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59)
〈 259화 〉 왕위 즉위식 (1)
* * *
며칠 뒤, 낮.
나는 제랄드를 불러 나비 정원 구석에 이르렀다. 제랄드는 한동안 아카데미에 머무르기로 했기에, 외부인 숙소에서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와 제랄드는 목검을 쥐고 있었다. 제랄드를 검으로 상대할 수 있기는커녕 검술에 일가견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애당초 검술 대련이 목적이 아니니까.
다리를 길게 뻗어 무릎을 꾹꾹 누르며 몸을 풀었다.
“의욕이 넘치는구나.”
제랄드가 독수리 같은 눈매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순한 미소를 지었다.
“장인어른 한 대 때려야죠.”
제랄드의 입꼬리가 꿈틀댔다. 웃겼나 보네, 이 분.
일부러 안 웃은 척 하려고 입에 힘을 주는 제랄드.
“장인어른이라 부르지 마라.”
제랄드는 목검을 들고 전투 자세를 취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정도면 강박 아니냐.
“와봐라.”
안경을 벗고 옷 안에 집어넣었다.
심호흡하고, 상체를 낮추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근육과 관절에 마력을 불어 넣고, 제랄드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다.
고요. 그리고 수 초 후.
파앗!
제랄드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눈은 제랄드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빨라도 발재간.
조용히 흐르는 바람. 흔들리는 잔디.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잔디를 밟는 제랄드의 발소리를 본능적으로 낚아챈다.
판단의 과정은 늦으니 생략한다. 그 어떤 생각도 품기 전에 발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
자연히 몸을 움직여선 안 된다. 익숙해진 감각을 버린다.
마력의 흐름에 집중하고, 내 전신의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고.
‘거기구나.’
나는 새로운 감각으로 도약했다.
휘익!
“……!”
찰나. 시야에 제랄드가 잡혔다. 따라잡았다.
단숨에 목검을 휘둘렀다. 제랄드는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뒤로 빠져 내 검격을 가볍게 피했다.
날 바라보는 제랄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제랄드는 다시 지면을 박찼다.
쫓아간다.
파앗! 파앗!
잔디밭을 휘저으며 제랄드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또 따라잡았다. 한 번은 우연일지 몰라도 반복된다면 우연이 아니다.
속도는 제랄드보다 느렸다. 뭐, 제랄드도 봐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련 때보다 느리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기술을 성공하고 있다는 것.
“……!”
어느 순간, 제랄드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잔상만이 아주 잠깐 내 시야에 머물렀다. 제랄드가 진정한 속도를 냈기 때문이었다.
툭!
뒤에서 제랄드가 목검으로 내 정수리를 쳤다.
“끄윽!”
[기초 보호 마법]을 두르지 않았기에 더럽게 아팠다.동작을 멈추고 신음하며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크흐흐.”
이내 웃음이 튀어나왔다.
성공했다.
장인어른 앞이라 자축 세레머니를 펼치진 못했지만, 속으론 목청이 터져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제랄드를 쳐다보았다. 해냈으니 어서 제대로 된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의미였다.
제랄드는 가만히 날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작.”
“예.”
“바지 밑단, 들춰 봐라.”
“……?”
갑자기…, 라고 할 것도 없었다. 경험자라 바로 알아본 듯했다.
바지 밑단을 접어 올렸다. 무릎 아래론 나무뿌리처럼 뻗어나가는 흉측한 자국이 가득했다. 기술을 실패할 때마다 마력이 툭툭 터지며 신체에 튼살 같은 흔적을 남긴 것이었다.
마력이 터지며 새겨진 자국은 웬만한 회복 마법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몸이 회복돼도 자국만은 선명히 남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아진다고 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방치하고 있었다.
제랄드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동요하는 기색 없이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난 그 기술을 익히는 데 1년이 걸렸다. 숙련하는 덴 20년이 훌쩍 넘었지. 마법적 재능이 따라주지 않아서였다. 그걸 너는 고작 일주일 만에 해냈다.”
제랄드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건 재능이다, 아이작. 마치 철과 같은 거지. 인고의 시간을 거쳐 그 철을 어떤 검으로 단조할지는 오로지 네 몫이다.”
“…….”
“하지만 뭐든, 과하면 망가지는 법이다.”
제랄드는 목검을 잔디밭에 꽂았다.
“마법엔 일가견이 없어서 그쪽으론 뭐라 할 말은 없다만, 그렇게 무리했다간 빠르게 몸이 망가질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인어른.”
“장인어른이라 부르지 마라.”
곧 제랄드는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통과다.”
그 말을 기다렸다.
주먹을 꽉 쥐고 두 눈을 감았다. 깊은 숨을 내쉬며 여운을 만끽했다.
이거 진짜, 실패할 때마다 더럽게 아팠다. 나중엔 요령을 잡아서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을 익히긴 했지만, 그래도 아프긴 했다.
이 기술을 익히려고 제랄드는 1년 이상을 단련했단 건가…. 정말 독종이구만.
“가르쳐 주마, ‘섬보’를. 진입장벽을 넘었으니 이제 어려울 건 없을 거다. 교육은 하루면 충분할 테지. 숙련하는 건 네 몫이다.”
섬보. 제랄드가 말했던 보법의 명칭이었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루면 다행이네요.”
“일이라도 있나?”
“갈 데가 있어서요.”
약속이 있었다.
뒤펜도르프의 왕위즉위식.
모르칸이 준비가 다 되었으니 행차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로 출발하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빨리 청산하는 편이 좋겠구나.”
“청산? 뭘요?”
“아스트레앙 공작령을 지켜줬던 일. 보답해도 되겠나? 보고 실망하진 않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대련하기 전, 내게 갚아야 할 은혜가 있었다고 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저야 좋죠.”
장인어른께서 좋은 걸 주시겠다는데 마땅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 *
이브 로펜하임은 마차를 타고 메르헨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었다.
로펜하임 남작 사건으로 한참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났다. 심리적으로 힘들진 않았다. 아이작과 함께 보낼 일상을 상상하면 행복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구해주러 왔던 아이작에게 솔직한 심정을 전했고 대화의 여지도 생겼다. 이브는 아이작과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굉장하다니까요, 제 동생? 최연소 대마법사인데다 따르는 사람도 많고, 원왕들이랑 어울려 다니기까지 한다구요. 이 황국의 어떤 강자든지 제 동생이 손가락만 휘둘러도 끝장날걸요?”
“그…,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마법사 세계는 잘 모르는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허황된 얘기잖아, 학생.”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요? 진짜라니까요?”
이브는 마부에게 아이작 자랑으로 한참이나 떠들어댔다.
로펜하임 남작의 구속이 사라지고 그의 사역마도 사라진 이상, 자기 애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브는 사람을 만나는 족족 동생 자랑만 실컷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얘길 온전히 믿어주지 않았다.
마부도 헛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브의 이야기는 터무니없었으니까.
“그렇게 대단한 애가 어느새 저보다 더 커지고, 또 얼마나 잘생겨졌는지…. 어렸을 땐 귀여워서 맨날 안아주고 그랬는데. 좋았지, 그땐…. 너무 잘 컸다니까요.”
“동생 사랑이 극진하구먼.”
마부는 사려 깊게 웃었다. 이브가 하는 동생 자랑을 듣다 보면 그들의 안 좋았던 지난날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차가 메르헨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끝없이 늘어지는 이브의 동생 자랑이 끝을 맺었다.
이브는 짐을 챙겨 마차에서 내리고 마부에게 삯을 건넸다.
“동생이랑 잘 지내라고, 학생!”
“안녕히 가세요!”
마부는 마차를 몰고 떠나갔다.
이브는 웃는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메르헨 아카데미 교문에 들어섰다.
아이작과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그동안 못 만나고 그리워했던 만큼 아끼고 사랑해 줄 작정이었으니.
하지만.
“아이작 학생, 지금 외출 중이네요.”
“네…?”
“외출 신청하고 위병소를 통과했습니다. 이틀 전에요.”
바르토스관 행정실.
복귀 소식을 보고하기 위해 들린 그곳에서, 이브는 멍을 때렸다.
아이작이랑… 엇갈렸다고?
“음? 이브 학생?”
교직원은 이브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기도 하며 그녀의 의식이 온전한지 확인했다.
* * *
마차를 타고 황국 영토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날아가는 게 빠르긴 하지만, 급박한 일도 없는데 황국 영공을 가로지르는 불필요한 실례를 범하고 싶진 않았다.
마차 내부. 내 옆자리에 앉은 인간형 모습의 빙설룡-힐드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마차 안에서 여유롭게 경치를 구경하는 일이 처음이라 그런 듯했다.
평소의 백룡 모습으로 있으면 괜히 눈에 띄고 번거로운 일이 생길지도 몰랐기에 인간형 모습으로 둔 것이었다. 녀석을 계속 소환 상태로 두는 건 융화력을 기르기 위해서고.
나는 강도 높은 마력기를 쥔 채 자투리 단련을 하고 있었다.
뭐, 그건 그런데….
“도로시 선배, 안 불편해요?”
“왜? 나 지금 편한데?”
내 맞은편에는 도로시와 앨리스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도로시는 최대한 벽에 달라붙은 채다. 몹시 불편해 보였다. 대놓고 앨리스를 기피하는 기색이었다.
반면에 앨리스는 담담할 뿐.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여유롭게 사근사근한 미소를 건넸다.
“그럼 뭐….”
자기가 편하다는데 내가 뭐라 하겠냐.
뒤펜도르프로 가는 길.
어쩌다 도로시와 앨리스, 이 둘이 따라붙었는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