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2)
메르헨 아카데미는 부지가 쓸데없이 넓은 만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은 건물들이 간간이 있다.
이곳, ‘칼리스관’이 그러했다.
칼리스관은 실습 훈련 용도로 자주 쓰인다. 나는 마법학부 동기 3명과 팀을 이뤄 그 훈련장에 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 한쪽 벽면에는 우리가 들어왔던 출입문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통로가 터널처럼 뚫려 있었다.
우리 앞에는 ‘전달꾼’이 파리나 벌새처럼 눈에 안 보이는 속도로 날갯짓하고 있었다.
사람 주먹 크기의 동그란 스피커. 음성 전달 마법과 지켜보고 있는 광경을 영상으로 송신시켜 주는 마법이 걸려 있는 학사 소유의 마도구였다.
전달꾼에게선 페르난도 교수 특유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희들은 한 조로 구성되어 있고, 조는 무작위로 정해졌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마물 환상과 싸우게 될 예정이다. 마물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려 나가며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면 수행평가는 끝. 만약 누군가 치명상을 입었다고 판단될 시, 그 학생은 탈락이다.]칼리스관만으로는 마법학부 1학년생 전부를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칼리스관에 배정받지 못한 다른 조들은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실습 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지금까지 배운 마물들의 특징, 약점 등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원소 마법을 전투에서 얼마나 잘 응용할 수 있는지가 이번 실습 훈련의 주요 평가 기준이다. 부차적으로, 얼마만큼 협업하는지도 태도 점수에 들어간다. 성실하게 임하는 게 좋을 거다. 10분 뒤에 시작하지. 만반의 준비를 다하도록.]>메르헨의 마법 기사> 「2막 3장, 실습 훈련」.
이번 파트에서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은 A 클래스의 시엘 카르네다스와 엮이게 된다.
그녀는 공식 히로인 중 한 사람이다. 나중에 이안이 빛 속성 전설 무기, 창명검을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만사에 귀찮음을 느끼는 그녀는 실습 훈련도 대충대충 해나가자는 마인드라서, 자기 마법에 다른 학생들이 다쳐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이안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시엘과 다투게 된다.
그러다 건물이 무너지고, 은둔의 가르지아가 나타나면서 「2막 4장, 개미 군단」 파트가 시작된다.
이안과 시엘은 힘을 합쳐 재해 개미 군단과 싸우다가, 결국 시엘 혼자 재해 개미 군단을 맡아서 상대하기로 한다.
그동안 이안이 개미들을 지나쳐 건물 중심부로 향하게 되고.
거기 있던 은둔의 가르지아를 조우하고 싸우는 게 2막 4장의 주요 내용이다.
물론 내가 이미 가르지아를 처치했으니 2막 4장은 스킵 확정이다. 즉, 이번 실습 훈련은 평화롭게 끝날 것이다.
···아마도.
“참 언짢은 상황이네요.”
페르난도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미소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깨까지 파도처럼 굽이치듯 내려오는 연갈색 단발.
머리에 붉은 장미 머리핀을 달고 있고, 어깨 위에 걸친 숄은 금빛 테두리에 붉은색 바탕이라 몹시도 눈에 띈다. 장미 자수도 새겨져 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는 선명한 금색이었다.
로제 레드리베라. B 클래스 학생이었다.
[ 로제 레드리베라 ]Lv : 52
종족 : 인간
속성 : 불
위험도 : X
심리 : [ 당신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저속한 E급이 우리 팀이라니. 그것도 최하위 중 최하위죠, 당신?”
조소 띤 얼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나를 깔보는 그녀.
이제는 익숙한 취급이었다.
그냥 무시하려니까, 그녀가 내게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오우, 좋은 냄새. 비싼 향수 쓰시나보다.
“땅을 기는 벌레는 그에 맞는 역할이 있기 마련이죠. 당신에게 걸맞은 역할을 지시해드릴 테니, 부디 걸리적거리지만 말아 주시길.”
“…….”
왜 이렇게 시비 걸려고 안달 났냐.
이해가 안 되네, 진짜.
남은 두 남학생은 분위기가 무서운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로제는 사람 기 빨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어휴.’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그녀의 비중은 얼마 없다. 굳이 따지자면 조연도 안 되는 엑스트라에 속한다. 잠깐 이안에게 깝치다가 털리는 정도?
너나 나나 도토리 키재기란 거다, 이 년아.
[그럼 지금부터 실습 훈련을 시작하겠다. 전원 입장.]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10분이 지나고.
전달꾼에서 페르난도 교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가죠.”
우리 조는 통로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둑한 터널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경기장에 검은 늑대 마물, ‘흑랑’ 5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환상 구현 마도구를 써서 만들어 낸 마물 환상이라, 외형에 조금씩 노이즈가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상태창도 뜨지 않았다. 환상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우리는 터널 끝에 서서 흑랑을 지켜보았다. 이 터널에서 한 발짝이라도 나가는 순간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흑랑 무리는 산개해서 싸우는 습성이 있죠. 그러니 알란 씨와 에단 씨는 바위 마법이랑 얼음 마법으로 흑랑들을 가둬주세요. 제가 화염 마법으로 한꺼번에 끝장내죠.”
자연스럽게 리더처럼 행동하는 로제. 이 중에서 자신이 가장 상위 클래스이니 자신이 리더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리더 선정에는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작전에 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
뭐 흑랑 정도야 해치우기 쉬우니까, D 클래스 마력량 E급 쩌리 따윈 필요 없단 거겠지. 실제로는 이제 E급 정도가 아니겠지만.
우리 조는 터널 밖으로 나섰고, 늑대 마물들은 멈춰 서더니 곧바로 우리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검은 늑대들. 녀석들을 향해 두 남학생이 마법을 사용했다.
드드드드드드─!
「암벽 (바위 속성, ★4)」
「빙벽 (얼음 속성, ★4)」
조잡한 바위벽과 얼음벽이 지면에서 튀어나와 늑대들을 가두고.
로제는 그 마물들을 향해 양손으로 화염을 일으켜 내던졌다.
「화염구 (화염 속성, ★3)」
화르르르르륵─!
콰아아아앙─!
활활 타오르는 붉은 공 형태의 [화염구]가 [암벽]과 [빙벽]에 가로막혀 있는 늑대 마물들을 덮쳤다.
꽤 숙련도 높은 [화염구]였다. 늑대 마물들은 불에 타 이리저리 바닥을 나뒹굴다가, 스르르 형체가 사라졌다.
흑랑 환상 가볍게 격퇴.
“좋아요, 이대로만 가죠.”
우리는 로제의 지시를 따라 다음 통로로 이동했다.
연이어 마물들이 튀어나왔고, 로제가 다 해처먹었다.
나도 성적 잘 받고 싶은데.
“어머, 이제 마지막이네요.”
“쉽다, 쉬워.”
어느덧 마지막 단계. 로제와 남학생들이 얄밉게 떠들어댔다. 남학생 놈들은 로제가 자기들을 활약시켜줘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마지막 단계까지 와서도 나한테 아무런 지시를 안 내리는 거 보니, 로제는 나를 활약시킬 생각이 조금도 없는 모양이었다.
통로를 지나자, 바닥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 한가운데서 마지막 스테이지 보스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황소처럼 생겼으나 인간형인 거체의 마물, ‘타우로’의 환상이었다.
족히 4m는 될 법한 큰 신장. 오른손엔 커다란 창을 든 채였다.
이젠 진짜로 활약해야 한다. 로제 년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오른손에 [서리불꽃]을 피어올리니, 로제가 나를 냉소적으로 쏘아 보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나도 점수 좀 따자. 협업도 평가 요소잖아. 같이 잘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
나름 자본주의 미소를 지은 채 최대한 서글서글하게 대답했건만.
로제는 마치 벌레라도 보는 양 혐오스럽다는 듯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
“꼴사납긴.”
“뭐?”
순간 귀를 의심했다.
“E급이 지 주제도 몰라. 추잡하게 설치지 마세요. 여기서 가장 우월한 사람은 저예요. 제가 지시 내릴 때까지 대기하라고요. 알아들었나요?”
“…….”
···선 씨게 넘네?
“알란 씨, 에단 씨. 가죠.”
터널 밖으로 나가는 로제와 두 남학생.
잠깐 어이를 상실해서 넋을 잃었다가, 이내 그들을 뒤따랐다.
그때.
화르르르륵─!
“앗, 뜨!”
「불 생성 (불 속성, ★1)」
갑자기 내 주위로 치솟는 불길.
빠져나갈 틈이 없도록 원형으로 나를 둘러쌌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와, 저년 저거. 가지가지하네.
내 취급 무엇?
그제야 우리 조를 인식한 황소처럼 생긴 인간형 마물, 타우로.
로제와 알란, 에단이 전투 태세를 취했다.
“알란 씨, 에단 씨! 진형을···! 헙···?!”
로제는 지시를 내리려다 헛숨을 삼켰다.
휘우우우욱─!
“우왁!”
“앗!”
삐익─!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타우로는 단숨에 알란과 에단에게 뛰어들어 창을 휘둘렀고, 두 남학생의 팔찌에서 요란한 경적이 울렸다.
팔찌에 비치기 시작한 붉은빛. 탈락이었다.
[알란 네이빌, 에단 퍼셀. 탈락.]로제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 발짝만 더 움직였어도 두 남학생처럼 탈락이었을 테니.
떨어진 거리에서 본 나도 순간 놀랐을 정도인데, 코앞에서 본 로제는 오죽할까.
탈락자 전용 출입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전부 동작을 멈춰야 한다.
타우로 환상도 창을 휘두른 자세로 가만히 멈춰 있었다.
패배자들은 분한 얼굴로 탈락자용 출입문을 향해 떠나갔다. 이제 저들이 나서서 출입문이 굳게 닫히는 순간, 타우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다, 당신!”
로제는 내 쪽을 돌아보았다. 마음이 급급한지 목소리가 엇나갔다.
“화, 활약할 기회를 드리죠···! 싸우고 싶어 했잖아요? 미끼가 되세요. 그 틈에 제가 화염 마법으로 저 마물을 쓰러뜨리죠!”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하는 로제. 아가씨처럼 고우나 강압적이면서도, 공포로 떨리고 있는 목소리였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하면서 보았던 NPC 로제 레드리베라와의 대화문을 떠올렸다.
그녀는 ‘최고 중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레드리베라 가문에서 그녀를 혹독하게 교육시키며 주입시켜온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재능 있는 학생들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최고인 A 클래스가 아닌 B 클래스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분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터.
심지어 그녀는 B 클래스 중 하위권.
조급해질 수밖에 없겠지. 매 순간 최고의 활약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 당연히 이 실습 훈련에서도 말이다.
그러니 나를 희생시켜 타우로의 빈틈을 만들고, 그때 공격하겠다는 심산인 것.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최고가 되려면 이런 데서 탈락해선 안 되니까.
그리고 그리하면 자신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나저나···.
‘일단 불부터 꺼주는 게 순서 아니냐···.’
아무래도 마음이 급박한 나머지 사리 분별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답하세요!”
탈락자들이 출입문을 나서자, 로제는 목에 핏줄을 세우며 목청껏 소리쳤다.
대답할 게 있나.
알아서 잘 해라.
────[우오오오오오!]
포효하는 타우로. 실습 훈련 재개다.
로제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타우로가 한 번 더 창을 휘두르려고 하자, 로제는 재빨리 바닥을 향해 손을 뻗고 불 속성 마나를 쏟아 부었다.
지면에 붉은 마법진이 구현되고.
타우로 밑에서 화염 기둥이 솟구쳤다.
화르르르르륵─!!
「불기둥 (화염 속성, ★4)」
타우로는 곧바로 뒤로 붕 뛰어올라 로제의 공격을 피했다. 거체에 맞지 않는 민첩한 몸놀림, 뛰어난 운동신경이었다.
“아아아···.”
마법을 잘 쓰는 사람이 곧잘 전투를 잘하는 건 아니다. 로제는 전투에 영 소질이 없었다.
당장에 자기 마법에 순순히 당해주지 않는 타우로를 보고 온몸을 덜덜 떨고 있으니.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마도 현재진행형으로 좌절하는 중인 듯했다.
그녀가 반 배정 평가 때 순위권에 들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불기둥]을 피해 거리를 벌린 타우로가 다시 로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이때다.
로제가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주고 있는 상황. 지금이 바로 내가 활약할 수 있는 타이밍이다.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마침 로제의 마력 컨트롤이 흐트러져 내 주위를 에워싼 불길이 힘을 잃자, 나는 얼음을 만들어 불길을 뒤덮었다.
그러고서 로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 나처럼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타우로. 그녀가 아무리 불 마법을 쏘아 대도 타우로는 쉽게 피해내며 거리를 좁혀온다.
탈락을 직감하고 절망한 걸까.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달려오는 타우로에게 그대로 목을 내어주려는 모습이었다.
‘벌써 포기냐.’
한심하긴.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직 로제와의 거리는 멀다. 심지어 앞은 그녀의 뒷모습으로 가려져 있어서 공격기를 사용하기엔 각도도 안 맞다.
팀킬은 할 수 없는 노릇. 그렇다고 그녀가 미끼가 된 이 유용한 상황을 이용하지 않기엔 너무 아까우니.
마침 괜찮은 수단이 있었다.
나는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재해의 검집’이 채워진 단검이었다.
‘간다!’
지옥의 PT로 다져진 근력을 십 분 발휘하며, 단검을 재해의 검집째로 타우로를 향해 거세게 내던졌다.
휘리리릭─!
단검은 빙글빙글 돌아가며 거침없이 공기를 가로질렀고.
로제 옆을 지나쳐, 달려오고 있는 타우로에게 이르렀다.
날아가고 있는 재해의 검집과 육체의 마나 회로가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우로가 로제에게 도달해 창을 휘두르는 순간, 그 느낌에 힘을 실었다.
그러자 방아쇠라도 당긴 것처럼 ‘재해의 검집’에 새겨진 마법진이 연푸른빛을 발하며 발동되었다.
빙결이, 폭발적으로 범람했다.
───────「빙결 폭발 (얼음 속성, ★5)」
콰아아아───!!
일순.
빙정과 냉기가 난잡하게 휘몰아치고, 검은 검집에서 터져 나온 빙결이 타우로를 잡아먹었다.
어느새 전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뾰족뾰족한 빙괴.
이내, 빙괴 속에서 타우로의 형상은 흔적도 없이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는 로제의 팔찌.
[로제 레드리베라 탈락.]전달꾼이 담담한 목소리로 탈락 선언을 했다. 내 재해의 검집이 마법을 발동하기 직전에 타우로의 창이 로제를 덮친 것이다.
뭐, 로제를 구해줄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기에 딱히 상관없었다. 누가 자길 내리깎는 사람을 구해주고 싶겠는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로제. 그녀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눈을 떴다.
마침 나는 빙괴 앞에 떨어져 있던 재해의 검집을 주워서 품에 집어넣고 있었다.
“어···? 무, 무슨 일···?”
혼란스러워하는 로제.
전투하는 동안 쉽게 좌절해댔던 그녀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던 탓에,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뭐하냐?”
큼직한 빙괴를 등지고 희뿌연 냉기가 주위에 흐르고 있는 가운데.
그리 단조롭게 한 마디 툭 던지자, 로제는 헛숨을 삼키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크게 눈을 떴다.
나는 빙결을 해제했다. 그러자 큼직한 빙괴가 쩌적, 갈라지더니 푸른빛 가루가 되어 공기 중에 흩날렸다.
이후, 나는 등을 돌리고 최종 목적지가 있는 다음 통로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제는 한동안 일어설 생각을 못했다.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방금 열린 탈락자용 출입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