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58)
때는 아이작이 시련을 통과한 직후.
북부, 화이트클락 가문 저택.
분홍빛 단발머리 여성,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의 외침이 가문의 넓은 저택을 연신 울려대고 있었다.
“언니! 에이첼 언니!! 도와줘, 급한 일이야!”
아이작이라는 아카데미 동기의 생사가 걸려 있는 위급한 상황.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
그 사실을 케리드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에이첼이라면 어떻게든 아이작을 도울 방법을 찾아내 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며 메이드들과 함께 넓은 저택을 뒤지고 다니길 어느덧 20분째.
아무도 에이첼의 행방을 모른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도대체 그 언니는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케리드나는 에이첼의 집무실에 이르렀다. 아까 확인하고 지나가긴 했지만, 지금은 있을지도 모르는 일. 몰라. 케리드나는 집무실 문을 세게 두들겼다.
“에이첼 언니!! 도와줘! 사람이 죽으려 한다구!!”
“누가?”
“우와아악!!”
태평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리자, 케리드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소리의 주인 쪽을 쳐다보았다.
케리드나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여인이 은근한 미소를 흘리며 서 있었다.
단정하게 땋은 분홍빛 머리칼에 정복 차림인 성숙한 미인, 에이첼 화이트클락이었다.
“어, 언니. 기척을 전혀 못 느꼈는데…? 또 무슨 보법으로 걸어온 거야?”
“그냥 평범하게 걸어왔는데. 네가 둔해서 못 알아차린 것뿐이지.”
“윽…!”
에이첼은 방문을 열었다. 내부는 필요한 가구들만이 구비되어 있는 단조로운 외관의 집무실이었다.
다만 집무실 책상 뒤편, 화이트클락 가문의 상징인 백룡 문양 만큼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 그것보다…! 지금 누가 죽어 가고 있…! 어? 깨어났어?”
케리드나는 아이작이 여전히 암전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시야 동화]가 발동되자 이상한 풍경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작이 깨어난 듯해서 천만다행이긴 한데…, 뭔가 많이 이상했다.“어어…?”
케리드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뜸 백룡의 자태가 눈에 비쳤으니. 그것은 분명 신화에 나오는 명백한 화이트클락 가문의 상징, 백룡의 실체였다.
심지어 아이작은 그 백룡에게 팔을 뻗고, 8성급 사역마 계약진으로 주종 계약을 맺고 있었다.
케리드나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강탈 (중립 속성, ★4)」
“흐악!”
돌연 에이첼은 케리드나의 눈꺼풀에 손을 올리고서 마법을 사용했다. 케리드나는 화들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상대가 사용 중인 마법을 가져오는 중립 속성 마법, [강탈].
시전자가 깊이 이해하고 있는 마법만을 빼앗아 올 수 있기에 일반적으로 실용적이지 못한 마법이었으나.
화이트클락 가문의 가계 마법 [시야 동화]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보다도 이해도가 뛰어난 에이첼이었다. 케리드나의 [시야 동화]를 뺏어오기란 숨 쉬듯 쉬운 일이었다.
에이첼은 눈을 감고 케리드나에게서 빼앗아온 아이작의 시야를 제 눈에 담았다.
“어, 언니!!”
“…….”
에이첼은 팔을 뻗어 자신에게 다가오려던 케리드나를 막았다. 사뭇 진지한 얼굴에 케리드나는 헛숨을 집어삼키고 그대로 멈춰 있어야만 했다.
“이건….”
언제나 은근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하태평한 어조로 설렁설렁 장난을 쳐 대온 사람인데.
에이첼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가고 있는 모습은 케리드나로선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에이첼의 시야에 비치고 있는 것은 거대한 백룡과 어마어마한 마나를 흘리고 있는 대낫, 그리고 위험해 보이는 마족이었다.
곧, [서리군주의 위광]이 발동되어 아이작의 몸체에서 광채가 발하기 시작하고.
──────펑!!
“끄아아악!!”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감겨 있던 에이첼의 눈에서 대량의 피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을 가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는 에이첼. [서리군주의 위광]이 [시야 동화]를 튕겨내 에이첼을 덮친 것이었다.
“언니!!”
케리드나가 에이첼을 감싸려 들었으나.
에이첼은 또다시 팔을 쭉 뻗어 동생의 접근을 차단했다.
“허억, 괜찮…, 괜찮다….”
남은 손으론 눈가를 가린 채였다. 높은 숙련도의 [기초 보호 마법]을 상시 두르고 있던 덕분에 안구가 터지는 건 방지할 수 있었지만, 후유증은 꽤 오래 갈 듯했다.
에이첼은 격통 속에서 거칠게 호흡하며 말을 떨었다.
“동생아. 너…, 대체 얼마나 터무니없는 괴물을 건드린 거냐…?”
“어, 언니…?”
케리드나는 겁에 질린 채 전신을 덜덜 떨었다.
“미, 미안…!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미…!”
“혼내는 게 아니야.”
돌연, 에이첼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케리드나로선 조금도 예상할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칭찬하는 거란다….”
에이첼은 피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두 눈을 부릅뜨며 기뻐하고 있었다.
광대처럼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한 미소. 새빨갛게 물든 안구.
처음으로 케리드나는, 언니가 섬뜩하게 보인다고 느끼고 있었다.
* * *
[축하합니다! [독식의 하인켈(Lv 155)]을 처치하고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Level Up!! Lv이 63으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6을 획득합니다!] [전리품 [천제 뭉치]를 획득했습니다!] [전리품 [천제 뭉치]의 기운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축하합니다! 고유 스킬 [천리안]을 습득했습니다!]이것저것 확 몰아닥친 느낌이었다.
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 서리낫의 냉기에 적응하다 보니 기분이 심하게 침잠해 있었다.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 와중에 빙설룡-힐드를 보자마자 천앙의 대마녀가 8성급 사역마 계약진 줬던 일이 문득 떠올랐고.
그래서 그냥 내 사역마 되라고 말이라도 한번 내뱉어 본 것뿐이었는데… 진짜로 기꺼이 돼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게다가 독식의 하인켈까지. 얼떨결에 무덤덤하게 반응하고 해치워 버렸다.
‘얜 여기서 왜 나와…?’
서리낫의 냉기에 적응하고 사고가 점점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나서야, 지금이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독식의 하인켈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 1학년 2학기 파트의 감초 같은 역할이었다.
악신 네피드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는 마족. 자기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부류라, 여러 스토리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될 때가 많았다.
그런 게 갑자기 나타나서, 2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한테 뒤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독식의 하인켈을 처치하면 얻을 수 있는 [천리안]까지 내 것이 되어 버렸다.
서리낫에, 8성급 사역마에, [천리안]까지….
‘이 혜자스러움 뭐야.’
1+2 행사 상품 같은 느낌이 되어 버렸네.
심지어… 빙설룡은 나 보고 뜬금없이 ‘빙제’라고 했었지. 조금 고민하고서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허구지옥]에서 얻은 9성급 패시브 스킬 [빙제]. 빙설룡은 그걸 간파하고 나를 천 년 전 자기 주인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빙제의 환생 같은 거라고 여겼을까?빙설룡은 할머니 같은 구석이 있으니 윤회 사상 같은 걸 가지고 있을 법도 했다.
‘결국 지 혼자 착각해서 내 사역마 되는 거였어?’
천앙의 대마녀여, 진짜로 제 운명을 보긴 봐주셨군요.
솔직히 극적이고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8성급 사역마와 계약을 맺는 뽕 차오르는 상황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긴 했다.
무려 종결급 사역마니까.
그런데, 이런 모양 빠지는 형태가 될 줄은.
‘미안하다, 힐드.’
난 빙제가 아니야…. 빙제의 환생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 말을 빙설룡에게 해주려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끼고 충격을 받을지 감도 안 잡힌다. 무려 천 년 동안 빙제를 그리워하면서 지내온 녀석이니까.
어차피 기왕 사역마 계약 맺은 거, 적어도 악신을 잡을 때까지 빙설룡은 내 힘이 되어줬으면 했다. 그 이후엔 얼마든지 계약을 해제하든 말든 상관없고.
‘악신을 쓰러뜨리기 전까진… 빙제의 환생 같은 척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솔직하게 내가 빙제가 아니라고 밝히는 편이 좋을까.
한동안 머리를 싸매다가, 일단 쉬고 내일부터 고민하기로 했다. 오늘은 너무 지쳤어.
방한복은 아예 버리기로 했다. 시련 동굴 깊숙한 곳에 있는 터라 그 어둠 속을 탐험하면서까지 찾고 싶진 않았다.
들어왔던 마법진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조금 흘려보내자, 나는 에일라 숲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빙설룡은 내 것. 녀석의 시련 동굴 출입을 관장하는 권한 또한 내가 가지게 된 까닭이었다. 거저먹은 기분이었다.
“아.”
에일라 숲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힘이 나지 않았다. 서리낫의 냉기를 지배하게 되면서 몸을 얼렸던 냉기는 사그라졌지만, 상처는 그대로였으니.
내 몸엔 냉기에 죽어 가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빈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 없는 상태. 피부가 갈라져 생겨난 온갖 생채기는 미리 얼려 둬서 피가 흐르진 않았지만, 전신이 따끔거리는 고통은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었다.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나는 지면에 얼음 장판을 만든 뒤, 그 위에 드러누웠다. 상처 부위에 잔디라도 닿았다가 파상풍이라도 얻으면 그것대로 슬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의 화원이 내 눈동자에 새겨졌다. 적적하며, 온화하며, 은은했다.
일이 좀 꼬인 기분이었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엄청난 수확을 건진 건 틀림없는 사실. 이 모든 고통이, 상처가, 몹시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더럽게 아프네, 진짜.”
나는 고통 속에서 실실 웃어댔다.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
[ 상 태 ]이름 : 아이작
Lv : 63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학사 생활에 적응한 1학년
마력량 : 3200 / 3200
– 마력 회복속도(C)
– 체력(B-)
– 근력(B-)
– 지력(C+)
– 정신력(A+)
잠재력 >>상세>>
[ 전투 능력 ]원소 계열 1 : 얼음
– 원소 화력(B-)
– 원소 효율(B-)
– 원소 시너지(B-)
원소 계열 2 (잠김)
[ 보유 스킬 ]보유 스킬 >>상세>>
스킬 트리 >>상세>>
[ 고유 특성 ]– 멸악자
[ 사역마 ]이든 (Lv : 55)
등급 : ★3
종족 : 마수
속성 : 바위
친밀도 : 70
융화력 : 35
소환시 소모 마력량 : 50
보유 스킬 >>상세>>
빙설룡-힐드 (Lv : 180)
등급 : ★8
종족 : 마수
속성 : 얼음
친밀도 : 5
융화력 : 0
소환시 소모 마력량 : 20000
보유 스킬 >>상세>>
‘중간 점검해야지.’
서리의 시련을 통과한 이후 아카데미 응급실에서 치료받았다. 무슨 일을 겪었냐고 추궁당했는데, 이것저것 단련하다가 다쳤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기숙사에 돌아가선 기절하듯 잠들었다. 진짜 개 피곤했다.
아침. 하위권 기숙사, 도리스관.
나는 창가에 기댄 채 상태창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선선한 아침 바람이 흘러들고 있었다.
새로 얻은 스탯 6은 스킬 숙련도 향상 속도와 면학에 도움을 주는 [학습 효율]에 투자했다.
조만간 [원소 화력] 정도는 B-급에서 B급으로 올릴 수 있을 듯했다. [마법 단련 효율] 잠재력이 A급인 덕분에 나름 눈에 띄는 성장 속도였다.
참고로 많은 학생은 이미 [마법 단련 효율] 같은 잠재력이 뛰어난 편이다. 메르헨 아카데미는 명문. 나름대로 마법적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 몰려드는 곳이니.
하물며 그들 또한 부단히 노력하면서 자신을 갈고닦고 있을 터.
반면에 나는 [마법 단련 효율]을 A급으로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메르헨의 마법 기사> 시스템 특성으로 마족들을 잡아가면서 엄청난 속도의 성장을 이뤄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 다른 상위권 녀석들이나 타고난 재능충 이안보다 뒤처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든 저렇든,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작 코인은 떡상하게 되겠지. 애당초 1학기 동안 다른 녀석들 레벨 고작 몇 올릴 동안 나는 43이나 올렸으니.
그나저나.
‘힐드 사용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네….’
기껏 빙설룡-힐드와 계약했건만.
[멸악자] 비활성화 상태에선 빙설룡 소환에 들여야 할 마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내 최대 마력량은 3200. 반면에 빙설룡을 소환하려면 무려 20000의 마력이 필요했다. 무려 6배 넘게 차이 난다.
심지어 힐드를 소환한다고 해도, 소환 상태를 유지하는 데 들이는 마나도 막심할 터. 아직은 [멸악자] 비활성화 상태에서 힐드를 다루는 건 현실성이 없는 얘기였다.
뭐, 애초에 종결급 사역마를 얻은 점만 해도 기대 이상의 성과지. >메르헨의 마법 기사> 극후반부에 가야 얻을 수 있는 걸, 나는 초반부부터 얻은 셈이었으니.
걱정이 있다면….
‘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빙설룡과 대화 한 마디 안 나누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지금 빙설룡은 무척 당황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 마력이 버러지 수준이란 걸 절절히 느끼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빙설룡 소환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 원….
사역마의 크기와 가용 가능한 마력을 줄이는 식으로 소환에 들이는 소모 마력량을 격하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내 수준으론 그 방법을 써도 빙설룡을 소환하기 어려웠다.
즉, 지금의 나로선 빙설룡과 대화하는 일조차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만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지.
그리고 보유 스킬이 많아진 까닭인지 상태창 스킬 리스트가 간소화되었다. 이제는 [보유 스킬 >>상세>>]를 눌러야 스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보유 스킬 ]액티브
– (★1) 얼음 생성(B-) / (★5) 흑빙(B-)
– (★2) 얼음 장막(B-)
– (★1) 냉기 발산(B+)
– (★1) 기초 보호 마법(D+)
– (★4) 서리불꽃(C+)
– (★4) 빙벽(C+)
– (★5) 빙결 폭발(C-)
– (★2) 싸락눈(C)
– (★7) 천공 지배-백야(E) – (잠김)
– (★7) 천공 지배-상야(E) – (잠김)
– (★7) 서리군주의 위광(E) – (잠김)
– (★7) 절대영도(E) – (잠김)
– (★7) 천리안(E)
패시브
– (★7) 심리 간파
– (★5) 마족 감지
– (★9) 빙제
– (★7) 급속냉각 – (잠김)
잠겨 있는 스킬은 조건부 스킬이다. 힐드의 서리낫을 꺼내면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1학기가 끝난 참인데 벌써 이 정도 성과라니. >메르헨의 마법 기사> 정석을 싹 다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배덕감과 흥분감이 몰려온다.
“흐흐…, 어휴.”
그러나 기분은 금세 가라앉았다. 서리낫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내 몸으론 서리낫을 쓸 수 없었다. 어제 [멸악자]가 풀리자마자 서리낫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마나 회로에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혈류가 급속도로 빨라져 혈관이 팽창해 터지려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
서리낫 마법을 제대로 못 쓰는 건 물론이요, 서리낫을 휘두르기만 해도 내 몸이 꽁꽁 얼어붙으리라 짐작했다.
사실상, 마족이 아닌 적 앞에서 서리낫을 다루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이기도하고.
역시 최종 무기 다웠다.
‘[천리안]이라도 써볼까.’
오른쪽 눈에 기이한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 마력을 흘려보냈다.
────── 「천리안 (중립 속성, ★7)」
형용하기 힘든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또 다른 내가 만들어진 기분. 그 또 다른 나를 머릿속으로 조작해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축지법이라도 익힌 것처럼 또 다른 나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시야가 휙휙 돌아갔다. 양 눈의 초점이 안 맞아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왼쪽 눈은 꾹 감았다.
현재 오른쪽 눈이 담고 있는 건 멀리 있는 수국 정원의 풍경이었다. 신기한 감각이었다.
‘오오, 좋아. 한계가 어디냐.’
나는 엄청난 속도로 또 다른 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조금 더 이동하자 오른쪽 눈이 망치에 치인 것 같은 격통이 느껴졌다. 두통은 덤이었다.
“윽…!”
나는 [천리안]을 풀고 오른쪽 눈을 꾹 눌렀다. 조오올라 아팠다…. 마취 안 하고 다래끼 수술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직 [천리안]은 숙련도가 최하인 E급이라, ‘천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먼 곳까진 들여다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유용하게 쓸 만한 좋은 마법인 건 분명하니, 기쁜 마음으로 숙련도를 차근차근 높여가면 될 것이다. 이걸로 앨리스를 감시…하는 건 어렵겠네. 엑스트라 배드 엔딩 N.11 「돌연사」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격통이 진정되자, 나는 숨을 가다듬고 오른쪽 눈을 누르고 있던 손을 내렸다. 거울 쪽을 돌아보았다. 은빛에서 적색으로 돌아온 오른쪽 눈이 거울에 비쳤다.
‘[천리안]은 계속 단련하면 될 테고…. 2학기 시나리오는, 음.’
2학기 파트에 나와야 할 허상의 리파와 독식의 하인켈. 그 둘을 조기에 처치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2학기 시나리오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미지의 영역.
일단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1학년 2학기 「4성좌」 파트에서 에이미 할로웨이가 가계 마법 [심색 분별]로 리파의 시꺼먼 속내를 간파해낸다. 그렇게 에이미의 활약으로 녀석이 마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허구지옥] 파트로 넘어가는 것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빛 속성 인재인 이안 페어리테일을 두고 4성좌끼리 경쟁을 벌이겠지만, 나로선 알 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하인켈의 부재. 이 녀석은 1학년 2학기 시나리오에서 조커처럼 변수를 창출해내는 역할이었다. 이안을 몰아넣기도하고, 이안을 궁지에서 벗어나게 만들기도 하는.
그래서 앞으로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진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해야 할 건 지금까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마족을 처치하고 배드 엔딩을 막는 것이니.
이안이 시나리오 진행을 위한 최소한의 역치는 갖추도록 도와줄 필요도 있겠지만, 그건 방학이 끝나고 이안이 돌아오면 차차 생각해 볼 문제였다.
팔을 휘저어 상태창을 끄고 창밖 풍경을 쳐다보았다.
시련을 통해 악신의 마력을 피부로 느끼고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악신을 쓰러뜨리려면 계속 단련해서 강해져야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나 혼자만 뒤져라 세져봤자 뭐하냐.’
당장에 악신의 하수인, 앙그라 마이뉴를 상대하려면 빛 속성 체질이 아닌 이상 레벨 200은 기본으로 채우고 가야 한다. 안 그러면 앙그라 마이뉴가 내뿜는 핏빛 마나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을 테니.
하지만 레벨 200인 인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앙그라 마이뉴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 녀석의 마법에 저항할 수 있는 빛 속성 이안 뿐.
하지만 이안은 컨트롤 고자에 SSS급 기절 전문가다. 즉, 내가 레벨 200이 돼서 앙그라 마이뉴를 쓰러뜨리는 방법이 훨씬 현실적이리라. 아니면 레벨 200짜리 동료를 어떻게든 포섭해서 도와달라고 하든가.
하지만 적에는 파멸룡-아지 다하카도 있고, 흑염체 군단도 있다. 그것들도 전부 막아내야 한다.
전력을 모으는 일은 당연히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많고 강한 전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과제가 하나 더 생겼네.’
악신이 부활하기 전까지, 강력한 전력이 될 녀석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 적어도 지금의 도로시보다 더 강한 존재가 여러 명 필요하리라.
그것 또한 내 장기적인 과제가 될….
“안녕!”
“오 씨, 깜짝이야!”
창밖, 별안간 한 여학생이 아래에서부터 튀어나왔다.
마녀 모자와 연보랏빛 머리칼이 보였다. 순간 공포 영화 속 처녀 귀신이 연상돼서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와 심장 멎는 줄 알았다….
“냐하하! 회장 완전 웃겨!”
나는 이런 거 약하단 말이다….
심호흡으로 감정을 추스르고서, 발에 별빛 마나를 싣고 허공에 떠 있는 도로시 하트노바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읏차.”하고서 자세를 바로잡고 창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맨다리는 내 방 쪽으로 뻗으면서.
도로시는 왜소하고 뽀얀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사복 차림이었다. 아침부터 눈 호강해서 좋았다.
“선배, 여긴 남자 기숙사라 이러고 계시면 곤란한데요….”
“괜찮아, 이미 난 벌점 만점이거든! 더 오를 것도 없어!”
콧김을 뿜으면서 해맑게 대답하는 도로시. 자랑스럽게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회장, 오늘 뭐 해? 나랑 놀자.”
“마법 연습하러 가야 돼요. 놀 시간 없어요.”
도로시는 도끼눈을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단련충.”
“매도예요?”
“아니면 방해하러 갈래.”
“이젠 방해한다고 아예 대놓고 선포하시네요…. 평소엔 아닌 척하시더니.”
“회장, 이 누나는 참 슬프다? 내 팬이란 사람이, 내가 놀고 싶다는데 시간 할애도 안 해주고.”
“으. 안 된다니까, 정말….”
“아, 또 말 놨다.”
“……?”
돌연 도로시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하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뭐지?’
내가 도로시한테 말을 놓은 적이 있었던가? 은연중에 그랬던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나?
그 많고 많은 도로시와의 대화 내용을 전부 다 온전히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항상 속마음으론 도로시한테 말을 놓고 있었으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을 놓은 경우가 있긴 있었을 것 같았다. 하물며 그런 경우였다면 나는 의식조차 못 했겠지.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었나, 얘가?’
[ 도로시 하트노바 ]심리 : [ ★☆★☆★☆★☆★☆★☆ ]
역시나 도로시의 심리는 읽히지 않았다.
“농담이야. 우리 성실한 회장 방해해선 안 되지, 응.”
“근데 웬일이에요? 아침부터 인사하러 다 오시고.”
“오늘따라 왠지 그러고 싶어서.”
도로시는 방긋 웃었다.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니히히, 이 누나는 이만! 이따 보자~.”
“아…, 네.”
도로시는 몸에 별빛 마나를 휘감고 무중력 상태가 되더니, 멀리 떠나버렸다.
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도로시가 한 말에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기에.
잠시 동안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도로시와의 대화 내용을 되짚어보았다.
…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도로시가 시련에서의 기억을 가졌을 리 없잖아.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기숙사를 나섰다.
뭉게구름 무리가 하늘을 조용히 떠다녔다. 이번엔 비구름이 아닌 듯했다.