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58)
〈 258화 〉 비밀 연구 (4)
* * *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아리아 릴리아스는 내가 환각을 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갑자기 균열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내 이마를 관통하자 나는 기절했고.
아리아는 곧바로 균열을 뒤덮은 결계를 수복한 뒤 내게 회복 마법을 걸어주었다. 다친 곳은 없었지만, 만일을 위해서 회복 마법을 건 것이었다고 했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가 체감하기론 10분이 넘었지만 아리아에게는 30초도 안 걸렸다고 했으니. 아리아가 여러 수단을 강구하는 동안 나는 의식을 되찾은 것이었다.
“무사해서 다행인 것. 하지만 명계에서 온 메시지라니…, 믿기지 않는 것.”
넓은 도서관 같은 연구실.
나와 아리아는 책장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비밀 통로는 다시 책장으로 가려진 뒤였다.
내가 겪은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다만, 내게 메시지를 남긴 사람이 도로시라곤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내 연구를 알아채고, 네가 날 찾아오도록 만든 초월자가 있었다는 게….”
“이대로는 악신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전해야 했다고 하니까요.”
“그게 신살의 권능이란 것 때문…. 결국, 신들은 네게 도박을 건 것?”
“아마도요.”
한때 평범한 게임 플레이어였던 내가 신들의 계획 속 게임 말이 되었다.
악신을 상대로 벌이는 이 게임은 규모가 지나치게 커서, 시간과 수많은 운명의 갈림길조차도 이용해야 할 패에 불과했다.
난 작고 작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신들의 게임 판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게임 개발사 힉스와 직접 얘기를 나누지 못 하는 이상, 풀리지 않을 의문이 많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내 선택지는 제한적이라는 점이었다.
“…명계로 갈 겁니다.”
아리아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당연하게도, 도로시가 알려준 두 가지 방법 중 두 번째를 선택하기로 했다.
“악신을 이길 방법을 찾을 거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전에 알아둬야 할 게 있는 것.”
아리아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떻게 갈 건지? 죽어서 갈 생각은 아닐 테고.”
“제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방법을 알려 줬어요.”
도로시는 두 번째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명계로 갈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다.
“균열을 넓히고 거기로 들어갈 겁니다.”
“뭐…?”
아리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균열을 넓힐 명확한 방법을 찾아야겠지만요. 선생님의 비밀 연구, 거들어 드릴게요. 괜찮죠?”
미지의 책에 담겼던 내용을 떠올렸다. 아리아는 내 편이 되어 준다고 했지.
선생님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영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아리아는 지적 호기심 때문에 진리의 영역까지 건드린 오만한 마법사다. 목숨으로도 부족해 영혼까지 걸고 모험하는 얌전한 미치광이다. 마땅히 신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신이 화내기는커녕 더욱 그리하라고 재촉하기까지 한다면, 오만한 마법사는 일말의 고삐조차 풀려 제 본능에 충실할 것이었다.
이해관계는 일치하고 지적 욕구의 충족까지 누릴 수 있으므로.
아리아는 누구보다도 충실한 내 편이 되어 줄 수밖에 없었다.
도로시는 그 점을 간파했던 걸까.
‘이렇게 되면, 나도 검은 마법에 손대는 셈인가?’
뭐, 지금은 아리아와 한 배를 탔으니 얼굴에 철판 깔고 그녀와 같은 마인드를 갖기로 했다. 우리가 하려는 건 검은 마법이 아니라고.
이 연구에 좋은 명분도 생겼잖는가. 악신을 쓰러뜨리고 세계를 지키겠다는 대의가.
“푸훗. 후후후….”
서서히 아리아의 입가에 절제하기 어려운 웃음이 번졌다.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독특한 웃음소리였다.
“그건, 정말 좋은 소리인 것…. 정말로, 완벽히….”
아리아의 목소리는 희열에 잠겨 흐느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여태까지 본 아리아의 얼굴 중 가장 생동감 있고 기뻐 보였다.
……
“아이작!”
마탑주 연구실을 나서고 헤겔 마탑을 나서려는 때였다.
복도에서 루체와 마주쳤다. 그녀는 헤겔 마탑의 마법사 로브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마탑주의 허락으로 언제든지 옥상에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옥상 난간 앞에 나란히 서서 메르헨 아카데미가 있는 야경을 구경했다.
밤바람은 서늘했다.
“왜 왔다고 얘기 안 했어? 나 여기서 수습하는 거 뻔히 알면서.”
“시간 늦었잖아. 괜히 보러 가면 실례일까 봐.”
“아이작…, 미워.”
루체는 속삭이듯 나지막이 투덜댔다.
“내가 온 건 어떻게 알았어?”
“네 사역마가 전에 마탑주 찾았던 거 아니까.”
…그건 어떻게 알았고?
“오늘 마탑주가 복귀한다길래 네가 올 것 같았어.”
“그래…? 예리하네.”
루체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무슨 일 있지?”
“응? 아니.”
“마탑주가 복귀하자마자 찾아올 정도면, 급한 일 있었던 거 맞잖아.”
루체의 특기, 추궁하기가 시작됐다.
“무슨 일인데?”
“그냥 선생님께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거야.”
루체는 날 미심쩍게 노려보았다.
‘솔직하겐 못 말하겠다.’
난 명계에 갈 생각이고, 아리아와 협력하기로 했다.
이런 얘길 루체한테 한다? 안 된다. 누가 들어도 위험에 몸을 던지겠다는 소리니까.
문득 1회차 도로시가 미지의 책으로 아리아가 내 편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이유가 여실히 와 닿았다.
루체처럼 나와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내가 쉽게 위험한 길로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터.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었다.
결국, 아리아 만큼 이해관계가 온전히 일치하며 날 도와주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신경 쓰지 마. 진짜로 별 거 아니니까.”
“…알았어. 그럼 더 안 물을게.”
웬일로 쉽게 물러나 주네.
그런 생각을 하며 야경을 쳐다보자, 돌연 루체는 내 머리를 끌어당겼다.
내 얼굴을 제 가슴에 품는 루체.
말랑한 감촉이 내 턱과 두 뺨을 감싸 눌렀다.
뭐지, 갑자기…?
“갑자기 왜…?”
“너, 내 가슴 좋아하잖아.”
“지금 우리 사이에 할 말은 아니지 않냐. 진짜로 왜 그러는데?”
“…아이작.”
루체는 내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왜 아까부터 슬픈 얼굴 하고 있어?”
애써 표정 관리를 했는데, 티가 조금씩 났나 보다. 부주의했다.
루체에게 들켰으면 숨기지 못한다.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뭐…, 그런 일이 있다. 살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진 않잖아.”
“…….”
도로시 게일이 했던 말을 곱씹을수록 회한만 짙어져 갔다.
내가 처음 만났던 도로시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다.
모두가 시간이 돌아갔는데, 오로지 도로시만이 희생되어 게임 말로 쓰였다.
지랄 맞은 상황이지, 정말.
“그래도 괜찮아. 정말로. 그렇게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야.”
태평하게 미소 지었다. 루체에게 이런 근심을 나눠줄 생각은 없으니까.
루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야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숲길 되게 어둡다.”
다른 말을 꺼내는 루체.
“그렇더라.”
“자고 갈래? 밤길은 위험해.”
“내가…, 밤길 위험하단 소릴 들을 사람은 아니지 않아?”
“그럼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너 힘들 때 이렇게 해주기로 했잖아.”
루체는 내 머리에 뺨을 기댔다. 그녀의 온기가 내 머리를 감쌌다.
“우리 앞으로도 함께 살 거잖아. 어서 내 위로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기특한 녀석….
썩 위로가 되었다.
“고맙다, 루체.”
“나중에 첫째 딸 아드리아나, 둘째 아들 하멜 가져도. 네가 원하면 언제든 애들 놔두고 먼저 안아줄게.”
“…응?”
머릿속에 혼란이 왔다.
얘 지금 뭐라는 거야?
……
[그게 사실이더냐…?]기숙사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서자 인간형 모습으로 청소 중이던 빙설룡-힐드가 날 맞이했다.
평소엔 학사 메이드가 청소해주므로 필요 없는 행위였지만, 힐드는 인간 흉내를 내보고 싶었다고 했다.
램프가 흘려내는 은은한 불빛만이 어두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힐드를 침대에 앉히고 헤겔 마탑에서 있었던 일을 한 가지 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뺀 이야기는 태초의 빙제가 얼음 호수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지금은 많은 정보를 힐드에게 전한 상황이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할 터였다.
거기서 태초의 빙제 이야기까지 꺼낸다면, 천 년간 전 주인을 그리워했던 정 많은 힐드가 어떤 감정의 격변을 느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태초의 빙제 문제는 다음에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편이 좋으리라.
“응.”
[당장 도로시를 찾으러 가야 한다, 주인!]힐드는 안절부절못했다. 명계의 위험성을 고려하는 것보다 도로시를 구하는 게 우선인 듯 보였다.
내 마음도 그랬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직은 내가 더 실력을 길러야 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동안 철저하게 준비해야지.”
내가 뭘 해야 할지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감정을 가라앉혀 조급함을 멀리한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개죽음만 당할 테니까.
그 이유로는.
‘배드 엔딩 「명계의 방랑자」….’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무조건 게임 오버를 가져다주는 존재가 있다. 그중 한 명이 명왕이었다.
게임에서 ‘의문의 지하실 열쇠’를 사용해 명계 구석으로 향할 경우.
열쇠 효과가 사라질 때까지 명계에 남아 있으면 배드 엔딩 조건이 충족된다.
명계를 떠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늘에 거대한 한 쌍의 눈이 나타난다.
그 눈의 주인은 자신을 명왕이라고 소개한다.
압도적인 존재, 명왕은 진리를 거스른 이안에게 죽음을 안겨 주고.
결국, 이안은 영혼 상태가 되어 명계를 떠돌게 된다.
그것이 배드 엔딩 「명계의 방랑자」였다.
1회차 도로시는 내가 명왕을 뚫어야 한다고 말했다.
육신을 가지고 명계로 가면 무조건 명왕의 눈에 띌 것이기에, 명왕과의 대면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당연히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 배드 엔딩 요소를 기어이 마주할 생각을 하니 은밀한 두려움이 심장을 쿵쿵 두들겼다.
[주인…, 정말로 괜찮겠느냐? 버틸 수 있겠느냔 말이다.]좋은 마음으로 버틸 수 있겠느냐는 의미였다.
나는 은빛 단검, 상화의 검을 꺼냈다. 검집에서 검을 빼내자 활성화된 3개의 연푸른빛 법진이 보였다.
멀리 바라봐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내가 거둘 수 있는 최대의 이득을 거둬야만 한다.
그것이 지금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솔직히 안 괜찮아.”
그러나 괜찮지 않았다.
더욱이, 도로시의 처지까지 생각한다면 금방이라도 가슴에 열불이 날 것 같았다.
상화의 검을 다시 검집에 꽂고 힐드를 쳐다보았다.
힐드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철저히 준비해서 명계에 갈 거야.”
이제까지와 다르지 않아.
도로시 구하려고 부유섬 쓰러뜨리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한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해 가며, 죽어라 강해지며.
명계를 가로지를 준비를 하자.
“거기서 나한테 얼음 마법의 궁극을 전해 줄 누군가를 만날 거고. 그리고….”
─ ‘두 사람은 지금, 서로를 사랑하고 있나요?’
머나먼 얼음 호수.
모든 곳의 가장 밑바닥이라는 그곳에서, 작고 허름한 집에 홀로 있을.
“도로시를 보러 갈 거야.”
나는 각오를 다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