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52)
〈 252화 〉 장인어른 (3)
* * *
아이작과 제랄드가 대련을 벌인다는 소식을 얻기란 간단했다.
스노우화이트 황녀와 메를린 아스트레앙은 대련 시설로 향했다.
방학임에도 아카데미에 남은 학생들과, 잠시 일을 내려놓고 온 교직원이 관중석에서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대체…?”
세기의 대련이라며 들뜬 화이트와는 달리, 메를린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아이작과 제랄드가 대체 왜 싸우는 걸까.
카야는 왜 대련장 옆에서 심각한 얼굴로 대련을 지켜보는 걸까.
뭔진 몰라도 무조건 좋은 상황이 아니란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아이작 학생 대 제랄드 아스트레앙 공작의 대련이 성사되었습니다. 아이작 학생의 목적은 제랄드 아스트레앙 공작의 인정을 받는 것. 제랄드 아스트레앙 공작의 목적은 아이작 학생을 시험하는 것. 이의는 없으십니까?”
심판의 물음에 아이작은 안경을 벗으며 “네.”라고 대답했고, 제랄드 아스트레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왕이라는 자가 누군가의 인정을 받으려고 대련한다는 말엔 어폐가 있다.
하지만 이 대련은 달랐다. 카야 아스트레앙이 중심이었으니.
아이작은 악신을 처치하기 위한 여정에 도움되는 일을 위해선 황제 앞에서도 힘의 논리를 고집했지만.
카야의 가족을 무시하고, 그녀를 빼앗고 모욕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기에 카야의 아버지인 제랄드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제랄드는 카야의 아버지로서 예비 장인어른이라는 우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제랄드는 아이작의 의사를 확인한 이상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아이작이 딸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면, 강경하게 나서는 것이 제랄드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딸을 맡겨야 할 남자다.
딸의 인생을 책임지려는 남자다.
상대가 원왕이라고 해도, 제랄드는 기어이 그 남자의 됨됨이를 강경하게 확인할 작정이었다.
“그럼 준비…, 대련 시작!”
참관인이 뒤로 빠지며 대련이 시작되었다.
아이작은 전신으로 스산한 냉기를 흘렸다. 이미 높은 궤도에 오른 아이작의 냉기는 마력 농도가 워낙 뛰어났기에, 날 것임에도 몹시 희뿌옇게 뿜어져 나왔다.
상대는 황국의 검성. 그와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 황국 안에선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그를 상대하는 경험을 쌓는 건 분명 귀중한 기회였다.
장인어른에게 한 방 갈겨주리라.
아이작은 그런 각오로 지면을 박찼다.
파앗!
직선 경로로, 빠르게.
“흠?”
제랄드는 의구심을 느꼈다.
마법사가 시작부터 근접전을 시도하다니. 하물며 자신을 상대로.
운동 신경은 훌륭하다. 움직임만 봐선 아카데미의 기사학부 우등생과 겨루는 것이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제랄드의 눈은 경험의 깊이를 포착한다.
민첩하지만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엿보였다. 고작 아카데미 우등생 수준의 움직임이라고 느낀 것은 그러한 까닭이었다.
휘우우우우!
아이작의 오른손 안에 냉기 마력이 공 모양으로 수렴하듯 소용돌이쳤다. 그 위로 연푸른빛 마법진이 뒤따랐다.
5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결 폭발]의 술식이었다.
아이작이 전신으로 흘려내는 희뿌연 냉기가, 응축된 얼음 마력으로 묵직하게 흘러갔다.
아이작의 빠른 움직임 탓에 많은 학생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으나 제랄드는 유독 아이작의 오른팔로 모여드는 냉기의 흐름을 알아챘다.
[빙결 폭발]의 위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아이작이 다가온다.
“얕보였군.”
정직하게 공격을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속도는 제랄드가 우위.
제랄드의 몸이 옆으로 빠졌다. 그는 아이작을 시험해볼 작정이었다.
아이작에게는 마치 눈을 한번 깜박이자 제랄드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정교하게 아이작의 시야에서 한순간에 벗어난 것이었다.
흡사 순간 이동에 버금가는 기민한 움직임.
그 순간, 아이작의 청각은 예리한 파공성을 붙잡았다.
뒤였다.
휘이익!
뒤통수 너머로 검신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횡베기다.
조금 전까지 시야에 있었던 검사가 갑자기 뒤로 나타나는 건 굉장히 상식적이지 않았다.
애당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움직임을 보이는 검사였다면 검성의 자리에도 오르지 못했을 터.
‘어쩔 거냐.’
제랄드가 아이작의 뒤로 빠져 공격하는 건 어떻게 대처할지 확인하기 위함.
마법사 답지 않게 근접전을 시도한 근거를 보여보라는 의도였다.
그 찰나.
관객석에서 대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눈으로 따라잡기는커녕 인지할 수조차 없었던 그때였다.
기이한 압박감이 제랄드의 야성을 건드렸다.
‘이 녀석…?’
분명 아이작은 제랄드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응축된 얼음 마력을 거머쥔 아이작의 오른손은 이미 뒤를 향한 채였다.
제랄드는 그 오른손의 방향을 단번에 파악하지 못했다. 아이작이 뿜어내는 냉기가 유독 그의 오른팔에 몰린 탓이었다.
노림수였다. 아이작은 오른손의 방향을 감추기 위해 냉기를 더욱 흘려 냈던 것이었다.
휘우우!
응집된 얼음 마력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
연푸른빛 광채가 차가운 대기를 밀고 나간다.
충격파를 동반한 찬란한 빙결이 제랄드를 덮쳤다.
사사삭!!
제랄드의 판단은 빨랐다. 휘두르던 검은 순식간에 궤도를 틀었고, 살짝 굽혀진 무릎은 곧바로 뻗어지며 능숙하게 탄력을 일으켰다.
날카로운 수 갈래의 빛살.
한순간에 수 차례의 검격이 몰아치며, 범람하는 빙결을 예리하게 쪼개고 갈라낸다.
빙괴가 박살 나며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어느새 뒤로 빠져 아이작과 거리를 벌린 제랄드. 그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잡기 어렵다. 어깨를 툭툭 털며 서리와 마나 잔흔을 털어내는 모습은 몹시 태연하기까지 하다.
“나, 방금 뭘 본 거야…?”
“[빙결 폭발]이란 게, 원래 벨 수 있는 거였나…?”
말도 안 되는 한 합이 펼쳐졌던 것 같은데, 관중석에 앉은 학생들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빨랐으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제랄드는 [빙결 폭발]을 검으로, 그것도 대련용 검으로 상쇄하는 무시무시한 기교를 선보였다.
여러 대련용 검 중 제랄드가 집어 든 건 사물을 베어내기 어려운 구조를 지녔다. 날이 두껍게 제작되어 예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두께가 얇은 둔기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러나 무슨 도구든 제랄드의 손에 쥐어지면 날카로운 흉기로 돌변할 수 있었다.
아이작은 멈춰 선 채 제랄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칙칙한 적안이 똑바로 제랄드를 노렸다.
‘감탄스럽구나.’
제랄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련할 때 상대가 어떤 공격을 펼치는지는 그 사람의 눈짓, 행동에서 추론할 수 있다.
조금 전, 아이작의 눈은 제랄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제랄드는 분명히 확인했다.
그러나 제랄드가 사라지는 타이밍에, 아이작은 얼음 마력이 뭉친 오른손을 뒤로 향하게 했다.
즉, 아이작은 제랄드의 움직임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내 움직임을 예측했다….’
아이작이 마법 하나 믿고 근접전을 시도한 게 아니었음을 제랄드는 여실히 느꼈다.
“방금 건 대마법사의 예지 능력 같은 건가?”
“…아뇨. 그냥 감이었습니다.”
아이작은 일부러 제랄드의 심리를 읽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상대하게 될 강적들은 거의 심리가 읽히지 않는다. 전투에 있어서 [심리 간파]에 의존하는 건 이제 지양할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아이작의 강화된 전투 감각이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오로지 오감에 신경을 쏟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제랄드는 가슴속이 간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감이라…. 마법사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군.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해 싸우는 유형도 있다지만, 그건 단발성이고 신체에 무리가 심하지. 넌 그런 부류가 아닌 것 같고. 육체 강화에도 단련을 아끼지 않은 것 같구나. 그야말로 잡다한 녀석이군.”
“마음에 안 드십니까?”
“오히려 존경한다. 사람은 각자에게 맞는 전투법이 있기 마련이니까. 다만, 의문이 드는구나.”
제랄드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네가 마족으로부터 아카데미를 지키려고 이곳에 입학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도 여기에 남아 있는 건가? 그만한 실력을 갖춘 네가, 아카데미에서 배움을 추구해봤자 헛수고 아닌가?”
“배움에는 끝이 없으니까요. 여기서도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기만인가.”
“마음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보고 느끼는 걸 사실대로 말한 거니까.”
아이작은 품 안에 든 마법 주머니에서 잔야의 지팡이를 꺼냈다.
제랄드의 눈이 잠깐 크게 뜨였다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잔야의 지팡이는 아스트레앙 공작가가 소유했던 마도 무기.
카야에게 소유권을 넘겼으니,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처분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어차피 그런 게 아니더라도 만일의 위협에서 아카데미를 지키려고 여기에 남아 있는 겁니다. 가장 경계하고 있는 미지의 위협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하고요. 적어도 제 역할이 끝날 때까진 여기에 남아 있을 작정입니다.”
시야에 비치는 남학생은 대마법사다. 그의 뜻은 한낱 인간이 헤아리기 어렵다.
실제로 아이작은 미래를 관측한 것처럼 온갖 괴이한 사건들을 해결하고 인명 피해를 막아왔다. 그런 남자가 아카데미에 남아 있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황실의 판단이기도 했다.
문득 떠올랐다.
제랄드 아스트레앙은 황국 최대의 전력 중 하나로서, 황국이 위험 요소로 여기는 건 모두 전해 듣고 있었다.
그중 하나. 아이작이 예언한 악신 네피드의 재림.
아이작은 악신을 토벌할 계획이라고 황국에 제 뜻을 드러냈다. 악신이 부활할 때가 오면 예지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아이작이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이유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터.
“마치 네가 신의 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제랄드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네 능력은 인정한다.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오만한 태도가 아닌가, 아이작?”
“…그렇습니까.”
부우우우우!
아이작은 짙은 냉기를 뿜어내며 2성급 얼음 원소 마법 [싸락눈]을 사용했다.
약했던 시절엔 물 원소 마법 주문서를 사용해 이류 안개를 만들어야만 눈속임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전술했듯 아이작의 마력 농도는 매우 짙으므로, 의지만 있으면 몹시 희뿌연 냉기를 방출하는 것이 이젠 가능했다.
냉기가 증기처럼 뿜어져 나가 대련장을 메웠다.
연이어 바닥을 투둑투둑 두들기는 [싸락눈]이 제랄드의 신경을 분산시킨다.
아이작이 주로 사용해온 전법이었다.
“같잖은 장난이다.”
제랄드는 받아줄 생각이었다.
휘익! 드드드득!
지면에서 바위 기둥이 수 갈래로 뻗어나가 일제히 제랄드를 노렸으나, 그는 날렵하게 원소 마법을 피했다.
자욱한 냉기로 인해 차단된 시야. 상대는 마법을 쏟아 붓고 있는 마법사다.
정신없이 대련장을 두들기는 [싸락눈]으로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고, 4성급 바위 원소 마법 [암석 붕괴]로 공격하며 상대가 마력을 감지하는 데 신경을 쏟아붓게 만든다.
이 전법은 그러한 맹점을 노린다.
쉬익!
은빛 궤적이 사각을 파고들었다.
카앙!
제랄드는 눈짓조차 주지 않고 아이작이 내지른 검격을 대련용 검으로 막아냈다.
아이작이 손에 쥔 건 단검이었다.
아이작은 단검 뒤로 잔야의 지팡이를 받쳤다. 힘을 싣기 위해서였다.
‘역시 마법사 답지 않군.’
단검을 꺼내 공격하다니. 이 또한 예상 밖이었다. 마법 기사라고 여기기에도 괴리감이 있었다. 마치 별종이다.
제랄드는 아이작의 냉철한 눈빛을 마주했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기반으로 물리적인 공격을 가하는 게 핵심인 전법.
처음부터 냉기를 몰아내면 파해할 수 있겠지만, 아이작이 이를 대비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하물며 아이작보다 마력 농도가 낮은 사람이라면 이 고농도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냉기를 몰아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일 터.
‘신기한 놈이다.’
아이작과 고작 두 합을 나눴을 뿐임에도 제랄드는 신선한 인상을 느꼈다.
원왕이라는 작자가 약자의 싸움법을 걸어온다. 자기 힘에 심취하지 않고, 맹신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상대를 몰아세우려 한다.
제랄드는 그 기이한 괴리감이 썩 싫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제랄드에게 이런 얄팍한 수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기척을 감지하는 데에도 능하므로, 마력 감지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눈을 감고 있었어도 아이작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으리라.
나쁘지 않은 전법이었으나, 상대가 안 좋았다.
“오만하면 어떻습니까?”
단검과 대련용 검이 힘겨루기를 이어간다.
“제가 좋아하는 걸 지키면서 저도 살려고 그러는 건데. 대마법사…, 웃기는 소리지. 저도 한 꺼풀 벗겨보면 그냥 사람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단지 운만 좀 따라줬을 뿐인, 그저 평범한 사람.”
그 말엔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제랄드는 흥미를 느꼈다.
아무리 어린 녀석이라고 해도 전세계에 제 존재감을 널리 떨친 인물이다. 그가 지금의 어마어마한 성취를 얻기까지 무슨 과정을 거쳤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지금 아이작이 꺼낸 말엔 약자의 싸움법을 익힐 수밖에 없었던 그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점점 제랄드는 아이작이 알고 싶어졌다.
검사는 검을 맞대어 서로를 이해한다. 비록 상대는 마법사였지만, 검을 들었다면 얘기가 다르다.
스으으!
아이작의 손을 타고 냉기가 빠르고 격렬하게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응축된 냉기가 터져나가 제랄드를 맹수처럼 집어삼키려 들었다.
휘익! 채앵!
가만히 당해 줄 리 없었다.
제랄드는 검을 옆으로 빗겨 아이작의 단검을 흘려내고, 유려하게 검격을 내질렀다.
아이작은 방심하지 않았다. 재차 단검을 휘두르며 제랄드와 검을 맞부딪혔다.
카앙!카앙! 콰강!
아이작은 뒤로 빠지면서 제랄드의 검을 받아냈고, 얼음 원소 마법과 바위 원소 마법으로 제랄드를 요격했다.
단검 끝으론 얼음 마력을 응축시켜 폭발시키길 반복했다. 학생 수준으론 흉내 내기도 어려운 기술. 엄청난 마력 운용력과 연산 능력이었다.
제랄드는 대련용 검을 휘두르면서도, 아이작의 마법을 최대한 피해가며 검날에 가는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철저히 계산해야만 했다.
검을 맞대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나, 그건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작에게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대마법사란 게 웃기는 소리라고 했나?”
제랄드의 대응은 빨랐다. 연격으로 무자비하게 아이작을 파고들면서도 빈틈을 내보이지 않고 원소 마법을 피하거나 갈라냈다.
검날이 냉기를 가르며 격돌할 때마다 불꽃이 튀기고 단검이 몸서리쳤다.
아이작이 뒤로 물러나며 검을 받아 낼 때마다, 제랄드의 검이 자석처럼 아이작의 검을 집요하게 뒤쫓았다.
콰가강!!스릉!!
“한 꺼풀 벗겨보면 너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나?”
제랄드는 아이작이 시전하는 원소 마법의 구성을 감각적으로 알아채고 미세한 틈새를 예리하게 베어냈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던가. 제랄드는 대련용 검으로도 그런 게 가능했다. 검성이라 불리는 검사의 경지였다.
공기 가르는 소리와 폭음이 연신 두 남자의 귀청을 찔렀다. 불꽃이 툭툭 튀긴다. 두 남자의 검격이 연쇄적으로 냉기를 가르며 서로에게 몰아쳤다.
“네 특별함을 운이라고 치부했나?”
제랄드의 검격은 한 번, 한 번이 무척 노련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방어 마법으론 모자랐기에, 아이작은 잔야의 지팡이 자체를 마법을 시전하는 용도뿐만 아니라 공격을 막는 용도로도 사용해야만 했다.
검이 부딪힐 때마다 시린 냉기가 명멸하며 밀려났다. 제랄드의 시야가 점차 확보되어 간다.
“살려고 발버둥 치고 손발의 피부가 벗겨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 많은 이가 그리 한다. 그러나, 성취는 차별적이다!”
콰아악!!
강맹한 일섬이 아이작을 단검째로 날려 보냈다. 아이작은 잔야의 지팡이로 단검을 쥔 손등을 받쳐 그 일격을 받아냈다.
부우웅!!
풍압이 일며 마지막 남은 냉기마저 몰아낸다. 제랄드가 일부러 위력적으로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아이작은 대련장에 착지하곤 뒤로 얼음의 벽을 끌어올려 등을 받쳤다.
잔야의 지팡이로 지면을 짚는 아이작. 아직 무리는 없었다.
그리고.
크직.콰자작!
제랄드의 검날이 우수수 부서졌다.
검신을 부딪힐 때마다 아이작의 섬세한 마력 폭발이 제랄드의 검신에 피해를 누적시킨 까닭이었다.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제랄드는 검을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아이작의 냉기로 받는 피해를 최대한 피해가며 검을 휘둘렀어도, 고작 대련용 검으론 한계가 극명했기에.
관중석에 있던 학생들, 교직원들, 화이트와 메를린은 모두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제랄드는 이미 부서진 검으로도 싸울 자신이 있었지만, 더 대련을 이어가는 건 무의미할 터였다.
“그건 운이 아니다. 네가 이뤄낸 필연이다. 내 딸을 받아들일 남자라면 그런 태도는 지양해라.”
제랄드는 상태창이든, 시스템이든, 아이작의 사정을 알지 못했다.
다만, 객관적으로 아이작은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고, 지금은 뒤펜도르프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작은 자기 위치에 익숙하지 않았고, 결국 평소에 품어왔던 생각이 입밖으로 고스란히 튀어나왔다.
그렇기에 제랄드는 예비 장인어른이란 위치에서 아이작을 꼬집은 것이었다.
네가 이룬 성취를 운이라고 깎아내리지 말라고.
네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분별하라고.
원왕, 뒤펜도르프의 군주, 자기 딸을 책임지려는 사내로서 겸손해야 할 건 따로 있지 않느냐고.
“…명심하겠습니다.”
제랄드의 의중을 파악한 아이작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랄드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내 패배다.”
제랄드가 그 한 마디를 내뱉자 서서히 박수 소리가 울렸고.
이내,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환호성과 갈채를 보냈다.
“메를린?”
즐겁게 박수를 보내던 화이트는 메를린을 보고 의아해했다.
메를린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