이 붙잡혀 끌려가는 듯한 환각이 보였다고 했다.
별의 요정 스텔라가 내려 준 힘에 비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진짜 감이 안 잡혀서 옛날 일을 돌아봤거든. 스텔라와 처음 만난 날. 걔가 내 손 잡고 날 오즈의 나라에서 끌어내 줬는데, 왠지 그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 뭐, 회장 돌아오자마자 괜찮아졌고….”
도로시는 뜸을 들였다.
“회장 몸 안에 있다고 한 거. 걔가 위협하니까 누가 내 손 잡고 가던 환각도 사라지고 폭주도 멎었어.”
팔굽혀펴기를 멈췄다.
저번에 도로시가 얘기해주기로, 어떤 미지의 존재가 내 안에 깃들어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외형은 인식할 수 없지만 눈이 많은 건 분명하며, 어마어마한 마력을 지녔다고 도로시는 설명했다.
문득 헤겔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신의 경지에 가까운 존재일수록 공통적으로 눈이 많다고 했지.
그 말을 무조건 신뢰하는 건 아니었지만, 고려해볼 가치는 있어 보였다.
‘시스템인가?’
도로시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존재를 봤다고 했다. 그녀가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그것이었다.
게임 시스템에 빗대어 내게 힘을 주는 존재가 바로 그놈일까.
‘아직 모르겠네.’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 여정의 종착지에 그 해답이 있기를 바랄 뿐.
“알려줘서 고마워요. 저도 생각 좀 해볼게요.”
다시 팔굽혀펴기를 이어갔다.
“회장, 오늘 근력 운동만 열심히 하네.”
“마력 고갈 상태라서요.”
“방해해도 돼?”
“참아주세요.”
“니힛, 한 번만 봐줄게.”
도로시는 장난스럽게 웃더니 조용해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도로시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내 등 위에서 들썩여지며 밤하늘에 걸린 달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상념에 잠긴 건가. 다시 고개를 돌려 지면을 내려다보았다.
곧 도로시는 입을 열었다.
“회장, 나 사실 말 안 한 게 있어.”
“뭔데요?”
“내 팬클럽 회장, 너 아닌 거.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
언제 들키나 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모르는 게 말이 안 됐지. 도로시는 여태 일부러 속아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한 팬심은 좋아도 그런 거짓말 하면 못 쓰지. 완전 중죄라구?”
도로시는 내 등마루를 짚고 내 머리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약간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그동안 속여서 죄송했습니다.”
“죄송하면 부탁 하나 해도 돼?”
본론인가.
“단련에 지장 안 가는 선에선 뭐든요.”
단련에 지장만 안 간다면 오히려 무슨 부탁이든 들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로시뿐만 아니라 루체, 카야…. 그 애들에게 마음고생을 시켰으니 나름대로 보답해주면 죄책감이 덜어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부탁을 들어주고, 우리 사이에 턱 걸리는 죄책감 같은 감정 따위를 싹 날려 버리고.
다시 평소처럼 지내자. 그리하면 될 것이었다.
나는 도로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나 오늘 네 방에서 재워주라.”
“으헉…!”
털썩.
그대로 나는 침몰했다. 힘이 확 빠졌기 때문이었다.
불가항력이었다.
* * *
[앨리스, 벌써 돌아갈 생각이니?]하트 왕국, 앨리스의 방.
괴묘-체셔는 몸통만 투명화한 채로 머리만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앨리스에게 물었다.
앨리스 캐럴은 연금발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기로 약속했으니까. 중요한 의무도 생겼고, 메피스토도 토벌하지 못했잖니.”
하트 왕국은 앨리스가 부재 중일 때를 대비한 비상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앨리스는 얼굴을 비추면서 사정을 빠르게 설명하려고 하트 왕국에 들린 것이었다.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준비하렴, 체셔.”
[니옹! 바로 출발하면 돼.]앨리스와 괴묘-체셔는 메르헨 아카데미로 떠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