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3)
최종 목적지엔 페르난도 교수가 서 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냉철한 푸른빛 눈동자로 나를 훑었다.
이어, 그의 조교가 “그어어어억···.” 거리며 내게서 수행평가용 팔찌를 수거해 갔다. 과한 업무량으로 너무 지친 나머지 좀비가 돼 버린 모습이었다.
그런 조교를 다루는 페르난도 교수는 마치 사령술사 같았다.
“F조, 실습 훈련 종료다. 결과 공지 및 피드백 전달은 일주일 뒤에 하겠다. 수고했다.”
“그 얘기, 제가 저희 조 사람들한테 전달하면 되나요?”
전부 탈락해 버려서 말입니다.
“안 그래도 된다. 어차피 내일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한꺼번에 전달할 테니.”
이후, 곧장 돌아가면 된다고 페르난도 교수가 말했다. 먼저 탈락한 알란과 에단도 이미 기숙사로 돌아갔다고 했다.
수행평가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어떤 구체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는지는 철저히 비밀리에 부쳐진다. 그러니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에게 재해의 검집처럼 미심쩍은 부분을 들킬 염려는 없다.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건 성적뿐. 일주일 뒤 오르핀관 중앙홀에 성적이 게시될 것이다.
‘이번엔 성적 좀 기대해도 되나.’
비록 로제 년 때문에 단 한 번밖에 활약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종 보스 쓰러뜨렸잖아.
조금은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물론 이제 겔은 넉넉하고, 재해의 검집 성능도 시험해봤으니 실질적으로 이번 수행평가 결과에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성적 잘 받으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칼리스관을 나섰다. 내리쬐고 있던 밝은 햇볕이 눈부셔서 잠깐 손차양으로 눈을 가렸다.
묘하게 몸이 가벼웠다. 마치 고등학생 때 중간고사를 마치고 일찍 집에 갈 때 느꼈던 감각이었다.
그러나 놀 때는 아니었다. 이제부터 곧바로 단련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칼리스관 밖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뜸 누군가가 “잠깐만 기다려 보시죠.”하고 나를 멈춰 세웠다. 날이 서 있으면서도 아가씨 다운 곱상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한 거죠?”
다짜고짜 내게 그리 묻는 사람은 로제였다. 그녀는 건물 그늘 아래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가?”
무슨 뜻인지는 알았지만, 일부러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빠직.
로제는 이마에 핏줄을 세우면서 내게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E급인 당신 따위가 어떻게 타우로를 쓰러뜨렸느냔 말이에요! 비록 환상이었다지만, 그 강한 걸 당신이 어떻게···! 게다가, 대체 무슨 요행을 부린 거죠? D 클래스의 E급, 최하위 중 최하위인 당신이 벌써 5성급 마법을 쓸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울먹임이 담긴 목소리. 애써 부인하려 드는 모습이 처량했다.
남을 깎아내려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성향일 터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가장 깔보고 있던 상대 앞에서 자존심을 팍 구겨 버렸고.
그 상대가 자신이 넘지 못했을 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버리니 단연 울컥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나를 부정해서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려는 것이다. 안 그러면 무너질 테니까.
신림동에서 이런 사람 자주 봤다. 꼭 이런 애들이 고시 통과 못하더라.
“백번 양보해서, 적을 쓰러뜨릴 수단이 있었으면서 왜 절 구해주지 않았죠? 당신, 제가 우스워요?”
이럴 때는 아주 좋은 가르침이 있다.
행복해지기 위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바보랑 논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라고.”
“읏···!”
도끼눈을 뜨고 가볍게 한 마디 툭 던져 주자, 로제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서 말문이 막힌 걸까.
뭐, 로제도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아으, 으그그···!”
이를 박박 갈면서 발을 동동 굴리는 로제.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넌 계속 밑에 있어라.
난 위로 향할 테니.
* * *
아카데미 마법학부 교수는 자못 모든 마법 이론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
페르난도 프로스트. 그는 오로지 이론 실력 하나로 25살이란 젊은 나이에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정교수가 되었다.
대륙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 메르헨 아카데미에서도 그는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뛰어난 지성과 출중한 외모, 잔잔한 듯 귀에 또박또박 박히게 하는 준수한 강의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이렇듯, 페르난도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외견은 깔끔하게. 의자에 앉아 있을 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바른 자세를 유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있어선 안 된다.
엘리트 아카데미의 엘리트 교수답게, 행동 하나하나에 품위가 넘쳐나야 하는 것이다.
깊은 밤. 하늘이 퍼붓는 비가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빗소리가 침묵을 깨뜨리는 가운데.
페르난도는 마법학부 건물인 오르핀관 집무실에 앉아서 실습 훈련 결과를 검토하고 있었다.
허공에 질서정연하게 나열된 온갖 서류들. 페르난도가 염동 마법으로 공중에 매단 것들이었다.
똑똑.
출입문 노크 소리가 들리자 페르난도는 고개를 들었다.
“그어어어억···.”
“마르코냐. 들어와라.”
갈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 조교, 마르코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혼이 빠져 있는 얼굴은 사람의 낯빛이 아니었다.
그는 페르난도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가서 서류를 전달했다.
“구어어어억···.”
페르난도는 마르코가 좀비 소리를 내며 건넨 서류를 받아들였다. 각 학생별 실습 훈련 결과 점수와 심사평을 요약해서 정리한 문서였다.
검토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 윗선에 결재를 올려야 했다. 페르난도는 속독하고서 당장 눈에 띄는 문제점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이걸.”
“그어어어어억···!”
페르난도가 옆에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가리키자, 마르코는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조교 된 자한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마르코는 상체가 가려질 만큼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양손으로 집어 든 뒤, 터덜터덜 집무실을 나섰다.
오늘도 그는 밤을 지새울 것이다.
“…….”
페르난도는 염동 마법으로 빠르게 서류를 읽으면서 넘겨 갔다.
그는 오늘 있었던 실습 훈련에서 칼리스관 감독을 맡았었다. 심사관들처럼 전달꾼을 통해 각 조 수행평가 진행 상황을 수정구슬로 모니터링 중이었다.
이번 실습 훈련에서 그의 역할은 수행평가 안내.
평가 도중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파악하는 것.
문제가 발생했으면 수습하는 것.
그리고 탈락한 학생들을 현장에서 내보내는 것이었다.
현재는 각 장소에서 진행했던 실습 훈련 영상을 확인한 후,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이번 마법학부 1학년은 ‘옥(玉)의 세대’라고까지는 보기 힘드나, 매년 그렇듯 원석인 인재들이 있다.
‘수석, 루체 엘타니아.’
마법학부 1학년 수석, 루체 엘타니아. 최대 마력량은 가히 압도적. 마력 컨트롤과 원소 화력 모두 흠잡을 데가 없다. 실습 훈련 땐 물 마법으로 가볍게 마물 환상들을 쓰러뜨려 나갔지.
하지만 사교력이 부족한 탓에 조원들과의 협업 점수는 영 꽝이었다. 조원이 살갑게 말을 걸어도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니.
전장에서는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루체 엘타니아의 단점은 바로 그 협동을 기피하는 독단적인 태도이리라.
‘그리고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 쪽은….’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 루체 엘타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최대 마력량이 높은 학생이다.
그녀의 실력 또한 흠잡을 데가 없으나, 루체 엘타니아에게 가려져 버린 비운의 영재라고 볼 수 있겠다.
‘시엘 카르네다스는 반성할 필요가 있겠고.’
마법학부 최상위권 학생, 시엘 카르네다스는 자기 조원들을 다치게 했으면서도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같은 조원이었던 이안 페어리테일과 다투기까지 했지.
우수한 마법적 역량을 갖췄더라도, 내부 분열을 일으킨 태도는 협동 면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다.
‘마테오 조르다나는 꽤 훌륭한 편이군.’
마법학부 상위권 학생들 중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학생, 마테오 조르다나. 그는 소문과는 다르게 착실한 면이 있었다.
루체 엘타니아나 카야 아스트레앙에 비해선 약한 편이나.
실습 훈련 때 효율적인 전술을 구사하면서 똑바로 마물들의 약점을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조원들을 따르게 하는 카리스마까지 갖추었다. 리더의 자질을 갖춘 녀석이다.
‘트리스탄 험프레이는… 마법적 재능은 있지만 문제점이 많다.’
마찬가지로 마법학부 신입생 상위권인 학생, 트리스탄 험프레이. 원소 마법의 위력은 뛰어나나, 개선해야 할 점이 너무 많았다.
일단 마물들의 약점을 분석하는 일 따윈 개나 주고, 그저 무작정 위력적인 마법만 펑펑 쏘아대는 것은 큰 문제였다.
마법의 위력이 강력해서 마물 환상들이 쓰러지긴 했으나, ‘마력 효율을 고려해가면서 싸웠는가’라는 평가 항목에서는 최악의 점수를 줄 만했다.
게다가 가문의 위광을 힘입어 학생들이 자길 따르도록 굴복시켰다. 협동 점수도 최악.
그렇게 학생들을 평가하던 중에, 페르난도는 실습 훈련 F조 자료에서 동작을 멈췄다.
“이 아이···.”
오늘 가장 눈에 띄었던 학생을 꼽으라면 단연코 D 클래스의 아이작이라는 남학생이었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얼핏 감돌고 있는 은발과 핏빛 눈동자. 마력량 측정 시간 때 E급이 나와서 기억 속에 또렷이 박혀 있던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오늘 5성급 마법 [빙결 폭발]을 사용했다. 숙련도는 낮아 보였으나, 확실했다.
마도구를 사용한 것 같았다. 5성급 마법진을 새길 수 있는 마도구가 있었던가?
마도구의 세계란 무궁무진하기에 페르난도는 쉽사리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5성급 마법을 담을 수 있는 마도구의 존재는 위화감이 들게 한다.
이론상으로는 문제없었다. 마도구에 담겨 있는 마나 회로의 수가 지극히 많고 내구도도 몹시 뛰어나다면 말이다. 하지만 5성급 마법을 견디려면 그 정도가 극단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즉, 마도구의 구조 문제는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그 마도구의 사용자였다.
3성급 마법 이상부터는 마도구에 담기 힘들다. 마법 회로 자체가 1성이나 2성급 마법보다 훨씬 고도화되어 있고, 저장해야 할 마력량이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3성급 이상의 마법을 마도구에 담았더라도, 그 복잡한 술식을 발동시키려면 마도구 사용자 자신이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트리거를 발동할 수 없다. 예외는 불가능의 영역이라 논할 가치도 없고.
아마 심사관을 맡았던 교수들도 지금쯤 아이작이 사용했던 마도구의 정체를 파악하려 책을 뒤지고 있을 것이다. 시험 내용 관련해서 학생과 접촉하는 건 마르크스 약조로 맺은 금지사항이기에, 직접 묻는 건 어려울 테니.
궁금한 건 페르난도도 마찬가지였으나 그 또한 금지사항의 예외는 아니었다.
‘마력량 측정은 불과 두 달 전. 마력량 E급이 나왔던 학생이 고작 두 달 만에 5성급 마법을 익힐 수 있는 확률은?’
···없진 않다. 그러나 극히, 지독할 정도로 낮다.
원래는 천재였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살다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야 천재성을 깨우친 경우라면 가능할까?
‘뭔 소설이나 연극도 아니고···.’
그런 극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나.
페르난도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가, 고개를 슬며시 가로저었다.
그런 학생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이 학생, 수행평가 점수가 꾸준히 오르고 있지 않았던가.
최근에 은행 대출금을, 기한의 이익을 포기하고 만기 이자까지 한꺼번에 전부 상환한 기록도 있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마법적 재능을 깨우친 경우일 수도 있었다.
이곳은 명문 메르헨 아카데미. 얼마나 훌륭한 학생이 튀어나오건, 이상할 게 없는 곳이었다.
“…….”
웬만하면 이번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페르난도 교수는 아이작 피드백에 관해 추가적인 개인 평가문을 작성했다.
[성장세가 유독 두드러지는 학생임. 부족한 마나 대안으로 마도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나,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실전 능력에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 함. 단, 1학년인 만큼 마도구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순수한 개인 능력을 효과적으로 응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치중할 필요가 있어 보임.]자기 가능성을 증명해나가는 학생들은 보는 맛이 있다. 아이작 이외에도 마력량 E급으로 책정됐던 이안 페어리테일도 요새 성장세가 크게 돋보인다.
“재밌구나···.”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아카데미 교수로서 느낄 수 있는, 페르난도만의 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