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23)
〈 323화 〉 천의 날개 토벌전 (11)
* * *
베로니카는 거짓을 뿌리치기 위해 별을 따라가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얼음 호수에 이르러, 악신을 쓰러뜨리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진정한 가치를 찾은 것.
바로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진정한 가치가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숙였다.
베로니카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하지만 슬픈 감정에 취해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베로니카에 관한 의문이 풀리자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고개를 들고 검지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그럼 이것 좀 묻자. 난 왜 이 몸에 빙의된 건데?”
[빙의란 표현, 좋네요. 단지 아이작이란 남자가 가장 조건에 부합했을 뿐입니다.]스텔라는 내 시야에 두 가지 영상을 비추었다.
하나는 신림동 고시텔에서 산처럼 쌓인 책들을 옆에 두고 공부하던 내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처럼 독방에서 공부하던 앳된 아이작의 모습이었다.
[영혼을 옮기려면 육체의 틀에 어느 정도 걸맞은 형태여야 합니다. 이해가 잘 안 가시겠지만, 타인의 몸에 다른 이의 영혼을 집어넣는 건 조건이 아주 까다롭고 복잡한 작업을 요한다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옮겨질 대상은 네피드가 부활하는 때와 가까운 시기에 살아 있어야 했습니다.]스텔라는 나를 가리켰다.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육체가 그 남자, 아이작이었습니다. 아이작은 이안 페어리테일과 아카데미 동기죠. 게다가 당신의 영혼과 아이작의 육체가 굉장히 잘 맞아서, 당신의 영혼을 조금만 손 봐줘도 아이작에게 맞출 수 있었습니다. 둘은 영혼이 닮은꼴이었거든요.]다시 시야에 내비치는 광경이 휙 바뀌었다.
드높은 절벽 위. 메르헨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소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이작이었다.
그는 “엄마….”하고 아련하게 웃더니 절벽에서 떨어졌다.
나와 스텔라는 절벽으로 걸어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작은 이미 거칠게 파도치는 바다에 빠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심지어 운명도 신경 쓸 게 없었습니다. 어느 경우에서건, 그는 얼마 안 가 자살할 운명이었으니까요.]“그럼 지금 아이작의 영혼은….”
[구체적인 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방금 전에 보신 그대로입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운명을 바꿔주는 건 권력 남용이나 다름없으니까요.]잠시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스텔라는 태평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나 흠이 있었다면, 그가 메르헨 아카데미의 최약체였다는 점이었겠군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얘기지만요.]다시 시야가 우주의 한복판으로 바뀌었다.
[그보다… 제 계획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문제?”
스텔라를 쳐다보았다.
[악신 네피드의 전력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죠.]그리웠던 게임, >메르헨의 마법 기사> 플레이 장면들이 허공에 나타났다.
전부 최종장, 악신 네피드와의 결전을 내비치고 있었다.
“게임의 악신 패턴이 가짜라고?”
당혹감은 들지 않았다.
이미 1회차 도로시의 이야기를 듣고 예상했던 부분이었기에 확인차 되물은 것뿐.
[네. 겨우 확보한 정보, 그리고 예측할 수 있는 악신의 공격 패턴을 반영해둔 것에 불과하죠. 그리고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일 뿐. 클리어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을 뿐이에요. 기존의 적들은 과장할 필요가 없었지만, 네피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단언합니다. 네피드는 월등히 강합니다.]정확한 공격 패턴은 아직 알 수 없고, 실제론 더럽게 강하다…. 그런 얘기였다.
“왜 네피드만 패턴을 파악할 수 없는 건데? 넌 그 세계의 미래를 볼 수 있다며?”
[네피드가 나타난 직후부턴 미래가 안 보이니까요.]“뭐?”
[네피드는 자기가 나타난 직후부터의 모든 미래를 아무도 볼 수 없도록 가려 놨습니다. 저 같은 이가 그런 걸 건드렸다간 신살의 권능에 잡아먹히고 말죠. 그래서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미처 몰랐지만, 신살의 권능이 굉장히 개사기라는 실감이 났다.
사실상 상대가 신일 때를 한정하여 네피드는 먼치킨인 셈이니까.
왜 신들이 인간을 게임 말로 삼고 이리도 발악하고 있는지 확 와 닿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근데 난 이미 한번 네피드와 붙어 봤잖아. 어느 정도의 공격 패턴은 파악해 놨을 거 아니야?”
악신 네피드를 상대하기 위한 신의 게임은 애초부터 2회차가 예정되어 있었다.
즉, 스텔라는 1회차에 벌어진 일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왜?”
스텔라는 내 시야를 바꾸어 1회차 때 내가 악신 네피드와 싸웠던 장면을 보여 주었다.
악신이 가볍게 손가락만 휘저어도 나는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다.
[당신은 허무하게 패배했습니다. 살아남는 게 고작이었죠. 그리 될 줄 알았기에, 애초부터 첫 시도는 발판으로만 삼기로 계획했던 거고요.]1회차는 2회차를 위한 추진제였다는 얘기였다.
[결국, 얼음 호수의 주관자인 마족 루시페르의 힘으로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갔습니다. 죽었던 자들의 영혼도, 요정도, 오즈마도, 과거의 운명도 모두 되돌아갔죠. 루시페르가 주관할 수 있는 얼음 호수를 제외하고요. 당시 전 여기서 머무르며 도로시 하트노바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1회차 도로시 이야기였다. 이미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차린 사실이었다.
어쨌든 1회차 도로시는 얼음 호수에 머무르며 회귀의 예외 대상이 되었고, 지금의 도로시와 별개의 존재가 되었다.
‘내가 죽었어도 시간은 되돌아갔을 거란 얘기네.’
상태창이 그저 상태창이라고만 믿었을 땐, 회귀가 되려면 내가 살아남는 게 조건이라고 여겼다.
오해가 풀렸다. 1회차 때 오즈마는 단순히 루시페르의 회귀 능력이 언제 발동되는지 카운트만 해주었을 뿐이었다.
아마 2회차를 시작한다고 내게 납득시켜주기 위해서였겠지.
[네. 하지만 기회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습니다.]“어째서?”
[만약 이번에 실패한다면 상황은 다시 첫 번째 시도 때와 마찬가지로 안 좋아질 겁니다. 아니죠, 그렇기만 하다면 차라리 괜찮습니다.]스텔라는 침음을 흘렸다.
[가장 큰 문제는 네피드가 루시페르의 힘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네피드는 루시페르의 힘이 발동되는 타이밍만 알면 신살의 권능으로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상 세 번째 시도부터는 네피드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고 보고 있습니다.]즉, 이번에 악신 네피드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그래….”
눈을 감고 심호흡한 뒤,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만약 첫 시도에서 내 몸을 오즈마한테 뺏겼으면 어떻게 되는 거였어?”
[소용없었을 겁니다. 그래 봤자 과거로 돌아가 당신은 육신을 되찾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빼앗겼다면 최악의 결과를 낳았겠죠.]“그렇겠네….”
아마 오즈마는 1회차에서 상태창에 [신격]을 비춰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1회차 내용을 거의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2회차를 인지하게 될 것을 스텔라한테서 미리 전해 들었을 테니까.
조금이라도 의심이 갈 만한 정황이 발견되는 것을 주의해야 했을 터.
그리고 원옥마수-디아칸 따위를 보고 나서야 지금이 2회차임을 알아차렸으리라.
‘1회차에선 상태창 역할만 충실히 수행했겠네.’
생각하면 할 수록 놀랍다. 나 용케 상태창을 신뢰하지 않았구나.
1회차 도로시의 경고가 없었다면 이미 난 오즈마에게 몸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1회차 도로시를 통해 내게 전언을 전하고 오즈마를 막는 것 또한 전부 스텔라의 계획이었으니.
이성만 잘 챙겼으면 내가 상태창을 못 믿게 되는 것도 시간 문제이긴 했다.
“결국,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게임 지식만으로 네피드를 상대하긴 어렵단 거지?”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내 몫이란 얘기구나.
“…스텔라. 넌 내가 여기까지 도달할 걸 알고 있었어?”
“아니, 이렇게 묻는 게 맞겠네. 날 믿었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도박성이 짙었고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에 잘 될 것이라 확신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불가능을 뛰어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스텔라는 내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 인사를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네가 말한 창조주.”
스텔라는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다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게 너희 힉스의 대표, ‘단테’야?”
스텔라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그랬구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연이어 나는 가장 강하게 들었던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럼, 왜 나야? 왜 날 선택했어?”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는데.
그 질문에 스텔라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복잡한 이유는 없습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열심히 플레이했던 사람 중 특히 당신은…,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었습니다. 전 그런 걸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선함 따위의 부차적인 요소들도 감안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느 때든 무너지지 않는 의지니까요. 그래서 당신이 누구보다도 제 눈에 들었던 겁니다.]“…그러냐.”
너무도 평범한 이유여서 그만 맥이 빠져 버렸다.
시야가 다시 바뀌어 얼음 호수의 정경이 눈에 비쳤다.
필요한 대화가 모두 끝났다는 의미이리라.
스텔라는 등을 돌렸다.
[더 물어보실 게 없다면 이야기는 끝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악신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면 당신의 노고를 치하하여 좋은 보상을 드리겠다고 약속하죠. 그럼….]“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얼음 생성]으로 얼음 의자를 만들어 앉았다.날 이용한 저 신에게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었지만, 그 충동은 가까스로 참아냈다.
“하나 묻자. 만약 이안이 네피드한테 영역 지배를 사용하면 어떻게 돼? 잘 모르면 예측이라도 좋아. 구체적으로 얘기해줘.”
[…왜 그런 걸 물으시죠?]“부탁할 게 있어서.”
한동안 내 생각을 밝히고, 스텔라에게 부탁을 전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스텔라는 잠시간 멍을 때리더니, 이내 웃음보를 터뜨렸다.
[크크크…, 푸하하하하! 크큭, 하하하하!!]정말로 재밌다는 듯 스텔라는 깔깔 웃어댔다.
[아, 재밌는 생각입니다…! 인간이기에,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군요! 당신이 죽을 힘을 다해 거머쥔 그 힘조차 당신에겐 그저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까?!]스텔라는 흥분하더니 양팔을 활짝 펼치며 소리쳤다.
[인간이여,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스텔라는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오고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자그마한 마력을 스르르 내 머릿속에 흘린 뒤, 스텔라는 손을 내렸다.
[그 부탁, 제 목숨을 걸고 반드시 들어드리죠. 당신을 선택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난 네가 싫다.”
[제게 분노를 품으신 점, 잘 압니다. 악신을 쓰러뜨리고 모두를 지키는 걸 성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 화를 받아들이겠습니다.]스텔라는 눈을 감고 내 머리에 자기 이마를 기댔다.
[한성호 씨. 별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길 바랍니다.]눈을 깜박이자 스텔라가 사라졌다.
얼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도 마쳤으니 어서 돌아가야 했다.
고개를 들고 머나먼 제단 위에 속박된 거대한 마족을 올려다보았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루시페르. 좀 묻자. 모든 것의 멸망이 시작되면 네가 시간을 되돌린다는 거, 이미 알고 있었어. 마족 측의 배신자 같은데, 왜 그 지경이 되면서까지 악신을 안 따르게 된 거야?’
의문이었다. 루시페르는 마족이면서 어째서 악신에게 저항하는가.
루시페르의 수많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의사가 내 머릿속으로 전달되었다.
─ 고결해지기 위함이다.
‘고결…. 뭔 의미야, 대체.’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반역의 천인 뷔엘이 천신을 끌어내리려 한 이유도 고결해지기 위함이었지.
다만, 루시페르가 일컫는 고결함은 뷔엘이 추구하는 고결함과 의미가 다를 것이었다.
─ 고결함이란 깨끗한 것. 숭고한 것. 그렇기에 파멸을 막는 것이다.
‘넌 마족이잖아. 살육의 본능을 지녔을 텐데, 어쩌다 그런 생각을 품게 된 거냐?’
─ 본능을 좇는 행위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몸은 존재 자체로 허다한 살육의 증거이니. 네피드에게 대항했기 때문에 이리 된 것이 아니다. 이 모습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 영원한 형벌을 받고자 내 의지로 결정해 도달한 종착점이다. 그 언젠가 이 몸은 고결한 존재로 거듭날 것이니, 형벌 속에서 끊임없이 사색하며 숭고한 진리를 찾으리라.
루시페르의 확고한 의사가 전해져 왔다.
그는 본능을 포기하고 숭고해지기를 선택했다.
그렇기에 죗값을 치르며 악신 네피드의 뜻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잘 알았다.’
루시페르의 의지를 떠안고, 나는 냉기 날개 세 쌍을 펼치고 날아올랐다.
* * *
얼음 호수로 이어지는 승강기 앞.
아이작의 소식을 기다리던 명왕 하데스는 돌연 섬뜩한 마력을 느끼고 전투 태세를 취했다.
지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지면을 뚫고 세 쌍의 냉기 날개를 펼친 청은발의 사내가 비상했다.
명왕은 두 눈을 좁혔다. 눈앞의 사내는 전능의 일각을 움켜쥐고 있었기에.
아이작.
그는 별 무리를 휘감고 허공에 뜬 채 명왕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몹시 싸늘하고 냉소적이었다.
[기다렸다, 얼음의 왕.]명왕의 뒤를 따르는 금빛 고리에서 거대한 팔이 수십 개가 뻗어나갔다.
절대적인 신의 팔, [천수]. 명왕의 전력이었다.
명왕의 날카로운 눈이 전의를 품고 아이작을 노렸다.
“…그거 고맙네.”
그에 대응하듯, 아이작 뒤로 초월의 격인 연푸른빛 고리가 수 개 떠올랐다.
머리 위로 별빛을 머금은 얼음의 반달이 창조되고.
아이작의 두 눈동자가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