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1)
허상의 리파에게서 캐내고 싶은 정보가 있었다.
그래서 위장을 풀었다. 버서커 상태로는 대화할 수 없으니까.
[빙제]의 힘도 감각적으로 몸 안쪽 깊은 곳에 집어넣을 수 있었기에, [허구지옥]이 풀리기 시작하자마자 얼른 집어넣어 버렸다. [멸악자] 활성화 상태라고 해도, [허구지옥]에 있을 때보다 약해진 내가 아주 잠시라도 [빙제]의 힘을 유지하면 몸에 어떤 무리가 갈지 알 수 없었으니.때문에 내 피부색은 본래의 색을 되찾은 채였다.
“허튼짓하지 마라.”
[무, 물론입니다···!]“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눈을 좁히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리파는 겁에 질려 있었다. 흔한 비유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놈의 머리통을 잡은 까닭에 그 떨림이 내 손을 타고 전달되었다.
[네, 네! 뭐든 대답합죠! 대답할 테니 제발···.]“앨리스 캐럴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어?”
현재로썬 앨리스한테 내 정체를 들키면 게임 오버 확정이다. 따라서 그녀가 얼마만큼의 정보를 가졌는지는 나한테 몹시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 엑스트라들 중 가장 최악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최약체 엑스트라다. 즉, 악신 네피드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최대 효율로 강해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신체 단련 효율]이나 [마법 단련 효율] 같은 걸 우선적으로 올리고 있지만, 나중에 그 잠재력들이 최대치에 이른다면 앨리스 같은 흑막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대 인간 전투력]도 높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앨리스에게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정체를 숨기고 다닐 필요가 있었다.
리파를 잡기 전에 [빙벽]을 쳐둔 까닭은 누군가가 이 모습을 목격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한창 사려야 할 때니까.
[애, 앨리스를 어떻게 알···?]「빙결폭발 (얼음 속성, ★5)」
콰아아─!
[끼아아아아아악─!] [빙결 폭발]을 아주 짧게 일으켜 놈의 오른팔을 얼렸다. 빙결을 해제하면 오른팔은 작살난 채겠지.“내 말에 대답하기만 해.”
[흐윽, 아, 아무것도 몰라···, 모릅니다···. 애, 앨리스 녀석은 지금도 당신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이 악물고 고통을 참아가며 울먹이는 리파.
역시 술술 대답해준다. 놈과 앨리스는 어느 쪽이 언제 배신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관계니까. 애초에 이 녀석 자체가 입이 가벼운 편이기도 하고.
‘일단 예상대로네.’
메르헨 아카데미의 학생 평가 자료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지켜지고 있다.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건 교장 엘레나와, 아카데미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헤겔 마탑의 마탑주 아리아의 마법이다.
그들이 있는 이상 내 정보가 털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럼 다음. 앨리스의 계획은 뭐냐? 날 어떻게 찾아낼 생각인지도 말해.”
마족을 처리하고 다니는 사람이 이안 페어리테일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앞으로 앨리스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귀여운 것에 환장한다는 점만 제외하곤 생각 없이 행동하는 부류가 아니므로, 필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당장에 >메르헨의 마법 기사> 6막 3장 최종 보스가 벌써 등장한 꼬라지만 봐도 견적 나오잖아.
‘스토리가 오지게 꼬이겠구나’하는.
[나도 몰라, 그런 건···!]“······.”
리파의 다리 쪽에 [빙결 폭발]을 짧게 날렸다.
콰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악─!!]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는 리파. 그러나 조금도 반항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 허상의 리파 ]심리 : [ 당신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 두려워서다.
애초에 내 손이 리파의 머리를 붙잡고 있는 탓도 크겠지. 언제든 이 손으로 마법을 날려 버리면 녀석은 머리통 깨지고 즉사일 테니 말이다.
[으흐흑, 진짜로, 진짜로 모른다고···, 모른다고···. 끄흑···.]진짜로 모르는 모양이었다.
캐낼 만한 정보가 얼마 없을 건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앨리스가 자기 계획을 막 떠벌리고 다닐 성격도 아니고, 특히나 깊은 관계도 아닌 이 녀석한테 자기 계획을 털어놓을 녀석은 더더욱 아니니까.
이번에 수확이라고 할 만한 건 앨리스가 아직 내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도인가.
[저, 지, 질문에 대답했으니까···,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뭔 소리야.
“내가 언제 살려 준다고 했는데?”
[···예?]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었다. 질문에 대답하면 살려주겠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나도, 학생들도, 교수들도 전부 갖고 놀다 죽일 셈이었잖아?”
인간의 생명 따윈 놈한테 장난감인 셈.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살의를 지니고 살아가겠지.
“그런 놈을 내가 왜 살려 두겠냐?”
[아, 아, 아···!]리파가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놈의 뒤통수를 향해 짧게 [빙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연푸른 냉기의 작은 폭발이 일고, 눈 깜짝할 새에 리파의 상체가 만신창이가 된 채 빙괴 속에 가두어진 모습이 내 눈에 비쳤다.
빙괴가 돼버린 얼음 마나를 풀자 리파는 바닥에 자빠져 버렸고.
그대로 전신이 잿빛 가루가 되어 담뱃재 떨어지듯 바닥에 쌓였다.
“후우.”
그제야 나는 표정을 풀었다.
‘수습 성공했다.’
다행이다….
[축하합니다! [허상의 리파(Lv 130)]를 처치하고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Level Up!! Lv이 56으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10을 획득합니다!] [업적 [허상엔 허상으로!]를 달성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0을 추가로 획득합니다!]내 전투 능력만 측정하고 넘어갔으리라 철석같이 믿었던 3막 1장, 대련 파트였는데.
얼떨결에 스탯 20을 얻어 버렸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걸 벌써 얻었네···.”
허상의 리파가 사라진 자리에 떨어져 있는 잿빛 팔찌. 나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전리품 [원소 팔찌]를 획득했습니다!] [원소 팔찌]: 빛 속성, 어둠 속성을 제외한 특정 원소 속성의 [원소 저항력]을 [40] 만큼 올려 준다.
등급 : 1티어
효과 지속 시간 : 24시간
재사용 대기 시간 : 24시간
‘원소 팔찌’. 당연히 2학기 파트 들어가서 얻을 줄 알았는데.
···일단 스탯과 원소 팔찌에 관한 건 이따가 생각할 일이다. 지금은 우선적으로 처리할 일이 따로 있었다.
급격히 무거워진 몸. [멸악자] 특성이 꺼졌다. 그 전에 주위로 마나를 감지해봤으나 딱히 별 건 없었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나는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 후드를 씌워 버서커 상태가 된 뒤.
페르난도 교수에게 씌워둔 [빙결 차단막]과 날 가두고 있는 [빙벽]을 해제했다.
[빙벽]이 푸르른 빛깔의 가루가 되어 흩어지자마자, 나는 페르난도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이제 기절해 있는 그를 데리고 가면 상황 종료다.
페르난도 교수가 시간이 지나면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부교수에게 지시했을 법 하지만.
확증이 없는 상태로 죽어가는 사람을 옥상에 놔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내 존재를 들키지 않는 선에서 기절한 페르난도 교수를 학사 측에 넘겨야 한다.
무려 교수가 다친 건이다. 내가 페르난도 교수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면 진상규명위원회에 불려가 추궁당할 수밖에 없다.
진상규명위원회 긴급 소집 명단엔 학생회장도 포함돼 있으니, 최대한 피하는 편이 좋다.
“고생하셨네, 교수님.”
쉬운 방법이 있었다.
나는 페르난도 교수를 등에 업고 옥상 출입구로 향했다.
* * *
루체 엘타니아는 듀크관 복도를 걷고 있었다.
대련은 그녀의 압승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대련을 신청한 이안 페어리테일의 용기를 봐서 살살 하려고 했는데, 그냥 5성급 물 마법으로 단번에 끝내버렸다.
아이작이 워낙에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매일 코피 쏟아가며 열심히 노력했는데, 끝내 막다른 벽을 마주하고 항복을 선언했지.
‘얼마나 속상할까.’
체념하듯 현실을 받아들인 얼굴로, 트리스탄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그를 인정해주며 떠나갔던 아이작.
속이 개운한 사람처럼 애써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모습이 오히려 더욱 안쓰럽게 보였다.
뭐라 말을 걸어야 할지 정해 놓지 않았지만, 일단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경비 마법사들의 제지를 받지 않도록 대련을 순식간에 끝내고 복도로 나선 것이었다.
10살 이후로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오지 않은 삶이었으니 위로나 격려 같은 건 서툴렀다.
그래도 우연을 가장해서 아이작과 만난 척한 다음에, ‘힘내’ 정도의 말이라도 해 줄 수 있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어딨어···?’
그러나 아이작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듀크관을 나선 걸까? 아니, 대련 평가 진행 중에는 듀크관을 나갈 수 없다. 즉, 그는 아직 이 건물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어디일까.
루체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 층에는 아이작이 없으니까, 아마 위층이나 옥상쯤에 있는 게 아닐까.
“루체 학생? 여기서 뭐합니까?”
루체는 맞은편에서 계단 쪽으로 오고 있던 부교수와 마주쳤다. 그는 심사관들과 5명의 치유 법사들을 대동한 채였다.
무리 지어 나타난 그들을 보고 루체는 의아해했다.
“대련 평가는 중단됐습니다. 어서 자리로 돌아가서 학사 통제에 따르세요.”
“네···?”
정중하나 다급한 기색이 묻어 있는 목소리로 타이르는 부교수.
앞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그들은 루체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작도 아마 위에 있을 텐데.
루체는 그들을 따라 올라갈지 말지 고민했다.
“도로시 학생?”
그때, 한 여학생이 계단 위쪽에서 내려왔다.
층계참 한가운데서 부교수 일행을 막아서는 그녀.
“······?”
루체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눈에 비친 건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연보랏빛 긴 머리칼의 어여쁜 여학생이었다.
우주를 담은 듯한 눈동자와 별 모양 동공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저 사람은 최근 들어 매일 아이작이 단련하는 장소에 가서 시간을 보내던 바로 그 선배였다.
“잠깐 정지.”
도로시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아래쪽에 서있는 부교수 일행과 루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지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갑자기 왜?
루체와 부교수 일행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위험하니까.”
“······?”
“그럼···.”
눈을 감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면서 리듬을 타기 시작한 도로시.
부교수 일행은 멀뚱히 그녀의 기행을 지켜보았다.
도로시 하트노바는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강 전력, 하늘의 재능을 몰아받은 듯한 천재, 아카데미가 내세우고 다니는 자랑거리이다.
그런 그녀가 ‘위험’이라는 표현을 입에 담았다. 부교수 일행이 불안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교수 된 처지에서 학생 말에 좌우될 수는 없는 일.
마법학부 1학년 A 클래스 담당 교수인 필립 멜트런이 나서서 “도로시 학생.”이라고 말을 걸자.
“됐습니다~.”
“······?”
눈을 뜨고 길을 비켜 주는 도로시. 고작 5초 만에 그녀의 기행이 끝났다.
부교수 일행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일단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층을 오르고 나서.
“페르난도 교수?!”
복도에 쓰러져 있는 한 남자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상처투성이로 기절해 있는 페르난도 교수였다.
꽤 치열한 전투를 치른 흔적이 전신에 가득했다.
그의 옆에선 도로시의 사역마가 페르난도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 주고 있었다. 꼬리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있는 하얀 고양이가 페르난도 뺨에 자기 뺨을 비비고 있는 모습이었다.
“치유반! 빨리 페르난도 교수님을 옮겨 주십시오!”
사태를 파악하는 것보다 페르난도를 병실로 옮기는 일이 우선이었다.
부교수는 치유 법사들에게 다급히 지시를 내렸다.
한편.
도로시는 모퉁이에 기대고 선 채 부교수 일행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 안 가, 치유반이 간이형으로 들고 다니던 들 것에 페르난도를 실은 채 계단을 내려가며 그녀를 지나쳐갔다.
나머지 인원은 옥상으로 향한 듯했다.
그제야 도로시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숙하네, 회장. 도망칠 때까지 시간 벌어 준 이 누나한테 감사하라구.’
도로시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작.
그렇게나 강한 존재가 자기 정체를 숨기고 다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도로시는 그의 비밀을 지켜 주기로 했다.
그가 아카데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배려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도로시는 생각했다.
“응? 넌?”
도로시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여학생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로즈골드색 머리카락은 곱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몹시 단아하다. 머리 양옆에 달린 몰포나비 색감의 머리끈도 잘 어울린다.
도로시는 그녀가 누군지 알았다. 마법학부 1학년 중 단연 독보적인 수석, 루체 엘타니아였다.
아이작이 단련하는 장소에 가기 전, 자주 그를 지켜보고 있던 루체를 목격하곤 했다. 아마도 그를 짝사랑하는 중인 귀여운 후배인 듯 보였다.
도로시는 밝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어?”
“지금 듀크관은 출입금지일 텐데 왜 선배가 있는지 궁금해서요.”
“흐응, 그야 나한테 규칙 따윈 무의미하거든.”
루체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뻑 뭔데.
“위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귀여운 후배는 알 거 없어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하곤 루체를 지나쳐가는 도로시.
루체의 시선은 말없이 그녀를 뒤따랐다.
“아.”
이윽고, 도로시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루체 쪽을 돌아보았다.
“네 짝사랑, 조금 힘들겠다.”
“······?”
뭔 말이야? 루체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표정으로 그리 묻고 있었고.
도로시는 즐겁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