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89)
〈 289화 〉 아카데미 대항전 (3)
* * *
아카데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로 배신자가 있는지 떠보는 분위기였으나, 이윽고 각자의 의사가 일치했다.
혼자서 이 게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강력한 적이 있다면, 힘을 합쳐서 그를 먼저 탈락시키는 편이 나을 테니까.
메르헨 아카데미의 거점. 중앙 방.
방 구석에는 시엘 카르네다스가 이불을 깔고 누운 채 곤히 잠들어 있었고, 창가 옆에는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이 벽에 기댄 채 창밖을 조심히 내다보고 있었다.
“내 사역마가,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데….”
긴장하는 케리드나.
그녀의 눈이 내 쪽을 향했다.
“다른 아카데미 애들이 이쪽으로 진격하고 있대.”
“말 안 해도 알아.”
[천리안]으로 이미 사태는 파악했다.케리드나는 도끼눈을 떴다.
“너,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 있었지?”
“대충은.”
“하아. 무슨 속셈이야? 애초에 너처럼 아쉬울 거 없는 애가 이 게임에 참가한 이유가 뭔데?”
저런 말은… 보통 만화 같은 데서 주인공 막는 강한 빌런 따위가 듣는 질문 아닌가?
그러면 빌런은 다 부수고 싶어서라느니,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어서라느니, 싸이코패스 코스프레를 하고 별별 헛소릴 다 하잖아.
“엎으려고.”
“어?”
“나, 이 게임 빠르게 끝낼 생각이야.”
…막상 대답하고 보니 내 대답도 비슷한 느낌이네.
>메르헨의 마법 기사> 「11막 1장, 아카데미 대항전」.
아카데미 대항전의 제한 시간은 모레 자정까지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선 이튿날 밤에 끝났지?’
그만큼 이 대회는 게임에서 비중이 큰 편이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대항전이 끝날 때쯤엔 곧바로 「요정 대전」이 시작됐었지.
‘다시 정리해보자.’
내가 아카데미 대항전에 참가한 목적을 다시 상기했다.
‘첫 번째 목표는 노아랑 싸우는 것.’
베텔 아카데미의 참가자 중 한 명인 노아 바르탕은 철의 마력을 보유한 남학생이다.
원래는 그가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가장 강했어야 할 힘숨찐 캐릭터이기도 했다.
‘내가 참가해서 최강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어쨌든 노아는 게임 속 「11막 1장」의 최종 보스이기도 하다.
게임에선 이안과 우연히 만나 서로 동맹을 맺고 우정 놀음이나 하다가, 마지막에 메르헨 아카데미와 베텔 아카데미만 생존하게 되면서 서로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노아가 전력을 내지 않는 걸 눈치챈 이안은 주인공다운 훌륭한 언변으로 노아를 자극해 철의 힘을 끌어내게 한다.
대충… ‘우리 모두 전력으로 싸우고 있는데 너는 왜 그따위냐’하고 따졌었지.
결국 이안은 멤버들과 힘을 합치고, 철의 마력을 다루는 노아를 쓰러뜨리며 경험치를 얻는다.
즉, 철의 힘을 사용하는 노아와 싸워서 「요정 대전」의 예행 연습을 하고, 겸사겸사 경험치를 쌓는 게 내 첫 번째 목적이었다.
‘두 번째 목적은, 이 대회를 빨리 끝내는 것.’
철의 요정 라크닐은 노아를 찾아올 것이다. 철의 마력에 감화된 노아를 흡수하기 위해서다.
이후, 이 일대부터 점령하기 시작해 자기 영역을 점차 확대해 나가려 하겠지.
‘그렇다면.’
아카데미 대항전을 빠르게 끝내면 학생들이 위험에 빠지기 전에 본격적으로 라크닐을 대비할 수 있다.
‘라크닐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걔 마음은 알 수 없으니까.’
아카데미 대항전 시기에 올드렉에 나타난다는 점만 확실할 뿐이니.
확실한 곳에서 확실한 대비를 하자는 게 내 판단이었다.
이 대회 자체가 열리는 걸 막았으면 되지 않았느냐? 그래선 안 됐다.
아카데미 대항전의 진행 기간 동안 온갖 거물들이 올드렉에 머무른다. 그들은 스스로가 강자거나, 강자들을 이끄는 자들이다. 하물며 이곳엔 카를로스 황제까지 있다.
즉, 황명 아래 많은 강자들이 라크닐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힘을 합칠 것이며,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을 지켜줄 것이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황명 아래 그러했기에 단순한 추측은 아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대항전은 열려야 했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이 대회를 빠르게 끝낼 작정인 것이었다.
‘다행히 다들 날 노려주고 있고.’
적 학생들이 다들 겁쟁이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과연, 유망한 인재들 답다.
‘메르헨 아카데미가 아이템을 확보하기 전에 힘을 합쳐 아이작부터 탈락시키기’라는 작전을 세우다니.
애초에 이 게임의 아이템과 함정들을 생각한다면 내게 덤벼들 용기가 생길 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셀 수 없이 클리어 해온 사람.
이 대회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의 위치를 전부 외우진 못했더라도 유용한 아이템들의 위치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아이템들의 효과도 대부분 외운 편이다.
정보량의 차이부터 압도적인 것이었다.
“대회를 엎는다…. 그렇구나.”
“딴지 안 걸어?”
“내가 왜?”
뜻밖에 케리드나는 초연한 반응을 보였다.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네가 별생각 없이 사람들한테 피해 주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건, 감동적인 말이라 고맙긴 한데….”
나라면 무슨 이유에서건 이 대회를 깽판 치려는 내가 못마땅했을 것 같은데.
내가 믿음직한 사람이 된 걸까.
“마음껏 날뛰고 와. ‘학생회장’인 나는 널 지지하니까.”
케리드나는 굳이 ‘학생회장’이란 직책을 강조했다.
아카데미 대항전이 시작되기 전, 학생회장 선거를 마치고 >메르헨의 마법 기사> 시나리오대로 케리드나는 학생회장이 됐으니.
이거, 아무래도 줄타기 같다.
‘나야 좋지만.’
서로 깊은 정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니까. 케리드나와는 이런 칙칙한 관계가 되는 게 편했다.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됐다.
“뭐, 갔다올게.”
“다녀와.”
나는 앉고 있던 얼음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직 게임은 극 초반부니까 아이템 몇 개만 챙기면 되겠지.
* * *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요?! 많은 아카데미 학생들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방향 끝에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거점이! 저들 모두 이번 아카데미 대항전의 압도적인 참가자, 바로 ‘그 학생’의 탈락을 노리려는 걸까요?!”
진행자가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수많은 학생들이 메르헨 아카데미의 거점을 향해 전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4대 1의 경기였던 것처럼.
관중들은 단번에 납득했다. 메르헨 아카데미를 먼저 끝장내지 못한다면 게임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니까.
이때를 노려 뒤통수를 칠 아카데미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아카데미는 다른 아카데미들의 다음 표적이 될 터.
애당초 여기서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메르헨 아카데미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진다고 모든 아카데미 학생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노아, 긴장했냐?!”
메르헨 아카데미의 거점을 향해 나아가던 학생들 중, 베텔 아카데미의 한 학생이 노아의 등을 툭 치며 물었다.
노아는 힘없이 뜬 눈으로 동료 학생을 쳐다보았다.
“조금은. 상대가 상대다 보니까.”
“하긴. 그래도 흥분되지 않냐?”
“뭐가?”
“경쟁해 오던 녀석들이랑 협력해서 똑같은 적을 노린다는 게.”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교복의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빙제 토벌전.”
“뭐?”
“이건 그런 거라고, 노아. 빙제님과 진심으로 싸운다면 우리로선 이길 가능성이 마나 알갱이 만큼도 없겠지만, 여기선 해볼 만하잖아?”
“너…. 너무 흥분했어.”
“당연하지! 그분은 영웅이라고, 영웅! 난 빙제님 실물을 꼭 뵙고 싶었다고! 비록 다른 녀석들이랑 힘을 합치는 거긴 해도 말이다? 빙제님이랑 한 판 붙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게 어디 뭐 쉬운 일이냐?”
“아, 그래….”
옆에서 함께 달리는 동료 학생처럼 빙제 아이작의 추종자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노아에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아이작 토벌전.
처음에 많은 학생은 그 작전을 듣고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막상 게임 룰 아래 아이작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제로 작전을 수행해야 할 상황에 이르니 학생들은 흥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존경스러운 영웅, 살아 있는 전설의 실물을 볼 수 있다.
그분의 얼음 마법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한 생각들이 학생들의 마음속을 충만하게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오히려 각기 다른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뜻을 합치시키는 데 큰 역할이 되어주고 있었다.
“……!”
노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왜 그래, 노아?”
“보여.”
노아는 좋은 시력으로 정면에 보이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폐허를 연상시키는 높은 언덕길. 가장 위쪽에 한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햇볕을 등져 얼굴에 옅은 그늘이 깔려 있었으나, 달려들던 학생들은 그가 누군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옆에 떠다니는 휘심석. 정체 모를 위압감. 그리고 카리스마.
모든 학생이 발을 멈추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다른 방면에서 나아가던 학생들도 몸을 숨기고 일제히 멈춰 서서 숨을 죽였다.
이내,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그들의 시선은 오롯이 언덕 위에 서 있는 남학생만을 향했다. 저마다 마른침을 삼키며, 눈앞에 보이는 전설을 똑바로 직시했다.
“저분이…?”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나타난 새로운 원왕.
아이작.
“많이도 왔네.”
카리스마와는 대조적으로, 아이작의 만면엔 선한 미소가 담겼다.
동그란 안경은 그의 인상을 순화시켜 주었다.
“어째서 저분이 먼저…?”
“아직 이 게임을 잘 모르시는 건가…?”
아이템과 함정의 효과가 강한 이 대회의 성격상, 그 어떤 사람도 이 많은 학생 수 앞에선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메르헨 아카데미의 파수꾼인 아이작이 먼저 나서는 건 분명 위험한 행위였다.
하지만.
“아니…, 그 반대일지도 몰라.”
한 학생의 대답.
처음부터 이리 될 줄 예상했던 것처럼 혼자 나타난 아이작을 보고서, 학생들의 머릿속에 그가 이 게임의 성격을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겠다는 생각이 점차 치닫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인지를 넘어선 인간이다.
애초에 그의 사고를, 판단을, 대처를 예측한다는 것부터 무의미했다는 걸, 학생들은 아이템과 함정의 효과에 눈이 멀어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런 판에 훼방 놓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아이작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게임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학생들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이곳 참가자 중 누구든지 혼자서 저런 말을 했다면 학생들은 필시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의 말은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이럴 수가….”
감탄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앞으로 나서는 근육질 남성, 한스 맥그리거.
그는 아이작을 보고 놀란 나머지 두 눈을 부릅뜬 채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제, 온천에서….”
“…….”
여기 있는 많은 학생은 아이작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차피 [천리안]으로 휘심석의 위치는 전부 파악한 상태. 그것들을 전부 부수면 게임은 끝난다.
아이작의 목표는, 노아 바르탕의 본래 힘을 끌어낸 뒤에 그와 싸우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방해할 학생들은 빠르게 자격석을 떼어내서 탈락시킬 작정이었다.
다만, 한 명의 예외가 있었다. 바로 한스 맥그리거라는 눈앞의 남학생이었다.
그가 필시 먼저 나설 것이라고 아이작은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다.
어차피 희생양이 하나 필요했다. 한스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줄 터.
아이작은 무덤덤하게 한스를 바라보았다.
“크큭.”
한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고서 피식 웃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빙제시여, 당신을 뵙고 싶었습니다. 어젯밤의 무례는 사과드립니다. 무지했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사과는 됐어. 올라와.”
아이작은 안경을 벗었다.
“그럴 생각입니다.”
다시 고개를 드는 한스. 아이작과 싸울 생각에 흥분감이 고개를 치들었다.
한스는 칵칵 웃으며 다리에 신체 강화 마법을 걸고서 지면을 박찼다.
파앗, 하고 흙먼지가 피어오른 순간 한스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삽시간에 언덕을 뛰어올라 아이작에게 이른 한스.
그의 오른쪽 주먹에 물이, 왼쪽 주먹에 불이 격렬한 기세로 휘감겼다.
“빙제시여, 우리 형제와 좋은 승부를!”
한스의 두꺼운 주먹이 아이작을 향해 내질러지는 순간이었다.
아이작은 한쪽 다리를 뒤로 빼고서 가볍게 주먹을 쥐었고.
콰악!!
무언가가 휘둘러지며 한스의 머리를 깊이 함몰시켰다.
한스에겐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었다. 그저 턱뼈가 아작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파아아!
한 박자 늦게 퍼져나가는 바람의 외마디 비명. 묵직한 풍압.
총처럼 쏘아진 아이작의 주먹은 한스의 주먹보다 월등히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휘우우우! 콰광!
한스의 몸은 공처럼 빠르게 공기를 가로질러 언덕 아래의 건물을 꿰뚫었고, 지면에 수차례 나뒹굴었다.
우르르 무너지는 건물.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
“어, 헉….”
한스의 숨 넘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
말을 잃어버린 학생들에게로, 아이작의 담담한 선언이 이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