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48)
〈 248화 〉 힐드 (2)
* * *
[난 또, 아이작이 처음 보는 여자랑 그렇고 그런 행위를 하려는 줄 알았지!]“미쳤냐….”
기숙사 엘마관.
인간의 모습이 된 빙설룡-힐드에게 바지를 입히고 녀석을 침대에 앉혔다. 지금은 힐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나도 옷을 입은 채였다. 나는 책상 의자에, 괴묘-체셔는 내 허벅지에 앉아서 힐드를 바라보았다.
내가 괴묘를 허벅지에 얹은 채 쓰다듬고 있으니, 힐드는 괴묘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질투심이었다. 저 손길은 내 것이다, 라는.
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한 힐드는 몹시 낯설어서, 영 쓰다듬어 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근데 넌 앨리스한테 바로 안 가봐도 돼?”
[괜찮아, 이게 더 재밌어! 지금 앨리스는 일하느라 정말 따분하단 말이지.]“그러냐.”
괴묘-체셔는 재미를 좇는다. 그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그럼 힐드, 그 모습은 뭐지? 태초의 빙제를 본뜬 모습이니?] [아니다, 체셔. 이건 그냥 내 인간 모습이다. 내 전 주인은 흑발이었고, 말랐었지.]태초의 빙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다. 흑발에 마른 여자였구나.
[처음부터 인간 모습으로 변신하는 게 가능했니?] [내 전 주인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인간의 모습이 되는 변신 마법을 익혔다. 친해지는 건 실패했지만.]전생의 커뮤니티에서 흔히 이르길, 폴리모프였다.
빙설룡-힐드의 인간 버전을 상상하고 그려진 팬아트가 인터넷에 돌아다니긴 했는데, 몇 명은 실제와 비슷하게 유추한 것 같았다.
단순한 위장도 아니고 몸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건 굉장히 수준 높은 고위 마법. 아무나 간단히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빙설룡-힐드는 뿔과 신비로운 연푸른빛 눈동자, 살랑거리는 꼬리를 제외하면 평범한 인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평소의 아가씨스러운 곱상한 목소리가 현 육체에 훨씬 잘 어울렸다.
오히려 그런 목소리를 가진 녀석이기에 이런 모습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드레스 맞추는 건 그 모습으로 하고 싶은 거지?”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주인? 설마 내가 생각 없이 원래 모습으로 인간의 드레스를 맞춰 입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시비냐. 내가 이럴 줄 어떻게 알았겠어.
어쨌든.
처음엔 당황했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잘된 일이기도 했다.
“그럼 그건 됐고. 뿔이나 꼬리 같은 건 감출 수 있어?”
[완전한 인간 모습 말이군? 가능하다. 대신 뿔이랑 꼬리는 내 마력의 원천이라서 말이다. 전부 감추는 동안엔 마법을 못 쓴다. 조금 불편한 감도 있고.]다행이네. 평범한 인간처럼 지낼 수 있다는 얘기니까.
“너 예전에 여기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지내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 모습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응? 오오!]표정이 밝아지는 힐드.
많은 도움을 받아온 만큼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적어도 힐드가 바라온 것 정도는 이루어 줄 수 있을 터.
기왕 계속 소환한 상태로 두는 거, 힐드를 즐겁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 * *
[체셔 귀환~.]“늦었구나.”
최상위권 기숙사 샤를관.
램프 불빛에 의지해 책상에서 작업하던 앨리스가 창문으로 들어온 괴묘-체셔를 맞이했다.
다음 학기, 차기 학생회장에게 수월하게 인수인계하기 위해 내일부터 직책 정리 업무에 들어간다. 매뉴얼 제작도 그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앨리스는 기숙사에서 미리 업무 매뉴얼을 작성하고 있었다.
정리 업무는 고작 며칠이면 끝날 일이었지만, 그 며칠이 아쉬워 오늘 밤 아이작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괴묘가 아이작에게 오늘 만날 수 있게 제안하러 간 것이었는데, 그는 앨리스의 예상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다.
[재밌는 일이 있었거든.]창가에 앉아서 씨익 웃는 괴묘-체셔.
의문을 느낀 앨리스는 손을 멈추고 괴묘를 쳐다보았다.
“재밌는 일?”
[아이작 방을 찾아갔는데 말이지. 아이작이 홀딱 벗은 채로 여자를 쓰다듬고 있는 걸 봤어! 정말 놀랐단 말이지!]“……?”
앨리스의 머릿속에서 단어와 문맥이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왜 ‘아이작’, ‘나체’, ‘여자’가 한 문장에서 나오지…? 그리고 여자를, 어쨌다고…?
앨리스는 아이작의 하렘을 받아들이고 그를 마음에 품은 것이었다. 대신, 앨리스는 아이작의 우선순위가 되기로 다짐했다.
아이작은 악신을 토벌할 때까지 연애에 좌우될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앨리스는 차근차근 그의 마음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섣불리 허튼 짓을 하면 아이작에게 방해될 테니까.
그런데 이 타이밍에 대체 누가 선수를 쳤단 말인가…?
앨리스는 폭우가 쏟아지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검지로 책상을 가볍게 툭툭 치면서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가… 애기를 꼬셨을까? 도로시니, 루체 엘타니아니?”
지금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경계 대상은 도로시와 루체, 그 둘뿐.
아직은 안심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아이작과 좋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어도, 괴묘-체셔가 난입했으니 일단 방해에 성공했을 테니까.
그러나 괴묘-체셔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엥? 둘 다 아니었는데?]뭐?
앨리스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길 뚝 멈추었다.
“둘 다 아니라고?”
괴묘 쪽으로 상체를 살며시 기울이는 앨리스.
예상 밖의 변수가 그녀를 몰아넣으려 했다.
“그럼… 누구였니? 애기랑 같이 있던 여자는?”
[힐드였어.]“힐드?”
앨리스는 잠시 사고가 멎었다.
힐드라니.
빙설룡-힐드 말인가?
“잠깐, 애기의 사역마 말이니? 힐드라면 분명 용….”
[인간으로도 변신할 수 있더라고.]“인간으로?”
[나도 오늘 처음 알았어. 아이작이 힐드에게 예쁜 드레스를 맞춰준다든지, 그런 얘길 하고 있었나 봐. 아이작은 힐드를 인간처럼 대하려는 것 같아.]잠시간 떠올랐던 이상성욕적인 상상은 물러났지만, 복잡한 사고를 정리해야 하는 건 여전했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빙설룡-힐드는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 사역마를 나체였던 아이작이 쓰다듬어줬다.
나체였던 아이작은 빙설룡-힐드에게 예쁜 드레스를 맞춰주겠다는 달콤한 멘트를 내뱉었다.
나체였던 아이작은 빙설룡-힐드를 인간처럼 상냥하게 대하려는 것 같다….
[앨리스?]“…….”
명제 하나하나가 죄다 불순한 결론에 다다르려 한다.
앨리스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설마… 아이작이 바라는 하렘은 종족 불문이었는가?
빙설룡-힐드는 사역마라 연애 문제로 골머리를 안을 필요가 없다는 건가?
이건, 예상 못했다.
[응? 앨리스으?]학생회장 직책을 수행하며 어떤 돌발 사태를 맞닥뜨리든 차분하게 인지하고 대처해왔으나, 이번 사태는 상당히 충격적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예상치 못했던 복병의 등장은 앨리스에게 파도처럼 몰아치는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했다.
…진정하자.
앨리스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슬쩍 훔친 후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체셔, 오늘은 애기 좀 몰래 지켜봐 주지 않을래?”
[응? 몰래? 아이작 사생활은 어쩌고?]왜 저 고양이는 이럴 때 올바른 소리를 하고 있지?
물론 앨리스는 아이작의 사생활을 존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비상사태니까.
“우리랑 애기는 주종 관계잖니? 주인님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가끔은 사생활에 일부 개입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처사란다. 아이작도 이해해줄 거야.”
아이작은 대마법사다. 괴묘-체셔가 몰래 지켜보는 것쯤은 간단하게 눈치챌 터.
즉, 아이작과 빙설룡-힐드가 보낼 오늘 밤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
아이작이 ‘왜 내 방을 엿봐?’라고 강경하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겠지만,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괴묘-체셔는 앨리스의 지시가 빙설룡-힐드를 견제하려는 의도임을 알아챘다. 괴묘는 들뜬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하곤 밖으로 떠났다.
그날 새벽, 괴묘는 앨리스에게 보고했다.
빙설룡은 다시 작은 용 형태로 돌아갔고, 아이작과 함께 아무 일 없이 잠들었다고.
의도치 않게 밤을 지새워 버린 앨리스는 그제야 안도감을 느꼈다.
* * *
“힐드가 드레스를? 재밌겠다! 따라갈래! 따라가게 해줘!”
[그건 나도 좀 궁금하네.]점심시간이었다. 보통 루체와 함께 점심을 먹는 편이지만, 그 애는 수시로 있는 마탑 수습 일 때문에 오늘 아침에 헤겔 마탑으로 떠났다.
그래서 아카데미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
곧바로 옷 가게로 향하던 중, 야생의 도로시와 마주쳤다.
날 기다렸는지, 도로시는 나무에서 불쑥 튀어나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리면서 “안녕!”하고 활기차게 인사했다. 하얀 고양이 마수, 엘라가 도로시와 함께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내 머리 위에 앉아있는 작은 용 형태의 빙설룡-힐드와 함께 인사를 받아주었고, 힐드의 드레스를 맞추러 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도로시와 엘라는 재밌겠다며 따라나섰다.
“힐드, 옷 고르는 건 나한테 맡겨. 우리 학부에서 나만큼 우아한 복식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거든.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오호, 그런가! 맡기겠다, 도로시!]“니히히, 나만 믿으라구!”
힐드는 드레스를 입을 생각에 무척 들떠 있었다.
아침부터 전신 거울만 주구장창 바라보며 온갖 자세를 취했으니 말 다 했지.
[근데 힐드는 용이잖아. 왜 인간용 드레스를 입고 싶은 거야?]하얀 고양이 엘라는 도도한 아가씨 같은 어투로 물었다.
그때, 내 어깨 옆으로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보라색 고양이 마수가 나타나 엘라에게로 휙 날아갔다.
엘라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지르곤 다급히 도로시 어깨로 도망쳤다.
“체셔?”
“오, 체셔구만!”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괴묘-체셔는 몸의 투명화를 푼 뒤, 뒷발로 서서 앞발로 내 다리를 짚었다.
엘라가 자신을 기피하는 건 이제 익숙한지 괴묘는 태평했다.
[힐드는 말이지, 인간용 드레스를 입으면 정말 예뻐질 거거든! 엘라의 미모에는 못 당하겠지만 말이지!] [샤아아악!!]괴묘는 윙크하며 엘라에게 작업 멘트를 날렸지만, 엘라는 꼬리를 세우며 아주 사납게 반응했다. 굉장히 적대적이었다.
[체셔, 네 녀석의 발언은 부적절하다! 이 몸은 엘라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응, 그래그래. 근데 넌 고양이가 아니잖니.]빙설룡-힐드는 괴묘-체셔에게 따졌으나, 괴묘는 시선도 안 주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종족의 차이를 넘어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어온 힐드는 부들부들 떨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주인, 발이 멈추었다! 어서 내 드레스를 맞추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그래, 가자. 체셔도 따라가게?”
[니옹! 물론이지. 재밌어 보이거든!]괴묘-체셔까지 합류하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길에 여러 수다를 떨었다. 도로시와 괴묘는 한때 서로를 죽일 작정으로 싸웠던 관계 치곤 사이가 좋아 보였다.
이젠 입장 차이란 게 없어져서 그런 걸까. 강자들의 시원스러움이 느껴진다.
반면에 엘라는 도로시 어깨에 달라붙은 채 괴묘와는 눈도 안 마주쳤다. 대놓고 괴묘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니옹! 엘라는 오늘도 정말 예쁜걸?] [응, 넌 오늘도 정말 못생겼네.] [혹시 다음에 나랑 같이 생선 보러 가지 않을래? 마침 좋은 호수를 찾았는데.] [그냥 호수 말고 삼도천에 가는 건 어때? 너 혼자.] [니옹. 가 본 적은 없지만 거기 있는 생선 보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엘라가 날 위해 생각해준 장소라니, 꿈만 같아!] [널 보는 건 악몽 같아.] [그럼 엘라, 언제 시간 되니? 나랑 놀아줬으면 좋겠어!] [시간은 많지만, 너랑 같이 있을 시간은 평생 없을 거야.] [이런, 많이 바쁘구나. 어쩔 수 없지. 그럼 엘라가 좋아할 만한 거라도 챙겨줄게. 나한테 바라는 거 없니?] [죽어줬으면 좋겠어.] [니옹, 이런 귀여운 새침데기 같으니라고! 꽤 극단적이어서 마음에 들어!]괴묘는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애써 웃으며 엘라를 향한 올곧은 연심을 포기하지 않고 표현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더는 괴묘를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는 아카데미 상가에 들러 옷 가게에 이르렀다. 고풍스러운 드레스와 정장 따위가 널려 있는 곳이었다.
“어서 오세…, 앗, 오랜만이네, 아이작! 아니아니…, 미쳤나 봐. 빙제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옷 가게의 여자 주인이 우릴 반겼다. 작년에 내가 마부 일을 하면서 친해졌던 상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 가게는 작년 사교회 때 파티용 정장을 빌리러 방문한 곳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 달라진 신분 탓에 날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동을 겪는 모양이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안 그러면 제가 불편해요.”
“그래도 되니…?”
“네, 괜찮아요.”
“후훗, 나야 좋지.”
이래야 마음 편하고 좋지.
“우리 빙제님은 무슨 옷을 보러 오셨을까?”
“드레스 보러 왔어요. 여성용으로.”
가게 주인의 시선이 자연스레 도로시 쪽으로 돌아갔다.
“이 애 건가? 혹시 여자친구?”
“니히히! 정확히 알아보셨네.”
“어머어머! 진짜로? 보기 좋네, 두 사람!”
도로시는 농담이었지만,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여 가게 주인이 진짜로 그 대답을 믿게 했다.
“장난으로 저러는 거예요.”
“아…, 그러니? 둘이 잘 어울리는데.”
가게 주인은 꽤 좋은 감상을 전했다.
마음이 잘 맞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졸업할 때까지 단골 해야지.
도로시는 능청맞게 날 바라보더니 입을 가리고 ‘느흐흐’거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내 감정을 읽은 건가.
“아이작, 몸이 좀 굳었네? 누나 때문에 설렜구나? …아얏!”
도로시의 이마를 딱밤으로 탁 쳤다.
“그런 거로 농담하지 맙시다.”
“매정하군…. 너 그러면 이 누나는 섭하다?”
도로시는 일부러 뺨을 슬쩍 부풀리며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딱밤 친 부위를 가볍게 문질러주자, 도로시는 눈을 감고 웃으면서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일단, 드레스 보려는 건 얘예요.”
내가 머리 위에 있는 힐드를 가리키자, 녀석은 뒷발로 일어서더니 앞발로 허리를 짚고 제 자태를 뽐냈다.
“어, 응? 으응…?”
가게 주인은 당황했다.
할 말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무어라 말해야 할지 혼란을 겪는 듯 보였다.
…이해합니다.
* * *
한편.
화이트, 메를린을 태운 황실 마차와 제랄드, 카야를 태운 아스트레앙 공작가 마차가 메르헨 아카데미로 출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